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중앙대학교
Chung-Ang University
중앙대학교(中央大學校, Chung-Ang University)는 서울특별시 동작구와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의 사립대학이다.
장소
Chung-Ang University
중앙대학교(中央大學校, Chung-Ang University)는 서울특별시 동작구와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의 사립대학이다.
이 항목이 포함된 사건 파일에서 정보와 관계를 함께 살펴보세요.
이 항목이 포함된 사건 파일이 아직 없습니다.
이 항목으로 조사 시작하기중앙대학교(中央大學校, Chung-Ang University)는 서울특별시 동작구와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의 사립대학이다. 중앙대학교는 1916년 10월 17일 유치원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는 중앙 감리교회에 중앙유치원이 설립되었으며, 1922년에 중앙보육학교로 승격되었고, 1933년에 임영신이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하여 1941년 중앙보육학교에 경성중앙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중앙대학교(中央大學校, Chung-Ang University)는 서울특별시 동작구와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의 사립대학이다.
중앙대학교는 1916년 10월 17일 유치원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는 중앙 감리교회에 중앙유치원이 설립되었으며, 1922년에 중앙보육학교로 승격되었고, 1933년에 임영신이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하여 1941년 중앙보육학교에 경성중앙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53년 2월 종합대학으로 개편하여 문리대학·법정대학·경상대학·약학대학 등 4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설치하였다. 1991년 법인명을 중앙문화학원에서 중앙대학교로 개칭하였다. 2008년 학교법인 이사장이었던 김희수가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두산그룹이 법인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박용성이 법인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2009년 3월에 법학전문대학원·의학전문대학원을 개원하였다.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통합 인가를 받아 단일 캠퍼스로 운영되고 있다. 평동(경교장길)의 평동캠퍼스와 동숭동(대학로)의 공연영상예술원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이 사용하고 있다. 현재 중앙대에는 2015년 기준 1개 일반대학원, 5개 전문대학원, 12개 특수대학원과 13개 단과대학 48개 학부(과)가 설치되어 있다.
주로 중대(中大)라는 약칭으로 불린다.
서울캠퍼스
서울캠퍼스는 초대 총장인 임영신 박사가 부지를 구입한 흑석동에 위치해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서울캠퍼스는 182,960.4m2의 부지에 25개 건물이 위치해 있다. 서울캠퍼스에는 인문대학, 사범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공과대학, 창의ICT공과대학, 소프트웨어대학, 경영경제대학, 의과대학, 약학대학, 적십자간호대학,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의 일부 전공(연극, 영화, 공간연출)이 위치해 있다. 또한 캠퍼스 근처에 부속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와 중앙대학교병원이 위치해 있다.
다빈치캠퍼스 (舊 안성캠퍼스)
서울캠퍼스에 있던 예술대학(舊 서라벌예술대학) , 농과대학(現 생명공학대학)이 이전된 분교로서 1980년 건립되었다. 안성캠퍼스는 962,669m2의 부지에 40여 개의 건물 및 기타장소가 있다. 2011년 교육부로부터 본분교통합 및 단일교지 승인을 받았고 2012년부터 이원화캠퍼스로서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안성캠퍼스에는 생명공학대학, 예술대학, 예술공학대학, 체육대학, 공과대학 첨단소재공학과가 위치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에 위치해 있다.
중앙대학교의 원류는 1916년 10월 17일, 감리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설립한 중앙유치원이다. 이후 중앙유치원의 "교육활동을 통한 실력양성으로 독립을 얻자"는 유치원 교육운동이 활발해지면서 1920년대에 여러 유치원이 만들어졌다. 유치원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중앙유치원에 사범과를 설치하여 교사를 양성하는 등 전문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1922년 중앙유치원의 사범과는 중앙보육학교로 승격되었는데, 법령상으로는 전문학교가 아닌 각종 학교였지만, 사회통념상으로는 전문학교로 여겨졌다. 중앙보육학교의 운영은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1932년에는 개인집으로 옮기고 학생수도 10명에 그쳤다. 이러한 중앙보육학교를 1933년에 임영신이 인수하여 교장에 취임하였다. 임영신은 1932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위해 흑석동에 학교 부지를 샀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흑석동에 교지를 마련했지만, 교육장이 마땅치 않아 피어선(Pierson) 성경학교를 빌어서 교육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재정적 한계와 일제의 탄압으로 학교 운영상의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학교 발전을 위해 미국에 건너간 임영신 선생은 모금활동을 통해 중앙보육학교를 후원할 파이퍼재단을 설립하고 귀국하였다. 그리하여 1938년 5월, 흑석동에 영신관을 건립하고 학교를 이전하였다.
이즈음 일본은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1941년에는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더불어 1940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하고, 1943년에는 교육에 관한 전시비상조치령을 공포하였다. 중앙보육학교는 교장인 임영신이 미국에서 유학한 점과 기독교 신자라는 점에서 탄압이 더욱 심하였다. 제2차대전 말기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중앙보육학교는 결국 1944년에는 신입생을 모집할 수 없었고, 폐쇄를 당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고, 임영신은 같은 해 9월 28일에 중앙보육학교의 문을 열었고,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교훈과 교가를 제정하였다. 그 후 신생조국을 건설해 갈 인재를 양성하고 그들의 정신적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같은 해 10월 1일에 중앙보육학교를 중앙여자전문학교로 개편하였다. 또 1946년 11월에는 재단법인 중앙문화학원을 설립하여 학교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인 1947년 4월에는 중앙여자대학으로 개편하고 다시 1948년 5월에는 남녀공학의 중앙대학으로 학칙을 변경하였다.
그 후 1950년 5월에 제1회 전문학사학위수여식을 가졌으나, 한국전쟁으로 휴교하였고, 9월 28일의 서울 수복 후에 학생의 재등록을 받다가 1.4후퇴로 학교의 모든 서류를 부산으로 옮기고 그곳에 중앙대학 임시사무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1951년 4월에는 부산 송도의 전시연합대학이 아닌 중앙대학의 단독개강을 진행하였고, 이어서 이리와 서울에도 분교를 설치하여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1951년부터 1953년까지 2~4회의 전문학사학위수여식을 부산에서 가질 수 있었다.
1953년 2월, 중앙대학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그리하여 문리과대학, 법정대학, 경상대학, 약학대학 등 4개 대학 9개 학과 및 대학원을 설치하고, 총장에는 임영신이 취임하였다. 그 후, 휴전으로 8월에 교사를 부산에서 흑석동으로 옮겼으나, 미8군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교사에서 강의를 진행하였다. 1954년 4월, 미군으로부터 교사를 인수하였다.
그 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학과를 증설하여 4개 대학 19개 학과 정원 2,850명 규모로 대학이 성장하였다. 이러한 학과의 증설과 학생의 증가에 부응해 1956년에 파이퍼홀을 준공하였고, 1959년에는 중앙도서관도 준공하여 개관하였다. 동시에 연구활동을 강화하기 위하여 국제문화연구소 등을 두었고, 또 교육의 체계화를 위해서 교과과정을 끊임없이 보완·수정하였으며, 교육의 계열화를 위해서 자매학교로서 낙양중·공업고등학교, 영신여자중학교, 영신중학교, 부속유치원 등을 두고 체계적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육사업도 확장하였다.
1960년에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4.19 혁명이 일어나 중앙대학교 학생들도 이에 참가하였고, 1961년에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961년에 제 2대 총장 임성희 박사가 취임하였으나, 1963년 5월 다시 임영신 박사가 3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1965년 1월에는 문리과대학을 분리하여 문과대학, 이공대학, 사범대학으로 개편하고 법정대학, 경상대학, 약학대학을 합하여 6개 대학으로 증설했다. 또한 자매 중·고교를 사범대학 부속중·고교로 개칭하고 부속국민학교를 설치하여 부속유치원과 함께 한 재단 아래에서 같은 교육이념 아래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일관된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67년 2월에는 사회개발대학원을 설치하였고, 1968년에는 문과대학, 이공대학, 사범대학, 법과대학, 정경대학, 경영대학, 농과대학, 약학대학 등 8개 단과대학으로 증설 개편하였으며, 1971년 12월에는 의과대학을 설치하고 대학부속병원으로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성심병원을 흡수하였다.
이러한 대학조직의 확장과 더불어 여건 조성도 함께 진행되었다. 1961년 7월에는 진선관과 대학극장이 준공되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사회과학관을 준공하였다. 1968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당시의 문서, 필적 등을 100년 후에까지 안전하게 보관·전달될 수 있는 청룡상을 건립하였다. 이때 승당관도 건립하였고, 다음 해인 1969년 12월에 봅스트홀을 준공하여 교육의 내실화에 기여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임영신 박사는 고희(古稀, 70세)를 넘기면서 총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았다. 이에 1972년에 임철순 박사가 제 4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때에는 국제교류가 점점 빈번해지고 사회도 다양화되어가고 있어서 이러한 시대환경에 부응할 수 있도록 대학을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따라서 기초학문의 발전 없이 응용학문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이공대학을 분리하여 공과대학을 설치하고 문과대학에 자연과학의 기초분야를 합쳐서 문리과대학을 두게 하였다. 예술분야를 위해서 1972년 6월에 기존의 학교법인인 서라벌예술학원이 운영하던 서라벌예술대학을 합병하였으며, 1974년에는 이를 예술대학으로 개편하였다. 또 2부 대학을 1978년에 병설하였고, 1979년 1월에는 국제경영대학원과 교육대학원을 설치하였다. 대학 구조 확충에 따른 시설물의 확장도 진행되었다. 1972년 10월에 진선관을 증축하여 서라벌홀을 준공하였고, 1974년에는 의과대학 교사인 자연관을 준공하였다. 또 1976년 12월에는 학생회관을 준공했으며, 1978년 6월에는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의과대학 부속성심병원의 신관을 준공하였다. 1977년 2월에는 중앙대학교의 설립자이자 많은 발전을 이룩한 승당 임영신 박사가 서거하였다.
1980년 5월, 임철순 총장의 후임으로 문리대 철학과 교수였던 이석희 박사가 제5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또한 같은 해 11월엔 신문방송대학원을 설치하였으며, 12월에는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별관을 준공하였다.
이처럼 서울지역의 학교시설을 계속 확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성의 교육기구 확충에 힘을 기울였다. 1980년 3월에는 제2캠퍼스 건립을 시작하여 서울캠퍼스에 위치해 있던 예술대학과 농과대학(現 생명공학대학)을 안성캠퍼스로 옮기고 제1차 교사동과 제2차 기숙사 및 제1차 학생회관을 준공하였다. 1981년 10월, 안성교사에 외국어대학, 사회과학대학 및 가정대학 등 3개 대학을 증설하였다. 1982년 3월부터는 서울에 있는 교육장을 제1캠퍼스로 안성에 있는 교육장을 제2캠퍼스로 명명하였다. 1982년 10월에는 예술대학에 있는 음악학과를 음악대학으로 확대 발전시켰고, 1983년 9월에는 농과대학을 산업대학으로 명칭 변경하고, 건설대학원도 두었다. 1984년 10월 안성에 있는 제2캠퍼스에 건설대학을 설치하여 제2캠퍼스에 7대 단과대학의 규모를 가지게 하였다.
이 후 1998년에 체육대학을 증설하고 2001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대학과 국악교육대학원을 증설하였다.
이러한 제2캠퍼스의 기구개편과 대학증설에 따라 교육시설도 속속 확장하였다. 1980년 12월 안성교사에 제2차 교사동을 준공했고, 1981년에는 대운동장과 제2차 학생회관을 준공하였다. 이어 1982년에는 교수연구동을 비롯하여 농과대학 실험동과 예술대학 건물을 준공하였다. 1983년에는 음악대학 강의동 및 강당동, 야외 수영실습장, 체육관을 준공하였다. 1984년에는 음악대학 증축건물과 제3차 교사동을 준공하였으며, 1989년에 중앙도서관을, 1999년에는 수림체육관을 준공하여 현대적 캠퍼스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제2캠퍼스에 대한 많은 시설투자는 학교재정에 무리를 가져와 재단의 부채를 가중시킨데다 학교법인 산하 사업체의 부실경영으로 대학운영에 전반적인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5년 3월, 문병집 총장이 6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문병집 총장은 대학운영의 합리화를 기하기 위하여 운영체제개편에 착수하였다. 기획업무를 비롯, 예산 및 재무행정체제를 개편하고 대학운영에 관한 각종 규정을 정비하여 행정체계의 제도화와 합리화를 위한 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교학담당 부총장제와 사무담당 부총장제를 도입하고 취업지도과를 신설하였으며 중앙문화연구원과 의료원의 운영체제를 개편하였다. 그리고 폐과된 문과대학의 불어불문학과와 일어일문학과를 복과시키고 산업정보학과를 신설하였으며, 제2캠퍼스에 현대적인 중앙도서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누적된 학교재단의 부채는 재단의 존립을 어렵게 하였으며 대학의 운영에도 많은 어려움을 가져왔다.
출처: 중앙대학교 (CC BY-SA)
확인된 구조화 정보, 사용자 의견, AI가 찾은 관계를 구분해 표시해요.
아직 댓글이 없어요. 먼저 한마디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