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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프랑스어: République française 레퓌블리크 프랑세즈[*]), 약칭 프랑스(프랑스어: France), 또는 불란서는 서유럽의 본토와 남아메리카의 프랑스령 기아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여러 대륙에 걸친 해외 지역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주요 도시들은 파리, 마르세유, 리옹, 툴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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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프랑스어: République française 레퓌블리크 프랑세즈[*]), 약칭 프랑스(프랑스어: France), 또는 불란서는 서유럽의 본토와 남아메리카의 프랑스령 기아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여러 대륙에 걸친 해외 지역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주요 도시들은 파리, 마르세유, 리옹, 툴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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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프랑스어: République française 레퓌블리크 프랑세즈[*]), 약칭 프랑스(프랑스어: France), 또는 불란서는 서유럽의 본토와 남아메리카의 프랑스령 기아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여러 대륙에 걸친 해외 지역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주요 도시들은 파리, 마르세유, 리옹, 툴루즈, 니스, 낭트, 몽펠리에, 비시, 클레르몽페랑 등이 있다.
프랑스 공화국(프랑스어: République française 레퓌블리크 프랑세즈[*]), 약칭 프랑스(프랑스어: France), 또는 불란서는 서유럽의 본토와 남아메리카의 프랑스령 기아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여러 대륙에 걸친 해외 지역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주요 도시들은 파리, 마르세유, 리옹, 툴루즈, 니스, 낭트, 몽펠리에, 비시, 클레르몽페랑 등이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권력을 잡고 프랑스 제1제국을 개국 및 통치하며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영국과의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분란을 거듭하다가 1870년에 들어서야 안정적인 프랑스 제3공화국이 성립되었다.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이자 승전국이었으며, 이 승리로 인하여 국제적 위상이 향상되는 효과를 누렸다. 프랑스 식민제국은 1938년에 정점을 이루었으며 당시 세계 인구의 5%가 프랑스 영토에 거주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에 의하여 본토가 점령되는 고초를 겪었다. 이후 독립을 원하는 식민지들과의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알제리 전쟁,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프랑스-베트남 전쟁)이 있다. 1944년에 연합국 군대에 의하여 해방된 이후 프랑스 제4공화국을 세웠으나, 알제리 전쟁을 거치며 와해됐다. 현재의 프랑스는 샤를 드 골 대통령 등이 1958년에 세운 프랑스 제5공화국이다.
식민제국의 유산으로 인하여 현재 약 5억 명이 프랑스어로 소통 가능하며, 프랑코포니 등을 통해 프랑스어권 국가들에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U 설립 시부터 EU federation 내에서 독일과 함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 회원국으로, 1966년에 탈퇴 이후 1992년에 재가입하였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자 선진국이며 소프트파워 순위 1위인 세계적인 문화 대국이다. 또한 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과 함께 국제적으로 인정된 핵무기 보유국이다. 2018년 현재 명목 국내총생산은 세계에서 7번째, 유로국 중 2번째로 많다. 같은 해 세계 시가총액 100대 기업 중 토탈, 사노피, GDF 수에즈, BNP 파리바, LVMH, 로레알 등이 프랑스 회사였다.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 국가로서, 제조업이 대부분 쇠퇴하여서 유로 5대 경제 대국 중 제조업 비중이 가장 낮다. 현재 프랑스는 현재 전세계 1억명 관광각이 오는 세계적인 관광 대국이다. 북쪽으로는 영국 해협을 마주하고, 북서쪽으로는 켈트해를 마주하고, 북동쪽으로는 벨기에, 룩셈부르크, 동쪽으로는 독일, 스위스, 남쪽으로는 지중해, 남서쪽으로는 스페인, 안도라, 남동쪽으로는 이탈리아, 모나코와 국경을 접한다.
프랑스(프랑스어: France 프헝스[*])라는 이름은 프랑키아(라틴어: Francia)로부터 유래하였다. 글자 뜻대로 하면 프랑크의 땅을 의미한다. 한 이론에 따르면, 고대 게르만어에서 프랑크는 노예처럼 일하는 것에 반대되는 '자유로운'이란 뜻이다. 이 말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프랑(Franc)이란 단어로 남아있으며, 2002년 유로가 사용되기 전까지 사용된 프랑스 통화로도 쓰였다.
프랑크족이 주로 사용하던 도끼인 프랑시스카를 이르는 것으로 보이는 옛 게르만어인 'frankon'에서 유래해서 프랑크족이란 이름이 붙었고 프랑스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프랑크족이 사용하였다 하여 프랑시스카라고 불렀다는 견해도 있다. 프랑시스카가 라틴어의 형태를 한 단어라는 점에서 프랑크인들이 자신들의 무기에 라틴어 이름을 지어줄 이유가 없으니, 로마인들이 그 무기를 사용하는 종족의 이름을 따서 무기에 라틴어 이름을 붙였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프랑시스카에서 프랑크가 나왔다기보다는 프랑크에서 프랑시스카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경우 프랑크인들은 이 무기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다. 이 어원은 프랑스 안에서도 꽤 유명해서 비시 프랑스가 자국의 대통령기로 쓰기도 했다.
중화권과 베트남에서는 법국(法國)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며 발음은 파궈(중국어 보통화), 팝꿕(광동화), 팝(베트남어)으로 각기 다르다. 한국어권에서도 쓰였으나, 최근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과거 대한민국에서는 법국(法國)이란 명칭 말고도 "불란서(佛蘭西)", "불란서(佛朗西)", "불랑국(佛浪國)"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 헌종실록의 프랑스측이 보내온 서신에 따르면, 1847년 라피에르(프랑스어: Augustin de Lapierre) 대령은 자신을 "대불란서국(大佛蘭西國) 수사 총병관(水師總兵官) 납별이(拉別耳)" 라 소개하였다. 그 밖의 문헌에는 "대불란서국(大佛朗西國)", "불국(佛國)" 등으로 나와있다.
일본은 1858년 프랑스와 수교한 이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불란서(佛蘭西)로 사용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현대 일본에서는 후란스(フランス)라고 표기된다.
프랑스는 본디 갈리아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기원전 51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하여 로마 제국에 정복당했으며, 이후 로마 문화를 받아들여 급격한 문화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로마 제국이 쇠퇴하자 프랑크족들이 476년에 이주해, 프랑크 왕국을 세우고 번영하였다. 허나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카롤루스 대제가 죽은 이후에는 내전이 일어났고 베르됭 조약으로 제국이 분리됐다. 이 나뉜 왕국들 중 서프랑크 왕국이 987년에 프랑스 왕국으로 성립되었다. 프랑스 왕국은 필리프 2세의 지배 하에 중세 유럽 주요 강대국로 급부상하였으며, 르네상스 기간에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는 등 더욱 발전하여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강국으로 떠올랐다. 16세기에는 가톨릭과 개신교로 세력이 나뉘어 격렬한 내전을 벌이고, 17세기 경에야 절대 왕정 치하에서 안정을 찾는다. 특히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 때에는 유럽에서 가장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력한 나라들 중 하나였다. 18세기 후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의하여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하며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현재의 프랑스 지방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시기는 180만 년 전 정도이며, 인류는 거친 기후와 빙하, 악독한 날씨 탓에 이보다 더 대규모로 북진하지는 못하였다. 인류는 이 곳에서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으며, 동굴에 거주하며 많은 라스코 동굴 벽화와 같은 유적들과 작품들을 남겼다. 기원전 1만년 즈음부터는 해빙기가 찾아오며 날씨가 점차 온화해졌고, 기원전 7,000여 년에 이르자 신석기에 접어들었으며 거주하여 정착생활을 시작하였다. 기원전 4,000년 경부터 야금술이 이 지역에 전파되었고, 얼마되지 않아 금, 동, 나중에는 철까지도 제련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600년 경에 포카이아에서 건너온 이오니아인들이 지중해의 해안에 인접한 현재의 마르세유에 그리스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이 시기에는 켈트족 부족들이 프랑스 동부와 북부로 뻗어나가기 시작하였으며, 얼마 안 있어 프랑스 전역에 골족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골족의 개념 또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는데, 라인강, 피레네산맥, 대서양, 지중해 사이의 지역들에 모여 사는 사람들을 골족들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근대 프랑스의 경계는 대략 고대 골족의 영역과 거의 일치하기도 한다. 골족들은 대체적으로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하였으며, 남부 지방의 경우에는 선진적인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받아들여 문화를 발전시키도 하였다. 기원전 390년 쯤에는 골족들이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침략해 들어가 로마 시를 점령하고 약탈한 일도 있었다. 골족들은 지속적으로 로마를 침략하였고, 기원전 345년에 평화 협약을 맺기 전까지 분탕질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이 협약에도 불구하고 로마와 골족들은 적대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골족들은 끊임없이 국경 근처에서 로마를 도발하였다. 기원전 1세기 무렵의 갈리아는 인적 결합체로서의 전사단인 몇 십 개의 키비타스(civitas)라고 하는 정치상의 단위로 나뉘어 있었다. 부족 내부에는 기사 및 성직자 등의 지배층과 무장능력을 지닌 일반 자유민 외에 노예가 있었으며, 목축과 원시적인 쟁기를 사용하는 농경이 이루어졌다. 로마인들은 이들이 사는 지방을 갈리아라고 불렀다.
한편 로마에서는 폼페이우스 장군, 대부호 크라수스와 야심 많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제1차 삼두 정치 시대가 개막하였다. 당시 힘이 뻗쳐 오르고 있던 로마는 점차 그 정복의 칼끝을 유럽의 평원 쪽으로 돌리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카이사르는 알프스산맥 너머에 있는 갈리아 지역을 "로마화"하여 로마의 힘을 만방에 과시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1세기경에 갈리아 전쟁을 펼쳐 골족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였고, 기원전 52년에 골족의 대장인 웨르킨게토릭스가 로마에게 항복하며 갈리아 지방은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기원전 51년에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 지역을 평정하고 로마의 속주로 삼았다. 이 때 일어난 로마의 국경 확장으로 인하여 당시 선진적인 로마의 문명이 라인 강 지역까지 미치게 되었다. 웨르킨게토릭스가 카이사르에게 참패한 후, 라틴어가 켈트족의 언어를 빠르게 대체하였고, 골족들은 앞다투어 선진적인 로마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로마에 동화되어 갔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 로마 제국은 갈리아 속주에 많은 로마식 도시들을 세웠으며, 목욕탕, 포룸과 같은 건물들을 지으며 로마의 문화를 갈리아 지역에 퍼뜨렸다.
기원후 250년경에, 갈리아 속주는 라인강을 넘어 쳐들어오는 야만인들의 침략에 신음하였으나, 이후 4세기 초반에 로마 제국이 중흥하는 데에 성공하며 다시 번영을 되찾았다. 312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세웠다. 황제가 직접 나서 기독교를 포교하자 갈리아 지방에서도 빠른 속도로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며 4-5세기 무렵에는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라틴계 교부인 성 제롬은 골 지역이 유일하게 "이교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기원후 4세기에 이르러 로마 제국이 과거의 영광을 잃고 힘이 약해지며 갈리아 지방의 동쪽 경계인 라인강 너머에서 게르만 부족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라인강을 따라 남하하였고, 주로 프랑크족이었던 그들은 5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갈리아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때 갈로-로마 문화가 무너지고 암흑기에 접어든 것으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하여 프랑크족들이 대거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서구 기독교 문화의 연속성은 유지되었다.
로마 제국이 크게 약화될 무렵, 골족들은 수많은 게르만족 왕국들과 수아송 왕국 등 서로마의 잔존 세력들로 나뉘었다. 이와 동시에 영국에서 도망쳐 온 켈트족들이 아르모니카 해안을 점거하고 그 곳에 거주하였다. 이로 인하여 아르모니카 해안의 반도가 브르타뉴로 불리게 되었으며, 켈트족의 문화가 부흥기를 맞아 인근 왕국들에게 큰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
뿔뿔이 흩어진 채로 독립적으로 살고 있던 프랑크 족들을 처음으로 통일하고 프랑크 왕국을 세워 왕을 자칭한 자는 클로비스 1세였다. 481년부터 재위하였으며, 486년에 옛 로마의 잔존 세력들을 몰아내는 데에 성공하며 입지를 굳혔다. 클로비스 1세는 서고트인들과 싸울 때에 기독교의 힘을 빌어 승리하였다고 선포하였고, 서고트인들에게서 프랑스 남서쪽 지방들을 탈환한 이후 508년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클로비스 1세는 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후 기독교로 개종한 첫 게르만인 정복자였다. 특히 클로비스 1세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단 아리우스파가 아닌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는데, 이 덕분에 프랑스는 "교회의 장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La fille ainée de l’Église). 또한 교황에게서 '모든 프랑스 기독교인들의 왕 (Rex Christianissimus)이라는 칭호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클로비스 1세가 이끄는 프랑크 왕국은 로마와 골족들의 유산을 물려받아 라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다만 로마 제국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북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게르만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클로비스 1세는 파리에 수도를 두어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으나, 이 왕조는 그의 사후에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왕국은 그의 아들들에 의하여 4개로 쪼개졌다. 이후 이 왕국들은 각자 약화된 채로 명맥을 이어갔고, 국왕들은 실
출처: 프랑스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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