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국어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면서 1983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와 조감독을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1997년 《초록물고기》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 다수의 작품으로 각국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작가주의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생애
1954년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대구고등학교에 3등으로 입학했으나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 늘 꼴찌를 도 맡아 했다. 대신에 글쓰기를 좋아해서, 문예반 활동을 하며 교내 백일장과 신라백일장, 도내백일장에 늘 이름을 올렸고, 선생님이 바쁠 때는 교내백일장 심사를 대신 맡기도 하는 등 '백일장 투어꾼'이라 불렸다. 어렸을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집이 가난했던 탓에 물감을 살 돈이 없어 공부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영양고등학교와 신일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 《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각본과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입문하였고, 소설보다 영화 작업에 주력하기 시작했는데, 90년대 이전부터 고민했던 가치들이 해결되지 않은채 바뀌어 버린 시대에서 글쓰기가 싫어졌고 글쓰지 않을 핑계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의 평전을 영화로 만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각본에도 참여하며 영화 연출 수업을 차근차근 받아갔다.
1996년 영화계 지우인 명계남과 문성근 등의 후원으로 이스트 필름을 설립했다. 1997년 이스트 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산업화로 피폐해져가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한국사회의 그림자를 묘사했다는 점이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벤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하며 해외에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99년, 한국 현대사로 인한 개인의 상처와 좌절을 다룬 《박하사탕》은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또한 2002년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호흡을 맞추어 장애인 여성과 출소한 전과자의 사랑을 다룬 《오아시스》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여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지명 당시, 해외로 도피까지 하면서 직을 거절했으나 영화계를 비롯하여 문화예술계의 열렬한 요구로 징집 당하듯 장관직을 맡게 됐다. 장관 취임 이전부터 오랫동안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해 문화연대 정책위원장으로서 정책을 마련해왔던 이창동은, 장관 취임 초기에는 "스크린쿼터를 낮추거나 없앤 국가는 하나같이 영화 산업이 침체를 맡았다"며 스크린쿼터를 양보할 생각이 없으며, 장관직을 걸고서라도 스크린쿼터는 지켜내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취임 막바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앞두고, 입장을 선회하여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경우 원상회복을 조건으로 쿼터를 감축하는 절충안을 내었으나 영화계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이후 총선에서 정치권의 지역구 출마 요구를 거절하고 2004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 열린 칸 영화제에서 타이완의 영화 배우 수치(서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2010년에 열린 50회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시》로 각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