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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약칭 영국(英國)은 유럽 본토 해안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입헌군주국이다. 북해, 영국 해협, 아일랜드해 및 대서양에 접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및 아일랜드섬 북부의 북아일랜드로 네 개의 구성국이 연합해 형성한 단일 국가이다. 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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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약칭 영국(英國)은 유럽 본토 해안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입헌군주국이다. 북해, 영국 해협, 아일랜드해 및 대서양에 접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및 아일랜드섬 북부의 북아일랜드로 네 개의 구성국이 연합해 형성한 단일 국가이다. 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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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약칭 영국(英國)은 유럽 본토 해안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입헌군주국이다. 북해, 영국 해협, 아일랜드해 및 대서양에 접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및 아일랜드섬 북부의 북아일랜드로 네 개의 구성국이 연합해 형성한 단일 국가이다.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약칭 영국(英國)은 유럽 본토 해안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입헌군주국이다. 북해, 영국 해협, 아일랜드해 및 대서양에 접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및 아일랜드섬 북부의 북아일랜드로 네 개의 구성국이 연합해 형성한 단일 국가이다. 수도는 런던이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수도는 각각 에든버러, 카디프, 벨파스트이다.
아일랜드섬의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와 국경을 맞대며 해외 영토까지 포함 시 스페인(영국령 지브롤터), 키프로스(아크로티리 데켈리아)와 국경을 공유한다. 건지섬, 저지섬, 맨섬과 같이 본토의 일부는 아니나 영국의 군주가 지배하는 왕실속령들도 있다. 해외 영토 거주민들과 영국 본토 국민들은 서로 지역에 거주할 권리가 없으며 상호 간 이민도 자유롭지 않다.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기본으로 하여 근대적 의회제도와 의원내각제를 전 세계로 전파한 국가이며 산업혁명의 발원지로 제일 먼저 산업화를 이룬 나라이자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세계 인구와 영토의 1/4을 차지한 당대의 최강대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대적으로 국력과 위상이 쇠퇴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에 정치, 군사, 문화, 과학, 경제 등에 영향을 끼치는 강대국 중 하나로 남았으며 특히 대중 음악은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세계에 막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며 핵무기 보유국이고 2018년 기준으로 군사비 지출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크다. 2023년 명목 국내총생산은 세계 6위였으며,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중 로열 더치 쉘, BHP 빌리튼, 보다폰, HSBC, BP,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유니레버가 영국 기업이었다. 대졸자 초임 연봉은 2023년 기준으로 약 25,000 영국 파운드(한화 약 3,767만원)이다.
영국의 정식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약칭으로 브리튼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영국이라 부르는 것은 연합왕국의 구성국인 잉글랜드의 한자 표기에서 왔고, 다른 한자 문화권에서도 사용한다. 영(英){중국어발음은 잉(병음: Yīng)}은 잉글랜드(England)의 잉(Eng)을 음역했고, 국(國)은 랜드(land)를 의역했다. 한자 문화권에서 이 이름은 연합왕국 전체를 통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맥에 따라서 여전히 잉글랜드만을 뜻하기도 하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일본에서는 잉글랜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잉글레스(포르투갈어: inglês)의 음역인 이기리스(일본어: イギリス 또는 英吉利)로도 쓴다.
1707년에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하였다. 현재 영국을 지칭할 때 흔히 쓰는 ‘유나이티드 킹덤’ 호칭은 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부를 때 사용했던 국명이다. 다만 1707년부터 1800년까지 정식 국명은 여전히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었다. 1801년에는 아일랜드 왕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통합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을 구성하였다. 1922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이 영국에서 떨어져 나가자, 영국은 아일랜드 북부 지방 일부만을 통치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정식 명칭을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고 바꾸었다.
영국은 현재 단일국가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상당한 자치를 유지한다. 영국 총리의 웹사이트에도 영국을 설명할 때에 ‘국가 안의 국가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다만 완벽한 자치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부 통계를 낼 때에 ‘지방’이나 ‘행정구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부른다.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는 보통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칭한다. 정치적으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합쳐 부르는 단어다. 가끔씩 영국 전체를 느슨하게 묶어서 통칭하는 단어다.
‘브리튼’이라는 단어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동의어로, 영국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다. 다만 영국 정부는 'UK'를 ‘브리튼’보다 선호하며, 대사관이나 외교 업무를 제외하고 브리튼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영국 지리학회에서는 자국의 약칭을 ‘브리튼’이 아닌 ‘유나이티드 킹덤’이나 'UK'로 사용하도록 권고하며,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는 은연 중에 북아일랜드를 제외하는 어감을 지녀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영국 대표적인 방송사인 BBC의 경우, 영국을 칭할 때에 ‘브리튼’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현생 인류는 대략 3만 년 전쯤부터 영국 지역에 살기 시작하였다. 선사시대가 끝나갈 무렵, 이들은 켈트족이라는 민족을 구성하며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켰고, 브리튼 섬에는 브리튼인이, 아일랜드에는 게일인이 등장하였다. 그러던 중 기원후 43년부터 로마인들이 브리튼 섬을 침공하였고, 이들이 약 400여 년 동안 브리튼 섬 남부를 지배하며 브리튼인들을 로마화했다. 이후에는 게르만계의 앵글로 색슨족이 쳐들어왔고, 본래 섬에 거주하던 브리튼인들을 웨일스 지방으로 몰아낸 후에 섬의 주 지역들을 차지하였다. 앵글로색슨족은 약 10세기 경 잉글랜드 왕국으로 통합하였고, 5세기 경 아일랜드에서 이주하여 브리튼 섬 북서부에 살던 일부 게일인들은 픽트족과 통합하어 9세기 경에 스코틀랜드 왕국을 건국하였다.
1066년, 노르만족이 프랑스 북부에서 건너와 잉글랜드를 침공하였고, 웨일스, 아일랜드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며 이후에는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에 자리를 틀며 프랑스식의 봉건제를 지역에 정착시켰고, 본래 있던 앵글로색슨 지배계층들과 교류하며 섬의 엘리트층으로 떠올랐다. 이후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의 왕들은 웨일스 지방 정복에 성공하였으나, 스코틀랜드 합병에는 실패하여 1320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반강제적으로 인정하였다. 이후 스코틀랜드는 1700년대에 합병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잉글랜드와 충돌을 반복하였다.
잉글랜드 역대 국왕들은 결혼과 전쟁 등을 반복하여 프랑스 본토 내에도 상당한 영토를 소유하였다. 게다가 프랑스 왕위계승권도 가졌기에 프랑스 내에서 일어나는 정치 다툼에 깊이 간여하였다. 가장 대표적 사건은 프랑스와 벌인 백년전쟁으로, 이때 스코틀랜드의 왕들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잉글랜드에 대항하였다. 이후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 기독교 구교과 신교 간의 싸움이 치열해지자, 잉글랜드는 새로운 국교인 성공회를 조직하고 가톨릭 교회들이 지녔던 토지들을 몰수하고 왕권 강화에 활용하였다. 이때 즈음에 이르자 웨일스는 완전히 잉글랜드 왕국에 편입하였고,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왕위 하에 하나의 왕국으로 성립하였다. 한편 잉글랜드 왕국은 현재 북아일랜드 지방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토지들을 몰수하여 근왕파 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603년,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위를 물려받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왕국은 하나로 통합되게 되었다. 제임스 6세는 그의 궁정을 에든버러에서 런던으로 옮겼으나, 여전히 각각의 왕국들은 따로 노는 성향이 강했으며 정치적, 법적, 종교적으로는 제각각으로 활동했다. 17세기 중반에는 이 3개의 왕국들 모두가 내전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때 잠시 왕정이 폐지되었으며 국왕 찰스 1세가 참수당했고 잠시동안 커먼웰스가 세워지며 단명한 공화국이 창설되기도 했다. 또한 17세기, 18세기에는 섬이라는 영국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영국 출신의 수많은 해적들이 활동하며 유럽과 캐리비안 해의 상선들을 약탈하여 악명을 떨쳤다.
단명한 공화정이 폐지된 이후 왕정이 복고되었으나, 전제군주정은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다. 또한 가톨릭교도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로마 교황의 간섭도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훨씬 뜸해졌고, 권리장전 등 국왕의 권력을 제약하고 의회의 힘을 강화하는 법들이 연이어 통과되며 이후 영국은 의회제도와 입헌군주정에 기반한 국가로 도약하게 된다. 한편 1660년에는 왕립위원회가 창설되며 과학계에 대한 후원이 대폭 증가하였고, 왕실의 후원에 힘입어 해군력이 크게 증강되었으며 해외 식민지 탐사에 눈을 뜨게 되며 북아메리카와 캐리비안 지역에 대대적인 식민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국이 서로 몇 백년 동안 반목을 거듭한 끝에, 1707년 5월 1일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양국 의회가 통합법을 가결하며 마침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됨에 따라 두 왕국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18세기에는 첫 총리로 로버트 월폴이 취임하였고, 의회내각제에 기반하여 근대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아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자코바이트의 난이 터지며 신교를 믿는 하노버 왕가를 몰아내고 가톨릭을 신봉하는 스튜어트 왕가를 복구하려 시도하였으나, 결국 1746년에 대패하고 반란을 일으켰던 스코틀랜드인들은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한편 북아메리카에 설립한 영국의 식민지는 독립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건국하며 떨어져나갔고,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이를 1783년에 인정하였다. 이후 영국의 관심은 아시아 쪽으로 옮겨갔고, 특히 영국이 아시아에 차지하고 있는 가장 부유하고 거대한 식민지인 인도에 집중되었다.
영국은 대서양 노예무역을 주도하며 1662년과 1807년 사이에 수많은 선박들을 이용하여 거의 330만 명의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부터 실어날랐다. 노예들은 보통 북아메리카나 캐리비안 해역에 있는 거대한 플랜테이션 등으로 강제적으로 옮겨갔으며 심각한 탄압을 받으며 사탕수수나 목화 등을 재배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이들의 강제 노동은 18세기 영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들 중 하나였으며, 노예상인들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이익을 남기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노예무역의 반인륜적인 실태가 갈수록 폭로되자 결국 여론의 압박을 받은 의회가 1807년에 노예무역을 금했고, 1833년에는 대영제국 전체에서 노예제를 철폐하였다. 또한 이후에는 노예제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타 유럽 국가들도 노예를 거래하거나 사고파는 일을 그만두도록 압박하기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인권단체인 ‘반노예인터네셔널(Anti-Slavery International)'도 1839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유나이티드 킹덤‘, 즉 ’UK'라는 국명은 1801년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서로 통합을 결정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창설되면서 정식으로 영국의 국명으로 결정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가 결국 영국과 그 연합국들에게 패한 이후, 영국은 19세기 유럽의 최강자로 떠올랐고, 전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으로 뻗어나갔다. 1830년대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였으며, 영국 상선들은 막강한 해군의 비호를 받으며 전세계를 이었다. 이 시기를 일컬어 영국 주도하의 평화, 즉 ‘팍스 브리타니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시기 영국의 국력은 매우 강대해지면서 ‘대영제국’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고, 1815년에서 1914년까지 서구 열강들이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견제하는 소강상태 동안 세계의 패권을 쥐고 경찰국가 지위를 획득하였다. 또한 18세기에 대대적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에서 주도권을 잡으며,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853년에서 1856년까지는 오스만 제국과 손을 잡고 러시아 제국과 맞서 싸우며 크림 전쟁에 참가하였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크게 넓히는 데에 성공하였고, 인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등 세계 곳곳에 방대한 해외 영토를 건설하였다. 영국은 막강한 금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권을 손에 거머쥐었고, 자유무역과 작은정부를 지향하면서 점차 자본주의를 전세계에 전파하였다. 인구는 전례없는 속도로 증가하였고, 도시화가 급격히 일어났으며 사회의 빈부격차는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디즈레일리 총리가 이끄는 내각과 보수당은 제국을 먹여살릴 새로운 동력을 찾기 위하여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렸고, 이집트, 남아프리카 등 미개척지에 수많은 탐험원정대들을 파견하며 국력을 과시하였다. 한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영국의 통제를 받는 자치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압도적이었던 영국의 산업화 속도도 독일과 미국 등 신흥 강대국들에게 따라잡혔고, 유럽과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도 줄어들기 시
출처: 영국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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