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969
엄정화
Uhm Jeong-hwa
엄정화(1969년 8월 17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이다.아버지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인물1969
Uhm Jeong-hwa
엄정화(1969년 8월 17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이다.아버지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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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1969년 8월 17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이다.아버지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엄정화는 1969년 8월 17일 대한민국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아버지 엄진옥과 어머니 유경숙 사이에 태어났으며, 1남 3녀 중 둘째이다. 언니는 엄정혜, 여동생은 엄정선, 남동생은 배우 엄태웅이다. 아버지 엄진옥은 트럼펫 연주가이자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중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엄정화가 5살 때(1974년) 아버지가 바이크 사고로 사망한 뒤 학교 매점에서 살게 되는 등 순탄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청전초등학교와 의림여자중학교를 졸업했으며, 그 후 제천여자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강원도 원주로 전학하여 1989년 북원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엄정화는 고등학교 시절에 대하여,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들국화 콘서트를 보러 상경했었던 일도 술회했다. 일간스포츠는 엄정화의 북원여자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대해 북원여자고등학교로 전학 와서 학창 시절에도 노래 잘 부르는 것으로 유명한 학생이었으며, 학창 시절 소풍이나 장기 자랑 시간에는 친구들의 신청곡이 밀릴 정도로 노래와 춤, 친구들과 노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어머니는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1989년 MBC 합창단의 오디션을 합격하며, MBC 합창단 12기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엄정화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전문대 졸업 이상만 채용하였기 때문에 정식 공채에서는 서류에서 탈락했으나, 후에 특채를 통해 합창단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살아왔던 엄정화는 이주일이 운영하던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코러스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이때 MBC 합창단을 하면서 연예계의 인맥을 쌓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양현석 등이 있다.
1989년에 MBC 합창단의 오디션을 합격하며 방송국 합창단원이 되었다. 이후 엄정화는 한 쇼 프로그램에서 배우 최진실의 노래를 도와주게 되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엄정화는 최진실의 소속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엄정화와 최진실은 매우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합창단 시절 양수경의 코러스로 참여한 후, 가수 제의를 받아 데뷔를 하게 된다.
1992년에 배우 심혜진 주연의 영화 《결혼 이야기》(1992년)의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데뷔하였고, '로얄디' CF로 광고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1993년 시인 유하의 첫 감독 데뷔작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의 주연을 최민수, 홍학표 등과 맡으면서 본격적인 연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유하 감독은 엄정화에게 "너는 오렌지족처럼 생겼는데, 눈은 되게 착하다"라고 하며 캐스팅을 했고, 이 영화에서 팜므 파탈 역을 맡았던 엄정화는, 영화의 삽입곡이었던 신해철 작사·작곡의 〈눈동자〉가 수록된 1집 음반 《SORROWFUL SECRET》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이 영화 개봉 시 엄정화는 조선일보에, "MBC 합창단원이었다는 전력 때문에 연기력을 의심 받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노래보다 연기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라고 코멘트 하기도 했다.
영화와 1집 음반 모두 그리 큰 반향을 얻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청순함이 대세이던 여자 가수들 중에서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며 데뷔부터 남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이미지 구축은, 그가 1990년대 유지했던 '군인이 좋아하는 가수' 라는 타이틀을 가져다주는데, 엄정화는 가수 데뷔 첫 해부터 군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 가수로 선정된다.
이후 1995년 가수로 복귀할 때까지, 영화의 오렌지족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했던 KBS2 드라마 《굿모닝 영동》에 김호진의 상대 역인 주리나 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툭하면 매 맞고 사는 넷째 기남 역으로 분했던 MBC 《자매들》, 박중훈의 내연녀 혜리로 출연했던 영화 《마누라 죽이기》, 첫 성우에 도전했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블루 시걸》, 드라마 《폴리스》, 뮤지컬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활동하였다.
엄정화는 KBS 《특종 웃음대결》의 MC를 비롯해, MBC 《뉴스투데이》에서 ‘엄정화의 문화살롱’의 진행자로 나서기도 했다.
1996년 1월 2집 《Uhm Jung Hwa 2》를 발매하며 가수로 복귀한다. 총 9곡이 실린 이 앨범에서, 최준영이 작곡한 《슬픈 기대》와 김형석이 작곡한 《하늘만 허락한 사랑》이 히트하였다. 타이틀 곡이었던 《슬픈 기대》는 가발을 쓴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으며, 1996년 5월 2째주 KBS 가요톱텐에서 4위까지 오르며 가수로서 첫 반향을 얻었다. 당시 가요계의 분위기는 서지원의 충격적인 사망으로 인한 추모 분위기와, 엄청난 파괴력으로 등장한 패닉의 데뷔곡 달팽이,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3집 앨범으로 복귀한 솔리드까지 상위권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엄정화는 이 곡으로 6월까지 총 10주간 가요톱텐 10위 권에 머무른다. 그 해 여름, 후속곡으로 내걸었던 《하늘만 허락한 사랑》이 8월이 되며 다시 차트 10위 권 내로 진입했고, 인기를 모으면서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 오르며, 11월까지 차트 10위 내에 머물면서 크게 히트했고, 엄정화를 대표하는 발라드곡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엄정화는 가수로서의 커리어에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된다.
《하늘만 허락한 사랑》의 히트를 뒤로 하고 1997년 3집을 발매할 때까지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진 감독의 《택시 드리벌》을 최민식과 함께 초연하는 등 연극 무대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하며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이어나간다. 엄정화의 연극 무대 복귀는 1995년 뮤지컬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이후 3년 만이었는데, 엄정화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맡은 캐릭터 '서낙'에 대해 “「선악」을 소리나는 대로 써 놓은 이름이에요. 주인공에게 「해봐, 해봐」하고 충동질하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아 역할”이라고 말하며, “제대로 연기 훈련을 받고 싶어 출연료도 묻지 않고 연습을 시작했다”라고 출연 동기를 설명했다.
1997년 발표한 3집《後愛》와 함께 가수로서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 앨범에서부터 엄정화는 작곡가 주영훈과 함께 일하게 되는데, 주영훈이 작곡을 맡은 3집의 타이틀 곡《배반의 장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녀가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 곡은 엄정화에게 가요 차트에서 최초로 1위를 하는 기록을 안겨주었다. 장미 가시를 상징하는 뾰족하게 세운 헤어 스타일, 짙은 화장, 검은색 무대 의상 등 아방가르드한 무대 스타일로 섹시함을 포인트로 잡은 이 노래로 엄정화는 각 음반 및 가요 차트를 휩쓸었고, 뛰어난 퍼포머로서의 역량을 과시했다. 엄정화는 조선일보와의 앨범 발매와 함께 가진 인터뷰에서, "제목은 좀 촌스럽죠? 하지만 폭발적인 분위기가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엄정화 하면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겁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배반의 장미》의 엄청난 성공 이후 엄정화는 후속곡으로 《하늘만 허락한 사랑》의 계보를 잇는 엄정화표 발라드《후애 (後愛)》와 댄스곡《3자대면》으로 활동을 이어나갔고, 이 노래들 또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
이와 함께 당시 갓 데뷔한 신인 그룹이었던 지누션의 1집 후속 곡이었던《말해줘》에 피처링을 맡았고, 이 곡이 시장에서 크게 히트하면서 엄정화의 가요계 내 입지는 더욱 탄탄해지게 되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KBS 2TV의 드라마 《스타》에 캐스팅 된다. 아역 탤런트 출신 스타로 팬들 기억에서 사라지는 불운을 겪다 숨은 매력을 알아본 동료의 도움으로 재기하는 신수민 역을 맡았던 엄정화는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예비 촬영분이 거의 없어서 매주 촬영 일정을 거의 빼 먹지 말고 소화해야 한다"라고 고충을 토로하면서,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소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1998년 3월 KBS 2FM 《가요광장》의 DJ를 맡게 된다. 엄정화는 앞서 직전 DJ인 궁선영이 진행하던 시절에도, 토요일 2부에《탑뮤직 30》코너를 맡아 같이 진행하기도 했었으며, 당시 SBS FM의 프로그램인 양진석의 《스트레스 제로》에서도《신나는 고고 짠짠》이라는 코너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었다. 엄정화는 중간의 휴식 기간을 제외하고 2001년 1월까지 이 프로그램을 약 3년 간 진행하는데, 진행 도중 연인과의 이별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주영훈과의 성공적인 결과물을 얻어낸 엄정화는 다음 해 발표한 4집 《invitation》에서 또 한번 그와 손을 잡는데, 4집의 타이틀 곡이었던《POISON》은 전작《배반의 장미》를 뛰어넘는 엄청난 히트를 하였고, 첫 달에만 18만 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 하는 등 여자 가수로서는 이례적인 45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판매하게 된다. 또한 당시 모델이었던 배우 차승원이 등장했던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되었다. 이 단계에서부터 엄정화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서 하나의 패션 아이콘으로 등장하게 되는데,《POISON》과 함께 무대에서 선보였던 엄정화의 단발머리 스타일과 사이버틱 메이크업을 비롯해, 하늘을 찌르는 댄스 동작 역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큰 반향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 《POISON》은 2008년 엄정화가《D.I.S.C.O》앨범으로 복귀하면서 출연한 KBS 2TV의 《불후의 명곡》에서도 1위로 꼽혔다.
엄정화는 4집 앨범에서 주영훈 이외에도, 박진영, 이현도, 조규만, 정재형 등의 프로듀서와도 합작물을 만들어 냈는데, 《POISON》의 엄청난 성공 이후 그가 선택한 후속 곡은 박진영과의 합작품이었던《초대》였다. 엄정화는 솔직한 가사의 이 곡을《POISON》에서 선보였던 단발머리 대신 긴 머리에 검은 드레스, 부채를 들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무대와 함께, 상반신 노출, 마사지 장면 등 에로틱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감도는 뮤직비디오를 시장에 내놓으며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 이 뮤직비디오는 한편으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침실 및 에로틱한 분위기로, 성 상품화와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역시《POISON》에 버금가는 히트를 기록하며 시장 내에서의 엄정화의 위치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초대》의 성공에 힘입어 엄정화는 세 번째 활동 곡으로《숨은 그림 찾기》를 내놓는데, 밝은 분위기의 이 곡 역시 차트 10위 안에 무난히 안착하며 3연속 히트곡을 만들어 내었다. 엄정화는 이 해 11월, 성공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라이브 콘서트《천년의 유혹》을 개최하며 4집 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이 콘서트는 대호응을 거두었고, 12월에 앵콜 콘서트를 개최하게 된다.
4집 앨범의 큰 성공 이후, 엄정화는 세기말을 앞둔 1999년 그의 디스코 그라피에서 가장 성공적인 5집 《005.1999.06》을 선보인다. 이 앨범에서 엄정화는 주영훈을 택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김창환과의 합작품인《몰라》를 타이틀 곡으로 선보였다. 김창환이 본인이 게스트로 나온 KBS《불후의 명곡》에서 밝혔듯이, 엄정화는 김창환으로부터 곡을 받기 위해서 가수 김태영에게 보컬 레슨을 받는 등 노력을 기울였고, 김창환은 담당 가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정화에게 곡을 주어 공전의 히트를 이루어내었다. 엄정화는《몰라》의 이미지를 사이버틱하게 가져가면서 뮤직비디오, 무대 구성을 통해 최대한 시청자들이 그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엄정화는 홍종호를 기용하여 감독한 세기말의 불안과 어지러움이 반영되어 있던 미래적인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의 작품인 사이버틱한 메이크업과, 디자이너 이상봉의 작품인 물이 찰랑거리는 헤드폰을 무대 소품으로 사용하며 무대를 구성하였다. 이 결과 《몰라》는 음반 판매 차트와 가요 차트를 휩쓸며 엄정화의 전작들을 뛰어넘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톱스타로서의 위치를 시장에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엄정화는 이 앨범으로 55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판매하며 전작을 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는 별도로 엄정화는 후에 9집을 발매하면서 한 인터뷰에서, 《몰라》의 시장에서의 반응
출처: 엄정화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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