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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퍼플
Deep Purple
딥 퍼플(영어: Deep Purple)은 1968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록 밴드로, 하드 록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 그룹 이름은 피터 드 로즈의 곡에서 따왔으며 비록 그들은 자신들을 헤비 메탈 밴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와 함께 헤비 메탈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딥 퍼플은 1억장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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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Purple
딥 퍼플(영어: Deep Purple)은 1968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록 밴드로, 하드 록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 그룹 이름은 피터 드 로즈의 곡에서 따왔으며 비록 그들은 자신들을 헤비 메탈 밴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와 함께 헤비 메탈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딥 퍼플은 1억장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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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퍼플(영어: Deep Purple)은 1968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록 밴드로, 하드 록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 그룹 이름은 피터 드 로즈의 곡에서 따왔으며 비록 그들은 자신들을 헤비 메탈 밴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와 함께 헤비 메탈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딥 퍼플(영어: Deep Purple)은 1968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록 밴드로, 하드 록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 그룹 이름은 피터 드 로즈의 곡에서 따왔으며 비록 그들은 자신들을 헤비 메탈 밴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와 함께 헤비 메탈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딥 퍼플은 1억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딥 퍼플은 몇 차례의 멤버 교체를 거치며 활동하다 1976년에서 1984년에는 휴지기를 갖는다. 1968년에서 1976년까지의 라인업은 1~4기로 분류되는데 이 중에서 두 번째이자 가장 성공적이던 라인업은 창단 멤버였던 존 로드(키보드), 이언 페이스(드럼), 리치 블랙모어(기타)에 이언 길런(보컬)과 로저 글러버(베이스)가 합류하였을 때였다. 이 라인업으로 1969년에서 1976년까지, 그리고 이후 다시 1984년에서 1989년, 그리고 1992년에서 1993년에 활동했다. 이 외의 시기에 멤버들로는 1968-1969년의 에반스(보컬)와 닉 심퍼(베이스, 백보컬), 1974-1976년의 데이비드 커버데일(보컬), 글렌 휴즈(베이스, 보컬), 리치 블랙모어를 대치한 토미 볼린(기타), 1989-1992년의 조 린 터너(보컬) 등이 있다. 현재는 1994년부터 이언 길런과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가 합류한 이래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2002년 키보드의 존 로드가 은퇴하면서 (돈 에이리가 이어받았다) 이언 페이스 만이 유일한 오리지널 멤버로 남게 되었다.
딥 퍼플은 VH1의 위대한 하드 록 아티스트 프로그램에서 22위를 차지했고 플래닛 록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벌인 "역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밴드"라는 투표에서 5위로 뽑혔다. 2008년 월드 뮤직 어워드에서는 이들에게 레전드 어워드를 수여했다. 딥 퍼플은 (더 정확하게는 블랙모어, 로드, 페이스, 길런, 글로버, 커버데일, 에반스, 휴즈) 2016년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추대되었다.
1967년, 서쳐스(The Searchers)의 드러머였던 크리스 커티스는 런던의 사업가인 토니 에드워즈에게 그가 구성하려고 하던 새 그룹을 도와달라고 연락했고 에드워즈는 그들의 모험에 재정적 지원을 해주기로 한다.
커티스가 처음 만난 사람은 해먼드 오르간을 연주하는 존 로드였다,
그리고 그는 새 그룹의 오디션을 위해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를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돌아오도록 설득했다.
커티스 자신은 얼마후 그룹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HEC, 그리고 로드와 블랙모어는 그들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것에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베이시스트 닉 심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룹 메이즈(The Maze)의 출신들인 보컬 로드 에번스(Rod Evans) 와 드러머 이안 페이스(Ian Paice)를 그룹에 합류시킨다.
1968년 봄의 덴마크에서의 짧고 적은 수의 몇 공연 후, 밴드는 리치 블랙모어가 제안한 딥 퍼플(Deep Purple)이라는 새로운 밴드이름에 의견을 일치시켰다.
1968년 5월 딥 퍼플은 런던의 마블 아치에 위치한 파이 스튜디오에서 데뷔 앨범 《Shades of Deep Purple》을 녹음했고 7월에 미국 레이블 테트라그라마톤에서, 9월에 영국 레이블 EMI를 통해 발매했다. 북미에서는 조 사우스의 <Hush> 리메이크로 성공을 거두었고 1968년 9월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차트 4위에, 캐나다 RPM 차트 2위에 오르면서 앨범도 덩달아 빌보드 팝 앨범 차트 24위로 올라갔다. 딥 퍼플은 크림의 고별 투어에 참여하기로 결정되었다.
두 번째 앨범 《The Book of Taliesyn》 녹음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북미에서 투어에 맞춰 1968년 10월에 발매되었다. 닐 다이아몬드의 곡 <Kentucky Woman>을 리메이크 한 것이 미국 빌보드 차트 38위, 캐나다 RPM 차트 21위에 올랐으나 앨범 판매는 그보다는 약간 저조하여 미국에서 54위, 캐나다에서 48위에 그쳤다. 이 앨범은 영국에서는 이듬해가 되어서야 발매되었고 이전 앨범과 마찬가지로 영국 앨범 차트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69년 초 딥 퍼플은 에반스가 사귀고 싶어하던 뮤지컬 <헤어>의 출연진 엠마레타 마크스의 이름을 딴 싱글 <Emmaretta>를 녹음했고 3월에는 세 번째 앨범 《Deep Purple》의 녹음을 마쳤다. 이 앨범에는 존 로드의 바흐나 림스키-코르사코프 같은 클래식 배경이 드러나는 곡으로 현악기와 관악기가 등장하는 <April>과 바닐라 퍼지의 영향이 뚜렷이 보이는 곡들이 담겼다. 사실 로드와 블랙모어는 자신들이 "바닐라 퍼지의 판박이"가 되고 싶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 앨범은 첫 창단 멤버들로서의 마지막 녹음이었다.
딥 퍼플의 북미 레코드 레이블인 테트라그라마톤의 문제로 1969년 미국 투어를 마치기까지 앨범이 발매되지 못했다. 이것과 함께 흐리멍텅한 홍보 활동으로 인해 레이블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그 결과 앨범 판매가 부진하여 빌보드 톱 100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세 번째 앨범을 발매하고 얼마 안 있어 테트라그라마톤은 파산했고 밴드는 결국 돈도 못 받고 미래도 불투명해지게 되었다. 테트라그라마톤의 자산은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가 인수하였고 이후 1970년대에 걸쳐 딥 퍼플의 미국 음반 발매를 담당하게 된다.
1969년 미국 투어 중 로드와 블랙모어는 페이스와 함께 밴드의 음악을 더욱 강력한 방향으로 갈 것을 논의했다. 에반스와 심퍼가 헤비 록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 그 해 여름에 교체하게 된다. 페이스는 당시에 대해 "변화해야 했다. 그들이 떠나지 않았다면 밴드는 해체되었을 것이다"라고 회상한다. 심퍼와 블랙모어는 로드 에반스가 이미 한쪽 발을 문 밖에 내놓은 것을 눈치 챘다. 심퍼는 에반스가 헐리우드에서 한 여자를 만났으며 배우가 되고 싶어했다고 말했고 블랙모어는 "로드는 미국에서 살고 싶어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새로 보컬을 구하고 있던 블랙모어는 19살이었던 테리 레이드에게 눈길을 주었다. 레이드는 그의 요청에 대해 감사해 했지만 아직 제작자와의 전속 계약이 끝나지 않았고 또 솔로 활동에 더 관심이 있었다. 블랙모어는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에서 보컬을 찾아야 했다. 이모저모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 당시 영국에서 몇 장의 싱글을 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던 밴드 에피소드 식스(Episode Six)의 보컬 이언 길런을 찾아냈다. 딥 퍼플이 형성되던 시기에 닉 심퍼는 길런에게 접근한 적이 있었는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길런은 라운드어바웃은 실패할 것이고 에피소드 식스가 크게 될 거라고 했다고 한다. 아웃로스 시절부터 블랙모어의 오랜 친구였던 에피소드 식스의 드러머인 믹 언더우드는 길런과 베이시스트 로저 글로버를 소개해 주었다. 이로 인해 에피소드 식스는 와해되었고 언더우드는 거의 10년간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1970년대 말에 길런이 딥 퍼플을 떠난 이후 다시 합치게 된다. 블랙모어에 의하면 딥 퍼플은 이언 길런에게만 관심이 있었는데 이언 페이스의 조언으로 로저 글러버도 영입하였다.
이로서 딥 퍼플의 2기 멤버 라인업이 완성되었고 첫 번째로 <Hallelujah>를 발매했다. 녹음 당시 닉 심퍼는 자신이 아직 밴드에 속해있는 줄 알고 존 콜레타에게 녹음 스케줄에 대해 문의했고 이미 자신을 제외하고 글로버와 함께 녹음이 끝난 것을 알게 되었다. 남아있던 오리지널 멤버들은 회사 측에 공식적으로 심퍼가 교체되었음을 알려주라고 했다. 영국에서 <Hallelujah> 싱글 홍보를 위해 TV 출연까지 하며 공을 들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블랙모어는 영국의 음악 주간지인 <레코드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에서 상업적인 음반 발매가 필요했다"면서 이 곡에 대해 딥 퍼플의 스타일과 상업성을 결합한 타협점이었다며 "일종의 중간지점"에 있는 곡이라고 했다.
1969년 9월 존 로드의 삼악장으로 구성된 서사시적 솔로 앨범인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를 런던의 로얄 알버트 홀에서 말콤 아놀드가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딥 퍼플이 함께 협연하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 앨범은 의 《Days of Future Passed》와 더 나이스의 《Five Bridges》와 함께 록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했던 첫 작품들 중 하나다. 이 라이브 앨범으로 영국 앨범 차트에서 처음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길런과 블랙모어는 딥 퍼플이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밴드"로 인식되는 것에 불만이었고 그들이 만들어내려는 스타일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다. 1970년에 로드는 또 한번 오케스트라/밴드의 조합인 《Gemini Suite》를 썼다. 1975년 블랙모어는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는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Gemini Suite》는 끔찍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평했는데 에 따르면 초창기 시절 존 로드가 밴드의 리더로 보였다고 했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업 앨범 발매 이후 3년간 딥 퍼플은 거의 휴식 기간도 없는 미친듯한 투어와 녹음 스케줄을 소화하게 된다. 이 시기에 나온 첫 번째 앨범은 1970년대 중반의 《In Rock》으로 공연 때마다 빠지지 않는 <Speed King>, <Into The Fire>, <Child in Time>이 담겨 있다. 그리고 앨범에 수록되지는 않았으나 같은 시기에 발매된 싱글 <Black Night>으로 딥 퍼플은 마침내 영국 톱 10에 들게 된다. 블랙모어의 기타와 로드의 디스토젼이 걸린 오르간 간의 주고받는 연주에다 길런의 파워풀하고 폭넓은 음역대의 보컬, 그리고 글로버와 페이스의 리듬 섹션이 어울린 음악으로 딥 퍼플은 이전의 스타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창출하였다. 레드 제플린의 《Led Zeppelin II》, 블랙 사바스의 《Paranoid》 앨범과 더불어 딥 퍼플의 《In Rock》은 싹트기 시작하던 헤비 메탈 장르의 교과서가 되었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블랙모어는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것은 질렸고 이제는 내 차례라고 생각했다. 존은 클래식 쪽에 관심이 있는데 나는 그에게 '이제 원하는 것을 했으니 나는 록을 하겠다. 그리고 나서 어느 쪽이 더 잘되는지를 보고 그것을 하기로 하자'고 했다"고 한다. 《In Rock》은 성공적이어서 특히 영국에서 4위까지 올랐고 싱글 <Black Night>은 영국 싱글 차트 2위까지 도달하면서 BBC의 <톱 오브 더 팝스>에 출연하여 연주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판매고가 오르는 동시에 딥 퍼플은 공연에 있어서도 엄청난 볼륨과 블랙모어와 로드의 즉흥연주로 인해 그 명성이 자자하게 된다. 로드는 딥 퍼플에 연주에 대해서 "우리는 재즈, 록앤롤, 클래식에서 스타일을 차용했다. 리치와 나는 서로 음악적 농담과 공격을 주고받는다. 그가 뭔가 연주하면 나는 그에 대응하여 연주한다. 이를 통해 일종의 유머와 함께, '다음엔 뭐지?'하는 긴장감을 더해 준다. 청중들은 다음에 뭐가 나올지 모른다. 그리고 열에 아홉은 우리도 뭐가 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더더욱 창의력에 있어 진일보한 2기의 두 번째 앨범 《Fireball》이 1971년 여름에 출시되었고 영국 앨범 차트 1위로 등극한다. 타이틀 곡인 <Fireball>과 함께 앨범에 수록되지 않았으나 앨범 세션 중에 녹음된 <Strange Kind of Woman>이 싱글로 발매되었다. <Strange Kind of Woman>은 8위에 오르면서 영국 톱 10 싱글에 진입한 두 번째 곡이 되었다.
《Fireball》 앨범 발매 이후 몇 주 지나지 않아 딥 퍼플은 이미 다음 앨범에 들어갈 곡들을 공연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Highway Star>란 제목이 붙은 곡은 공연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어떻게 곡을 쓰나요?"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
출처: 딥 퍼플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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