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뉴질랜드
New Zealand
뉴질랜드(영어: New Zealand) 또는 아오테아로아(마오리어: Aotearoa)는 오세아니아의 폴리네시아(또는 오스트랄라시아)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왕정 주권국이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총 육지 면적은 268,000km²이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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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Zealand
뉴질랜드(영어: New Zealand) 또는 아오테아로아(마오리어: Aotearoa)는 오세아니아의 폴리네시아(또는 오스트랄라시아)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왕정 주권국이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총 육지 면적은 268,000km²이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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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이 나라 작품 제임스 카메론
뉴질랜드 이 나라 작품 리처드 오브라이언
뉴질랜드 멤버 다자간 투자 보증 기구
뉴질랜드 멤버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뉴질랜드 멤버 국제 투자 분쟁 해결 센터
뉴질랜드 멤버 국제 개발 협회
뉴질랜드 멤버 아시아 개발 은행
뉴질랜드 멤버 국제 금융 공사
뉴질랜드 멤버 국제부흥개발은행
뉴질랜드 멤버 유엔
뉴질랜드 멤버 영연방
뉴질랜드(영어: New Zealand) 또는 아오테아로아(마오리어: Aotearoa)는 오세아니아의 폴리네시아(또는 오스트랄라시아)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왕정 주권국이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영어: New Zealand) 또는 아오테아로아(마오리어: Aotearoa)는 오세아니아의 폴리네시아(또는 오스트랄라시아)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왕정 주권국이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총 육지 면적은 268,000km²이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먼해를 사이에 두고 2,000km 정도 떨어져 있고 뉴칼레도니아, 피지, 통가와 같은 태평양 북서부의 도서와는 남쪽으로 1,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방위로는 동경174도에서 남위 41도에 있다.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마지막 땅이 되었다. 또한 오랜 고립 기간 동안, 뉴질랜드에서는 독특한 생물적 다양성이 발전했다. 뉴질랜드의 다양한 지형과 높은 봉우리들은 화산 폭발과 육지의 융기로 인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의 수도는 웰링턴이고,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오클랜드이다.
1250년과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의 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고,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1840년, 영국의 대표와 마오리족의 수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고, 뉴질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음을 선언했다. 1841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영국의 군주가 국가원수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유럽계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소수민족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와 태평양 제도 지역의 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뉴질랜드의 문화는 마오리 문화와 초기 영국 정착인들의 문화에서 기여된 것이 많지만, 뉴질랜드로의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공식언어는 마오리어와 뉴질랜드 수어다. 그러나, 영어가 실질적인 공식언어로 가장 많이 쓰인다.
뉴질랜드는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또한 삶의 질, 보건, 교육, 시민자유의 보호, 경제적 자유와 같은 국가 성과에 대한 국제적 비교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 주요 경제적 변화를 겪었고, 경제 역시 보호주의에서 자유 무역으로 선회했다. 뉴질랜드의 경제에서 서비스업이 다수를 차지하며, 산업과 농업이 그 다음으로 많다. 관광은 뉴질랜드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뉴질랜드 의회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의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행정기관의 역할을 한다. 현재 뉴질랜드의 총리는 크리스토퍼 럭슨이다. 찰스 3세가 뉴질랜드의 군주이며, 뉴질랜드의 총독이 국왕을 대신하는데, 현재 총독은 신디 키로다. 뉴질랜드의 행정 구역은 11개이며 지방자치를 목적으로 한 67개의 지역 당국이 있다. 뉴질랜드 왕국은 뉴질랜드의 속령인 토켈라우, 뉴질랜드와 자유연합 관계인 니우에와 쿡 제도, 그리고 뉴질랜드가 남극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로스 속령이 포함된다.
뉴질랜드는 유엔, 영연방, ANZUS, 경제협력개발기구, ASEAN 플러스 6,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태평양 공동체, 태평양 제도 포럼의 회원국이다. 뉴질랜드는 미국이 선정한 주요 비NATO 동맹국 중 하나이며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영연방 왕국의 지배국이자 옛 식민 지배국이었던 영국과도 전통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모아, 피지, 통가 등 태평양 제도 국가와도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관계는 트랜스태즈먼 관계로 불릴 정도로 긴밀하며, 이는 19세기 초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같은 식민지에서 기원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은 1642년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네덜란드 의회의 네덜란드어 발음인 '스타텐헤네랄'을 기려 "스타텐란트"(Staten Land)라고 명명했다. 타스만은 "이 땅이 스타텐란트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라고 적었다. 여기서 말하는 스타텐란트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에 위치한 같은 육지로, 야코프 러 메러가 1616년 발견한 땅이었다. 1645년, 네덜란드 지도학자들이 네덜란드의 주인 제일란트주의 이름을 따 "노바 제일란디아"(Nova Zeelandia)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노바 제일란디아를 영어화하면서 "뉴질랜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노바 제일란디아라는 이름은 마오리어로 누 티레니(Nu Tireni)라고 쓰였으며, 테 티리티 오 와이탕이(Te Tiriti o Waitangi)에서는 누 티라니(Nu Tirani)로 표기되었다.
"길고 하얀 구름의 땅"으로 자주 번역되는 "아오테아로아"(Aotearoa)는 뉴질랜드를 가리키는 현대 마오리어 이름이다. 이 명칭이 유럽인이 정착하기 이전의 뉴질랜드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인지, 아니면 북섬만 가리키는 단어인지는 불분명하다. 마오리인들은 2개의 섬을 가리키는 여러 개의 전통적인 명칭이 있었다. 북섬의 경우에는 마우이의 물고기라는 뜻을 가진 테이카아마우이(Te Ika-a-Māui)로 불렀고, 남섬의 경우에는 푸나무의 물이라는 뜻인 테와이포우나무(Te Waipounamu), 또는 아오라키의 카누라는 뜻인 테와카오아오라키(Te Waka o Aoraki)라고 불렀다. 초기 유럽 지도에서는 북섬을 노스, 남섬을 미들, 그리고 스튜어트섬을 사우스라고 표기했다. 1830년 지도 제작자들은 뉴질랜드의 가장 큰 2개의 섬을 나타내기 위해 노스와 사우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907년 이것은 표준으로 받아들여졌다. 2009년 뉴질랜드 지리국은 북섬과 남섬이라는 이름이 공식화되지 않았음을 발견했고, 2013년 표기를 공식화했다. 이후 북섬은 북섬 또는 테이카아마우이로 표기하고, 남섬은 남섬 또는 테와이포우나무로 표기했다. 각각의 섬은 영어나 마오리어 중 하나를 선택하여 쓰거나 둘을 병기해도 된다.
뉴질랜드에 처음 도달한 사람들은 폴리네시아인으로, 그들은 대양을 항해하는 와카(카누)를 타고 도착했다. 그들의 도착은 약 1280년에서 1350년 사이에 여러 차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폴리네시아 정착민들은 뉴질랜드에서 고립되었고, 이후 마오리 (Māori)로 발전하게 되었다. 초기 유럽의 여러 마오리 전통 이야기를 종합한 해석에 따르면, 약 750년에 영웅적인 탐험가 쿠페(Kupē)가 뉴질랜드를 발견하였고, 이후 1350년경에는 하와이키에서 한 대의 대규모 정착선이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이 이야기는 점차 전설과 신화의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새로운 고고학적 및 과학적 증거에 따라, 원주민의 구술 증거에서 유도된 해석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면서 대안적인 견해가 나타나고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탈산림화의 증거, 그리고 마오리족 주민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변동성은 동부 폴리네시아인들이 1250년부터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정착했으며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거쳐 장기간 항해를 했음을 알게 해 준다. 수 세기가 지난 후, 이 정착자들은 "마오리"라고 알려진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주민들은 "이위"(iwi)와 "하푸"(hapu)로 구별되었고, 이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했으며, 때로는 서로 싸우기도 했다. 어느 순간 마오리족은 오늘날 채텀 제도로 알려진 레코후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마오리족은 그들만의 모리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모리오리 주민들은 1835년부터 1862년 사이에 전멸했는데, 이는 타라나키 마오리가 이 지역을 침범해 1830년대부터 이 지역주민들을 노예로 삼았고, 유럽에서 온 질병들도 모리오리 주민들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다. 1862년, 모리오리 주민들 중 101명만이 살아남았고, 순수 모리오리 혈통을 가진 마지막 사람은 1933년 사망했다.
이들 폴리네시아 정착민들의 도착과 관련해서, 1314년경 타라웨라산 분화로 인해 형성된 화산 파편층인 카하로아 테프라(Kaharoa Tephra)보다 이전으로 확실히 추정되는 인골, 유물 또는 구조물은 없다. 쥐 뼈, 쥐가 갉아먹은 조개껍데기 및 씨앗 껍데기 표본들은 타라웨라 분화 이후의 연대를 보여주며, 단 세 가지 표본만이 분화 약 10년 또는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및 화산 분화 직전 화재로 인해 숲에 퍼지게 된 화분의 증거는 타라웨라산 분화 이전에 인간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또한 마오리 인구 내의 미토콘드리아 DNA 변이는 1250년에서 1300년 사이에 동부 폴리네시아인들이 뉴질랜드 군도에 처음 정착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일부 정착민들이 1314년 이전에 도착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주요 정착 시기는 그 후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아마도 조직적인 대규모 이주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역사학자들은 폴리네시아인이 뉴질랜드로 이동한 것이 계획적이고 의도되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그 후 수 세기 동안 정착민들은 현재 마오리로 알려진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 시나리오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세 번째 구전 증거, 즉 전통적인 족보(와카파파, whakapapa)와도 일치하며, 이 족보는 많은 마오리들이 자신의 혈통을 추적하는 기초 카누(와카, waka)들이 약 1350년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일부 마오리들은 이후 채텀 제도(Chatham Islands)로 이주하여 자신들의 독특한 모리오리(Moriori)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1835년 마오리의 침공으로 인해 모리오리족은 학살당하고 사실상 멸종하게 되었다.
뉴질랜드에 처음으로 도착한 유럽인은 1642년에 뉴질랜드를 발견한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과 그의 승무원이었다.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당시, 원주민들은 그들을 적대적으로 대했고, 이 결과 선원 4명이 죽고 마오리족 1명이 산탄총에 맞았다. 유럽인들은 이후 뉴질랜드를 방문하지 않았고, 1769년이 되어서야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의 해안선 대부분을 지도로 그렸다. 쿡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과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포경선, 물개잡이 배, 그리고 무역선을 이끌고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그들은 유럽산 음식과 금속 도구, 무기와 기타 제품들을 목제, 마오리 음식, 공예품, 물 등으로 교환했다. 감자와 머스킷의 도입은 마오리족의 농업과 전쟁을 뒤바꿨다. 감자는 믿을만한 식량 보충원으로 제공되어 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 결과 벌어진 머스킷 전쟁에서 1801년부터 1840년까지 600회 이상의 전투가 발생했고, 3만 명에서 4만 명 사이의 마오리족이 사망했다. 19세기 초, 기독교 선교사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마오리 인구가 기독교로 개종했다. 한편, 마오리족의 인구는 19세기 동안 약 40% 감소했는데, 질병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1788년 아서 필립 대위가 새로운 영국 식민지인 뉴사우스웨일스의 총독에 임명되었다. 위원회에 따르면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에는 뉴질랜드도 속했다. 영국 정부는 북부 마오리의 청원으로 1832년 제임스 버스비를 주뉴질랜드 영국 공사관으로 임명했다. 1835년 샤를 드 티에리가 프랑스의 정착이 임박했음을 선언한 이후, 혼란스러웠던 뉴질랜드 부족연합은 윌리엄 4세에게 뉴질랜드 독립선언서를 제출하고 보호를 요청했다. 불만은 지속되었고, 마오리족에게 땅을 사기 위해 감독관들을 태운 배를 이미 파견한 뉴질랜드 회사의 정착 제안과 뉴질랜드 독립선언서의 미심쩍은 법적 지위로 인해 식민지부는 윌리엄 홉슨을 파견하였다. 윌리엄 홉슨은 뉴질랜드의 영유권을 영국이 주장하게 하고 마오리족과 협상을 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었다. 1840년 2월 6일 베이오브아일랜즈에서 와이탕이 조약이 처음으로 체결되었다. 뉴질랜드 회사가 웰링턴에 독자적인 정착촌을 세우려고 하고 프랑스 정착민들이 아카로아에 땅을 구입하자, 마오리족이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와이탕이 조약의 복사본이 뉴질랜드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홉슨은 1840년 5월 21일 영국이 뉴질랜드 전체의 영유권을 소유한다고 선언했다. 와이탕이 조약의 체결과 영유권 주장으로 이민자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출처: 뉴질랜드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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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와이탕이 조약 이후에도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의 일부로 남아있었지만, 1841년 7월 1일 왕령 식민지인 뉴질랜드 식민지로 분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