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도어스
The Doors
도어스(영어: The Doors 더 도어스[*])는 196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컬의 짐 모리슨, 키보드의 레이 만자렉, 기타의 로비 크리거, 드럼의 존 덴스모어가 결성한 미국의 록 밴드이다. 밴드의 이름은 올더스 헉슬리의 저작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의 제목에서 모리슨이 착안, 발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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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스(영어: The Doors 더 도어스[*])는 196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컬의 짐 모리슨, 키보드의 레이 만자렉, 기타의 로비 크리거, 드럼의 존 덴스모어가 결성한 미국의 록 밴드이다. 밴드의 이름은 올더스 헉슬리의 저작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의 제목에서 모리슨이 착안, 발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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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스(영어: The Doors 더 도어스[*])는 196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컬의 짐 모리슨, 키보드의 레이 만자렉, 기타의 로비 크리거, 드럼의 존 덴스모어가 결성한 미국의 록 밴드이다. 밴드의 이름은 올더스 헉슬리의 저작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의 제목에서 모리슨이 착안, 발제하여 채택되었다.
도어스(영어: The Doors 더 도어스[*])는 196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컬의 짐 모리슨, 키보드의 레이 만자렉, 기타의 로비 크리거, 드럼의 존 덴스모어가 결성한 미국의 록 밴드이다. 밴드의 이름은 올더스 헉슬리의 저작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의 제목에서 모리슨이 착안, 발제하여 채택되었다. 헉슬리는 여기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한 구절, "인식의 문이 정화되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무한히 드러난다(If the doors of perception were cleansed, everything would appear to man as it is, infinite)"를 인용했다. 특이했던 이들은 1960년대 록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뜨겁고 영향력이 짙었던 것으로 꼽힌다. 대부분은 모리슨의 가사와 불안정한 무대 페르소나를 가진 카리스마에서 비롯된다. 1971년 27세의 나이로 모리슨이 사망한 뒤 남은 멤버들은 1973년 해체까지 3인조로 꾸준히 활동했다.
1971년 모리슨의 사망 이후 살아남은 세 명은 만자렉과 크리거의 리드 보컬을 도입한 두 장(《Other Voices》, 《Full Circle》)의 음반을 발표했다. 세 멤버는 모리슨의 스포큰 워드를 이용해 콜라보한 《An American Prayer》을 녹음해 1978년 발표한다. 1997년에는 〈Orange County Suite〉가 박스 세트에 수록된다. 만자렉, 크리거와 덴스모어는 2000년 VH1의 〈Storytellers〉를 위해 재결합, 그 뒤 여러 보컬리스트와 협업하여 《Stoned Immaculate: The Music of The Doors》를 발표했다. 2002년 만자렉과 크리거는 자신들을 21세기 도어스로서 대표하면서 협연하기 시작, 이언 아스트베리가 보컬로 활동했다. 덴스모어는 이를 그냥 지켜보지 않고 모리슨의 사유지와 함께 그들을 밴드 이름의 오용으로 고소, 승소했다. 라이더스 온 더 스톰으로 잠시 활동하다 이들은 만자렉-크리거로 이름을 정착, 2013년 만자렉의 죽음 전까지 투어를 돌았다.
1966년 엘렉트라 레코드와 계약한 도어스는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여덟 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한 장을 제외하면 모두 빌보드 200의 10위권 안에 올라 히트, 플래티넘이나 더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들의 1967년 셀프 타이틀 데뷔 음반은 미국에서 연달아 10권 내에 진입한다. 이어 발표된 《Strange Days》 (1967), 《Waiting for the Sun》 (1968), 《The Soft Parade》 (1969), 《Morrison Hotel》 (1970), 《Absolutely Live》 (1970), 《L.A. Woman》 (1971)은 미국에서만 20개 골드, 14개 플래티넘, 5개 멀티 플래티넘, 1개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다. 1971년 말 도어스는 자국에서만 4,190,457장의 음반, 7,750,642장의 싱글 판매량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Light My Fire〉, 〈Hello, I Love You〉, 〈Touch Me〉를 통해 미국에서는 300백만 장의 싱글을 팔아치웠다.
1973년 도어스의 활동은 중지되었으나, 그들의 유명세는 지속되었다. RIAA에 의하면 이들은 미국에서 3,300만장의 음반 판매량 인증을 받았고, 1억 장의 음반을 전 세계적으로 팔아 역대 가장 많은 음반을 판 밴드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도어스는 처음으로 골드와 플래티넘 LP를 연이어 발표한 미국 밴드다. 도어스는 지금껏 《롤링 스톤》의 "역대 가장 위대한 100개의 아티스트"에서 41위에 오르는 등 여러 잡지에서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목록에 포함되었다. 밴드의 셀프 타이틀 음반, 《L.A. Woman》, 《Strange Days》는 롤링 스톤 역대 가장 위대한 음반에 각각 42위, 362위, 407위에 올랐다. 《워싱턴 포스트》의 마틴 웨일의 말에 의하면, 밴드는 1960년대 반문화의 중심에 있던 장미라고 한다. 도어스는 1993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도어스는 1965년 7월 로스앤젤레스 베니스 해변에서 짐 모리슨과 레이 만자렉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둘은 UCLA 대학 영화학교에 함께 다녔었는데 이 때 모리슨은 만자렉에게 곡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모리슨은 "당시 썼다는 대여섯 곡은 내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록 공연에 대해 끄적거려 놓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일단 곡을 쓰면 나는 그것을 불러야 했다"고 회상한다. 만자렉이 부추기자 모리슨은 <Moonlight Drive>의 첫 소절을 흥얼거렸다. "Let's swim to the moon, let's climb through the tide, penetrate the evening that the city sleeps to hide." 만자렉은 이에 영감을 얻어 "쿨하고 으스스한" 가사에 맞춰 어떤 음악을 할 지를 상상했다.
만자렉은 당시 형제인 릭, 짐과 함께 릭 & 더 레이븐스라는 밴드에 있었고 드러머인 존 덴스모어는 사이키델릭 레인저스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며 만자렉을 명상 수업을 통해 알고 있다가 1965년 8월에 레이븐스에 합류하였고 각자의 배경인 재즈, 록, 블루스, 포크 등의 요소들이 혼합되게 된다. 여기에 베이스 연주자인 패티 설리반이 더해지면서 도어스는 탄생했고 로스앤젤레스의 월드 퍼시픽 스튜디오에서 1965년 9월 2일 6곡의 데모를 녹음한다. 밴드 이름은 올더스 헉슬리의 책 <인식의 문 (The Doors of Perception)>에서 따왔는데 그 제목은 또 헉슬리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 나오는 구절, "지각의 문이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1965년 말, 만자렉의 두 형제가 밴드를 떠나고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거가 합류한다.
1966년 초, 도어스는 허름하고 지저분한 로스앤젤레스의 런던 포그 클럽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했는데 당시의 경험을 통해 짐 모리슨은 관중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에 점차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밴드는 이후 데뷔 앨범에 들어갈 <The End>나 <Light My Fire> 같은 자작곡들을 갈고 닦으면서 더 길게 만들 수 있었다. 당시에 대해 만자렉은 이후에 "런던 포그를 통해 우리는 집단적 실체, 하나됨을 이루었고... 마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1996년 5월에 도어스는 좀 더 번듯한 클럽인 위스키 어 고고의 하우스 밴드가 되어 밴 모리슨의 오프닝을 하는 등 위상이 올라갔다.
1966년 8월, 러브의 보컬인 아서 리의 추천으로 엘렉트라 레코드의 사장인 잭 홀즈만과 제작자 폴 A. 로스차일드는 위스키 어 고고에서 도어스의 공연을 보고 8월 18일 계약을 맺는다. 이로서 도어스와 로스차일드, 그리고 엔지니어인 브루스 보트닉과의 성공적인 파트너 관계가 시작된다. 한편 모리슨이 <The End>에서 오이디푸스의 그리스 신화를 노골적으로 욕설과 함께 노래하면서 도어스는 위스키 어 고고에서 8월 21일 해고된다.
1966년 8월 도어스는 데뷔 앨범《The Doors》를 선셋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1967년 1월에 발매한다. 여기에는 12분 짜리 음악 드라마 "The End"를 비롯하여 도어스의 명곡들이 다수 담겼고 이후 1천3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린다. 처음 싱글로 나왔던 <Break On Through>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Light My Fire>를 싱글로 냈고 이는 엘렉트라 레코드 사상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백만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1967년 9월 17일, 도어스는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여 논란의 공연을 했다. 만자렉에 의하면 방송사 측에서 마약 사용을 암시하는 듯한 "higher"라는 단어를 빼달라고 했고 도어스는 이를 묵인한 듯 보였는데 실제 공연에서는 원래 대로 불러버렸다. 이는 아마도 원래부터 바꿀 생각이 없었거나 아니면 짐 모리슨이 긴장하여 잊어버렸거나였을 텐데 (도어스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어쨌든 "higher"라는 단어가 전국 방송에 나가버렸고 에드 설리번은 이후 예정되었던 여섯 개의 쇼를 취소시켜 버렸다. 프로그램 제작자가 이제 도어스가 에드 설리번 쇼에 절대 출연할 수 없다고 하자 모리슨은 "이것 봐요, 우리는 방금 설리번 쇼를 했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도어스는 두 번째 앨범 《Strange Days》 녹음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선셋 스튜디오를 다시 찾아 몇 주간 작업하며 무그 신세사이져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등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Strange Days》는 빌보드 앨범 차트 3위까지 올랐으나 빠르게 순위가 떨어졌다.
데뷔 앨범에서는 세션 뮤지션인 래리 크네히텔이 간간이 베이스를 연주했었는데 《Strange Days》에서부터 스튜디오 뮤지션이 대부분의 베이스를 연주하게 된다. 만자렉은 라이브 공연에서는 자신이 키보드로 베이스를 연주해도 괜찮지만 스튜디오 녹음의 경우 표현상의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스 녹음에는 더글라스 루반이 참여했고 이후 두 앨범을 함께 했는데 이외에도 다수의 베이시스트들이 세션으로 연주했다.
1967년 12월 9일, 도어스는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에서 모리슨은 경찰에 체포되는 악명 높은 공연을 가진다. 이로서 모리슨은 무대에서 공연 중에 체포되는 최초의 록 아티스트가 된다. 공연 전 모리슨은 무대 뒤 샤워실에서 한 여성 팬과 대화 내지는 키스를 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때 경찰이 나타났고 도어스 멤버인줄 몰랐던 경찰은 모리슨과 팬에게 나가라고 명령하자 모리슨이 "엿이나 먹어라"는 식의 답변을 했다. 그러자 경찰은 마지막 기회라며 경고했고 모리슨은 "엿을 먹을 마지막 기회"라고 답했다.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있는데 만자렉에 의하면 경찰이 이들에게 스프레이를 뿌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모리슨이 회복될 때까지 공연은 한 시간가량 미뤄졌으며 마침내 무대에 밴드가 서게 되었는데 공연 중간쯤 모리슨은 방금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파란 옷을 입은 꼬맹이"라는 즉흥곡을 불렀다. 무대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또 무대를 둘러싸고 있던 경찰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는데 이후 경찰이 무대 위로 올라왔고 모리슨은 경찰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그리고 모리슨이 경찰에게 끌려나가면서 공연은 끝나버렸다. 이미 공연이 늦어져서 짜증이 나 있던 청중들은 난동을 피웠다. 경찰서에 끌려간 모리슨은 사진을 찍혔고 폭동, 외설 및 선동의 혐의로 입건되었다. 모리슨과 또 당시 함께 체포되었던 세 명의 기자에 대한 혐의는 증거 부족으로 몇 주 후 취하되었다.
1968년 4월에 진행된 세 번째 앨범 녹음은 모리슨의 알코올 의존 증가로 인해 진행이 어려웠고 또 제작자인 폴 로스차일드가 17분 짜리 곡 <Celebration of the Lizard>가 상업성이 부족하다며 퇴짜를 놓으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도어스는 다수의 야외 공연을 벌였고 이는 또 팬들과 경찰 사이의 충돌을 야기했다.
한편 도어스는 원래의 구상을 버리고 세 번째 앨범을 위한 새로운 곡들을 쓰기 시작했고 이렇게 나온 《Waiting for the Sun》은 도어스의 앨범들 중 첫 번째이자 유일하게 미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싱글 <Hello, I Love You>는 두 번째로 싱글 1위에 올랐다. 한편 킹크스 측에서는 이 곡이 자신들의 1964년 히트곡 <All Day and All of the Night>을 표절했다며 법적 소송을 예고했으나 작곡가인 레이 데이비스는 결국 고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공연할 때 모리슨은 종종 이 곡을 만자렉에게 대신 부르도록 했다.
네 번째 앨범 작업을 하며 1968년 12월 내놓은 싱글 <Touch Me>는 빌보드 핫 100 차트 3위, 캐시박스 톱 100의 1위에 오르며 미국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1위를 기록한 싱글이 되었다.
1969년 3월 1일, 마이애미에서 공연 중 도어스는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거의 밴드를 풍지박산 낼 만한 사건을 벌였다. 공연장이었던 디너 키 오디토리움은 수상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한 것으로 더운 밤 에어컨이 없었고 티켓 판매를 올리기 위해 주최측에서 의자를 다 없애버린 상태였다.
짐 모리슨은 하루 종일 술을 마셨으며 설상가상으로 마이애미 행 비행기를
출처: 도어스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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