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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음악
Baroque music
바로크 음악(영어: Baroque music)은 17, 18세기의 유럽 음악을 말한다. 원래 바로크란 17, 18세기의 미술양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일반적으로 1600년경부터 1750년경의 음악에 대해서도 이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르네상스 음악의 다음 시대이며, 갈랑 양식이라는 잠깐의 과도기를 거친 뒤 고전주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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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음악(영어: Baroque music)은 17, 18세기의 유럽 음악을 말한다. 원래 바로크란 17, 18세기의 미술양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일반적으로 1600년경부터 1750년경의 음악에 대해서도 이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르네상스 음악의 다음 시대이며, 갈랑 양식이라는 잠깐의 과도기를 거친 뒤 고전주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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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음악(영어: Baroque music)은 17, 18세기의 유럽 음악을 말한다. 원래 바로크란 17, 18세기의 미술양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일반적으로 1600년경부터 1750년경의 음악에 대해서도 이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르네상스 음악의 다음 시대이며, 갈랑 양식이라는 잠깐의 과도기를 거친 뒤 고전주의 음악이 이어진다. 바로크 시대를 좀더 세분한다면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초기 바로크는 1580~1630년, 중기 바로크는 1630~1680년, 후기 바로크는 1680~1750년이다. 바로크는 원래 포르투갈어로 "찌그러진 진주"라는 의미인데, 철학 용어를 거쳐 현재의 용법에 이르렀다.
바로크 음악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절대주의 왕정으로부터 계몽주의로 이행을 볼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 철학사적으로는 합리주의적·계몽주의적인 사조의 흐름 속에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여러 사회적 상황이 몇 겹으로 겹쳐서 궁정, 도시, 교회 등 세 활동범위를 기초로 하여 바로크 음악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음악은 통주저음의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바로크 음악의 시대를 '통주저음의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바로크 음악은 '정서론' 즉 '음악의 궁극목적은 음과 음의 리듬, 멜로디, 하모니, 음정 등으로 모든 정서를 자아내는 데 있다'고 하는 독특한 타율적 미학관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바로크 음악이라는 용어는 역사가들마다 그 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600년부터 1750년까지의 150년동안의 음악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바로크라는 단어가 건축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제로는 1733년 10월에 초연된 장필리프 라모의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라시Hippolyte et Aricie》에 대한 익명의 비평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734년 "프랑스의 머큐리Mercure de France"라는 잡지에 기재된 이 비평에서 바로크라는 단어는 이 오페라의 일관성 없고 불협화음으로 가득찬 멜로디, 계속 바뀌는 박자와 조성, 매우 빠른 곡의 진행속도를 비판하는데 사용되었다.
음악가이자 철학가인 장자크 루소는 1768년에 쓴 자신의 책 《백과전서Encyclopédi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소가 사용한 바로코라는 단어는 원래 철학가들이 삼단논법의 종류들을 외우기 위해 사용하던 단어인데, 13세기부터 불필요하게 복잡한 학문적 논쟁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던 단어이다.
음악사학가들이 이 단어를 음악적 시대구분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지. 커트 작스는 하인리히 뵐플린의 바로크 미학 이론에 나타난 다섯가지 특징을 처음으로 음악적 시대분류에 적용한다. 학자들은 곧 작스가 뵐플린의 이론을 적절하게 사용한 것인지 검토하기 시작했고, 독일의 만프레드 부코프저와 벨기에의 수잔느 클럭스-르준 등이 작스와는 별개의 엄밀한 분석을 통해 바로크 음악이라는 시대구분을 제시한다. 이처럼 바로크 음악이라는 용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제안되면서 시대구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해졌다. 영국에서는 1940년 들어서야 바로크 음악이라는 시대구분이 인정받았다.
1960년이 되기까지 시기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자코모 페리,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이 이처럼 다른데 한 시대로 분류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르네상스 음악, 고전주의 음악과 명백한 차이를 분류하기 위해 바로크 음악이라는 용어가 결국에는 도입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이탈리아가 그 외 지역의 음악보다 대략 20년 정도 빠르게 발전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이탈리아에서는 1730년대에 갈랑 양식이 발흥한데 비해 독일에서는 1750년까지 바로크 음악의 전성기가 계속되었다.
르네상스 말기, 지오반니 드 바르디의 후원 아래에 인문학자, 시인, 음악가들은 카메라타라는 모임을 결성해 음악과 연극 등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를 이어간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음악극을 가장 뛰어난 종류의 예술로 보았고, 폴리포니와 기악음악을 거부하며 키타라 반주에 독주가가 노래하는 종류의 음악인 모노디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갔다. 자코모 페리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다프네Dafne》, 《에우리디체L'Euridice》에서 선보임으로써 오페라와 바로크 음악의 효시를 알렸다.
피렌체에서 이처럼 모노디가 발달할 때, 조반니 가브리엘리를 위시한 베네치아 악파에서는 기악곡이 발달한다. 리체르카레, 환상곡, 칸초네 등이 여기서 발달하였으며, 이후 독일에서 온 하인리히 쉬츠가 이러한 베네치아 악파의 음악을 배워 독일에 새로운 음악을 전파한다.
또한 이 시대에는 폴리포니의 근음을 이루어주며 화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할인 통주저음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통주저음을 보고 하프시코드, 파이프 오르간, 류트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보이싱을 하여 베이스라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카를로 제수알도 등의 작곡가들은 자연스레 화성 진행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셋온음을 악마의 음정으로 분류하는 등 가시적인 연구 성과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음악은 선법보다 조를 기준으로 하는 조성을 따르게 되었고, 이로써 시대의 격변이 발생한다. 조성감을 위해 작곡가들은 멜로디의 진행을 넘어 화성 진행을 신경쓰게 되었고, 조성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종지 등의 작곡기술도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음악적 변화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 시대의 폴리포니와 통주저음을 변용하여 프리마 프락티카와 세콘다 프락티카라는 장르를 각각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는 《오르페오L'Orfeo》와 《포페아의 대관식L'incoronazione di Poppea》에서 여실히 드러나 평단의 주목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몬테베르디가 바로크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화성 진행에 음악가들이 관심을 기울지면서 관용적인 주법, 관용적인 화성의 사용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류트에서는 불규칙적인 방식으로 불협화음을 끼워넣는 방식의 주법이 등장하고, 이어 루이 쿠프랭과 장 르 롱 달랑베르는 쳄발로에 이러한 연주법을 도입시킨다. 이러한 영향은 이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심지어는 프레데리크 쇼팽의 음악에서도 발견된다.
루이 14세로 대표되는 절대 왕정의 시대가 됨에 따라 부와 권력이 궁중으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음악의 중심도 교회에서 궁중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큰 교회 회랑이 아닌 궁중의 방에서 연주되기에 적합한 실내악이 탄생한다.
장바티스트 륄리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곡가다. 륄리는 당시 프랑스 궁정에 고용된 유일한 작곡가로, 최초의 지휘자 중 한 명이다. 당시 기다란 지팡이로 박자를 지도하며 지휘하였다고 전해진다. 륄리는 현악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는데, 이 조합은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를 거쳐 현대에도 이어진다.
이탈리아에서는 1630년대에 칸타타, 오라토리오, 오페라라는 새로운 성악 형식이 등장하고, 가사와 일치하도록 멜로디와 화성을 배치하는 기법인 음화(Tone painting)가 발명됨으로써 크게 호평을 받는다. 더욱 단순하고 짧은 멜로디들이 나타나고, 사라방드나 쿠랑트 등의 춤과 어우러지는 리듬을 띄기 시작한다. 화성도 단순하고 가벼워지는데, 통주저음이 사용되던 베이스라인은 하나의 독립적인 성부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화성의 사용이 단순해짐에 따라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독립적인 음악 형식으로 나타난다. 쟈코모 카리시미의 오라토리오,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오페라가 유명하다.
또한 이 시기에 아르칸젤로 코렐리가 새로운 바이올린 연주기법과 교수법을 개발하고, 합주 협주곡 등 오롯이 악기로만 구성된 음악들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륄리의 활약이 궁정 내부에서만 이루어진 것에 비해, 코렐리는 작곡한 음악의 악보를 유럽 전역에 출판하고 연주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코렐리는 협주곡과 트리오 소나타에서 음량을 급격하게 전환하고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을 번갈아 배치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그의 제자 안토니오 비발디에서 이어지며 이후 소나타 양식의 규범이 된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는
반면 독일에서는 디트리히 북스테후데가 교회 음악의 전통을 이어간다. 북스테후데는 교회에 부임하여 각종 전례에 따른 음악을 작곡하는 등 전통을 이어간다. 교회 외에서는 아벤트무지크라는 이름의 연주회를 기획했는데, 여기서 발표된 종교극들을 오페라와 동류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1세기 반에 걸친 바로크 시대에서는 국가나 지역에 따라 상당히 시기와 양식의 차를 볼 수 있으므로,이를 각국별로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조반니 가브리엘리를 중심으로 하는 베네치아 악파의 협주양식이나 페리, 카치니의 모노디 양식 오페라가 바로크 양식의 선구를 이루었고, 로마 및 베네치아 악파를 거쳐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 등의 나폴리파에 와서는 벨 칸토 창법으로 독특한 기교를 과시하는 명가수 중심의 오페라로 변화해 갔다. 1730년대에는 서정적인 비극을 테마로 하는 오페라 세리아와 코믹한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오페라 부파 등 2개의 스타일이 뚜렷이 분리하게 되었다. 또한 모노디 양식에서 종교적인 제재를 다루는 칸타타나 오라토리오가 카리시미에 의하여 확립되었다. 기악 면에서는 트리오 소나타, 교회 소나타, 실내 소나타, 그리고 주로 바이올린 주법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합주 협주곡, 독주 협주곡의 형식이 생겨났다.
루이 13세로부터 15세에 이르는 절대주의 시대를 중심으로 하여 번영하였는데, 1720년-1730년에 걸친 경쾌하고 우아한 로코코의 갤런트 양식이 두드러졌으며 장중한 표현을 지닌 륄리나 라모 등의 오페라, 쿠플랭 등 클라브생 악파 등이 현저한 발전을 보였다.
17세기 초인 엘리자베스 시대의 버지널 음악 등의 번영을 기반으로 하여 왕정복고 후에는 퍼셀 등이 앤섬, 오페라, 마스크 등의 국민적인 양식을 낳았다. 그리하여 18세기에는 헨델이 오라토리오의 전통을 이룩하였다.
초기 바로크는 네덜란드의 폴리포니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베네치아의 복합창 양식, 모노디 양식을 융합시켜 독일 프로테스탄트 음악의 전통을 세웠으며, 모테토, 오라토리오, 수난곡, 코랄 등에 우수한 작품을 남겼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텔레만, 헨델, 바흐 등 3인의 거장이 잇달아 등장하였고, 바로크 음악을 절대적인 위치로 이끄는 데 공헌했다.
바로크 시대에는 악기에 많은 개량이 있었으나 원칙적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되었던 것의 대부분이 바로크 시대에도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건반악기로는 하프시코드 및 클라비코드, 지르바만(1683-1753)이 개량하여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바로크 오르간이 있으며, 한편 아직 미숙하기는 하나 피아노에 대한 시도가 이탈리아의 하프시코드 제작자인 크리스토포리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현악기로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이어받은 비올 종류에 새로 바이올린이 추가된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바이올린사상 고전적인 도시 크레모나(Cremona)의 아마티가(家)와 현재의 표준적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만든 스트라디바리, 또는 아마티 문화이며 역시 명장인 구아리네리가(家) 등이 계속 등장하였다.
모노디(monody)란 화음반주를 가진 단일 멜로디의 음악양식을 가리키나, 엄밀히 말하면 1600년경, 피렌체의 카메라타 그룹에 의하여 이루어진 통주저음의 반주가 있는 레치타티보 양식의 독창 성악곡을 뜻한다. 이에 앞서서 이미 16세기의 류트 반주가 있는 독창가곡으로 편곡한 것에서 그 싹을 엿볼 수 있다. 피렌체의 카메라타 그룹은 고대 그리스에서 본딴 '신음악'의 이론을 세웠다. 즉, 언어와 멜로디가 완전 일치하고, 언어가 지배하고 음악이기에 따를 것을 지향하며, 텍스트를 명확하게 이해시켜 주기 위하여 대위법의 텍스처를 금하고 간단한 반주가 따르는 솔로의 형태를 취하여야 하며, 언어는 바르고 자연스러운 억양으로 불러야 한다는 등의 근본원리가 확립되었다. 오늘날에 남아 있는 피렌체 모노디의 가장 오래된 예는 카치니의 가곡에서 볼 수 있다.
리만이 바로크 시대를 '통주저음의 시대'라 불렀듯이 낮은음표 밑에 숫자를 달아 화성을 나타내는 통주저음은 바로크 시대의 최대 특징이다. 기원에 관해서는 비아다나(1564-1627)를 발명자로 생각했던 시대도 있었으나, 반주자가 처음 멜로디에 바탕을 두고 즉흥적으로 화성을 채웠음은 이미 16세기 후반의 종교 합창곡의 피아노 반주에서 볼 수 있다. 이 경우 즉
출처: 바로크 음악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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