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967
하야시바라 메구미
Megumi Hayashibara
하야시바라 메구미(일본어: 林原 めぐみ, 1967년 3월 30일~)는 일본의 성우 및 가수다. 도쿄도 기타구 출신이며, 현재 우드백 오피스에 소속되어 있다.
인물1967
Megumi Hayashibara
하야시바라 메구미(일본어: 林原 めぐみ, 1967년 3월 30일~)는 일본의 성우 및 가수다. 도쿄도 기타구 출신이며, 현재 우드백 오피스에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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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바라 메구미(일본어: 林原 めぐみ, 1967년 3월 30일~)는 일본의 성우 및 가수다. 도쿄도 기타구 출신이며, 현재 우드백 오피스에 소속되어 있다.
하야시바라 메구미(일본어: 林原 めぐみ, 1967년 3월 30일~)는 일본의 성우 및 가수다. 도쿄도 기타구 출신이며, 현재 우드백 오피스에 소속되어 있다.
할아버지가 판사, 부모님은 두 분 다 도쿄대 졸업, 오빠가 의사인 집안의 막내딸이다.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 출신 성우로, 간호대학에 진학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병 때문이라고 한다.
성우를 한다고 했을 때 집안 사람들의 반대가 매우 심해서 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 면허를 따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때문에 대학교를 다니며 성우 활동을 병행했는데, 선배 성우들이 간호사인 애가 있다며 굉장히 신기해했다고 한다.
후회는 잘 하지 않는 성격이다. 가장 싫어하는 말은 다이어트. 먹고 싶은 건 잔뜩 먹고 자고 싶으면 잔뜩 자야한다는 것이 그녀의 인생관이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며 일과 관련되지 않으면 기억력도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어떠한 일에나 최선을 다하며 작은 일에서도 인생의 교훈을 받는 점은 그녀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상당히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타입으로 특히 규정을 어기는 사람 등에게는 깐깐하게 주의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팬들에게도 예외는 없으며 라디오를 통해 엽서를 보낸 팬을 꾸짖어 사과를 받아낸 적도 있다. 덕분에 그녀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요리는 잘하는 편이며 레코딩이 끝나고 마음이 맞으면 즉석에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여행을 좋아하며 종종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라는 마음을 먹음과 동시에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는 적극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새해를 해외에서 맞이하거나 하와이에 다녀오거나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강하며 술이 세다. 호리에 유이의 라디오에서 "아침과 저녁의 몸무게가 1kg이나 차이가 나요!"라며 식탐에 대해 해명했지만 호리에 유이의 말에 의하면 "먹을 걸로 상당한 전설을 남기셨는데". 성우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일인 듯하다.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지금도 무서워하는 선배 성우가 혼다 치에코인데 146cm에 유순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후배들에게 있어선 공포의 대상이라고 한다. 초창기 때 혼다 치에코한테 엄청난 질책과 지도를 (거의 폭언에 가까울 정도로) 받았고 성우로써 개안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지금도 무서운 선배 1위로 꼽을 정도다. 여행지에서 티비를 틀었는데 혼다 치에코의 목소리가 나와 무서웠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하야시바라 메구미 역시 깐깐한 선배로 유명하다. 후배 남자 성우들조차도 무서워할 정도인데 실제로 피폭을 당한 남자 성우가 타카기 와타루다. 잦은 지각으로 녹화가 늦어지자 참다 못한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인사하는 타카기에게 대본 뭉치를 뿌려버리고 밀치는 일이 있었는데 그 후 타카기 와타루는 거의 지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이는 한 살 적지만 성우로써는 엄연히 선배이고 선배로써 확실하게 본 때를 보인 셈인데 이때 타카기 와타루가 거의 공포에 떨었을 정도라는 후일담도 있다.
한 번은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쳐봤으나 우르르 올라오는 검색 결과들을 보며 창을 닫았다고 한다. 참고로 기계는 서투른 편. 자신이 '기계의 신'이라고 부르는 타카야마 미나미의 도움을 언제나 받는다고 한다. 자타공인 기계치인 호리에 유이에게도 그녀를 소개함.
자신과 관련된 물건이 옥션 등을 통해 팔리는 것이 제일 싫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싸인을 할 때는 반드시 이름을 기재한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스누피.
남편과는 5년 된 친구였다고 한다. 자신의 생일인 3월 30일에 혼인 신고를 하고, 그 다음 날인 4월 1일에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Tokyo Boogie Night]의 300회 기념 공개 녹음에서 웨딩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공표했다. 그 다음 날 신문에 그녀의 결혼에 관한 기사들이 실렸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고베', 공개 녹음을 비롯해 이벤트 대부분을 고베에서 하는 덕분에 팬들에게 고베는 '성지'라 불린다.
가장 신기했던 일로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혹시 하야시바라 씨 아니신가요?"라고 질문했던 것을 꼽았다. 그녀가 한 말은 고작 [잘 먹었습니다] 한 마디었다고 한다.
사교성이 좋지 않다고 스스로는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성우를 비롯 작사가, 작곡가, 소설가 등 다방면으로 많은 친분을 가지고 있으나 낯가림이 심하다고 홀로 극구 주장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중반에 분 "제 3차 성우 붐" 시대에 등장한 성우 중 정점을 차지하는 존재로,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쥬에서 매년 선정하는 각 부문별 시상식인 '아니메쥬 그랑프리'의 성우 부분을 통산 12회 수상, 각 성우 전문지의 "올해의 성우상" 다수 수상, 일본 방송 협회 성우 대상 등 다수의 상을 획득하는 등 성우계의 전설로 자리잡았다.
죠시세이가쿠인 고등부를 졸업한 후 동경부립 토요시마 간호부 학원을 다니면서 아트비젼 직속의 '일본 내레이션 연기 연구소'를 다니며 성우 수업을 받았다.
성우 프로덕션에 지원서를 내게 된 계기는, 위의 간호사 학교에 원서를 내러 갔을 때, 너무나도 쌀쌀맞고 냉정한 접수원의 태도에 화가 나서, 책방에 들려 책을 보며 화를 풀던 중 우연히 눈에 띄인 '일본 내레이션 연기 연구소 무료 수강생 모집 공고'를 보고는 분위기 탄 채로 바로 접수해 버린 것.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성우 양성소 합격이 먼저 였는데,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을 때에는 "..... 뭐였지 이거??"라고 오히려 당황을 했었다는 듯.
성우 양성소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우연히 지나가다 보인 좌판에서 구입한 귤을 심사위원들에게 하나씩 돌리는 강심장을 발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도 그녀의 첫 만화 에세이 '내일이 있어'의 제작 시에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사람의 증언에 의해 밝혀졌다. 하야시바라 본인은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도 그때의 나라면 그런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였다.
1986년 타카하시 루미코 원작의 '메존일각'에서 유치원생 A로 데뷔 (하야시바라 본인의 증언으로는 '가야-실내나 길거리 등에서 지나가는 사람 등이 떠드는 소리-를 먼저 녹음했지만, 배역을 맡아서 했던 대사는 유치원생 A의 대사가 최초), 당시의 대사는 "뭐야 저 개는?"이란 대사였는데, 첫 녹음인데다 당시 함께 녹음에 참여했던 성우들이 워낙 대선배들뿐이라 긴장한 나머지 몇 번씩이나 NG를 내버렸다고.
성우 생활 초창기에는 주목을 받질 못했었다. 단역을 꽤 오래했고 당시에는 선배들에게 이리저리 깨지고 혼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성우도 아니라는 악평까지 들을 정도였는데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그걸 잠도 안 자면서 인간이길 포기할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다.
타카하시 루미코 원작의 '란마 1/2' 오디션 때는 원래 텐도 아카네 역을 메인으로 응모했었으나, 사무소를 통해 "란마 역으로 배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당황, 정확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남자 란마의 연기를 연습했었지만 결국 여자 란마로 결정되어 연습을 처음부터 다시 했었다고 한다. 또 이 당시의 캐릭터 송인 '꿈의 풍선'을 녹음할 때는, 노래는 잘 못하는 걸로 설정된 란마의 캐릭터에 맞춰 일부러 음치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당시의 매니저가 "이러다가 팬들이 '하야시바라는 진짜 음치'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 아닐까?"라고 걱정이 태산이었다고 (하지만 당시 란마 출연 성우 중 상당 수가 일부러 음치 연기를 했던 경우는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별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란마 때와 마찬가지로 하야시바라가 에반게리온에 아스카 역으로 응모했었으나 떨어진 이야기 역시 유명하다. 재밌는 것은 아스카 역으로 배정된 것은 미야무라 유코인데, 미야무라 역시 처음에는 레이 역으로 응모했었다고 한다. 나중에 캐스팅이 되고 나서 처음부터 레이의 캐릭터는 하야시바라의 목소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TV나 일반 잡지 등의 언론 매체 노출은 극도로 꺼려한다. 이것은 연륜있는 성우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성우란 직업은 무대 뒤에서 캐릭터의 목소리를 담당함으로써 어린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캐릭터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일이다. 그러므로 성우가 앞에 나서서 그런 아이들의 꿈을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성우 중에선 일반 TV 방송 등에 상당히 자주 얼굴을 내민 편에 속하는 성우로도 유명하다. 이것은, "비록 내가 뭐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나가서 성우란 직업의 이미지를 높여 성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다면, 나 하나쯤 손해보는 거야 문제될 게 없다"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고.
동료 성우에게 '각하'라는 칭호를 선물받았다. 야마쿠치 캇페이와 함께 특 S 등급으로 분류되기도 한다.'이타코 성우'라는 별명도 있다. 히트작 중 하나인 샤먼킹의 '안나'역이 이타코인 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뛰어나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역할에 피곤할 정도로 빠져서 (선후배 관계가 엄한 성우 세계임에도) 작품 내에서 본인의 캐릭터와 대립된다면 그 캐릭터의 성우는 선배라도 인사도 하기 싫어질 정도라고 한다.
'스타 차일드' 소속 성우였으나 돌연 뛰쳐나와 개인 회사를 만들었다. 인기가 많아지자 소속사와 갈등이 생겼을 거라는 등의 소문들이 무성했으나 본인이 '질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공식 홈페이지 유지나 입었던 의상들의 보관 등 스타 차일드와의 관계는 원만하게 유지 중. 다만, 개인 회사인만큼 스케줄은 스스로 관리하기 때문에 이벤트나 라이브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스타 차일드 소속이었을 때는 드물지만 나타났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 또 스케줄이 급격히 줄어든 것도 이 때가 기준이다.
성우임과 동시에 킹 레코드, 스타 차일드 소속 가수이기도 하다. 소속사 이외의 레코드 회사의 음반에 출연할 때는 본인 명의가 빠져있는 경우도 있다고. 어쨌든, 주로 스타 차일드 계열의 애니메이션의 주제가 또는 캐릭터 송을 주로 음반으로 발표했는데, 이러한 곡들 중에는 작중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팬들(특히 중고교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포함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카라시마 미도리, 나가노 시이나(TWO-MIX의 멤버), 오카자키 리츠코(러브 히나 주제가 '사쿠라사쿠'등을 작곡한 작곡가)등에게 곡을 받았으며, 후루모토 신노스케, 타카하시 고우, 오쿠이 마사미 등과 함께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자신의 싱글 [Northen Light]는 성우로선 최초로 오리콘 위클리 싱글 차트 3위에 입성. 또 앨범 [Bertemu] 역시 위클리 앨범 차트 3위를 달성. 이후 사카모토 마야,
출처: 하야시바라 메구미 (CC BY-SA)
확인된 구조화 정보, 사용자 의견, AI가 찾은 관계를 구분해 표시해요.
애니메이션이 끝나는 걸 [캐릭터가 잠들다]라고 표현한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아쉽다'고 생각하거나 '어디선가 이어지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대체로 그런 경우 후속이 이어진다고 책에서 밝혔다. (어떻게든 될 거야 中)
2008년까지 281여개의 작품에 참여하여 최다 출연 성우의 순위에서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성기 시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주 애니의 레귤러가 있었고, 거기에 키티와 관련된 다양한 녹음(뮤지컬 공연, cm, 수록곡, 극장판 등등)도 참여했다. 라디오가 3개에 내레이션이 있었어서 총 11개의 스케줄이 기본이었다고 본인이 증언하고 있다.
결혼 뒤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정말로 성우 일을 그만둬야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 마음을 고쳐먹게 해준 건 꾸준하게 레귤러로 일하고 있는 '명탐정 코난'과 '포켓 몬스터'라고.
육아 때문에 일을 좀 줄이겠다고 선언한 뒤 적극적인 애니메이션 출연은 자제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하야시바라 씨가 꼭 필요하다"라고 적극적인 오퍼가 들어오는 경우에는 받아들이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오디션을 통해 작품에 투입되는 일본 성우계에서는 이렇게 오퍼를 기다리는 형식의 성우는 매우 특이한 존재다. 현재 은퇴했다는 오해를 많이 받고있지만 그럼에도 매년 5~6편의 작품에는 꼬박꼬박 출연중이며, 2006년도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파프리카'의 경우엔 제 63회 베니스 영화제, 그리고 제 19회 도쿄 국제 영화제 등에 출품되기도 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CM 등의 내레이션이나 코난이나 포켓몬, 키티의 고정 출연 등으로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