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962
최민수
Choi Min-soo
최민수(1962년 3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인물1962
Choi Min-soo
최민수(1962년 3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이 항목이 포함된 사건 파일에서 정보와 관계를 함께 살펴보세요.
이 항목이 포함된 사건 파일이 아직 없습니다.
이 항목으로 조사 시작하기아직 댓글이 없어요. 먼저 한마디 남겨 보세요.
최민수(1962년 3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2006년 최민수 록산밴드 - The Men′s Story
2013년 36.5˚C - Smoky Mountain
2003년 8월 18일에 방영된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111회분 가운데 이승만 독재 정권에 관한 선전을 위해 연예인들을 불러모으자, 이에 반대하는 연예인들을 협박,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나옴과 동시에 영화 배우 최무룡이 임화수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방송되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최민수는 한 달 뒤 9월 29일 오후 2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이 장면은 허구이며 패소하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라는 발언 등으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소송 결과는 2004년 1심에서 원고 패소, 2005년 2심에서 조정조서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최민수는 자신이 승소는 물론, 역사적 사건마저 왜곡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만약 패소하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말씀드린 부분은 있다. 하지만 나는 패소하지 않았다. 승소했으니 이민 안 가도 되지 않겠냐고 말할 필요는 없어 조용히 묻어놨던 것이었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회자되기에 말씀 드리는 것이다.
본 회원이 3년 전인가 연기자 최민수의 소송을 담당했는데, 이길 수 없는 소송임이 거의 명백했으나, 1심 패소 후 항소하여 억지로 조정으로 유도해 겨우 서울방송의 유감 표명을 받아 낸 사건입니다.
물론 위 사건은 승소인 것도 아니고 패소인 것도 아닌.. 굳이 말하자면 99% 패소 사건입니다.
본 회원은 '사과'를 강력 주장하였으나, 결국 '유감'으로 결론 났습니다.
청구금액에 연연하지 않는 최민수의 순수함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튼... 아래의 기사와 같이 서울방송의 자그마한 양보가 결과적으로 이민을 가겠다고 공언한 최민수를 안 가도 되도록 도운 셈입니다.
최근 본 회원의 사촌 매형도 8억원이 넘는 세금을 부과 당하자 조세 소송에서 패소하면 이민가겠다고 공언을 하고 다녔는데, 다행스럽게도 1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이민을 막은 게 벌써 2번째 입니다.
임화수는 이승만, 부 부통령으로 불리던 곽영주, 자유당의 이기붕 등 절대적 권력 비호 아래 연예계 분야의 이인자 노릇 하던 인물이었고, 권력을 위해서면 출신지와 나이를 속이기는 물론, 남자 배우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여자 배우들에겐 권력자들에게 상납하기도 하였으며, 여배우들을 정치인들의 노리개로 삼은 연예계 성상납 시스템을 만든 최초로 평가받기도 하다.
측근에 따르면 '임화수는 약한 사람을 발길로 차거나 그렇게 난폭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여배우에게 주먹을 날린 적도 적지 않았다. 운명의 손에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키스신을 선보였던 윤인자는 "임화수 때 제명처분 당할 뻔했잖아. 임화수가 청와대 가면 쩍하면 여배우들 불러가고 그랬는데 ‘난 못 간다. 남편 있는 여자가 그거 왜 가니’ 그랬더니 ‘윤인자는 제명처분을 줘야 한다’고 그랬다”고 전한다. 6작품이나 가케모치(동시출연)하는 통에 제작자들의 사정으로 제명처분을 면했다는 윤씨는 반말을 지껄이는 임화수에게 대든 적도 있었다는데, “(내가) 소리를 질렀더니 (임화수가) 멋쩍어가지고. 쩍하면 주먹 나갔잖아”라고 덧붙인다. 목에 핏대 높였다가 목으로 피 토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또한 임화수의 비서이던 눈물의 곡절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차민섭은 24시간을 임화수 옆에서 온갖 폭력에도 노예 비서로 일하기도 했다. 매일 폭력 당할 때마다 눈물을 흘려 '눈물의 곡절'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임화수에게 구타당했던 이른바 김희갑 구타사건의 당사자 희극배우 김희갑은 사건 당시 입을 다물었던 그는 병원 침상에 누워서야 "반공 예술인단 주최 행사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구타당했다."라고 말하였고 이어 “최무룡, 김진규 등 임화수에게 안 맞은 사람이 거의 없다.”라며 “권력과 폭력의 무방비지대에 있는 자신들을 국민이 보호해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김희갑 구타사건은 곽영주 등이 권력의 압박을 받으면서 합의로 끝났다. 한편, 임화수가 경찰에 불려다녔다는 이유만으로 관련인들을 불러 책임을 물었고 이 자리에서 곽영주는 “이봐, 임화수씨로 말하면 한국 예술계의 대표적 인사요, 앞으로 문교 장관이 되실 분이란 말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후 전치 2개월의 진단서를 받았던 김희갑은 2주 만에 병원을 나서야 했고, 관련 경찰 책임자는 파면당했다.
당시 보도기사, 한국군사재판사(5·16 군사정변) ,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 등 임화수가 폭력적이라는 증거는 수두룩하다. 특히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에서는 실명은 물론 노골적으로 임화수를 평가하기도 한다. 한편, 당사자인 최무룡이 역시 증언하였다. 또한 최민수는 생전에 부친인 최무룡과 초등학교 6학년 때 2개월 동안 같이 살았으며,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0년에 이어 2007년 최민수는 아내 강주은과 함께 출연한 대부업 업체 광고로 논란을 낳았다.
2008년 4월 2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70대 노인과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후 노인 폭행과 협박 혐의를 조사한 서울 서부지검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 서부지검 404호 담당자는 스포츠동아와의 통화에서 “26일 밤 무혐의로 최종 결론 났다. 폭행은 피해자와 합의했고 처벌을 원치 않아 공소권이 없고 흉기를
출처: 최민수 (CC BY-SA)
확인된 구조화 정보, 사용자 의견, AI가 찾은 관계를 구분해 표시해요.
이후 최민수는 2004년 1심에서 패소 후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2010년에 최민수는 묵묵부답으로 SBS 드라마 《아버지의 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