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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 록
psychedelic rock
사이키델릭 록(영어: psychedelic rock)은 록 음악의 한 종류이다. 애시드 록, 드러그 록 또는 사이키델릭이라고도 한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현란한 조명효과에 마약을 한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 같은 환각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환각 경험을 연상시키는 음향 효과, 실험적인 녹음 기법, 확장된 연주와 즉흥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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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 록(영어: psychedelic rock)은 록 음악의 한 종류이다. 애시드 록, 드러그 록 또는 사이키델릭이라고도 한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현란한 조명효과에 마약을 한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 같은 환각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환각 경험을 연상시키는 음향 효과, 실험적인 녹음 기법, 확장된 연주와 즉흥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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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 록(영어: psychedelic rock)은 록 음악의 한 종류이다. 애시드 록, 드러그 록 또는 사이키델릭이라고도 한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현란한 조명효과에 마약을 한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 같은 환각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환각 경험을 연상시키는 음향 효과, 실험적인 녹음 기법, 확장된 연주와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록 음악의 한 장르이다.
1960년대 초반, 록 음악은 포크 록과 블루스 록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으며, 이와 동시에 스튜디오 기술의 발전과 대중문화 전반에서의 실험적 경향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이키델릭 문화가 확산되며, 음악 역시 기존의 형식과 청취 경험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포크, 재즈, 블루스 음악가들이 사이키델릭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했으며, 이후 록 밴드들이 전자 효과와 즉흥 연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하나의 장르로 정립되었다.
사이키델릭 록은 LSD (마약) 경험에서 비롯된 비현실적 감각, 시간 인식의 왜곡, 청각적 몰입을 음악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였다. 사이키델릭 록이 탄생하는 과정에서는 테이프 역재생, 패닝, 플렌져, 과도한 리버브와 같은 스튜디오 기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청취자에게 마약의 경험과 같은 비현실적이고 새로운 청각적 경험을 제공하였다.
1960년대 초 사이키델릭 록 음악가들 중 일부는 포크, 재즈, 블루스를 기반으로 활동했으며, 다른 일부는 라가 록이라는 인도 고전 음악의 영향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1960년대 중반 사이키델릭 록은 영국과 미국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영국에서는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접근이 두드러졌으며, 미국 서부에서는 블루스 기반의 강한 사운드와 즉흥 연주를 강조한 애시드 록이 중심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비틀즈와 버즈 등의 밴드들이 처음 시도했으며 버즈의 Eight Miles High이, 영국에서는 비틀즈의 Rain, I'm Only Sleeping, Tomorrow Never Knows 같은 곡들이 그 시초이다.
미국 서부에서 발전된 사이키델릭 록은 때때로 애시드 록으로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더 무거운 소리와, 단단한 사운드, 더 극단적인 장르의 끝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 후로 그레이트풀 데드, 제퍼슨 에어플레인, 지미 헨드릭스, 크림, 도어즈, 핑크 플로이드 같은 포크 록과 블루스 록 밴드들 사이에서 하나의 장르로 부상하였다. 사랑의 여름, 우드스톡 페스티벌과 더불어 1967년과 1968년 사이에 정점에 도달하였다.
전성기를 맞이한 사이키델릭 록은 약물 규제 강화, 주요 거장 아티스트들의 이탈과 사망, 음악적 유행의 변화 등으로 인해 빠르게 쇠퇴하였다. 이후 일부 요소는 프로그레시브 록, 하드 록, 헤비 메탈 등의 장르로 계승되었다.
사이키델릭 록은 사이키델릭 팝과 사이키델릭 소울의 생성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초기블루스, 포크 음악에 기반한 록 음악으로부터 프로그레시브 록, 글램 록, 하드 록으로의 전환을 가져왔고, 그 결과 헤비 메탈 등의 하위 장르의 발전에 일부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네오 사이키델리아의 다양한 형태들로 다시 나타났다. 사이키델릭 록은 1970년대 후반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었으며, 이 흐름은 얼터너티브 록과 인디 록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1990년대 이후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사이키델릭 록의 요소는 사이키델릭 팝, 사이키델릭 소울, 스토너 록, 크라우트 록 등 여러 장르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록 레코드에서 LSD가 처음 언급된 사례로는 1960년 더 갬블러스의 서프 인스트루멘털 곡 "LSD 25"가 꼽힌다. 음악 평론가 리체 운터버거는 최초의 사이키델릭 레코드를 특정하려는 시도가 “최초의 로큰롤 레코드를 지목하려는 것만큼이나”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언급한 일부 “다소 무리한 주장”에는 1962년 더 토네이도가 조 믹의 프로듀싱으로 발표한 인스트루멘털 "telstar", 그리고 더 데이브 클락 파이브의 “ 리버브가 많이 걸린” "Anyway You want it"(1964)이 포함된다. 1962년더 벤처스의 싱글 "The 2000 Pound Bee"는 왜곡된 “퍼즈톤(fuzztone)” 기타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전면에 내세웠고, “강력한 트랜지스터식 디스토션의 가능성” 및 더 나은 리버브·에코 같은 효과를 탐색하려는 흐름은 런던의 비옥한 로큰롤 신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P.J. Proby의 싱글들에서도 퍼즈톤을 들을 수 있었고, 비틀즈는 "I Feel Fine"에서 피드백을 활용했다. 이 곡은 영국에서 여섯 번째 연속 1위 히트가 되었다.
AllMusic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 사이키델릭 록의 등장은 미국 시장에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일으킨 영국 밴드들과, 음악의 “소리적 가능성”을 넓히려 했던 포크 록 밴드들의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1969년 저서 The Rock Revolution에서 아널드 쇼는 미국식 사이키델릭 록을 세대적 도피주의의 표현으로 보았는데, 이는 성적 금기, 인종차별, 폭력, 위선, 물질주의 등 성인 사회의 가치에 대한 청년문화의 “항의”가 발전한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1965년 포크 록 운동의 형성에서 미국의 포크 싱어 밥 딜런의 영향은 핵심적이었고, 그의 가사는 1960년대 후반 사이키델릭 송라이터들에게도 중요한 준거가 되었다. 비르투오소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샨카는 1956년부터 인도 고전음악을 서구에 소개하는 활동을 시작했으며, 재즈·클래식·포크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의 영향은 젊은 록 음악가 세대로 확장되었고, 이들은 곧 라가 록을 사이키델릭 록 미학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당대 문화 모티프들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 영국 포크 신에서는 블루스, 약물, 재즈, 동양적 영향이 1960년대 초 데이비 그라함의 작업에서 뒤섞였는데, 그는 모달 기타 튜닝을 채택해 인도 라가와 켈트 릴을 전조해 연주했다. 그레이엄은 1960년대 중반 스코틀랜드 포크 기타리스트 버트 제쉬를 비롯해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의 선구적 기타리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재즈 색소포니스트이자 작곡가 존 콜트레인도 비슷한 영향을 끼쳤는데, My Favourite things(1960)과 A Love Supreme(1965) 같은 앨범에서 들리는 이국적 사운드(후자는 샹카르의 라가에서 영감을 받음)가 즉흥연주나 “잼”을 지향하는 기타리스트 등에게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포크/아방가르드 기타리스트 존 페이히는 1960년대 초 여러 곡에서 역테이프(backwards tapes) 같은 특이한 녹음 기법과, 플루트·시타르 등 새로운 편성의 반주를 실험했다. 그의 19분짜리 “The Great San Bernardino Birthday Party”는 “불안한 즉흥연주와 기묘한 기타 튜닝”으로 사이키델리아의 요소들을 예고했다. 마찬가지로 포크 기타리스트 샌디 불의 초기 작업은 “포크, 재즈, 그리고 인도 음악 및 아랍 음악의 영향을 받은 드론(지속음)적 모드”를 포함했다. 그의 1963년 앨범 Fantasias for Guitar and Banjo는 여러 스타일을 탐구하며, “아주 초기의 사이키델릭 레코드 중 하나”로도 정확히 묘사될 수 있다. 1965년, 뉴욕 밴드 더 퍼그스는 LSD를 언급하는 곡 "I Couldn't Get high"를 발표했다.
1960년대 영국 언더그라운드의 핵심 인물인 배리마일는 “히피들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면서, “1965년이야말로(미국에서) 식별 가능한 청년운동이 등장하기 시작한 첫 해”라고 말한다. 또한 “주요 ‘사이키델릭’ 록 밴드들 가운데 다수가 이 해에 결성되었다”고 덧붙인다. 미국 서해안에서는 언더그라운드 화학자 아우구스투스 오슬리 3세와 켄 키지(그리고 메리 프랭크스터스로 알려진 추종자들)가 케지의 애시드 테스트 및 새롭게 등장한 사이키델릭 댄스홀에서 수천 명이 통제되지 않은 ‘트립’을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마이클 홀링스헤드가 세계 사이키델릭 센를 열었고, 비트 세대의 시인 앨런 긴즈버그, 로렌스 페링티, 조지 코소가 로열 앨버트 홀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마일스는 “이 낭독회들이 런던 언더그라운드 활동의 촉매가 되었고, 사람들은 주변에 생각이 비슷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이 해는 Granny takes a Trip과 Hung on you 같은 의상점이 문을 열면서 런던이 색채로 피어나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다”고 덧붙인다. 언론 보도 덕분에 LSD 사용은 널리 퍼졌다.
음악 평론가 짐 데로가티스는 사이키델릭 록에 관한 저서 Turn on Your Mind에서 비틀즈를 “새 시대의 애시드 사도(Acid Apostles of the New Age)”로 본다. 당초 희극과 노블티 송의 전문가로 알려졌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스튜디오 트릭을 제공했고, 그 결과 비틀즈는 사이키델릭 효과의 발전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노골적인 사이키델릭 작업을 예고하듯 "Ticket to Ride (노래)"(1965년 4월)는 리듬 기타에서 연주된, 인도를 연상시키는 미묘한 ‘약물적 드론’을 도입했다. 음악학자 William Echard는 비틀즈가 1965년까지의 몇 년 동안 곧 사이키델릭 음악의 요소가 될 다양한 기법을 활용했다고 쓰며, 이를 “연관적(cognate)”이고 야드버즈처럼 초기 사이키델리아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접근으로 설명한다. Echard는 비틀즈가 장르에 가져온 중요한 요소로 리듬의 독창성과 예측불가능성, “진정한” 조성의 모호함, 인도 음악 요소와 varispeed·테이프 루프·역테이프 같은 스튜디오 기법의
출처: 사이키델릭 록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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