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이스라엘
Israel
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 약칭 이스라엘(히브리어: ישראל, 아랍어: إسرائيل)은 이스라엘은 서아시아의 남부 레반트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레바논과 시리아, 동쪽으로는 요르단과 서안 지구, 남서쪽으로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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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 약칭 이스라엘(히브리어: ישראל, 아랍어: إسرائيل)은 이스라엘은 서아시아의 남부 레반트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레바논과 시리아, 동쪽으로는 요르단과 서안 지구, 남서쪽으로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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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 약칭 이스라엘(히브리어: ישראל, 아랍어: إسرائيل)은 이스라엘은 서아시아의 남부 레반트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레바논과 시리아, 동쪽으로는 요르단과 서안 지구, 남서쪽으로는 가자 지구와 이집트,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해 있다.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지만, 동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은 국제법상 인정되지 않아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제 중심지이자 가장 큰 도시권역은 텔아비브이다.
이스라엘의 위치는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의 땅'이라는 의미의 "에레츠 이스라엘"으로 알려진 지역으로, 고대에는 가나안, 팔레스타인 등으로 불렸다. 고대에는 가나안 도시 국가들이 자리 잡았고, 이후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세워졌다. 이후 로마 제국부터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인구 구성이 크게 변화하였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의 반유대주의는 시온주의를 촉발시켰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시온주의는 대영제국의 지지를 얻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은 이 지역을 점령하여 1920년에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세웠다. 홀로코스트가 벌어지기 얼마 전 유대인의 이민이 증가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는 1947년 유엔이 이 지역을 분할할 것을 제안한 후 내전으로 이어졌다.
현재의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에 건국을 선포했으며, 이튿날 인접한 아랍 국가들의 군대가 이 지역을 침공하면서 제1차 중동 전쟁이 시작되었다. 1949년 휴전 협정으로 이스라엘은 이전 위임통치 지역의 77%를 통제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시온주의자와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추방되거나 스스로 국가를 떠났는데 이들을 "나크바"라고 한다.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들은 새로운 이스라엘 국가의 주요 소수민족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은 아랍 세계에서 이주하거나 쫓겨난 유대인들을 받아들였으며,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국제법에 반하지만 이스라엘은 점령지에 정착촌을 계속 확장하고 있으며, 동예루살렘과 골란 고원을 사실상 병합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으며, 2020년대에는 더 많은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그러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해소되지 못하여 여러 차례 전쟁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들과의 충돌을 겪었다.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서의 관행은 국제적으로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으며, 인권 단체와 유엔 관계자들은 이스라엘을 전쟁 범죄로 비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기본법은 단원제 의회 시스템을 규정하고 있으며, 비례대표제로 선출된 국회(크네세트)가 정부 구성과 총리 및 대통령의 선출을 담당한다. 이스라엘은 부활한 공식 언어인 현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이스라엘은 유대인과 디아스포라의 요소들, 아랍의 영향이 결합된 독특한 음식, 음악, 예술 등 문화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가장 큰 경제를 가진 국가 중 하나이며, 아시아에서 높은 1인당 GDP와 생활 수준을 가진다.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된 국가 중 하나인 이스라엘은 연구 개발에 가장 많은 비율의 투자를 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으며, 회원국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대체 수준을 초과하는 국가이다.2023년 기준 이스라엘은 명목 GDP 29위, 1인당 GDP 13위다.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기간동안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 선언되면서, 이 나라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Medīnat Yisrā'el [mediˈnat jisʁaˈʔel];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Dawlat Isrāʼīl, [dawlat ʔisraːˈʔiːl])이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그 외에도 에레츠 이스라엘, 에벨, 시온, 유다 등이 제안되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벤구리온에 의해 제안되었고, 투표를 거쳐 6대 3으로 통과되었다. 건국 후 초기 몇 주 동안 정부는 이스라엘국의 시민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스라엘인(israeli)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에레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이름은 역사적으로 성경 속 이스라엘 왕국과 전체 유대인을 각각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그리스어: Ἰσραήλ, "엘이 통치한다"는 의미로, 호세아서 12:4 이후에는 종종 "하나님과 씨름하다"로 해석됨)은 구약성경에 따르면, 천사와 씨름에서 승리한 후 족장 야곱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집단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가장 오래된 유물은 고대 이집트의 메르넵타 석비(기원전 13세기 후반)이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강제적인 분할 계획을 채택하여 실행을 추진하였으나, 이에 동의한 유대인과 달리, 이에 동의하지 않은 아랍인은 추후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된다. 1948년 5월 14일,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라고 선언했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 종료와 함께 독립이 되었다. 영국군이 철수한 다음날 동시에, 근처의 아랍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이스라엘 군대와 싸웠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중동 전쟁을 하는 동안 요르단강 서안 지구, 시나이반도 (1967년 ~ 1982년 사이), 남레바논(1982년 ~ 2000년 사이), 가자 지구와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지역을 부분 합병했지만, 요르단강 서안 지구와의 국경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지만,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여전히 이 지역의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이스라엘 인구는 9,343,140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74.2%는 이스라엘 정부 당국에 유대인으로 기록되었다. 아랍인들은 전체 인구의 20.9%를 차지하며 정부 등기소에 등록된 비아랍계 기독교인 및 무신론자들은 4.8%이다. 지난 10년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온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정확한 수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들의 많은 수는 불법으로 거주하며, 이들의 수는 166,000명에서 203,000명 사이로 추정한다 2012년 6월 무렵으로, 대략 60,000명의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이스라엘에 들어왔다. 이스라엘인의 대략 92%는 도시 지역에 거주한다. OECD가 2016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인들의 평균 수명은 82.5세로, 세계에서 6번째로 높았다.
이스라엘은 다민족국가로서 대부분의 이스라엘의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도이며, 네게브 사막의 베두인족과 같이 비교적으로 적지만 중요한 집단이다. 나머지는 기독교인들과 드루즈인이다.
그 외의 다른 소수 민족들에는 마론파, 사마리아, 아프리카계 히브리인, 아르메니아인, 체르케스인 등이 있다. 이스라엘은 또한 비시민권자 외국인 노동자들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망명 신청자들로부터 이민을 받는다.
후기 청동기 시대 (기원전 1550 ~ 1150년)
가나안 사람들은 중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100-1550년)에 처음으로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다.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550-1200년) 동안 가나안 지역 대부분은 이집트 신왕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존재했다. 후기 청동기 시대가 끝나면서 가나안은 혼란에 빠졌고, 이집트의 지배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 시기에 하솔, 벳스안, 므깃도, 에크론, 아쉬돗, 아스글론 등 주요 도시들이 파괴되거나 큰 피해를 입었다.
이스라엘인의 조상은 가나안 지역에 뿌리를 둔 고대 셈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200년경 무렵, 기후 변화와 사회 변화로 인해 고원 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도시인들에게서 곡물을 사먹던 유목민들이 도시들이 쇠락하자 곡물을 자체적으로 생산해야 해서 정착 생활로 바꾸어 정착하게 된 것이 이스라엘의 시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목민이 주류였지만, 가나안의 도시 왕국들에서 이탈한 사회 하층민 계층("하비루 Habiru / 아피루 Apiru"는 사회적 하층민을 가리키는 명칭) 역시 초기 이스라엘의 일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성서의 창세기의 족장들이나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족속처럼 기근을 피하거나 직업을 얻기 위해 이집트로 이주하거나 이집트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었으며, 이는 중왕국 시대의 이집트 내의 셈족 도시 아바리스와 베니 하산 무덤 벽화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MacGregor plaque, 제1왕조의 파라오 카아의 Abydos ivory tablet를 통해 고왕국 시대 이전부터 이집트로 노예나 포로로 끌려왔었기도 하였으며, 나일 삼각주의 동부 국경으로 이주하였었음이 밝혀졌다. 현대 고고학 기록에 따르면, 이스라엘인과 그들의 문화는 가나안 민족과 그들의 문화에서 발전된 독특한 단일신 신앙을 통해 분리되었다. 이들은 성서 히브리어로 알려진 고대 히브리어를 사용했다.
데이비드 일란은 아브람, 이스라엘, 에서, 이스마엘, 미가엘 등의 이름이 기원전 3천년기(기원전 3000-2000년)의 기록인 에블라 문서(Ebla archive; 기원전 2600-2300년)에 등장한다는 것과 고대 시대부터 상인들이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을 오갔다는 것을 근거로 족장 이야기가 특정한 한 시대 뿐 아니라 여러 시대에 들어맞으며, 낙타, 블레셋인, 지명 등 시대착오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스라엘'이라는 존재가 최초로 확인되는 기록은 기원전 1200년경의 고대 이집트 비문인 메르넵타 석비이다.
이스라엘이 메르넵타 비문에 등장한 시기인 기원전 1200년경과 비슷한 시기부터 블레셋 사람들은 남쪽 해안 평야에 정착했다.
철기 시대 I (기원전 1150-950년)
고고학자 폴라 맥너트(Paula McNutt)는 "아마도 철기 시대에 이르러서야 가나안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스라엘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들은 혼인 금지, 가계와 계보, 종교 등을 통해 주변 이웃들과 차별화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후기 청동기 시대에는 고지대에 약 25개의 마을이 있었으나, 1차 철기 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이 숫자가 300개 이상으로 증가했고, 정착 인구도 20,000명에서 40,000명으로 두 배가 되었다. 이러한 마을은 북부 지역에 더 많이 집중되어 있었고, 주거 유적을 남기지 않은 유목민들과 고원을 공유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추적하려는 고고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이들을 특별히 이스라엘인으로 정의할 만한 뚜렷한 특징을 찾지 못했다. 네방형 집이나 입구에 테두리가 달린 'collared-rim' 항아리와 같은 이스라엘 정착지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던 요소들은 고지대 이외의 지역에서도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착지를 구별하는 데 더 이상 사용될 수 없게 되었다. 고지대 마을에서 발견된 도자기는 저지대 가나안 지역의 도자기보다 더 단순하지만, 그 형태는 이전 가나안 도자기에서 발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핀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은 초기 고지대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타원형 또는 원형 마을 배치와, 돼지 뼈의 부재가 특정 민족의 특징일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다른 학자들은 이것이 단순히 고지대 생활에 적응한 결과일 뿐이며, 반드시 민족적 기원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당시의 다른 아람 유적지에서도 돼지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가나안이나 블레셋 유적과는 다른 특징이다.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The Bible Unearthed, 2001)에서 핀켈슈타인과 실버만은 최근 연구를 요약했다. 그들은 1967년까지 팔레스타인 서부 고원지대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중심부는 사실상 고고학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었다고 밝혔다. 이후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므낫세
출처: 이스라엘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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