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963
이재명
Lee Jae Myung
이재명(李在明, 1963년 12월 8일~)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이다. 2005년 정계에 입문하여 2010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민선 5·6기 경기도 성남시장,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민선 7기 경기도지사, 2022년 8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더불어…
인물1963
Lee Jae Myung
이재명(李在明, 1963년 12월 8일~)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이다. 2005년 정계에 입문하여 2010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민선 5·6기 경기도 성남시장,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민선 7기 경기도지사, 2022년 8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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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으로 조사 시작하기이재명(李在明, 1963년 12월 8일~)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이다. 2005년 정계에 입문하여 2010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민선 5·6기 경기도 성남시장,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민선 7기 경기도지사, 2022년 8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2022년 6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인천광역시 계양구 을 국회의원을 지냈고, 2025년 6월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재명(李在明, 1963년 12월 8일~)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이다. 2005년 정계에 입문하여 2010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민선 5·6기 경기도 성남시장,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민선 7기 경기도지사, 2022년 8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2022년 6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인천광역시 계양구 을 국회의원을 지냈고, 2025년 6월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에 취임했다.
1963년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도촌동(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기도 성남시 중원출장소(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로 이주하여 공장에서 일하는 것과 학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검정고시를 통해 중졸·고졸 학력을 취득하여 중앙대학교 법학을 전공하고 1986년 졸업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계에 입문해 성남시 일대에서 인권·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이 시기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 도중 공무방해에 관한 죄로 기소되었다.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해 몇 차례 선거에 도전하여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 성남시장에 당선되었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도전했으나 문재인, 안희정 후보에 밀려 3위로 패배했다. 이후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었고, 이후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에게 패배했다. 대선 패배 후 3개월 뒤인 2022년 6월 재보궐선거에서 인천광역시 계양구 을 지역에 출마해 원내에 입성하였으며,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지역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하였다.
2024년 1월 2일 피습을 당하여 목 부위에 흉기를 찔렸고 며칠 만에 회복했다. 같은 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당일 밤 국회의사당으로 향해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데 성공했고,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에 참여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도 참여하여 헌법재판소의 파면 인용을 촉구하는 중심 인물이 되었다. 윤석열의 파면 이후 진행된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출마했으며, 선거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다음 날 바로 대통령에 취임, 이재명 정부를 출범시켰다.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도촌동에서 아버지 이경희(李敬熙, 1931년~1986년)와 어머니 구효명(具孝明, 1931년~2020년) 사이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다.
법적인 생년월일은 1964년 12월 22일이나, 이는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늦게 하여 임의로 쓴 날짜고, 실제 출생일은 음력 10월 22일 또는 23일(양력 1963년 12월 7일 또는 12월 8일)로 추정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사업이 망해 집안의 환경이 어려웠다고 한다. 국민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에는 '고집이 세고, 성적은 미미했지만 시원한 성격'이었다고 적혀 있다. 학교가 집에서 5km 정도 되는 거리라서 학교를 잘 안 갔다고 한다.
1977년 2월 국민학교 졸업과 동시에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했고, 중학교 대신 수공업 목걸이 공장에 취업했다. 법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여러 가명으로 공장을 전전한 그는 회사에 문제가 생겨 월급을 떼이고 난 뒤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는 '동마고무'라는 곳으로 옮겼고 동마고무에서 손가락을 다치는 첫 산업 재해를 당했다. 동마고무를 나와 야구 글러브 공장인 '대양 실업'에서 일하고 있을 때 프레스에 손목이 눌려 관절이 으스러지는 두 번째 산업 재해를 당했다. 당시 공장은 사고가 빈번해서 주변 사람들은 다들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다독였고 그는 병원도 찾지 않고 아픈 팔로 계속 일을 했다. 열여섯 살 무렵 키가 15cm 자라고 손목과 팔의 뼈도 성장하하면서 부러진 뼈가 다른 뼈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팔이 비틀어지고 관절이 으스러진 부분의 성장판이 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재명은 이 질병으로 병역면제인 6급 판정을 받았다.
대양실업에 다니던 중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여자아이들 무리와 마주친 이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학원 선생님의 배려로 무료로 단과반을 수강했다. 1978년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중졸 자격을 얻었다.
대양실업에서 당한 산업 재해로 팔의 통증은 계속 심해졌고, 더불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동네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모에 대한 반항심도 생겼다고 한다. 방황 끝에 1980년,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하였으나 실패하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어떻게든 출세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80년 4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졸 자격을 얻었다.
1981년 대입 제도가 개편되면서 학력고사만으로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생 과외가 전면 금지되는 대신 장학생 제도가 확대되었고,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시험만 잘 보면 장학금을 받고 다닐 기회가 열린 것이다. 1982년 7월 학비 지원에 생활비 20만 원을 받고 중앙대학교 법학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90년 셋째 형수 박인복의 소개로 배우자인 김혜경을 만났다. 박인복과 김혜경 모친이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다가 장가 안 간 시동생과 피아노 레슨을 하는 딸을 만나게 해 준 것이다. 이재명은 세 번째 소개팅이었는데, 만나자마자 반해 네 번째 만났을 때 청혼했다고 한다. 이재명과 김혜경은 만난 지 6개월 만인 1991년 결혼했다.
종교는 개신교(장로회)이며, 권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유년 시절부터 신앙을 받아들였다. 성남시에서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던 2005년부터 분당우리교회에 교인 등록을 하고 출석 중이었다가, 정치활동을 시작하면서 비정기 출석하게 되어 제적교인으로 분류되었고, 다시 출석하면 출석교인이 된다.
1982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86년에 졸업했다.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 입학했다. 사법연수원 재학 당시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들었다.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듣기 전에는 연수원 수료 이후 전관예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판사와 또는 검사를 선택하려고 하였으나 노무현의 말에 감명을 받아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한 후 변호사가 되었다. 같은 18기 출신으로는 김재형 전 대법관, 민유숙 전 대법관,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문무일 전 검찰총장, 정성호 법무부 장관 및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조응천 전 개혁신당 의원, 김진태 강원특별자치도지사, 이석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이 있다.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후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광주시의 노동상담소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했다. 1995년에는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시민운동도 시작했다. 이후 '분당 백궁·정자 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파헤쳤다.
2002년 5월 분당 백궁역 일대 부당용도변경저지 공동대책위원장을 맡고, 성남참여연대(당시 성남시민모임) 대표로 있던 이재명은 성남시의 파크뷰특혜분양사건 관련해 KBS PD가 변호사 사무실로 와 자신을 인터뷰하던 중, 당시 성남시장으로부터 휴대폰으로 리콜전화가 오자 PD가 ‘담당검사다 도와줄 테니 사실대로 말하라’고 유인해 녹음한 후 추적60분에 보도했고, 며칠 후 이재명이 PD로부터 녹음파일을 제공받아 기자회견으로 공개했다. 이후 검사 사칭으로 구속되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재명은 11간 구속되었다가 1심에서 공무원자격사칭, 무고 죄로 벌금 250만원 형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항소심에서는 벌금 150만 원으로 감형되었는데, 재판부는 "검사를 사칭한 사실이 인정되나 범죄를 공모한 최모(31. 방송PD)씨에 비해 가담 정도가 낮고 김 전 시장이 고소를 취소한 점 등을 고려, 감형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배포, 유권자가 적절한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판단자료로 제공했다면 공공의 이익이 있다"며 1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2004년 12월 24일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며 벌금 150만원형을 확정했다.
성남시에 있던 종합병원 두 곳이 폐업하자 이재명은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성남시민들과 함께 성남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이 장악한 성남시의회는 최초의 주민발의 조례를 단 47초 만에 날치기로 부결해 버렸다. 이에 이재명은 방청하던 시민들과 함께 항의하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수배됐다. 이후 이재명은 사회운동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재명은 2004년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05년 8월 23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함과 동시에 성남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아 성남시장에 출마했으나 23.75%의 득표율로 한나라당 이대엽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비서실 수석부실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조성준 후보에 밀려 공천 탈락하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에 전략 공천되었으나, 33.2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한나라당 고흥길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낙선 후에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의 부름을 받아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출마하여 역대 선거 결과에서 진보 진영이 우세했던 수정구, 중원구에서 각각 58.87%, 57.91%의 지지를 얻고 이전 선거에서 보수 진영이 승리해왔던 분당구에서 44.63%로 약진하며 종합 51.16%를 얻어 43.14%를 얻은 한나라당 황준기 후보, 현역 시장인 무소속 이대엽 후보를 제치고 성남시장에 당선되었다.
제19대 성남시장 취임사에서 "새로운 성남을 향한 발걸음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면 쉬었다 가더라도 서로의 어깨를 보듬고 한 걸음 한 걸음 웃으며 나아가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시민이 주인되는 성남, 시민이 행복한 시정, 기회가 균등한 성남을 함께 만들자"고 강조한 그는 호화 논란을 빚던 전직 시장의 집무실을 북카페로 내놓은 후 한층 좁은 공간으로 시장실을 옮기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시장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이재명은 재정난으로 LH·국토부 등에 내야 할 판교신도시 조성사업비 5천 200억 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는 국토부와의 진실공방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그는 여느 단체장과는 차별되는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거리낌 없이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시장실에는 "돈 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CCTV마저 설치했다. 특히 복지정책에 중점을 뒀다. 취임 직후부터 성남시립의료원 강화에 나섰고, 2011년부터 무상교복 정책을 추진했다. 시행이 가로막히면 시의회·정부와 각을 세우거나 소송도 불사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하여 강세 지역인 수정구, 중원구에서 각각 56.36%, 56.66%를 얻을 뿐만 아니라 분당구에서도 이전 선거보다 지지율이 10%가량 상승한 53.80%를 기록하여 종합 55.05%로 44.04%의 새누리당 신영수 후보를 상대로 승리하여 연임에 성공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며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했고,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성남 등 불교부단체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방재정개편안을 추진하자 11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성남 FC의 구단주를 겸임하며 수원 FC와의 깃발 더비를 탄생시켰다. 실제로 그는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으며 축구와 야구를 좋아한다고 알려졌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전국에서 일어난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사이다 발언'으로 전국민적 관심을 모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에 이은 차기 대선 후보 2위에 등극하였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충성도 높은 민주당 지지층의 지지세가 이재명에게 몰리고 있어 최대 20%까지도 지지율이 오를 수 있다고
출처: 이재명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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