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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People's Republic of China
중화인민공화국(중국어 간체자: 中华人民共和国, 정체자: 中華人民共和國, 병음: Zhōnghuá Rénmín Gònghéguó 중화런민궁허궈[*])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다. 수도는 베이징시, 최대 도시는 상하이시이며 이 밖의 주요 도시로는 선전시, 광저우시, 난징시, 시안시, 항저우시, 톈진시, 칭다오시, 청두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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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중국어 간체자: 中华人民共和国, 정체자: 中華人民共和國, 병음: Zhōnghuá Rénmín Gònghéguó 중화런민궁허궈[*])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다. 수도는 베이징시, 최대 도시는 상하이시이며 이 밖의 주요 도시로는 선전시, 광저우시, 난징시, 시안시, 항저우시, 톈진시, 칭다오시, 청두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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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중국어 간체자: 中华人民共和国, 정체자: 中華人民共和國, 병음: Zhōnghuá Rénmín Gònghéguó 중화런민궁허궈[*])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다. 수도는 베이징시, 최대 도시는 상하이시이며 이 밖의 주요 도시로는 선전시, 광저우시, 난징시, 시안시, 항저우시, 톈진시, 칭다오시, 청두시, 충칭시, 우한시, 홍콩, 마카오 등이 있다.
근대 중국에서는 1911년 국민당 정부가 들어섰으나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각지에서 군벌정부가 권력을 휘두르는 군벌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5·4 운동의 반제국주의 강령을 중심으로 창당된 중국공산당은 1920년 이후 세력을 불법적으로 키웠고, 국민정부과 계속해서 내전을 벌였다. 중일 전쟁에서는 싸우는둥 마는둥 하며 국민당 병력만 소멸시켰다 이후 중국 대륙의 주도권을 두고 1946년 제2차 국공 내전이 발발하였고, 그 결과 타이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영역이 공산당 측으로 넘어가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을 초대 중국공산당 주석으로 하여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 선포되었다.
소련의 막대한 영향력을 받는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으로 대약진 운동을 펼쳤고, 문화 대혁명도 실시하며 사회주의 국가의 틀을 굳히려 하였다. 다만 대약진 운동도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해 실패 하였고, 문화 대혁명도 수많은 국가적, 문화적 피해와 민간인 피해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은 사회주의의 한계를 실감하게 되었고,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낮아지면서 덩샤오핑의 지도로 개혁·개방을 시행하면서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되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받아들였다.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광활한 영토와 막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지만 1989년 6월 4일 수천의 시민을 학살하며 중국의 민주화를 억압하고, 화평굴기를 외교 기조로 삼아 평화로운 공존 및 팽창 정책을 추구하였다. 이에 중국과 미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상황에 놓여있다는 평가가 있다.
국명의 약칭은 중국(中国)이고 중화(中华)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밖에도 국외에서는 중공(中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공은 본래 중국공산당의 약칭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서 중국공산당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공산당 정부의 의미로도 사용한다.
건국 초기에는 1949년 이전의 시대를 구중국,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를 신중국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하였다. 1949년 국공 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은 분단국가로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국의 합법 정부는 자국임을 표방하므로, 중화민국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고고학계는 대략 224만 년에서 25만 년 전 사이부터 중국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고 추측하며, 베이징에서는 불을 사용한 호모 에렉투스의 유골이 발견되어 베이징 원인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중국 고전에 의하면 중국의 첫 왕조는 기원전 2100년에 등장한 하나라이다. 하나라는 처음으로 중국에서 세습 군주제를 정립하였으며 이후 몇 천년간 이어내려 가는 왕조제의 기틀을 잡았다. 다만 하나라의 존재 자체는 중국 역사학계에 의하여 주장될 뿐, 실제로 하나라의 실존 여부를 증명할 역사적인 사료는 제대로 발굴된 바가 없다. 현재까지 고고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된 첫 중국 왕조는 하나라의 뒤를 이은 상나라이다. 상나라는 기원전 17세기부터 11세기까지 황하 유역을 다스렸다. 그들이 남긴 갑골문은 지금의 한자의 원형으로 일컬어진다. 상나라는 그 뒤를 이은 주나라에 의하여 멸망 당했고, 주나라는 11세기부터 5세기까지 지속하였다. 다만 이때 중국은 중앙집권체제가 아니라 봉건 제후들의 힘이 강해졌으며, 강력한 몇몇 제후들은 아예 주나라의 통치를 거부하고 300여 년 동안 춘추전국시대를 일으키며 천하의 패권을 다투었다. 5세기와 3세기 동안 춘추전국시대가 끝날 즈음에 이르자, 중국에는 가장 강력한 7개국만이 남아있었다.
춘추전국시대는 진나라가 나머지 6개국을 양첸이통합하며 천하를 통일하며 끝났다. 진나라의 군주였던 영정은 자신을 진나라의 시황제로 불렀고, 법치주의에 입각한 개혁을 진행하여 도량형, 문자, 도로, 통화 등을 통일하였다. 다만 15년 밖에 지속하지 못하였고, 시황제가 죽은 이후에는 곳곳에서 진나라의 가혹한 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이 일어나 멸망하고 말았다.
진나라가 힘을 잃자 전역에서 내전이 벌어졌고, 이 내전에서 초나라 출신 유방이 패권을 얻어 한나라를 세웠다. 한나라는 진나라에 비하여 지방분권적인 제도를 실시하고 법가를 공자가 개창한 유가로 바꾸었으나, 진나라의 법과 제도들은 대부분 한나라와 그 후계 왕조들 에게까지 전해 내려갔다.
한나라 말기, 위나라,촉나라, 오나라로 삼국이 나뉘어 졌다. 삼국 시대의 끝에는 결국 위나라가 승기를 잡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에 의하여 멸망 당했다. 다만 진나라도 얼마 지나지 못하고 내부분렬(8왕의난)과 이민족 침공으로 멸망하였고, 이민족중 오호가 북부에서 중국으로 침략해 들어와 16국을 세웠다. 이후 이민족이 통합되어 화북을 점령하여 북위를 세웠고 더, 한편 한족들은 밀려내려가 남부에서는 송나라가 세워졌다. 이 나라들은 이후에도 흥망을 거듭하며 건국되고 멸망하기를 반복하는데, 이시기를 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이민족인 북주와 북제는 남조를 자주 침략하였고 이후 북주에서 581년에 수나라로 이어져 남조를 멸망시켰다. 농업을 장려하였고 대운하를 파 무역을 촉진하였다. 수나라는 지나치게 많은 공공 공사를 추진하여 결국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며 반란이 일어나 멸망하였다. 거란족 등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시달리다 당나라는 8세기에 일어난 안사의 난으로 크게 약화되었고, 결국 절도사들이 분열되어 약화되었고 후량에 당나라를 선양하게 된다. 하지만 당나라와 후량은 907년에는 거란족에 의해 멸망하였다. 거란족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난 한족은 송나라를 건국하였다. 하지만 요나라에 의해 송나라는 지속적으로 침략을 받아 조공하게 되었고 이후 금나라에 의해 북송이 멸망하게 되었다.
10세기와 11세기 사이 송나라는 유교를 장려했으며 철학과 예술, 도자기 기술 등을 크게 진흥하였다. 허나 지나치게 문치에 입각한 송나라의 정책은 군대의 약화를 불러왔고, 결국 북부에서 기회를 엿보던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공격을 받고 말았다. 1127년, 송나라 휘종과 수도 변경이 금나라에 함락되어 잡혀갔고, 송나라의 유신들은 남쪽으로 후퇴하여 남송을 세웠다.
13세기에는 몽골족들이 크게 발흥하여 중국을 침입하였다. 1271년, 몽골의 쿠빌라이 칸이 원나라를 세웠고, 1279년에는 송나라의 잔재를 모두 부수었다. 몽골 침략 이전에 많았던 송나라의 인구는 학살로 인해 급격히 줄어 들었으나 경제, 군사적으로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원나라는 지나친 인종주의와 차별 정책으로 한족의 반발이 심했다, 1368년에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남왜북로에 의해 남쪽에는 왜구의 침략이 심하였고 북쪽에서는 이민족의 침략이 심하였다. 명나라 초에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천도하기도 하였다. 왕양명과 같은 유학자들은 정통 유학을 비판하고 개인주의와 실용주의와 같은 가치들을 도입하고자 하였다. 후기에는 황제들이 국정을 방만하게 운영하자 신료들이 힘을 얻어 관료제적 요소가 강해지기도 하였다. 다만 명나라는 만주족들이 침입해오며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1644년에 베이징은 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에 점령당했고, 만주족이 후금을 일으켜 이자성을 죽이고 베이징을 점령하자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자금성 경산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이후 수백년간 만주족이 중국을 식민 지배하였다.
청나라는 1644년부터 1912년까지 지속하였으며, 중국의 마지막 왕조 국가였다. 청나라 초기에 명나라의 잔재들을 정복하였고, 명나라의 2500만 명의 한족들을 학살하였다. 마지막 남명까지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시킨다. 변발 등 만주족의 문화를 한족들에게 강요하였고 한족들의 반청 감정을 완화하기 위하여 상업을 장려하고 농업을 촉진, 중앙집권화를 추진하였다. 청나라는 문자의 옥을 일으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학들을 불태우거나 탄압하였는데, 이 때문에 기술과 문학의 발전이 정체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청나라는 아편 전쟁을 통하여 프랑스와 영국 등 서구 열강들과 갈등을 겪었다. 이 때문에 치외법권, 홍콩 통치권 등을 임대할 수 밖에 없었으며 불평등 조약들을 연이어 맺으며 국력을 깎아 나갔다. 게다가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으며, 일본에게 타이완섬을 주어야만 하였다. 청나라는 점차 불안정해졌고, 수 천만 명의 사람들이 특히 백련교의 난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1850년대에는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며 중국 남부에 대대적인 소요가 일어났고, 결국 청나라도 1860년대에 자강변법 운동을 통하여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결국 1880년대와 90년대에 군사적인 패배를 겪으며 실패로 드러나고 말았다.
19세기, 1876년에 대기근이 발생하며 청나라는 점차 멸망의 길로 빠져들었다. 대략 9백만 명에서 1300만 명의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광서제는 입헌군주정을 만들기 위한 개혁정책을 실시하였으나, 보수적인 서태후의 반대로 실패하여 유폐되었고 게다가 의화단이 일어나며 청나라의 국력은 갈수록 약화되었다. 서태후도 나중에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개혁을 실시하려 하였으나, 1911년에 신해혁명이 발발하며 결국 청나라도 멸망하게 되었다.
청나라는 서양 열강들에 의해 반식민지로 전락했었고 멸망하였다. 1912년 1월 1일에 쑨원의 주도로 중화민국이 건국되었고, 국민당은 중국 대륙의 임시 정부를 선포하였다. 하지만 중화민국 또한 서양 열강들의 반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또한 일본 침략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중화민국의 주권은 옛 청나라의 장군이었던 위안스카이에게 넘어갔고, 위안스카이는 중화제국을 세우며 야심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서 원망이 들끓고, 그의 세력 기반이었던 북양함대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강해지자 결국 퇴위하였고 공화정을 재창립하였다.
1916년에 위안스카이가 죽은 이후, 중국은 정치적으로 갈래갈래 나뉘었다. 베이징에 수도를 둔 중화민국은 국제적으로는 정당한 합법정부로 인정받았으나,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군벌들이 각지에서 주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또한 서양 열강들의 반식민지가 된 중국에서 군벌들은 서양 열강들과 서로 협조하여 중국 인민들을 더욱 파탄에 몰아갔다. 이렇게 혼란과 소요가 지속되던 중, 1920년대 후반에 장제스의 지휘 하의 중국국민당이 북벌을 실시하여 중국을 재통일하였다. 국민당은 수도를 베이징에서 난징으로 옮겼고, 쑨원의 삼민주의에 근거한 개혁을 실시하여 중국을 현대적인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도움을 받은 공산당들이 산악 지역에서 힘을 키우며 준동하기 시작하였고, 1927년부터는 본격적인 내전이 터져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대적으로 충돌하였다. 초기에는 국민당이 승기를 잡았고, 중국공산당은 대장정을 통하여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제국이 중국 본토를 침략하였고 장제스는 이에 맞서기 위하여 국공합작을 벌여 공산당과 손을 잡았다.
제2차 중일전쟁은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불안정한 연합을 구성하게 내몰았다. 이 전쟁에서 일본 군대는 수많은 전쟁 범죄들을 저질렀으며, 총 2천만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등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참극을 벌였다. 특히 난징 대학살 때에 일본군은 4만 명에서 3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피바다를 만들기도 하였다.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한 이후 중국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으며 또한 서양 열강들의 반식민지에서도 해방되었다. 또한 타이완섬 등이 중국에게 되돌아왔으나 홍콩과 마카오 등은 아직도 서양 열강의 식민지로 남았었다. 중국은 명목상 승전국이었으나 오랜 전쟁과 내분으로 피폐해진 상태였고, 게다가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곪은 불화가 일본이라는 공적이 사라지자 드디어 폭발하며 본격적인 내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국민당 주도의 중화민국은 1947년에 헌법을 제정하였으나, 워낙 사태가 불안정하여 헌법 규정 대다수가 중국 본토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제2차 국공 합작 이후 국민당은 지방군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 통일적이지 못한 비효율적인 전술 등으로 인하여 공산당을 상대로 패색이 만연해졌고, 공산당은 곧 중국 본토 전역을 장악하였다. 국민당 주도의 중화민국은 결국 국부천대를 통하여 본토를 버리고 타이완성, 푸젠성 진먼도로 파천하였다. 마오쩌둥은 서양열강에서 패배하기만 하던 이전 중국에서 탈피하고 공
출처: 중화인민공화국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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