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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OCK
Korean rock
Korean Rock, 줄여서 K-rock은 대한민국 내에서 로큰롤, 록 음악을 가리킨다. 한국 전쟁에서 싸운 미국 병사들에 의해 대한민국에 수입된 아메리칸 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군 기지 근처에 한국의 음악가들은 미국의 록을 배울 기회가 생겼었고 미군들 앞에서 공연을 하며 한국의 록은 발전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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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Rock, 줄여서 K-rock은 대한민국 내에서 로큰롤, 록 음악을 가리킨다. 한국 전쟁에서 싸운 미국 병사들에 의해 대한민국에 수입된 아메리칸 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군 기지 근처에 한국의 음악가들은 미국의 록을 배울 기회가 생겼었고 미군들 앞에서 공연을 하며 한국의 록은 발전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한국의 록밴드들은 1960년대 전후로 그 특색이 발전했다. 미군들이 주로 즐기던 록은 1970년대에 주된 문화로 발전했다. 전두환 정권, 대한민국 제5공화국 이후에 많은 검열 정책이 풀리고 한국에서 록은 메인 장르가 되었다. 오늘날 록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지만 아직도 대중음악의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록 음악은 1950년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에 의해 대한민국에 전해졌다. 전쟁이 1953년에 끝난 이후에도 많은 미군 병사들이 한국에 주둔하며 군사기지에 머물렀고, 현지 음악가와 가수들은 이들 기지에서 공연을 펼쳤다. 1957년 대한민국 최초의 록 기타리스트인 신중현이 미군 기지에서 데뷔하였다. 훗날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게 된 신중현은 한국 록 음악이 미군 기지에서 탄생했다고 회고하였다. 여성 음악 그룹인 김시스터즈(The Kim Sisters)역시 미군 기지 무대에서 데뷔하여 실력과 기량을 갈고닦았으며, 이후 미국에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전개하였다.
1962년 신중현은 대한민국 최초의 록 밴드인 애드포(Add4)를 결성하였다. 이후 키보이스(Key Boys), HE6, 펄 시스터즈(Pearl Sisters), 코끼리 브라더스(K'okkiri Brothers) 등 이른바 ‘그룹 사운드(Group Sound)’ 음악가들이 잇따라 등장하였다. 이 가운데 키보이스는 히트곡 「해변으로 가요(Let's Go to the Beach)」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중반의 그룹 사운드 음악가들은 동시대 미국과 영국 록 음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미군 기지에서만 공연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대중을 대상으로 공연하기 시작하였다. 신중현을 비롯한 한국 록 음악의 1세대 음악가들은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은 군사 독재 체제 아래에 있었으며, 박정희 정권 시기의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청년 문화를 대표하던 히피 문화와 록 음악은 단지 억압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1960년대 서구 국가들과 일본이 록 음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청년 문화 혁명에 휩쓸렸던 것과 달리, 대한민국은 그러한 유행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음악에 대한 검열이 강하게 이루어졌다. 신중현은 마약 관련 혐의로 투옥되었고, 한대수는 자신의 음반 두 장이 정부에 의해 금지되자 스스로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신중현의 투옥은 한국 록 음악의 발전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으나, 1970년대 후반에는 산울림과 같은 새로운 록 음악 그룹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1980년대에 댄스 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기 직전까지 활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이후 중산층 가정에 전축(phonograph)이 보급되고, 해외 음악의 불법 복제 음반이 유통되었으며, 음악 감상실에서 록과 팝 음악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록 음악 팬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였고 한국 록 음악 문화의 기반도 점차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서구의 원조 록 음악을 접할 기회는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정부의 검열은 여전히 엄격하여 음악가들의 창작 활동은 자유롭게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중음악의 취향은 록 음악에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음악계는 헤비 메탈이 주도하였으며, 특히 부활, 시나위, 백두산은 함께 ‘빅 3’로 불렸다. 1970년대 초 록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대학생 또는 성인이 되었고, 이들은 이른바 ‘그룹사운드’로 불린 록 음악의 주요 구성원이 되어 1980년대 록 음악 열풍을 이끌었다.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하드 록 밴드 마그마가 등장해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마그마의 등장으로 하드 록과 헤비 메탈이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부활, 시나위, 백두산 등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들은 당시 ‘한국 록 밴드 트리오’로 불리기도 했다. 대학가요제는 또한 마그마의 뒤를 이을 록 밴드들에게 주목받는 무대가 되었으며, 1987년의 티삼스(T-sams)와 1988년의 무한궤도(Infinite Track)가 이를 대표한다. 1980년대는 록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시기로 평가된다. 록 밴드들은 공중파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방송된 음악 순위 프로그램 상위권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또한 1980년대에 록 음악이 과거보다 더욱 대중화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박정희 정권 시기에 비해 검열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노태우 정부 시기의 민주화와 함께 록 음악은 부흥기를 맞았다. 정보가 보다 자유롭게 국내로 유입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해외 대중음악을 단기간에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일부는 직접 밴드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대표적인 밴드로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있으며, 이들은 인디 레이블 드럭 레코드(Drug Records)의 주도로 형성된 ‘조선 펑크(Chosun Punk)’라는 한국적 혼합 양식을 통해 다양한 새로운 장르를 국내에 소개했다. 드럭 레코드는 클럽 드럭(Club Drug)의 운영도 맡았다. 세계화의 진전과 인터넷 보급 확대에 따라 음악계는 더욱 다양해졌으며, 여러 음악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음악적 영향의 폭이 한층 넓어졌고, 럭스(Rux)와 같은 젊은 밴드들이 등장했으며, 더 긱스(The Geeks)는 스트레이트 엣지 하드코어 펑크(straight edge hardcore punk)를 한국에 소개했다. 스카 펑크(ska-punk) 또한 초기 한국 펑크 신에 큰 영향을 미친 장르였으며, 레이지본(Lazybone)과 비치 밸리(Beach Valley) 등의 밴드를 배출했다. 2006년에는 스카석스(Skasucks)가 결성되어 한국 스카 펑크 운동을 이끌었다.
한국 헤비 메탈의 제2물결은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 크래시(Crash, 1989), 시드(Seed, 1996), 새드 레전드(Sad Legend, 1996)와 같은 메탈 밴드들이 신림동의 메탈리카(Metallica)와 홍대의 드럭(Drug) 같은 공연장 및 소규모 클럽에서 스래시 메탈(Thrash Metal)과 데스 메탈(Death Metal)을 연주하는 한편, 보다 극단적인 하위 장르들도 한국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보급에 힘입어 블랙 메탈(Black Metal)과 그라인드코어(Grindcore) 같은 익스트림 메탈 하위 장르가 칼파(Kalpa, 1996), 오딘(Oathean, 1996), 다크 미러 오브 트래지디(Dark Mirror ov Tragedy, 2003), 망가니(Mangani, 2013) 등의 밴드에 영향을 미쳤다. 일부 밴드들은 해외 동종 장르 밴드들의 음악적 스타일에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밴드들은 한국적 요소를 음악에 적극적으로 접목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한국 전통 창법을 활용한 데스 메탈 밴드 도깨비(도깨비), 전통 한국 악기를 사용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고스트윈드(Gostwind), 그리고 그라인드코어에 한국 사회와 문화적 소재를 결합한 밤섬해적단이 있다. 언더그라운드 공연은 주로 서울의 홍대와 문래동 일대, 부산, 대구 등에서 열린다. 또한 부산국제록페스티벌(2000년~현재)과 동두천 록 페스티벌(1999년~현재)과 같은 음악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언론 및 방송사는 록 음악을 다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국방송공사(KBS)는 2010년 부활의 창립자 김태원의 삶을 바탕으로 한 4부작 음악 드라마 《락 락 락'》(Rock, Rock, Rock)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그의 중학교 시절부터 2003년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다. 2013년에는 아리랑TV가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진행을 맡은 13부작 시리즈 《록 온 코리아》(Rock on Korea)를 제작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전개된 록 음악의 역사를 조명하며, 당시 한국의 클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현대 록 밴드들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2018년에는 미국 출신 재한 교포인 이언 헨더슨(Ian Henderson)과 마이클 오드와이어(Michael O'Dwyer)가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팝 킬러스》(K-Pop Killers)를 제작하였다. 1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촬영된 이 작품은 대한민국의 익스트림 메탈 신(Scene)을 상세하게 조명한다. 영화에는 당시 활동 중이던 익스트림 메탈 밴드의 구성원들을 비롯해 백두산, 마하트마(Mahatma) 등의 밴드 관계자들이 인터뷰에 참여하였다. 또한 GBN 라이브하우스(GBN Live House)의 이유잉(Lee Yuying), 썬더호스 태번(Thunderhorse Tavern)의 커크 권(Kirk Kwon), 3Thumbs의 제이 리(Jay Lee) 등 라이브 음악 공연장 운영자들의 인터뷰도 수록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대부분의 음악 홍보가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며, 주류 매체의 관심은 제한적이고 음반은 주로 다운로드 형태로 유통된다.” 공연 기획자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활용해 팬들에게 예정된 공연 정보를 알리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록 하위문화(subculture)를 다루고 국내 밴드들의 음반을 평가하는 팬진(fanzine)을 제작하기도 했다. 외국인과 음악 신에 새로 유입된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에 힘입어, 음반은 신 내부의 구성원들에 의해 녹음·제작되었으며, 이후 언더그라운드 밴드 출신 인물들이 설립한 레이블을 통해 배급되었다. 다크 미러 오브 트래지디(Dark Mirror ov Tragedy)와 같은 일부 밴드는 해외 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여 해당 레이블의 지원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다양한 록 음악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출처: K-rock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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