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비지스
Bee Gees
비지스(Bee Gees)는 1958년 배리, 로빈, 모리스 깁 형제가 결성한 음악 그룹이다. 이들 트리오는 특히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사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70년대 중후반에 디스코로 전향하여 대표적인 디스코 그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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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스(Bee Gees)는 1958년 배리, 로빈, 모리스 깁 형제가 결성한 음악 그룹이다. 이들 트리오는 특히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사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70년대 중후반에 디스코로 전향하여 대표적인 디스코 그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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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스(Bee Gees)는 1958년 배리, 로빈, 모리스 깁 형제가 결성한 음악 그룹이다. 이들 트리오는 특히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사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70년대 중후반에 디스코로 전향하여 대표적인 디스코 그룹이 되었다.
비지스는 독특한 삼부 성조의 합창으로 노래하였다. 로빈의 선명한 비브라토는 초기 히트곡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고, 배리의 리듬 앤 블루스 풍의 가성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의 노래에서 비지스만의 독창적 소리를 대표하였다. 비지스는 각자가 스스로 작곡하고 연주하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가의 여러 히트곡을 작곡하고 제작에 참여하면서 대중 음악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언론은 종종 비지스를 디스코의 제왕, 영국 최초의 하모니 패밀리, 댄스 음악의 제왕 등으로 불렀다.
배리, 로빈, 모리스 세 깁 형제는 맨 섬에서 태어나 1950년대 후반까지 영국 맨체스터의 콜턴에서 살았다. 형제는 1955년 스키플과 로큰롤을 연주하는 래틀스네이크스를 결성하여 활동하다 오스트레일리아 퀸즈랜드 주의 모튼 베이 지역에 있는 레드클리프로 이사하였으며, 나중에는 크립 섬으로 이주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비지스로 그룹 이름을 바꾼 형제는 첫 히트곡을 낸 뒤 1967년 1월 음반 제작자 로버트 스티그우드의 홍보가 시작되면서 영국으로 돌아갔다.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주제곡 Saturday Night Fever는 비지스의 경력에서 전환점이 되었으며, 영화와 사운드트랙 모두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비지스는 이 노래로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5 개 부문에서 그래미상을 수상하였다.
비지스의 음반 판매량은 전 세계에서 1억 2천만 장 이상으로 집계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2억 장 이상으로 추정되어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음악가 가운데 하나이다. 비지스는 대중 음악에서 가장 성공한 트리오로 평가된다. 199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명예의 전당에 있는 비지스 소개문에는 "비지스 보다 많은 음반을 판 음악가는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마이클 잭슨, 가스 브룩스, 폴 매카트니 정도 뿐이다"라고 쓰여있다.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기록한 히트곡은 9 개로 역대 빌보드 차트 순위에서 비틀즈와 슈프림스에 이은 3 위를 차지하였다. 2002년 삼형제 전원이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 서훈 명단에 올랐다.
히트곡으로는 〈How Deep Is Your Love〉, 〈To Love Somebody〉, 〈Massachusetts〉, 〈Holiday〉, 〈You Win Again〉, 〈Jive Talkin'〉, 〈Stayin' Alive〉, 〈Tragedy〉, 〈Night Fever〉, 〈You Should Be Dancing〉, 〈Alone〉 등이 있다.
2003년 1월 모리스가 53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배리와 로빈은 45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그룹을 해산하였다. 2009년 배리와 로빈이 다시 비지스의 이름으로 활동하기로 하였으나 로빈의 건강 악화로 활동은 원활하지 못하였고 2012년 5월 로빈이 62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배리만이 유일한 생존 맴버가 되었다.
1940년대 후반 맨 섬에서 태어난 깁 형제는 1955년 아버지 휴 깁의 고향인 맨체스터 콜튼컴하디로 이사하였다. 형제는 그곳에서 배리가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고 로빈과 모리스가 보컬을, 형제의 친구인 폴 프로스트가 드럼을, 케니 호록스가 차상자를 공명통으로 사용한 워시텁 베이스를 맡아 스키플/로큰롤을 연주하는 레틀스네이크스를 결성하였고 1957년 12월 노래를 시작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의 , 소년들은 화합하여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지역 영화관에서 다른 아이들이 하던 것처럼 준비한 음반을 틀고 립싱크를 하려고 하였으나 극장에 가는 도중에 레코드 디스크가 깨지는 바람에 라이브로 노래를 해야 했다고 한다. 아직은 아마추어였던 이들의 라이브 공연이 청중의 호응을 얻으면서 형제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1958년 5월 프로스트와 호록스가 팀을 떠나 레틀스네이크스는 해체되었고 깁 형제는 "위 조니 헤이스 앤드 블루 캣츠"를 결성하였다.
1958년 8월, 누이 레슬리와 그해 3월에 태어난 앤디를 포함한 가족 전체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여 퀸즈랜드 주의 레드클리프에 자리잡았다. 형제는 용돈 벌이를 위해 공연을 시작하였고, 1960년 레드클리프의 스피드웨이 경기장에서 막간을 이용하여 공연하였다. 이 때 형제들의 그룹 이름을 비지스(Bee Gees)로 정하였다. 훗날 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비지스를 깁 형제(Brothers Gibb)의 약자로 생각했지만 실제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스피드웨이 경주는 비포장 트렉 위를 달리는 자동차 경주였다. 이 경주의 홍보 담당이자 운전자이기도 하였던 빌 구드(Bill Goode)는 깁 형제를 브리즈번 라디오 진행자겸 디스크 자키였던 빌 게이츠에게 소개하였다. 형제는 경기 막간에 트럭 위에 올라 트랙을 돌며 공연하였고, 군중들은 그들을 위해 트랙 위로 돈을 던졌다. 이들의 공연이 좋은 호응을 얻자 게이츠는 깁 형제들의 맏이 배리의 B와 발 구드의 G를 따서 BGs라고 그룹을 소개하였고 이것이 비지스(Bee Gees)의 출발이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비지스는 퀸즈랜드 해안의 리조트를 돌며 활동하였다. 1962년 비지스는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처비 체커의 콘서트에 초대 가수로 참여할 수 있었다. 1963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한 록 가수였던 콜 조이는 배리의 작곡 실력에 관심을 갖고 비지스가 페스티벌 레코즈의 자회사 린던 레코즈와 계약을 맺도록 주선해 주었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깁 가족은 시드니 마루브러의 버너롱 가 171번지에 살았다. 훗날 로빈 깁은 이 때의 경험을 담은 노래 "Sydney"를 녹음했고 그의 사후에 발표된 앨범 《50 St. Catherine's Drive》 에 담겼다. 당시 깁 일가가 살던 집은 2016년 철거되었다.
1965년 발표한 "Wine and Women"은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고 이에 힘입어 첫 LP 앨범 《The Bee Gees Sing and Play 14 Barry Gibb Songs》을 제작하였으나, 1966년 린던 레코즈는 비즈스가 상업적 성공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자신들의 가수 목록에서 제외하려고 하였다. 이때 형제는 새로운 독립 레이블인 스핀 레코즈의 A&R 매니저로 임명된 미국 출신 프로듀서 냇 키프너를 만났다. 키프너는 비지스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이들을 스핀 레코즈로 이적시켰고 대신 페스티벌 레코즈에게 비지스 음반의 오스트레일리아 배포 권한을 부여하기로 하였다. 키프너는 시드니 교외에서 소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던 오시 바이른을 비지스와 연결시켰고 스핀 레코즈 이적 후 비지스의 초기 음반은 대부분 여기서 녹음되었다. 1966년 중반 무렵 바이른은 비지스에게 자신의 스튜디오를 언제든 무제한 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비지스는 이러한 도움을 통해 스스로의 녹음 기술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이 기간에 비지스의 첫 대규모 히트작 "Spicks and Specks"이 녹음되었다. 비지스는 자신들의 곡 뿐만 아니라 비틀즈와 같은 세계적 그룹의 노래를 커버하거나 당시 십대였던 냇 키프너의 아들 스티브 키프너가 이끄는 비트 밴드와 협주 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삶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깁 형제는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1967년 1월 4일 오시 바이른과 함께 배에 올랐다. 1967년 1월 바다에 있는 동안 형제들은 "Spicks and Specks"이 올해 최고의 싱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깁 형제의 아버지 휴 깁은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비틀즈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영국 음반 판매사인 NEMS의 이사로 있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비지스의 녹음 데모를 보냈다. 엡스타인은 이것을 최근 NEMS에 합류한 로버트 스티그우드에게 전달하였다. 1967년 2월 스티그우드는 비지스의 오디션을 보고 음반 계약을 결정하였다. 영국의 판권은 폴리도르 레코드가 가졌고, 미국은 앳코 레코드 였으며, 계약기간은 5년이었다. 첫 국제 앨범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스티그우드는 홍보를 시작하였다.
스티그우드는 의도적으로 비틀즈와 비교하며 비지스를 "1967년의 가장 중요한 새로운 음악 천재"라고 선전하였다. 첫 국제 앨범을 제작하면서 비지스는 콜린 피터슨과 빈스 멜러니를 새 맴버로 받아들였다. 영국에서 처음 발매된 싱글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제작한 "Spicks and Specks"이었고, 두번 째 싱글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이 스티그우드의 지휘아래 영국에서 녹음되었다. 스티그우드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흰색 빈 레이블에 노래 제목만 나열된 음반을 라디오 방송국에 배포하였다. 음반을 받아든 일부 디스크 자키들은 이것을 비틀즈의 새 싱글로 착각하였고 로테이션 목록에 집중적으로 편성하였다. 이 전략으로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는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상위 20위 안에 들었다.
훗날 비틀즈의 맴버였던 존 레논은 비지스가 초기에 비틀즈를 홍보 전략에 이용한 것에 대해 "70년대에 비지스를 보며 소리지르던 아이들에게 그냥 그건 비틀즈가 다시 만든 것이라 말해도 되요. 비지스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죠. 그들은 정말, 잘했어요. 그것 말고 뭐가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한 번 인기 가도에 올라서자 다음 싱글인 "To Love Somebody"의 인기 몰이에는 속임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 곡은 원래 오티스 레딩을 위해 작곡되었으나 배리가 부르게 되었고 이후 많은 음악가들에게 솔 바라드의 기준이 되었다. 미국에서 발매된 또 다른 싱글 "Holiday"는 최고 16위를 기록하였다.
비지스는 이미 앨범을 발매한 적이 있었지만 국제적 활동을 하며 만든 앨범을 첫 앨범이라는 의미로 《Bee Gees 1st》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미국 7위, 영국 8위를 기록하였다. 앨범의 편곡은 빌 셰퍼드가 하였고, 런던의 노섬벌랜드 가에 있는 플레이하우스 시에터에서 빌 베브가 프로듀서를 맡아 첫번째 BBC 세션을 녹음하였다. 해당 세션은 《BBC Sessions: 1967–1973》(2008년)에 포함되어 있다. BBC 세션은 영국의 방송국 BBC가 자신들의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 녹음한 버전으로 비지스를 비롯하여 레드 제플린, 더 후와 같은 음악 그룹들도 이러한 버전을 따로 제작한 바 있다. 《Bee Gees 1st》은 뉴욕에서 "영국의 최신 유행 가요"로 소개되었다. 이 해에 영국의 텔레비전 쇼 《톱 오브 더 팝스》에 출연하였다. 비지스의 첫 텔레비전 출연이었다.
1967년 후반 비지스는 두 번째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하였다. 1967년 12월 21일 리버풀 대성당에서 "How On Earth?"라는 크리스마스 특집 텔레비전이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비지스는 이 날을 위해 특별히 작곡한 "Thank You For Christmas"를 공연하였고, 이어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저 들 밖에 한 밤 중에", "Mary's Boy Child"와 같은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다. 생방송의 노래는 모두 사전 녹음 된 것으로 생방송 중에는 립싱크를 하였다. 이 공연의 녹음은 2008년 재발매되었다.
1968년 1월 미국 투어가 시작되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비틀즈의 방문 때 있었던 소동을 예상하고 특별 보안 조치를 내렸다. 2월에 발표한 앨범 《Horizontal》이 다시 인기를 누리며 수록곡 "Massachusetts"가 처음으로 영국 싱글 1위 (미국 11위)를 기록하였고 "World"는 영국 싱글 7위에 올랐다. 두번째 국제 앨범이었던 《Horizontal》은 이전보다 더 "록"의 요소가 강조되었지만 "And the Sun Will Shine", "Really and Sincerely"와 같은 발라드도 두드러졌다. 앨범 판매는 미국 12위, 영국 16위를 기록하였다.
《Horizontal》의 출시와 함께 비지스는 코펜하겐 콘서트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투어도 시작하였다. 비슷한 시기 비지스는 영화 《원더월》의 사운드트랙 제작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하였다고 한다. 1968년 2월 27일, 비지스는 17
출처: 비지스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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