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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history of Japan
일본의 역사(日本史, 일본어: 日本の歴史 니혼노레키시[*])는 일본과 일본인이 현재까지 살아온 모든 역사적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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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日本史, 일본어: 日本の歴史 니혼노레키시[*])는 일본과 일본인이 현재까지 살아온 모든 역사적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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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日本史, 일본어: 日本の歴史 니혼노레키시[*])는 일본과 일본인이 현재까지 살아온 모든 역사적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일본의 역사(日本史, 일본어: 日本の歴史 니혼노레키시[*])는 일본과 일본인이 현재까지 살아온 모든 역사적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일본 역사의 시대 구분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정설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다. 다만 (원시-)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라고 하는 시대 구분법이 역사 연구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경우에도 각 시대를 구체적으로 나누는 방법은 학자마다 서로 다르다.
고대 시기의 경우 고대 국가의 형성 시기를 둘러싸고 견해가 분분한데, 3세기설, 5세기설, 7세기설이 있어 일본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칠오삼논쟁(七五三論争)이라 불린다. 중세의 경우 중세를 걸쳐 존재했던 사회 및 경제체제였던 장원공령제가 시대의 지표로 여겨지며, 11세기 후반~12세기의 장원공령제 형성기부터 시작해 장원공령제가 소멸한 16세기 후반의 태합검지로 끝난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근세는 태합검지로부터 메이지 유신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근대의 시작은 막부 말기~메이지 유신기로 여겨지지만, 18세기 전반의 가내수공업의 발흥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근대와 현대의 구분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항복으로 본다.
그러나 위와 같은 시대구분은 고전적인 역사학에 매여있는 것으로 보고, 역사를 구분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행하는 것로서 파악하는 '시대 이행론'을 제창하는 연구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시대 구분은 주로 정치적 중심지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명확한 구분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역사 연구상의 시대 구분으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문헌 사료가 없고 고고학적 자료만 전해지는 시기는 고고학상의 시대 구분에 따라 구석기 시대·조몬 시대로 구분한다. 문헌 사료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시대 이후에는 정치 중심지의 소재지에 따라 야요이 시대 후기~고훈 시대(오사카시)·아스카 시대(아스카촌)·나라 시대(나라시)·헤이안 시대(교토시)·가마쿠라 시대(가마쿠라시)·무로마치 시대(교토시)·아즈치모모야마 시대(오미하치만시·교토시 후시미구)·에도 시대(도쿄 23구, 구 도쿄 시)로 구분한다. 보다 세부적인 구분이 필요한 경우 야요이 시대 후기부터 아스카 시대 전기까지를 야마토 시대, 가마쿠라 시대 후기를 겐무 신정, 무로마치 시대 전기를 난보쿠초 시대, 무로마치 시대 후기를 센고쿠 시대, 에도 시대 후기를 막말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 중 난보쿠초 시대와 센고쿠 시대는 중국사의 시대 구분에서 차용한 것이다. 에도 시대 다음은 천황의 재위기간(1세 일원제)에 따라 메이지 시대(메이지 천황)·다이쇼 시대(다이쇼 천황)·쇼와 시대(쇼와 천황)·헤이세이 시대(아키히토)·레이와 시대(나루히토)로 부른다. 이들 중 메이지 유신부터 1947년(쇼와 22년) 5월 2일까지의 시대(메이지 시대·다이쇼 시대·덴젠 쇼와 시대)를 헌법을 근거로 '일본 제국' 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40만년 전이다. 플라이스토세 전기에서 중기에 걸쳐서 빙하기와 간빙기가 2번 반복하고 여기에 동반하여 간빙기에는 해수면이 상승하고 빙하기에는 하강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는 일본 열도와 동아시아대륙의 지세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약 2만년 전까지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인류의 왕래가 이루어졌던 일본 열도는 플라이스토세 후기(12만6천년전~1만년전)가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량의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약 1만 2천년 전에 대한해협(현해탄)과 쓰가루 해협 등 일본을 둘러싼 제해협이 형성되고 최종적으로는 홀로세 초인 1만년 전쯤 모든 해협이 확정되어 유라시아 대륙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어서 일본에서는 조몬 문화(기원전 1만 3천 년 경부터 기원전 300년까지)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신석기문화로 이행했다. 그 뒤에도 해진 현상(海進現像)이 계속되어, 일본 열도는 현재의 혼슈, 시코쿠, 규슈, 홋카이도의 네 개의 큰 섬과 수많은 작은 섬으로 분리되었다.몽골계, 중국계 인종과 시베리아 지역을 통해 왔다고 추정되는 아이누족, 남방 폴리네시아 지역에서 온 민족들이 일본 열도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일본인의 조상이 되었다. 이 사람들을 다른 지역에서 건너 온 사람이라 하여 도래인(渡來人)이라고 한다.
기원전 10세기경부터 기원후 3세기경까지는 야요이시대라고 불린다.시대 구분 명칭은 이 시기에 특징적으로 볼 수 있었던 야요이 토기에서 유래하였다.야요이 시대의 시작기에 대륙으로부터 하플로그룹 O1b2 (Y-DNA)에 속하는 야요이인이 도달했다. 벼 경작이 보급되면서 청동기와 철기 등도 가져왔다. 일본어도 야요이인에 의해 한반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도래인들은 기원전 3세기 경부터 일본 열도 각지, 특히 유래지에서 가까운 규슈 지역에 씨족 단위의 촌락(백제,신라,가야의 유흥을 위한 별장)을 형성하고 중국을 비롯한 대륙 지역의 문화를 일본으로 전래시켰다. 야요이 시대에는 계급이 생겨 일본 열도에 100여개의 나라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야요이 문화가 일본 열도에 전래되던 시기에 규슈에서 시작된 벼농사 또한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주부 지방에 보급되었고, 1세기 전까지 간토와 도호쿠 남부에 전파되었다. 최종적으로 3세기까지 도호쿠 북부까지 벼농사가 전파됨으로써 홋카이도를 제외한 고대 일본은 3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농경 생활이 행해지기 시작했다.
농경 사회의 성립에 따라 지역 집단이 형성되었다. 농경 사회의 발전과 함께 지역 집단은 대형화되어 갔고, 그 중심부에는 환호취락이 형성되었다. 당시 많이 축조된 분구묘는 대형 지역 집단의 수장묘로 여겨져 신분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일본 열도는 중국으로부터 왜(倭) 또는 왜국으로 불렸다. 대형 지역 집단 중에는 중국 왕조와 통교하는 것도 있어 중국으로부터 '나라'(國)로 칭해졌다. 기원전후에는 100개 안팎의 나라가 중국과 통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노국왕은 후한에 사절을 보내 인장을 받았다. 대형 지역 집단은 점차 정치적 결합을 강화하여 왜국 연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연합체를 2세기 초경 형성하였다. 그 맹주는 왜국왕이라 칭하는데, 초기 왜국왕으로 스이쇼가 있다. 한동안 왜국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으나 2세기 후반에 왜국대란이라 불리는 내란이 생겼고, 이후 야마타이국의 히미코가 왜국왕이 되었다. 히미코는 위나라와의 통교를 통해 왜국연합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이 시기 왜(일본)의 상황은 중국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전까지는 《일본서기》의 역대 천황 재위 연수를 바탕으로 역산하여 기원전 660년에 일본이 진무 천황이 즉위했다고 보았지만 전후 역사학에서는 일반적이지 않다.
3세기 중후반부터 7세기경까지는 고훈 시대라고 한다. 과거에는 이 시대와 아스카 시대를 묶어 야마토 시대라 칭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고훈 시대라고 부른다.
3세기 이후 도래인의 유입은 극히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3세기 중엽 긴키 지방에 출현한 전방후원분을 비롯한 묘제가 급격한 속도로 확산된다. 이는 기나이(야마토)·북부규슈(쓰쿠시국)·기타칸토(케노)·산요(기비)·산인(이즈모)에 병립하고 있던 지역정치집단이 규합하여 야마토 정권을 형성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에 백제를 거쳐 중국에서 한자도 수입하였다. 당시의 체제를 묘제의 이름을 따 전방후원분 체제라고도 한다. 다만 이는 단일국가보다도 소국의 연합으로 간주된다. 이 왕권이 후에 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고 다시 야마토 정권이라 칭해질 정도로 발전하는데, '조정'이라고 할만한 것이 등장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계속된다.
다시 4세기 말에서 6세기 중기까지 도래인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고구려가 4세기 후반부터 남진 정책으로 한반도 남부의 백제와 가야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면서 일본 열도로 피난 오는 사람들이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일본 왕실(가야왕족의 친척)은 백제를 비롯하여 백제 등지에서 피난 오는 도래 기술자로부터 유용한 대륙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위해 백제가 고구려에 대적할 수 있도록 전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5세기에 들어서자 야마토 정권은 중국 남조에게 작위를 받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중국 사서에 이름이 등장하는 이 시기 야마토 왕권의 수장을 왜5왕이라고 한다. 왜5왕 중 마지막 왜왕인 '무'에 비정되는 인물에 대한 일본 학계의 정설은 유랴쿠 천황(470년경 치세)이다. 이때부터 대왕(오오카미) 혹은 치천하대왕으로 칭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전방후원분은 규모가 거대해지고 있어 강력한 왕권의 증거로 여겨진다.
왜5왕 이후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에 걸쳐 야마토 정권은 왜국대란이라고 하는 혼란기를 겪는다. 그러나 호쿠리쿠·오미에 근거지를 둔 방계 왕족에서 즉위한 게이타이 천황의 등장과 통치로 야마토 정권이 강화되었고, 이후에는 현 천황으로 이어지는 체제가 확립되었다. 덧붙여 게이타이 천황기에는 기타큐슈에서 이와이의 난 등이 일어났지만, 야마토 왕권과 기타큐슈 호족 이와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같은 시기에 오호츠크해 연안 지역에서는 오호츠크 문화가 성립되어 약 13세기까지 지속되었다.
6세기 말에는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되어 7세기 전반의 아스카 시대에 일본 최초의 불교문화가 생겨났다. 특히 7세기에 이르러 도래인 계열 씨족 중 대표적인 씨족이었던 소가씨(蘇我氏)는 불교를 앞세워 모노노베씨 등의 경쟁 씨족을 제압하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어 5대에 걸쳐 일본 왕실의 외척이 되어 정치적으로 실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이처럼 소가 씨를 비롯한 도래인 씨족이 일본 황실을 위협하자 나카노오에 황태자는 645년 정변으로 소가 씨를 멸문하였으며, 수도를 아스카에서 나니와(難波)로 천도하고 이듬해 다이카 개신에 관한 조칙을 공포하였다. 이후 임신(壬申)의 난(일본어: 壬申の乱, じんしんのらん, 672년)을 거쳐, 681년 덴무 천황이 최초로 율령 반포를 준비한 이래 8세기에 접어들어서 당나라의 율령을 기반으로 한 일본식 율령의 본격적인 편찬이 시작되고 701년 (다이호 원년)에 다이호 율령을 반포하여 첫 결실을 거둔다.
이리하여 천황을 정치적·종교적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율령국가(律令國家)가 형성되었다. 다이호 율령은 이후에 후지와라노 후히토 등에 의해 누차 손질되어오며 10세기까지 일본에서 최고 법전의 지위를 유지한다.
8~9세기의 나라 시대에서 헤이안 시대 초기의 문화는 대륙 문화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으나 헤이안 초기에는 여러 가지 가나가 만들어졌고 정치적으로도 율령국가가 변질하여 섭관정치, 이어 인세이가 장원(莊園)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한편 이전부터 율령 반포에 참여하는 등 일본 왕실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후지와라씨는 9세기 초에 이르러 소가 씨처럼 황실의 외척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고 전횡하기 시작했다. 비록 간무(桓武)와 사가(嵯峨) 두 천황이 귀족을 누르고 절대 왕권을 행사한 적이 있었으나 사가 천황 이후에 후지와라씨는 본격적으로 정치적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858년, 후지와라노 요시후사(藤原良房)는 조카이자 사위인 몬토쿠 천황이 사망하자 어린 외손자인 세이와 천황을 천황으로 즉위시키고 자신은 섭정(일본어: 摂政 셋쇼[*])이 되어 정권을 독점하였다. 요시후사 이후에도 후지와라노 모토쓰네가 관백(일본어: 関白, かんぱく 간파쿠[*])이 되어 다시 권력을 잡았다. 이처럼 후지와라씨는 천황이 어리면 섭정직을, 천황이 성인이 되면 관백직을 번갈아가며 권력을 독점하였다. 이를 섭관정치라 하며, 11세기 후반 시라카와 천황의 인세이가 시작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복마어주자
11세기 이후 일본은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로 변모하였으나 지방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정도로 막강한 게 아니었으므로 지방에서 주민 스스로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만 했다. 헤이안 시대 후반, 지방에서는 호족과 부농들이 자신들이 개간한 농지를 사유화하고 이를 지키려고 스스로 무장했는데 이게 발전하여 무사(일본어: 武士, ぶし 부시[*]) 계층이 되었다. 처음에는 지방 호족들을 위해 움직이던 무사들은 점차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 황실에서 탈락해 지방으로 내려온 방계 후손을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한편 무사 성장과 더불어 11세기 후반 후지와라씨와 무관한 고산조 천황이 대대적으로 장원을 정리하고, 1086년 시라
출처: 일본의 역사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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