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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영어: United States of America/United States, USA/US, 한국 한자: 美合衆國), 약칭 미국(영어: America, 한국 한자: 美國)은 50개의 주와 특별구 1개로 이루어진 연방제 공화국이다. 태평양에 위치한 하와이를 제외한 모든 주와 수도인 워싱턴 D.C.는 북아메리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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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영어: United States of America/United States, USA/US, 한국 한자: 美合衆國), 약칭 미국(영어: America, 한국 한자: 美國)은 50개의 주와 특별구 1개로 이루어진 연방제 공화국이다. 태평양에 위치한 하와이를 제외한 모든 주와 수도인 워싱턴 D.C.는 북아메리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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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으로 조사 시작하기미합중국(영어: United States of America/United States, USA/US, 한국 한자: 美合衆國), 약칭 미국(영어: America, 한국 한자: 美國)은 50개의 주와 특별구 1개로 이루어진 연방제 공화국이다. 태평양에 위치한 하와이를 제외한 모든 주와 수도인 워싱턴 D.C.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캐나다와 남쪽으로는 멕시코와 국경에 맞닿는다.
미합중국(영어: United States of America/United States, USA/US, 한국 한자: 美合衆國), 약칭 미국(영어: America, 한국 한자: 美國)은 50개의 주와 특별구 1개로 이루어진 연방제 공화국이다. 태평양에 위치한 하와이를 제외한 모든 주와 수도인 워싱턴 D.C.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캐나다와 남쪽으로는 멕시코와 국경에 맞닿는다. 또한 북서측에 위치한 알래스카주는 동측으로 캐나다와 서측으로 베링 해협을 사이로 러시아와 마주한다. 플로리다반도의 남동쪽으로는 바하마와 쿠바가 있다. 미국은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해외 영토를 보유한다.
세계 여러 나라 중에 미국은 총면적 기준으로 세 번째로 넓은 국가이고, 북아메리카 및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자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세계에서 손꼽는 다문화 국가 중 하나이며, 주로 백인, 흑인, 아시아인 등 여러 인종들이 섞여 있으며 그중에서 백인이 가장 많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들어온다. 미국의 경제는 2025년 기준 명목상 국내 총생산이 30조 3404억 달러로, 전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경제이다.
아시아 대륙에서 기원한 아메리카 원주민은 오늘날의 미국 본토에 해당하는 지역에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으나 유럽의 아메리카 식민화 이후 전쟁과 질병으로 원주민들의 수는 급감하였다. 미국의 시작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늘어선 13개 식민지이다. 13개 식민지는 1775년 5월에 식민 본국인 영국과 전쟁을 벌였고(미국 독립 전쟁), 결국 1776년 7월 4일, 미국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민족 자결의 권리를 바탕으로 한 연맹체 국가의 성립을 선포했다. 이후 1783년까지 전쟁을 벌인 미국은, 파리 조약으로 영국 식민지 중에서 최초로 독립을 쟁취했다. 1787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 헌법회의에서 오늘날 미합중국 헌법을 채택했으며, 이듬해에 비준하여 이 주들은 강력한 중앙 정부를 둔 단일 공화국이 되었다. 1791년에 비준한 미국 권리장전은 10개의 수정 헌법으로 구성했으며, 여러 자연권을 보장한다.
19세기에 미국은 프랑스, 스페인, 영국, 멕시코, 러시아 제국에서 영토를 획득하고, 텍사스 공화국과 하와이 공화국을 병합했다. 이 외에도 태평양과 카리브해에서 영토를 획득했다. 농업 중심인 미국 남부와 산업화 중심인 미국 북부 간에 주의 권리와 노예제 확대 문제를 놓고 갈등 하면서 1860년대에 미국 남북 전쟁이 일어났다. 북부가 승리하면서 영구적인 국가 분열 사태를 막았으며, 미국에서 노예제를 폐지하였다. 이후 1870년대에 미국 경제는 가속화한 산업화와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최대 규모로 발전하였다. 미국-스페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미국은 군사 강대국의 지위를 굳혔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은 최초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이 되었다. 냉전을 종결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국은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미국은 전 세계 군비 지출의 3/5를 차지하며,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를 선도하는 나라이다.
1507년, 독일의 지도학자인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세계 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이 지도에서 유럽의 서반구 땅을 이탈리아 탐험가이자 지도 학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명명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대에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미합중국의 만장일치 선언"(unanimous Declaration of the thirteen 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고 표기하여, 처음으로 이 나라의 현재까지 명칭을 썼다. 이것은 1776년 7월 4일에 "아메리카 합중국 대표자"들이 채택하였다. 1777년 11월 15일에 제2차 대륙 회의에서 연합 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을 채택하면서 "이 연합의 입구는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 된다."라고 하면서 오늘날 국호를 확립했다. 이 국호의 축약형인 'United States'도 표준 명칭이다. 그 밖에 흔히 쓰이는 명칭으로는 'the U.S.', 'the USA', 'America'가 있다. 일상 회화에서 쓰이는 이름으로는 'the U.S. of A.'와 'the States'도 있다. 미국의 대중적인 명칭인 '컬럼비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유래한 말로, 수도인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에서도 나오는 이름이다.
영어권에서 미국인을 이를 때 데모님으로 '아메리칸'(American)을 사용한다. 또 미국의 정식 수식어는 'United States of America'이지만, 'America'나 보통 A를 제외한 'U.S.'가 가장 흔히 미국을 일컫는 수식어다.
한편 오늘날 대한민국 및 중화권에서 쓰는 '미국'(美國)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시대 중국인들이 '아메리칸'을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은 음역인 '美利堅'에서 왔다. 이 말의 기원은 미국이라는 뜻인 'American'에서 나온다. 당시 청나라 시대 중국인들은 이것을 '메리칸'으로 들었고, 가까운 중국어 발음인 '메이리지안(美利堅)'이라고 했다. 이를 줄여 '메이궈'(美國)로도 표기하였고, 당시 조선인들이 이를 한국어식 한자음으로 읽어 '美利堅(미리견)', '미국(美國)'으로 읽고 표기했다. 일본에서는 '亞米利加'(아미리가)로 표기했으며, 이를 줄여서 '베이코쿠(米國)'로 표기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도 이 표기를 사용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현재도 일본식 음역인 '미국(米國)'을 사용한다. 그 밖에도 과거 한국에서 사용한 '며리계'(彌里界)라는 독자적인 음차 표기도 있었다.
알래스카 원주민을 비롯한 북아메리카 본토 원주민들은 주로 아시아에서 이주해 왔다고 여긴다. 12,000년 ~ 40,000년 전에 아메리카에 왔던 이들 북아메리카의 동남부와 서남부의 원주민 집단은 진보한 농경과 건축을 통해 국가 수준의 사회를 이룩했고 북미 전지역에 걸쳐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를 형성했으나, 유럽인들이 들어오며 전파한 천연두 등 수많은 외래 질병과 전쟁 및 노예화와 착취로 수많은 아메리카 토착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1492년경 8천만 명에 이르렀던 원주민의 인구는 1650년경에는 8백만 명 정도로 줄었다. 이는 유럽의 흑사병을 넘어선 인류의 대재앙이자 인종학살이었다.
1492년, 제노바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지원을 얻지 못하자 이사벨 1세의 주도로 카스티야와 아라곤왕국이 연합하여 성립한 스페인 왕실과 계약을 맺어 카리브해 제도까지 항해하여, 원주민들과 처음으로 조우하였다. 1513년 4월 2일, 스페인 정복자 후안 폰세 데 레온이 스스로 "라 플로리다"(La Florida)라고 부른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는데, 이때가 유럽인이 처음으로 미국 본토에 도착했다고 기록하였다. 이 지역에 스페인 정착지가 들어서고 연이어 오늘날의 미국 서남부지역인 멕시코까지 이어졌다. 프랑스인인 모피 무역상 쿠레르 데 브와들은 오대호 주변 지역에 누벨 프랑스라는 전초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마침내 프랑스는 멕시코만에 이르는 북아메리카 내륙 지방 거의 대부분을 자신들의 영토로 주장했다. 정착에 성공한 초기 영국인 정착지로는 1607년 제임스타운의 버지니아 식민지와, 1620년 청교도들의 플리머스 식민지다. 1619년에 이들 식민지는 이미 버지니아 회의를 구성했는데 이는 메이플라워 협약보다도 앞선 미국 최초의 민주적인 의회였다. 1628년에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회사의 칙허로 말미암아 이주민들이 대거 흘러들어오며, 1629년에 메릴랜드에, 1634년에 뉴 잉글랜드에는 10,000여명의 청교도들이 살았다. 1610년대 말에서 미국 혁명에 이르기까지 약 50,000명의 죄수들을 영국령 아메리카 식민지로 이송하였다. 1614년부터 네덜란드 정착민들이 맨해튼섬의 뉴암스테르담(현재의 뉴욕의 이전 수도) 등 허드슨강 하구를 따라 정착했다. 이주해온 절대다수의 인구는 잉글랜드의 청교도, 프랑스와 스위스의 위그노,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로 이주하거나 중남미 식민지에서 들어온(이미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력을 위해 도입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다. 이들은 뉴잉글랜드와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미드 애틀랜틱 지역, 캐롤라이나를 중심으로 남부 곳곳에 이주하여 미국의 역사가 태동했다.
1674년, 영국-네덜란드 전쟁 이후 네덜란드는 자신들의 아메리카 영토를 영국에 할양했으며, 뉴네덜란드 주는 뉴욕 주로 개명했다. 새 이주민 다수는 특히 남부로 몰렸고, 이들은 계약 노동자들로, 1630년~1680년 사이에 버지니아의 전체 이주민 가운데 약 2/3가 계약 노동자들로 남부 대지주들의 플랜테이션이나 잡일에 고용했다가 계약 후에 자유 시민이 되었다. 18세기에 들어, 아프리카 노예들이 담보 노동의 주요 원천이 되었다.
1729년 북부와 남부의 경제·사회적인 갈등으로 캐롤라이나가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분리하고, 1732년 스페인을 견제하려고 조지아에 식민지를 설치하였다. 이후 미합중국을 이룰 영국의 식민지 13개 식민지 모두를 세웠다. 이들 각 주는 거의 대부분 남성 자유민들이 참여하는 선거로 지방 정부를 두었다. 옛 영국인의 권리에 헌신하고 공화주의를 고무시킨 지방 자치의 관념이 발전하였다. 모든 주에서 아프리카 노예 무역을 합법화했다.
아메리카 식민지는 출산율이 높고 사망률이 낮으며, 여성을 포함한 이민자가 끊임없이 유입하여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다. (미국의 평균수명은 영국의 평균수명보다 10세이상 앞서있었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영국군이 프랑스에게 캐나다를 빼앗았으나, 이 곳에 프랑스어를 쓰는 주민들은 남쪽 식민지와 정치적으로 독립 상태를 유지하였다. 아메리카 토착민들을 제외한 이들 13개 식민지 인구는 1770년에 260만여 명으로 당시 영국의 1/3 수준이었으며, 아메리카 인구의 1/5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예들이었다. 아메리카 식민지는 영국에 조세를 납부했으나, 영국 의회에 대표자를 두지 못했다. 1730년대와 1740년대 대각성 운동이라는 기독교 부흥주의 운동으로 종교와 종교 자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또한 이 운동으로 미국 대학의 역사가 시작했다. 종교 자유와 과학 탐구를 위해 식민지에 자신들의 대학을 설립했다. 1636년 하버드 대학교가, 이후에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 예일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등 소위 아이비리그로 지칭하는 명문 사립 대학들을 이 시기에 설립하였다.
1760년대와 1770년대 초 혁명기에 아메리카 식민지와 영국 사이 대립으로 미국 독립 전쟁(1775년 ~ 1781년)이 일어났다. 1775년 6월 14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륙 회의에서 대륙군을 창설했고, 사령관으로 조지 워싱턴을 임명했다. 1776년 7월 4일 이 회의에서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쓴 독립 선언서를 채택했다. 이 날이 오늘날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1777년 연합 헌장으로 결속력이 약한 국가연합 정부를 설립해서 1789년까지 존속했다.
프랑스 지원을 받은 아메리카 군대가 영국을 무찔러,(요크타운 전투) 영국은 미합중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이들 주에게 미시시피강 동쪽의 아메리카 영토의 주권을 승인했다. 독립 당시 미국의 수도는 뉴욕이었다. 조세권을 가진 강력한 국가를 창설하길 바라던 사람들이 1787년에 필라델피아 헌법회의를 조직하였다. 1789년에 미국 헌법을 비준했으며, 1789년에 신생 공화국 초대 상하원 의회가 출범하고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1790년에는 수도를 필라델피아로 옮겼다. 연방 정부가 개인의 자유 및 다양한 법적 보호 보장의 제한을 금한 권리 장전을 1791년에 채택했다. 1800년에 수도를 다시 현재의 워싱턴 D.C.로 옮겼다.
노예제에 대한 입장은 유동적이었는데, 미국 헌법 1조 9항에서는 아프리카 노예 무역 폐지를 20년간 유보했다. 북부 주에서 1780년에서 1804년 사이에 노예제를 폐지했으나, 남부 주에서는 "특별한 관습"(peculiar institution)을 옹호하며 노예주로 남았다. 1800년경에 시작한 제2차 대각성 운동으로 복음주의가 노예 제도 폐지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개혁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은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며 아메리카 인디언 전쟁이 일어났으며 인디언 제거 정책을 펴서 원주민들은
출처: 미국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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