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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Soviet Union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러시아어: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소유스 소베츠키흐 소치알리스티체스키흐 레스푸블리크[*], 문화어: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련맹), 약칭 소비에트 연방(러시아어: Сове́тский Сою́з 소베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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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러시아어: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소유스 소베츠키흐 소치알리스티체스키흐 레스푸블리크[*], 문화어: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련맹), 약칭 소비에트 연방(러시아어: Сове́тский Сою́з 소베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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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으로 조사 시작하기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러시아어: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소유스 소베츠키흐 소치알리스티체스키흐 레스푸블리크[], 문화어: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련맹), 약칭 소비에트 연방(러시아어: Сове́тский Сою́з 소베츠키 소유스[]) 또는 줄여서 소련(러시아어: СССР 에스에스에스에르[*], 문화어: 쏘련)은 1922년 12월 30일부터 1991년 12월 26일까지 유라시아 북부에 있었던 나라로서 러시아 제국의 뒤를 이어 수립된 러시아인 중심의 다민족국가였다. 소련은 당시 면적 기준으로 가장 거대한 나라였는데, 무려 11개의 시간대를 가로지르며 16개국과 접경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러시아어: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소유스 소베츠키흐 소치알리스티체스키흐 레스푸블리크[*], 문화어: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련맹), 약칭 소비에트 연방(러시아어: Сове́тский Сою́з 소베츠키 소유스[*]) 또는 줄여서 소련(러시아어: СССР 에스에스에스에르[*], 문화어: 쏘련)은 1922년 12월 30일부터 1991년 12월 26일까지 유라시아 북부에 있었던 나라로서 러시아 제국의 뒤를 이어 수립된 러시아인 중심의 다민족국가였다. 소련은 당시 면적 기준으로 가장 거대한 나라였는데, 무려 11개의 시간대를 가로지르며 16개국과 접경하고 있었다. 또한 소련은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이자 공산국가였으며 다양한 공화국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연방이었다. 가장 크고 인구가 많은 공화국은 러시아 SFSR이었고, 정부 정책과 경제 역시 매우 러시아 중심적으로 운영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소련 공산당(CPSU)의 일당 통치 아래 운영되었으며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는 모스크바였다.
1917년 3월에 일어난 러시아 2월 혁명은 러시아 제국을 멸망시켰다. 혁명 이후 수립된 러시아 임시 정부는 1917년 11월에 일어난 10월 혁명으로 붕괴하였고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정권을 잡았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백군이 반란을 일으켜 러시아 내전이 일어났지만 볼셰비키는 내전에서 승리하였다. 1922년 12월 30일 제1차 전연방 소비에트 대회에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통합되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탄생하였다.
1924년 소련의 초대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 사후에 집권한 이오시프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론을 주장하는 한편으로 급속한 산업화 정책을 통해 당시 전세계적으로 대공황이 불어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주민이 기근으로 아사하는 등 상당한 인명피해가 따랐다. 한편 스탈린은 1930년대 후반부터 자신에게 반대하는 반대파들을 제거하고자 하였으며, 대숙청을 실시하여 수십만 명을 투옥하거나 처형했고 시베리아에 강제 노동 수용소를 건설하였다. 이로써 스탈린은 레프 트로츠키, 레프 카메네프,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니콜라이 부하린과 같은 주요 반대파들을 숙청하여 소련 내에서 유일무이한 절대 권력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1939년에 소련은 나치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폴란드 동부와 발트 지역을 차지하였다. 그렇지만 1941년 6월 22일에 나치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갑작스럽게 침공을 감행하자 소련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어진 대조국전쟁에서 소련은 처음에는 독일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기점으로 전세를 역전하였으며 1945년 8월에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점령하면서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소련이 입은 피해는 막대했음에도 전후 처리과정에서 소련은 동유럽에 위성국들을 세워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으로 급속한 재건과 경제발전을 이루어냄으로써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의 이념적인 긴장감은 곧 냉전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세계가 1949년에 NATO를 결성하자, 소련은 이에 뒤질세라 1955년 동구권을 결집시켜 자체적인 군사 동맹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창설하여 맞섰다. 미국과 소련 모두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은 원치 않았으므로 대신 전 세계에서 같은 이념을 가진 국가들을 지원하고 그들로 하여금 전쟁을 벌이도록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대립하였다. 1950년대에 접어들자 소련은 우주로 관심을 돌려 최초의 인공위성과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최초의 우주정거장, 그리고 다른 행성에 착륙한 최초의 우주선 등을 잇달아 개발해내면서 우주 경쟁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이와 함께 소련은 1960~1970년대 내내 제2세계 국가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 국가들의 주요 적성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80년대가 되자 소련은 과도한 군비경쟁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함께 여러 문제들로 침체되어 있었다. 이에 1985년에 집권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와 같은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치는 한편으로 침체된 경제를 재건해보려고 하였으나,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오히려 소련의 내부 상황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1980년대 후반이 되면 동유럽의 공산권 국가들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 친소련 정부가 붕괴되는 사태가 일어났으며 소련 내에서조차 소수민족들의 민족주의 및 분리주의 운동이 격화되었다. 그러자 소련 공산당 내에서는 고르바초프를 몰아내고 새롭게 연방을 재편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마침내 1991년 8월에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는 실패하였지만 그 여파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가 연방에서 탈퇴하였으며 다른 구성국들도 점차 소련에게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해 12월 26일,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해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고 이에 따라 소련의 구성국들은 모두 독립해나갔다. 그리고 러시아는 당시 지도자였던 보리스 옐친의 지도 아래에서 러시아 연방으로 재편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소련은 존속하는 동안 많은 중요한 사회적, 기술적 성과와 혁신을 이루어냈었으며, 인류 역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소련은 당시 전세계에서 2번째로 큰 경제 규모와 가장 큰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었고, 핵확산방지조약 가맹국임과 동시에 주요 핵무기 보유국이기도 했다. 또한 UN의 창립 멤버이자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적으로도 엄청난 위상을 지녔다. 해체되기 이전까지 소련은 동유럽에서의 패권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외교와 더불어 사회주의 국가들의 거두였고(특히 남반구에서), 세계 1위의 군사 강국, 막강한 경제 규모, 선두를 달리는 과학 기술과 같이 다양한 요인들을 통해서 미국과 함께 양대 초강대국 가운데 하나로 군림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즉, 소련이라는 명칭은 소비에트(러시아어: Совет)에서 나왔는데, 이는 러시아어로 '평의회' 또는 '회의'를 뜻한다. 노동자, 농민, 학생, 지식인의 공동체 조직인 소비에트는 직접민주제, 간접민주제를 거부하고, 인민민주 상향식 선거를 통해 일당제 체제 하에서 평의회 대의원을 선출한다. 작게는 각 생산수단 및 소공동체에서부터 크게는 모스크바의 최고 소비에트에 이르기까지 각 계층에 걸쳐 설치되어 있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러한 체제는 블라디미르 레닌 스스로가 자신의 저서인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파리 코뮌의 형태와 러시아 특유의 소비에트 제도를 본따서 만든 제도라고 밝혔다. 이러한 체제가 카를 마르크스가 최초로 주장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조금 다른 점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소비에트 제도의 경우 노동자, 농민, 학생, 지식인들로 구성된 '혁명적 당'이 장기간 일당 독재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정치 제도가 하나의 '정통적 체제'로 대변된다는 점에 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원형은 '당'을 사회주의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에 생산 수단의 사회화를 진행하기 위한, 일종의 '민주적 폭력'을 실행하기 위한 체계화 된 조직으로 묘사했고, 이러한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정당 독재는 공산주의에 진입한 후 사라질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의 소비에트 제도는 공산당 일당 독재의 장기화했고 이러한 제도를 바탕으로 모든 공산주의적 정책을 실행했다. 학문적으로 보면 소련이 기준에 따라 민주주의에 들어갈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소련의 성립기와 말기를 제외하면 소련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였다.
소련의 국기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2:1이다. 바탕의 색은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색이다. 금색의 낫과 망치는 각각 농민과 노동자를 상징하였고, 그 위의 붉은 별은 5대륙 노동자의 단결을 의미하였다. 1955년에는 낫과 망치의 모양이 기존의 크기보다 조금 작아졌으며, 1980년에는 국기 배경색이 진홍색에서 조금 연한 진홍색으로 변했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였고 러시아 제국은 멸망하였다. 혁명 이후 성립한 임시 정부는 점진적인 개혁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1914년 7월 28일 시작된 제1차 세계 대전, 특히 독일 제국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또한 어린이들이 먹을 우유가 모자랄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임시 정부에 휴전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17년 11월 7일에 레닌의 지도 하에 11월 혁명이 일어났다.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적위군을 조직해 러시아 제국의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장악하였다. 혁명에 반대하는 백군과 외국 열강이 볼셰비키를 공격해 러시아 내전이 일어나자 백군 및 외국 열강의 군대에 대항하려고 레프 트로츠키는 적위군을 적군으로 개편했다. 적군은 외국 열강과 백군을 쳐부수고 러시아 내전에서 승리했으며, 모든 반대파를 숙청해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어 1922년 12월 30일의 소비에트 대회에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연방에 가입하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성립이 선언되었다.
1924년 레닌의 사후 집권한 스탈린은 세계 혁명론을 주장하는 트로츠키와는 달리 일국사회주의를 내세우며 1928년에는 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레프 트로츠키를 외국으로 추방하였고, 이후 멕시코에서 트로츠키를 살해하는 등 반대파를 60~200만여 명 숙청하였다.
1933년 1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았고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은 중앙유럽 일대를 독일인의 생활권(독일어: Lebensraum 레벤스라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스탈린은 중앙유럽, 동유럽 국가를 공산화하여 위성 국가로 두고 싶어 했는데, 소련과 독일은 결국 중앙유럽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충돌하게 된다. 1939년 8월 소련과 나치 독일은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고, 그 해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소련도 9월 17일 폴란드를 침공하였고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의 영토를 점령하였다. 이어 소련은 1940년에는 핀란드의 영토를 빼앗았고 발트 3국까지 탈환하였다. 그러나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은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 독일과 소련 사이에 전쟁(대조국전쟁)이 발발했다. 그 결과로써 소련은 연합국에 참전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독일군이 우세하여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했으나, 쿠르스크 전투 이후 소련군은 전세를 역전시켜 끝내 1945년 4월 30일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소련은 동부 독일을 점령했고 서부 독일을 점령한 프랑스, 영국, 미국과 독일을 분할하여 관리하기로 하였다. 1945년 8월 8일에는 얄타 회담의 협정에 근거해 소-일 불가침조약을 파기,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여 일본과 전쟁을 해 승리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소련은 만주국도 점령했지만 중국공산당에게 주었다. 또한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반도를 점령하였고, 사할린을 얻을 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전후 소련 정부의 국가 지도 방향을 결정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소련 정부는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주아적 사상이라고 평가했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소련인을 하나로 단결시켰다. 그리고 기존에 국교로서 인정하지 않았던 러시아 정교회의 지위를 회복시켰고, 소련군의 명칭을
출처: 소련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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