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플레이밍 립스
The Flaming Lips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는 미국 록 밴드로 1983년 오클라호마의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결성되었다. 이들은 레스트리스라는 인디 레이블을 통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걸쳐 몇 장의 앨범과 EP를 발매했다.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냈던 첫 음반이 《Hit to Death in the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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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aming Lips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는 미국 록 밴드로 1983년 오클라호마의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결성되었다. 이들은 레스트리스라는 인디 레이블을 통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걸쳐 몇 장의 앨범과 EP를 발매했다.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냈던 첫 음반이 《Hit to Death in the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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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는 미국 록 밴드로 1983년 오클라호마의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결성되었다. 이들은 레스트리스라는 인디 레이블을 통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걸쳐 몇 장의 앨범과 EP를 발매했다.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는 미국 록 밴드로 1983년 오클라호마의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결성되었다. 이들은 레스트리스라는 인디 레이블을 통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걸쳐 몇 장의 앨범과 EP를 발매했다.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냈던 첫 음반이 《Hit to Death in the Future Head》(1992년)였고 이후 발매된 《The Soft Bulletin》(1999년)은 NME 매거진의 "이 해의 앨범"에 선정되었고 이어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2002년)이 나왔다. 2007년 2월, 이들은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인터내셔널 액트"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최우수 록 연주"를 비롯하여 그래미 어워드를 세 번 수상했으며 2002년 Q 매거진의 "죽기 전에 봐야할 밴드 50"에 선정되었다.
플레이밍 립스는 1983년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웨인 코인(기타)과 그 형제인 마크(보컬), 그리고 마이클 이빈스(베이스)와 데이브 코츠카(드럼)가 결성했고 오클라호마 시티의 블루 노트 라운지에서 첫 공연을 했다. 드러머 코츠카를 섭외한 이후 1984년 리차드 잉글리쉬가 밴드에 합류했다. 같은 해 이들은 《The Flaming Lips》라는 EP를 녹음했는데 마크 코인이 리드 보컬로 참여한 유일한 음반이었다.
그의 형제가 떠난 이후 웨인이 보컬을 맡게 되면서 1986년 첫 번째 정규 앨범 《Hear It Is》를 핑크 더스트 레코드(에니그마 레코드의 사이키델리 록 레이블)를 통해 발매했다. 플레이밍 립스는 이 멤버들로 두 개의 앨범 《Oh My Gawd!!!》(1987년)와《Telepathic Surgery》(1989년)를 만들었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원래 30분 짜리 사운드 콜라주로 만들 계획이었다.
1989년 잉글리쉬 대신 드러머가 네이선 로버츠로 교체되었고 기타리스트로 조나단 도나휴(얼터너티브 록 밴드인 머큐리 레브의 멤버이기도 하다)가 합류했다. 제작자 데이브 프리드만과 처음으로 함께 만든 앨범 《Priest Driven Ambulance》는 프레도니아 뉴욕 주립대학에서 시간당 5불로 총 만불의 예산을 가지고 녹음했다. 이 앨범은 플레이밍 립스의 독특한 사운드를 더욱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테잎 루프나 각종 이펙트들의 사용이 더욱 많아졌다. 이 시기 코인은 닐 영과도 같이 더 높고 껄끄러운 목소리로 노래 스타일이 바뀌었는데 이는 《Telepathic Surgery'》 앨범의 <Chrome Plated Suicide>란 곡에서 처음 시도되었다가 이후 그의 보컬 스타일로 굳어지게 된다.
1990년 이들은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의 관심을 받게 되고 마침 레이블에서 밴드를 살펴보러 나왔는데 플레이밍 립스가 불꽃놀이를 하다가 공연장(오클라호마 노만의 아메리칸 리전 홀)을 거의 불태워 버릴 뻔한 것을 보자 마자 바로 계약한다.
밴드의 이름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해 몇 가지 아이디어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1953년 영화 <제랄딘>에서 코메디언인 스탄 프레버그가 불렀던 "플레이밍 립스"라는 노래가 그 중 하나였다.
1991년 이들은 대형 레이블과의 첫 데뷔 앨범인 《Hit to Death in the Future Head》 녹음을 시작했다. 여기에 마이클 카멘이 작곡한 영화 <브라질>의 사운드트랙 중 <You Have to Be Joking (Autopsy of the Devil's Brain)>의 일부를 샘플로 사용했는데 그 허가를 받는 과정이 길어지면서 앨범 발매는 거의 1년 간이나 미뤄졌다. 이 앨범 녹음 이후 도나휴는 밴드를 떠나 머큐리 레브 활동에 집중하게 되었고 로버츠도 음악적 차이를 이유로 탈퇴했다. 이들은 로날드 존스와 스티븐 드로즈드로 교체되었다.
1993년 플레이밍 립스는 앨범 《Transmissions from the Satellite Heart》를 발매한다. 이 앨범은 《Priest Driven Ambulance》이후 데이브 프리드만이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과 싱글 <She Don't Use Jelly>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들은 네 개의 인기있는 TV 시리즈에 출연하게 된다. <베버리 힐즈 90210>와 <데이빗 레터맨의 레잇 쇼>, <참드>, <비비스 앤 벗헤드>가 그것들이다. 앨범의 성공을 통해 이들은 긴 투어를 시작하며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캔들박스의 오프닝으로도 참여하게 된다.
《Clouds Taste Metallic》앨범은 1995년 말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등장했지만 이전 앨범만큼의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3년에 걸친 이전 투어와 새 앨범을 위한 1년간의 투어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 되어 로날드 존스는 1996년 말에 밴드를 떠난다. 그는 극심한 광장공포증이 이유라고 했지만 다큐멘터리 <Fearless Freaks>에 의하면 드로즈드의 마약 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4년 9월 플레이밍 립스는 전 멤버인 로날드 존스와 그가 플레이밍 립스의 사운드에 기여한 바를 기리며 퍼스트 애비뉴에서 《Transmissions from the Satellite Heart》라이브 공연을 열었고 2015년 2월 같은 장소에서 《Clouds Taste Metallic》 라이브를 했다. 12월에는 20주년을 맞아 《Heady Nuggs: 20 Years After Clouds Taste Metallic 1994–1997》라는 박스 세트를 출시했다.
존스가 탈퇴하고 스탠다드 "록" 음악에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게 된 남은 세 명은 방향을 재설정하면서 실험적인 4장짜리 앨범 《Zaireeka》를 만들었는데 네 장의 시디를 네 대의 플레이어에 동시에 틀어서 감상하도록 제작된 것이었다. 기존의 일반 악기들에 더하여 그들이 "발견한" 사운드들을 (구체 음악 같은) 사용했는데 종종 스튜디오에서 전자적으로 심한 조작을 가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이들은 "주자장 실험"과 나중에 가서는 "붐박스 실험"을 여러 차례 행했다. 주차장 실험에서는 플레이밍 립스가 만든 카셋트 테이프를 40명의 자원자들에게나눠주고 주차장에서 자신들의 자동차 스테레오에서 동시에 틀도록 했다. 붐박스 실험은 40명의 자원자들이 붐박스 스타일의 카세트 플레이어에 역시 플레이밍 립스가 만든 음악을 트는 것인데 웨인 코인의 "지휘"에 따라 볼륨, 속도, 음색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불운이 겹쳤다. (1999년의 곡 <The Spiderbite Song>에 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드로즈드는 팔을 거의 절단해야 할 뻔 했는데 거미에게 물려서였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헤로인 복용으로 인한 종기 때문이었다. 이빈스는 다른 차에서 떨어져 날아온 바퀴가 앞 유리창에 박히면서 자동차 안에 몇 시간 갇혀 있어야 했고, 코인의 아버지는 오랜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
이들이 추구했던 실험적 노력들이 평단의 주목을 받기는 했으나 주류로 진출하게 된 것은 1999년 발매한 《The Soft Bulletin》앨범을 통해서였다.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에 신세사이저 스트링, 교묘하게 늘어놓은 최면에 걸린 듯한 비트위에 터지는 심벌, 그리고 전 앨범들보다 더 기이하면서도 철학적인 가사가 담긴 이 앰범은 곧바로 언더그라운드로부터 솟아 올라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까지도 당대 최고의 앨범들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하모니와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인해 많은 평론가들이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앨범과 비교하기도 하는《The Soft Bulletin》은 또한 신세사이저와 드럼 머신, 사운드 이펙트를 비롯한 스튜디오의 여러 조작들을 대거 사용했다. 앨범 발매 이후 코인은 "만약 누가 내게 어떤 악기를 연주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스튜디오라고 답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렇게 복잡하게 짜여진 앨범을 라이브로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중 아무래도 뮤지션들을 더 섭외한다는 것은 너무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 미리 녹음된 반주를 사용하면서 그냥 셋이서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드로즈드는 드럼 대신에 키보드와 기타를 주로 연주하기로 했다. 밴드의 이전 곡들은 드로즈드가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틀기로 했고 나머지 곡들을 위해 드럼과 퍼커션에 킬프 스컬락을 영입했다. 드로즈드가 기타와 키보드 베이스(그가 베이스를 연주할 때 이빈은 키보드를 연주한다), 드럼, 및 간간히 보컬을 했고, 드로즈드가 노래할 때면 코인이 기타나 키보드를 연주하는 식이다.
《The Soft Bulletin》을 라이브에서도 똑같이 연주해 내기 위해 이들은 "헤드폰 콘서트"라는 것을 고안해 냈다. FM 송신기를 공연장에 설치한 다음 공연과 동시에 방송을 내보냈는데 관객들에게는 워크맨 크기의 수신기와 헤드폰이 무료로 지급되었다. 이론적으로 공연장의 파워풀한 사운드와 함께 관객들이 더 음질이 뛰어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방식은 1999년 3월 텍사스의 달라스와 어스틴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의 공연에서 처음 시도되었고 이후 투어에서도 사용되었다. 투어에는 일본 밴드인 코르넬리우스를 비롯하여 세바도, 로빈 히치콕, 소닉 붐의 E.A.R., IQU 등이 참여했다.
3년 후인 2002년 여름 플레이밍 립스는 밴드 케이크, 모데스트 마우스와 함께 언리미티드 선샤인 투어를 벌였다. 그리고 정규 앨범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를 출시하여 평단의 극찬을 받게 된다. 게스트로 요시미 피-위가 참여하였고 전작인 《The Soft Bulletin》에 비해 전자 악기들과 컴퓨터 사용이 증가한 이 앨범을 통해 플레이밍 립스는 거의 20년 간의 밴드 활동 중 처음으로 평단에서와 상업적인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 곡인 <Approaching Pavonis Mons by Balloon (Utopia Planitia)>를 통해 2003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연주상"을 수상했고 앨범은 2006년 4월 10일 골드를 달성했다. 2007년 3월 플레이밍 립스는 각본가인 아론 소르킨과 함께 앨범을 기반으로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12년 1월, 피치포크 TV는 《The Soft Bulletin》 앨범에 관한 45분 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여기에는 다수의 희귀한 사진 및 비디오와 함께 멤버들과 제작자 데이브 프리드만, 매니저 스콧 북커의 인터뷰 등이 들어 있었다. 같은 해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는 수년 간의 제작 끝에 뮤지컬로 탄생했다.
《The Soft Bulletin》과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는 DVD-오디오로 발매되었다.
《Yoshimi》와 《The Soft Bulletin》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이밍 립스는 전작들과 연관된 두 장의 EP를 출시했는데 《Yoshimi》 앨범에 있던 <Fight Test>와 <Ego Tripping at the Gates of Hell>의 리믹스 버젼이 담겼다. 또한 씨버리 코퍼레이션의 앨범 《The Cosmic Game》의 수록곡인 <Marching the Hate Machines (Into the Sun)>에 참여하였고 2002년 케미컬 브라더스의 초청으로 협업하여 <The Golden Path>란 곡에서 스티븐 드로즈드가 리드 보컬을 하고 웨인 코인이 하모니 보컬을 했다. 이 곡은 케미컬 브라더스의 모음집인 《Singles 93-03》에 수록되었다.
2002년에 플레이밍 립스는 벡의 "Sea Change" 투어에 오프닝이자 백밴드로 참여했다. 2004년 여름 플레이밍 립스가 롤라팔루자 투어에 소닉 유스, 모리시 등과 함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공연장 섭외가 원활하지 못하여 결국 취소되었고 같은 해 영화 <네모바지 스폰지밥> 사운드트랙 <SpongeBob and Patrick Confront the Psychic Wall of Energy>를 녹음했다. 투어가 취소되고 나서 이들은 제작자 데이브 프리드만과 함께 타박스 스튜디오에서 좀더 원초적인 사운드의 열 한 번째 앨범 《At War with th
출처: 플레이밍 립스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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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미 앨범의 성공 이후 스티븐 드로즈드는 헤로인 중독 치료를 마쳤는데 이는 드로즈드와 웨인 코인 사이에 몸싸움이 곁들인 격론 끝에 밀어부쳐진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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