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984
케이티 페리
Katy Perry
케이티 페리(영어: Katy Perry, 1984년 10월 25일 ~ )는 미국의 작곡가, 가수, 배우로 본명은 캐서린 엘리자베스 허드슨(영어: Katheryn Elizabeth Hudson)이다. 페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교회에서 노래를 불러오며 자랐다. 10대 때부터 가스펠 음악을 시도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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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영어: Katy Perry, 1984년 10월 25일 ~ )는 미국의 작곡가, 가수, 배우로 본명은 캐서린 엘리자베스 허드슨(영어: Katheryn Elizabeth Hudson)이다. 페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교회에서 노래를 불러오며 자랐다. 10대 때부터 가스펠 음악을 시도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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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영어: Katy Perry, 1984년 10월 25일 ~ )는 미국의 작곡가, 가수, 배우로 본명은 캐서린 엘리자베스 허드슨(영어: Katheryn Elizabeth Hudson)이다. 페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교회에서 노래를 불러오며 자랐다.
케이티 페리(영어: Katy Perry, 1984년 10월 25일 ~ )는 미국의 작곡가, 가수, 배우로 본명은 캐서린 엘리자베스 허드슨(영어: Katheryn Elizabeth Hudson)이다. 페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교회에서 노래를 불러오며 자랐다. 10대 때부터 가스펠 음악을 시도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레드 힐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2001년 데뷔 앨범 《Katy Hudson》을 발매했으나,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레드 힐에서 나온 후 팝송으로 노선을 변경한 뒤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이후 아일랜드 데프 잼 뮤직 그룹과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앨범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발매하지 못한 채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2007년 4월에는 캐피틀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2008년 동성애를 주제로 삼아 논란을 일으킨 싱글 〈I Kissed A Girl〉과 다음 싱글 〈Hot n Cold〉, 그리고 페리의 두 번째 정규 앨범 《One of the Boys》를 발매하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세 번째 정규 앨범 《Teenage Dream》을 발매해 처음으로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앨범의 싱글인 〈California Gurls〉, 〈Teenage Dream〉, 〈Firework〉, 〈E.T.〉, 〈Last Friday Night (T.G.I.F.)〉까지 모두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라 마이클 잭슨의 《Bad》 이후 20여 년 만에 한 앨범에서 다섯 장의 싱글이 연속으로 1위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 2012년 3월에는 리패키지 앨범 《Teenage Dream: The Complete Confection》을 발매해 싱글 〈Part of Me〉는 1위, 〈Wide Awake〉는 2위에 올려놓았다. 2013년에는 네 번째 정규 앨범 《Prism》을 발매했다. 싱글 〈Roar〉와 〈Dark Horse〉의 뮤직비디오 모두 10억 건의 조회수를 넘기면서 10억 이상 조회수 뮤직비디오를 두 개 가진 최초의 음악가가 되었다. 〈Dark Horse〉는 조회수를 21억회를 기록하고 있다. 페리는 밝은 색상과 음식을 주제로 한 패션, 그리고 특이하고 유쾌한 컨셉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콘서트 공연은 정교하고 특색있는 무대 장치와 의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페리는 여러 시상식 수상, 기네스북과 《포브스》에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연속으로 최고 수익을 올린 여성 음악가 순위에 포함되는 등 각종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페리는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1,100만 장의 앨범과 8,100만의 싱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퍼르, 미아우, 킬러 퀸 향수를 출시하는 등 사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2010년에는 영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 러셀 브랜드와 결혼식을 올렸으나, 짧은 결혼 생활 끝에 2012년에 이혼했다. 2012년 7월에는 자선 다큐멘터리 《케이티 페리: 파트 오브 미》가 개봉되었다.
케이티 페리는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캐서린 엘리자베스 허드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순절교 목사 키이스 허드슨, 어머니는 메리 크리스틴 페리이다. 부모님들은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을 믿어온 기독교인들이다. 페리는 영국, 독일, 아일랜드, 포르투갈계 혈통을 가졌다. 영화감독 프랭크 페리의 조카이기도 하다. 페리는 세 자녀 중 둘째로, 언니 안젤라 허드슨과 남동생 데이비드 허드슨이 있다. 데이비드는 가수를 하고 있다. 부모님들이 산타바바라에 다시 돌아와 교회를 세우기 전까지 페리는 3살부터 11살까지 전국 각지를 옮겨 다니며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애리조나의 파라다이스 밸리 기독교 학교와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 종교 학교와 같이 종교 학교와 캠프를 다녔다. 페리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푸드 스탬프를 지원받아 사용하기도 했고 부모님 교회의 신도들을 위한 푸드 뱅크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페리와 형제들은 시리얼의 일종인 "럭키 참스(Lucky Charms)"를 먹을 수 없었는데, "luck"이라는 단어가 루치펠을 떠오르게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또 데빌드 에그를 "엔젤드 에그(angeled eggs)"라고 불렀다. 페리는 주로 가스펠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어느 날 페리는 친구가 가지고 있던 CD를 몰래 들었는데, 이때 대중 음악을 처음 접했다. 당시 종교적인 이유로 정밀하게 살펴보지는 않았는데, 페리는 "자제력과 겸손함을 위해 계속 기도했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언니 안젤라를 따라 페리는 언니의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해 노래를 시작했다. 부모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서는 보컬 수업 받는 것을 제안했다. 페리는 9살때 보컬 트레이닝을 시작했고 9살부터 17살때까지 부모님이 운영하는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13살 생일때는 처음으로 기타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페리가 작곡한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부르기도 했다. 페리는 커가면서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소녀와 같이 변했는데, 10대때 롤러스케이팅, 스케이트보드, 서핑을 즐겼다. 데이비드는 페리의 청소년기를 말괄량이 같았다고 말했다. 페리는 스윙댄스, 린디 합, 지르박과 같은 댄스 수업을 받기도 했다.
페리는 15살이 되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종합 교육 개발 (GED) 시험 조건들을 모두 완료하고 음악적 경력을 위해 도스 푸에블로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또한 산타바바라 서부 음악 아카데미에 등록해 잠시 동안 이탈리아어 오페라 공부를 했다. 페리가 노래를 부르던 중 록 음악가 스티브 토마스와 제니퍼 냅의 눈에 띄어 테네시주 내슈빌로 떠나 작곡하는 법을 더 배웠다. 내슈빌에서 작곡을 하며 데모 녹음을 진행했고 기타 치는법도 배워나갔다. 이후 레드 힐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Katy Hudson》이라는 제목의 CCM 앨범을 내며 데뷔했다. 앨범은 2001년 3월 6일 발매되었고,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The Strangely Normal Tour라는 제목의 투어를 돌기도 했다. 《Katy Hudson》은 평론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을 받긴 했지만, 12월 앨범 생산을 중단하기 전까지 200장을 팔며 상업적으로 실패를 거뒀다. 실패를 맛본 페리는 기존의 가스펠 장르 음악에서 세속 음악으로 노선을 변경한 뒤 17살때 로스앤젤레스로 향해 프로듀서 글렌 발라드와 함께 작곡을 시작했다. 2003년 기존의 이름이 여배우 케이트 허드슨과 혼동을 줄 수 있다는 판단하에 캐서린 페리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나중에는 어머니의 처녀였을 적 성인 페리를 따와 케이티 페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한다.
2004년 페리는 발라드의 음반사이자 아일랜드 데프 잼 뮤직 그룹의 계열사 자바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자바에서 솔로 앨범 작업을 시작했으나, 회사와 계약이 끝나면서 앨범 계획도 흐지부지되었다. 발라드는 컬럼비아 레코드의 경영진 팀 데이빈에게 페리를 소개시켜줬는데, 이로인해 컬럼비아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향후 2년 동안 데스몬드 차일드, 그렉 웰스, 부치 워커, 더 매트릭스, 맥스 마틴, 닥터 루크, 카라 디오가르디를 포함한 여러 작곡가들과 데뷔 앨범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데이빈은 더 매트릭스와 함께 그룹으로 활동하는 것을 제안했다. 앨범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2006년 페리는 컬럼비아와 헤어졌다. 컬럼비아에서 나온 페리는 택시라는 작은 A&R 회사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페리는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전에 작은 성과를 이뤄냈다. 발라드와 함께 작업했던 곡 중 하나인 〈Simple〉은 2005년 영화 《청바지 돌려입기》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였다. 2005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오리지널 노래 수상작인 믹 재거의 노래 〈Old Habits Die Hard〉에 백 보컬로도 참여했다. 2004년 9월 《블렌더》에서는 페리를 "The Next Big Thing"으로 지목했다. 2006년에는 P.O.D.의 싱글 〈Goodbye for Now〉의 백 보컬로 참여했으며 뮤직비디오 끝 부분에 잠깐 출연했다. 같은 해 카본 립의 〈Learn to Fly〉와 짐 클래스 히어로즈의 〈Cupid's Chokehold〉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컬럼비아와 헤어진 후 페리는 홍보부 간부로 있던 안젤리카 코브발러를 통해 버진 레코드의 사장 제이슨 플롬에게 데모를 전달했다. 플롬은 페리가 획기적인 스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고 2007년 4월 인수했던 레이블사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을 맺게 해줬다. 레이블사에서는 페리가 기존에 만들어놨던 노래에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다 생각해 닥터 루크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게 했다. 페리와 닥터 루크는 공동 작곡 끝에 〈I Kissed a Girl〉과 〈Hot n Cold〉를 만들어냈다. 2007년 11월 음악 시장에 페리를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Ur So Gay〉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면서 이후 〈Ur So Gay〉의 디지털 EP가 발매되었다. 마돈나는 2008년 4월 《JohnJay & Rich》라는 라디오쇼에 출연해 "좋아하는 노래"라고 언급하면서 노래가 알려지는데 일조했다. 2008년 3월에는 《와일드파이어》의 "Life's Too Short"편에 클럽 가수로 카메오 출연했다. 6월에는 《더 영 앤 더 레스트리스》의 드라마 속 잡지 《Restless Style》에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2008년 4월 28일 캐피털을 통해 《One of the Boys》의 리드 싱글이자 첫 번째 싱글 〈I Kissed a Girl〉이 발매되었다. 노래는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6월 17일에는 두 번째 정규 앨범 《One of the Boys》가 발매되었는데, 평론가들로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평을 받았고 빌보드 200 9위까지 올랐다. 9월에는 두 번째 싱글 〈Hot n Cold〉가 발매되었다. 노래는 미국에서 9위, 독일, 캐나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에서는 정상에 올랐다. 2009년에는 후속 싱글 〈Thinking of You〉와 〈Waking Up in Vegas〉가 발매되었다. 이 싱글들은 핫 100 30위권에 진입했다. 2004년 더 매트릭스와 녹음해뒀던 데뷔 앨범은 페리의 성공으로 2009년 1월 27일 아이튠스를 통해 발매되었다.
2008년 페리는 Warped Tour에 출연했다. 2008년 11월에는 2008 MTV 유럽 뮤직 어워드 진행을 맡았고, 이 날 최우수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2009년 1월부터 11월까지 《One of the Boys》 홍보를 위한 페리의 첫 월드 투어 Hello Katy Tour를 진행했다. 2009년 8월 4일에는 노다웃의 Summer Tour 2009에 하루만 오프닝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2009년 11월 2009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 다시 한 번 진행을 맡게 되면서 최초로 2년 연속 진행을 맡은 인물이 되었다. 2009년 7월 22일에는 《MTV Unplugged》라는 제목의 라이브 앨범 녹음을 진행했다. 앨범에는 어쿠스틱으로 편곡한 《One of the Boys》에 수록된 다섯 곡과 〈Brick by Brick〉와 〈Hackensack〉라는 새로운 두 곡이 실렸다. 앨범은 11월 17일에 발매되었다. 이외에도 페리는 두 곡의 다른 음악가 노래에 참여했다. 2009년 9월 콜로라도 출신의 밴드 3OH!3의 노래 〈Starstrukk〉 리믹스 버전에 참여했으며, 2010년 1월 팀발랜드의 앨범 《Shock Value II》에 수록된 〈If We Ever Meet Again〉이라는 노래에 듀엣으로 참여했다. 케이티 페리는 데뷔 싱글과 그 이후 싱글 두 장 모두 200만 건 이상의 디지털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미국 디지털 차트의 최고 여자 가수 스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빌보드》가 선정한 2000년대 최고의 핫 100 아티스트 순위에서는 51위에 선정되었다.
〈I Kissed a Girl〉은 종교 단체와 LGBT 단체 양쪽 전부 논란을 일으켰다. 종교 측에서는 동성애를 주제로 한 것에 대해 비판했으며 LGBT 측에서는 양성매념을 이용하는 페리를 비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리의 부모님은 페리의 음악과 경력을 반대할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페리는 MTV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공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8년 12월에는 예전부터 사귀어왔던 트래비 매코이와 결별한 뒤, 카메오로 출연한 《컴백 록스타》 도중 미래의 남편이 되는 러셀 브랜드와 처음으로 마주쳤다. 촬영을 하기는 했으나, 막상 《컴백
출처: 케이티 페리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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