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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약칭 독일은 중앙유럽에 위치한 국가이다. 인구는 2025년 유엔 인구조사 기준 84,075,075 명으로 유럽에서 러시아, 튀르키예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로 유럽 연합(EU) 회원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또 유럽 국가 중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북쪽으로 발트해, 북해와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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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약칭 독일은 중앙유럽에 위치한 국가이다. 인구는 2025년 유엔 인구조사 기준 84,075,075 명으로 유럽에서 러시아, 튀르키예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로 유럽 연합(EU) 회원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또 유럽 국가 중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북쪽으로 발트해, 북해와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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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약칭 독일은 중앙유럽에 위치한 국가이다. 인구는 2025년 유엔 인구조사 기준 84,075,075 명으로 유럽에서 러시아, 튀르키예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로 유럽 연합(EU) 회원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또 유럽 국가 중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북쪽으로 발트해, 북해와 남쪽으로 알프스산맥의 사이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덴마크, 동쪽으로 폴란드와 체코,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서쪽으로는 베네룩스 3국과 프랑스와 접해 있다. 영토는 357,022 km2이며 기후는 주로 온대 기후를 보인다. 공용어는 독일어이고, 그 외에 소수 민족들의 언어인 러시아어, 영어, 소르브어, 덴마크어, 프리지아어 등도 쓰인다. 독일의 수도면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베를린이고, 주요 금융 중심지는 프랑크푸르트, 가장 큰 광역도시권은 루르이지역갱갱갱갱갱개애갱
현대 독일 지역에 대한 정착은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신석기 시대 이후로는 주로 켈트족이 정착하였다. 이후 고대 시대부터는 다양한 게르만 부족이 현대 독일의 북부 지역에 정착했으며, 이 지역은 기원전 100년 이전부터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962년에 형성된 독일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후 16세기에 북독일 지역은 종교 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 이후에 독일에서는 독일 연방이 결성되었다.
1866년 8월 18일의 조약을 통해 프로이센이 주도하는 북독일 연방이 수립되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통해 1871년 독일 제국이 성립되면서 독일은 현대의 국민 국가로의 공식적인 통일이 이루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과 11월 혁명 이후, 제국은 대통령제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재편되었다. 나치의 집권은 독일의 전체주의 독재,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를 만들어냈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동시에 성립된 연합국 점령지 기간이 끝난 후 독일 전체는 일반적으로 서독이라고 불리는 '독일연방공화국'과, 동독으로 불리는 '독일민주공화국'이라는 제한된 주권을 가진 두 개의 개별 국가로 조직되었다.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은 유럽 경제 공동체(EEC)와 유럽 연합(EU)의 창립 회원국이었고,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동구권 국가이자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회원국이었다. 동독에서 공산주의 정부가 몰락한 이후 독일이 재통일되어 이전 독일의 주들은 1990년 10월 3일 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하여 독일은 연방 의회 공화국이 되었다.
독일은 강력한 경제를 가진 강대국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명목 GDP로 세계 3 위,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세계 5 위인 경제를 가지고 있다. 산업, 과학과 기술 분야의 글로벌 강국으로서 세계 3위의 수출국이자 수입국이다. 선진국으로서 사회보장제도, 의료 서비스와 무상 교육을 제공한다. 독일은 유엔, 유럽 연합(EU),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유럽 평의회(CoE), G7, 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다. 또한 독일은 세 번째로 많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 자국 내에서의 표기인 Deutschland(도이칠란트), 원래 diutisciu land(독일의 땅)은 deutsch(Cf. Dutch)에서 유래되었다. Deutsch는 베르나쿨라를 라틴어, 로망스어군와 그 후대 언어들로부터 구분되기 위해 사용된 단어로써 인도유럽조어의 tewtéh₂(사람들)과 þeudō에서 유래된 게르만조어의 þiudiskaz(사람들의)에서 유래되었다.
독일 국외에서 독일의 국명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하게 불린다. 대표적으로 영어로 '저머니(Germany)', 프랑스어 '알마뉴(Allemagne)', 폴란드어 '니엠치(Niemcy)', 중국어 '더궈(德国)', 네덜란드어 '다위츨란트(Duitsland)' 등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쓰이는 '독일'(獨逸)이라는 한국어 명칭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어식 한자 음차 표기인 '도이쓰(일본어: 独逸 (ドイツ))'를 받아들여 이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며, 그 전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덕국(德國)'이라 불렀다. 해방 후에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없애고 독일어 원발음에 좀 더 가깝게 하기 위해 '도이칠란트'로 표기했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이 표기법이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였고 현재는 대한민국 주재 대사관에서도 스스로를 '주한 "독일" 대사관'으로 일컫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쓰이는 문화어에서는 원어의 표기와 비슷한 '도이췰란드'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인류 이전의 조상인 '다누비우스 구겐모시'는 1,100만 년 전에 독일에 살았으며, 직립보행하는 가장 초기의 사람과 유인원 중 하나로 이론화되었다. 고대 현 인류는 최소한 60만 년 전에 독일에 존재했다. 최초의 현 인류가 아닌 화석(네안데르탈인)은 독일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악기인 약 4만 2천 년 된 플루트, 약 4만 년 된 사자 인간, 약 3만 5천 년 된 홀레 펠스의 비너스 등을 포함하여 유사한 연대의 현 인류의 증거들이 슈베비셴 알프(Schwäbischen Alb)에서 발견되었다.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네브라 하늘원반은 독일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게르만족은 북유럽 청동기 시대 혹은 초기 청동기 시대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부와 북독일에서 그들은 남쪽, 동쪽, 서쪽으로 확장하여 켈트족, 이란족, 발트족, 슬라브족과 접하게 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 로마 제국은 게르만 부족들이 거주하는 땅을 침략하기 시작하여 라인강과 엘베강 사이에 게르마니아 속주를 만들었다. 서기 9년, 세 개의 로마 군단이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아르미니우스에게 패배했다. 이 전투의 결과로 인해 게르마니아를 지배하려는 로마인들의 야망을 단념시켰고, 따라서 이는 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진다. 서기 100년 타키투스가 《게르만족의 기원과 현황》을 썼을 때, 게르만 부족들은 라인강과 다뉴브강(리메스 게르마니쿠스)을 따라 정착하여 현대 독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바덴뷔르템베르크, 남부 바이에른, 남부 헤센과 서부 라인란트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260년 경에 게르만족이 로마가 지배하는 땅에 침입했다. 375년 훈족의 침공 이후인 395년부터 로마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게르만 부족들은 남서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곳에 정착한 게르만족들은 프랑크 왕국을 설립하고 작센과 바이에른을 정복하기 위하여 동쪽으로 이동했으며, 현대 독일의 동부 지역에는 서슬라브족이 거주했다.
카롤루스는 800년 카롤루스 제국을 세웠으나, 이 제국은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분할되었다. 동프랑크 왕국의 동쪽의 후대 왕국은 서쪽으로는 라인강에서 동쪽으로는 엘베강까지, 북쪽으로 북해에서 남쪽 알프스 산맥까지 뻗어 있었다. 그 후 신성 로마 제국이 등장하였고, 오토 왕조 시기(919-1024)에 여러 주요 부족공국들을 통합했다. 996년 오토 3세는 자신이 신성 로마 황제로 즉위한 직후 자신의 친척 그레고리오 5세를 교황으로 임명해 그레고리오 5세는 최초의 독일계 로마 교황이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잘리어가 시기(1024-1125)에서 북부 이탈리아와 부르고뉴를 흡수했지만 이 시기에 서임권 투쟁으로 인해 황제는 권력을 잃었다.
호엔슈타우펜가 시기(1138-1254)에서 독일 왕자들은 남쪽과 동쪽으로의 독일인 정착을 장려하는 동방식민운동을 벌였다. 대부분의 북독일의 도시들은 한자 동맹의 일원으로서 무역의 확장을 통해 번영했다. 그러나, 이후 인구는 1315년 대기근으로 인해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뒤따라 1348~1350년 흑사병이 퍼졌다. 1356년에 발표된 금인칙서는 제국의 헌법 구조를 정립하였으며, 7명의 선제후에 의한 황제 선출을 성문화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유럽에 활자 인쇄술을 도입하여 지식의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개신교 종교 개혁을 선전하였으며, 그의 성경에 대한 해석은 언어의 표준화를 불러 일으켰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는 '복음주의' 신앙(루터교회)을 용인했으나, 동시에 '군주의 신앙이 신하들의 신앙이 되어야 함(라틴어: Cuius regio, eius religio 쿠이우스 레기오, 에이우스 렐리기오[*])'을 선언했다. 쾰른 전쟁부터 30년 전쟁(1618-1648)에 이르는 종교 분쟁은 독일의 땅을 황폐화시켰고 인구를 크게 줄였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제국 영지의 통치자들 간의 사이의 종교 전쟁을 종식시켰다. 대부분의 독일어권 영지 통치자들은 로마 카톨릭교회나 루터교회 또는 개혁 신앙을 공식 종교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일련의 '제국 개혁'(약 1495-1555)에 의해 시작된 법률 체제는 상당한 지방 자치권과 강력한 제국 의회를 만들었다. 합스부르크가는 1438년부터 1740년 카를 6세가 사망할 때까지 제국의 황제 직위를 가졌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엑스라샤펠 조약에 따라 샤를 6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후로 황제가 된 남편 프란츠 1세와 함께 제국을 통치했다.
1740년부터 합스부르크 군주국과 프로이센 왕국 사이의 이원론이 독일의 역사를 지배했다. 1772년, 1793년, 1795년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러시아 제국과 함께 폴란드 분할에 동의했다. 프랑스 혁명 전쟁,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제국 의회의 최종 회의 기간 동안 대부분의 자유제국도시는 왕조의 영토에 합병되었고, 교회의 땅도 마찬가지로 세속화되고 합병되었다. 끝끝내 1806년 제국은 해체되었다. 프랑스, 러시아, 프로이센,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 전쟁 동안 독일 내의 패권을 놓고 경쟁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의 빈 회의는 39개의 주권 국가들로 구성된 느슨한 동맹인 독일 연방을 수립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연방 의장으로 임명한 것은 프로이센의 영향력 증대에 대한 의회의 거부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복원된 정치 내의 의견 충돌은 부분적으로 자유주의 운동의 부상으로 이어졌고, 이 운동은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후작에 의한 새로운 탄압을 받았다. 독일의 관세동맹(Zollverein)은 체제가 확립된 후 독일의 경제적 통합을 촉진시켰다. 유럽의 혁명 운동에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과 평민들은 독일 문제를 제기하면서 독일의 여러 국가들에서 1848년 혁명을 시작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황제의 칭호를 받고도 권력을 잃었고, 이에 반발한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제안한 왕관과 헌법을 거부했으며, 이는 독일에서 자유주의 운동의 일시적인 중단이었다.
빌헬름 1세는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프로이센의 총리로 임명했다. 비스마르크는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냈으며, 결정적으로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그는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북독일 연방을 수립할 수 있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한 이후, 독일의 군주들은 1871년에 독일 제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프로이센은 새로운 제국 내에서 제국을 지배하는 성격의 구성국이었고, 이로 인해 프로이센의 국왕이 독일의 황제였으며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가 되었다.
독일의 통일 이후 그륀더차이트 시대에 독일 총리로서의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은 새로운 동맹을 구축하고 전쟁을 피하여 강대국 독일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빌헬름 2세 치하에서 독일은 신제국주의적 노선을 취하며 주변국과 마찰을 빚었다. 이 시기 독일은 다민족 국가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이중 동맹을 구축하였고 1882년 삼국 동맹을 구축하면서 이탈리아를 동맹으로 끌여들었다.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 3국은 발칸 반도에서 러시아의 이익에 대한 합스부르크의 간섭, 혹은 프랑스에 대한 독일의 간섭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독일은 동아프리카, 남서아프리카, 토골란드(토고)와 카메룬을 포함한 여러 식민지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나중에 독일은 식민 제국을 확장하여 태평양과 중국의 영토를 얻었다. 1904년부터 1907년까지 남서아프리카(현 나미비아) 식민 정부는 반란에 대한 대응으로 현지 헤레로인과 나마인들을 말살했으며, 이것은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이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위 계승자를 암살한 사라예보 사건은 오스트리
출처: 독일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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