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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Austria
오스트리아 공화국(독일어: Republik Österreich 레푸블리크 외스터라이히[republiːk øːstɐraiç][*]), 약칭 오스트리아(독일어: Österreich 외스터라이히[øːstɐraiç][*])는 중앙유럽 알프스산맥에 있는 내륙국이다. 9개의 연방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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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공화국(독일어: Republik Österreich 레푸블리크 외스터라이히[republiːk øːstɐraiç][*]), 약칭 오스트리아(독일어: Österreich 외스터라이히[øːstɐraiç][*])는 중앙유럽 알프스산맥에 있는 내륙국이다. 9개의 연방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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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공화국(독일어: Republik Österreich 레푸블리크 외스터라이히[republiːk øːstɐraiç][*]), 약칭 오스트리아(독일어: Österreich 외스터라이히[øːstɐraiç][*])는 중앙유럽 알프스산맥에 있는 내륙국이다. 9개의 연방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빈이다. 북서쪽으로는 독일이 있고, 북쪽에는 체코 공화국, 북동쪽에는 슬로바키아, 동쪽에는 헝가리가 있으며, 남쪽에는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서쪽에는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면적은 83,879 km2이며, 인구는 약 9백만 명 정도이다. 공식 언어는 독일어이나, 실제로 국민들은 여러 종류의 방언들을 사용한다.
오스트리아 공화국(독일어: Republik Österreich 레푸블리크 외스터라이히[republiːk øːstɐraiç][*]), 약칭 오스트리아(독일어: Österreich 외스터라이히[øːstɐraiç][*])는 중앙유럽 알프스산맥에 있는 내륙국이다. 9개의 연방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빈이다. 북서쪽으로는 독일이 있고, 북쪽에는 체코 공화국, 북동쪽에는 슬로바키아, 동쪽에는 헝가리가 있으며, 남쪽에는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서쪽에는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면적은 83,879 km2이며, 인구는 약 9백만 명 정도이다. 공식 언어는 독일어이나, 실제로 국민들은 여러 종류의 방언들을 사용한다.
오스트리아는 976년 경 변경백국으로 처음 등장하였으며, 이후 오스트리아 공국, 오스트리아 대공국으로 발전하였다. 16세기에 오스트리아는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왕가들 중 하나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거지로 자리잡으며 점차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쳤고,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국력을 꾸준하게 키워나갔다. 19세기 초에 이르자 오스트리아 제국이 세워졌으며, 독일 연방의 주도국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하였다. 1867년에는 헝가리와 동군연합을 통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세웠다.
오스트리아는 사라예보 사건에서 페르디난드 대공이 암살당한 직후,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시기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그러나 결국 오스트리아는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전후에는 제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을 세우려 하였으나, 승전국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1919년에 세워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공식적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계승국으로 인정받았다. 1938년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지도자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스트리아를 나치 독일에 합병하였다. 1945년에 나치가 패망한 이후에는 오스트리아도 잠시 동안 연합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곧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이 세워져 주권국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직접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대통령이 국가원수이며, 총리가 행정부의 수반이다. 오스트리아의 주요 도심지에는 빈, 그랏츠, 린츠, 잘츠부르크, 인스부르크 등이 있다. 오스트리아는 1인당 GDP로 세계 20위 안에 늘 들 정도로 부유한 소규모 국가이며, 삶의 질도 굉장히 높은 수준이며 인간개발지수도 세계에서 20위를 차지한 바 있다. 또한 수도인 빈 또한 그 수준이 높고 삶의 질이 높아 세계적인 척도가 될 정도이다.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은 1955년에 중립을 선포하였다. 1955년 이래 UN의 회원국이었으며, 1995년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OECD와 인터폴의 창립국이며, 1995년의 솅겐 협정에도 조인하였고 1999년에는 유로화를 도입하였다.
‘오스트리아’라는 국명은 독일식으로 읽으면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가 되는데, 이 단어는 고대 고지 독일어로 ‘eastern realm'이란 뜻, 즉 ’동쪽 영토‘라는 의미를 하고 있었다. 이 명칭의 기원이 된 고대 고지 독일어 단어 오스타리히(Ostarrîchi)는 ‘동쪽 제국’ 혹은 ‘동쪽 왕국’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외스터라이히‘라는 단어는 996년의 문서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흔히 ‘오스타리히 문건(Ostarrîchi document)’이라 불리는 이 기록은 해당 지명이 등장하는 최초의 사료이다. 아마도 중세 라틴어인 ’마르키아 오리엔탈리스(Marchia Orientalis)를 독일식 사투리로 읽은 것에서 처음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976년에 만들어진 바바리아의 한 지방이었는데, ‘오스트리아’라는 단어 자체는 독일어인 ‘외스터라이히’가 12세기에 당대 공용어인 라틴어로 옮겨진 것을, 이 라틴어화된 명칭이 문헌상 처음 확인되는 것 또한 12세기의 일이다.
다시 영국식으로 읽은 것이 현재까지 넘어와 쓰이는 것이다. 당시에 오스트리아 지방은 바바리아 지방의 최동단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동쪽 영토’라는 뜻의 이름을 받았던 것이다.
한때 전 유럽 세계를 주름잡았던 로마 제국이 쇠망하고 난 이후, 유럽에는 슬라브족, 아바르족, 훈족 등 이민족들이 끊임없이 침략하였다. 이후 프랑크족의 왕이었던 샤를마뉴 대제가 788년 경에 혼란스러운 유럽 일대의 질서를 일부 다잡았고, 기독교를 전역에 포교하며 세를 넓혀갔다. 현재 오스트리아 지방은 동프랑크 왕국의 일부였는데, 오토 2세가 바벤부르크 가문의 레오폴트 1세에게 976년에 오스트리아 변경백의 지위를 내렸고, 이때부터 오스트리아 변경백국은 안동안 바벤부르크 가문의 통치를 받게 된다.
‘오스트리아’라는 지명은 996년에 작성된 바벤부르크 가문 관련 문서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1156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가 오스트리아를 공작령으로 승격하였고, 1192년에는 바벤부르크 가문이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의 공작위를 동시에 획득하면서 그 세를 점점 넓혀갔다. 그러나 1246년에 프리드리히 2세가 헝가리와의 전쟁에서 전사하면서 바벤부르크 가문의 대도 끊어졌고 오스트리아 공작위의 자리도 비고 말았다.
당시 오스트리아에게 대공위 시대가 찾아온 때는 마침 신성로마제국의 대공위 시대와 시기가 겹쳤으며, 오스트리아 지역은 중부 유럽 전체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빠져들었다. 한편 지배 가문이 사라진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의 주도권을 잡은 세력은 보헤미아의 오타카르 2세였다. 그러나 그가 1278년에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루돌프 1세에게 격퇴당하면서 오스트리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이후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몇 백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 하에 놓이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거지였던 스위스에서 반란이 일어나 스위스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 하에서 떨어져 나가자, 합스부르크 가문은 점차 오스트리아를 자신들의 본토로 여기게 된다.
14세기와 15세기 동안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공국을 통치하며 주변의 국가들은 점차 흡수해나가며 힘을 길러나갔다. 1438년에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알브레히트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독일 왕 지위를 획득한 후, 1452년 프리드리히 3세가 대관을 받아 정식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독점하기 시작한다. 한편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황제에 오른 프리드리히 3세는 자신의 본거지였던 오스트리아 공국을 1453년에 오스트리아 대공국으로 승격시켰으며, 이후에는 제국의 유일한 대공국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아 기타 선제후국들이나 제후국들과 격을 달리하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이때 오스트리아의 수도였으며 인구도 몇 만명에 육박했던 빈도 위상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군사적 정복이 아닌 결혼이나 혈연 관계를 통하여 영토를 넓혀갔는데, 1477년에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재위 시기, 합스부르크 가문은 과감한 결혼 정책 덕에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영토를 상속받아 유럽의 중심 가문으로 부상한 것이다. 1477년 부르고뉴 공국의 샤를 공이 스위스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후, 부르고뉴 공국은 그의 유일한 자녀였던 마리에게 상속되었다. 그러나 마리는 프랑스의 압박으로부터 공국을 지키기 위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장남인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였다. 이때 그녀의 영지인 부르고뉴 공국의 본토와 네덜란드를 펠리페 1세가 물려받으면서 이 영토가 그대로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넘어왔다. 한편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펠리페 1세는 스페인 왕국의 이사벨 1세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인 후아나 왕녀와 결혼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페인까지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었다. 펠리페 1세의 아들인 카를은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의 사망과 동시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하였고, 기존의 합스부르크 영지와 함께 스페인 왕위에 오르며 카를 5세가 되어 유럽 중남부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의 황제로 등극하였다.
한편 막시밀리안 1세의 혈연을 통한 영토 확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막시밀리안 1세는 노년에 손자이자 카를 5세의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를 보헤미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폴란드 일대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던 야기에우어 왕조의 왕녀와 결혼시켰다. 그런데 1526년에 야기에우워 왕조의 러요시 2세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이 영토들도 모두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상속되었다. 1521년에는 페르디난트 1세가 오스트리아 대공직을 물려받았으며, 1526년에는 보헤미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의 왕위에 연달아 오르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이 세워졌다. 페르디난트 1세가 새롭게 가지고 온 동유럽 영토들은 오스트리아의 국력 신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오스트리아는 단숨에 중부 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중부 유럽의 최강국으로 떠올랐으며, 이 동유럽 영토들은 1918년에 오스트리아가 패전하여 해체되기 직전까지도 여전히 오스트리아의 뒷받침이 되어주었다. 다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은 느슨한 동군연합 체제였으며, 타 국가들과 달리 내부적으로 결속되어있지는 못했다. 이는 오스트리아인들이 제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유달리 적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 부르고뉴 지방, 네덜란드는 곧 오스트리아와는 무관한 영토가 되었는데, 부르고뉴 공국은 카를 5세가 프랑스에게 넘겨주었으며 스페인, 네덜란드는 카를 5세가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 상속시켜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분가하여 넘겨주었다.
출처: 오스트리아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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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언제 생기고 바뀌었는지 날짜순으로 모았습니다. 소식 글과 출처에 적힌 날짜를 기준으로 합니다.
오스트리아 이 나라 작품 크리스토프 발츠
오스트리아 멤버 유럽 남방 천문대
오스트리아 멤버 다자간 투자 보증 기구
오스트리아 멤버 세계무역기구
오스트리아 멤버 유럽 연합
오스트리아 멤버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오스트리아 멤버 국제 투자 분쟁 해결 센터
1526년에 모하치 전투 이후, 오스만 제국이 차지하지 않은 보헤미아와 헝가리 지방이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지속적으로 헝가리 쪽으로 동진하며 팽창 정책을 펴나가자 결국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에 잦은 무력 충돌이 발생하였으며, 이후 약 백여년 동안 기나긴 전쟁을 이어갔다. 1529년에는 당시 오스만 제국의 최대 명군이었던 슐레이만 대제가 1차 빈 포위를 개시하였으나, 이른 겨울과 눈서리로 인하여 결국 실패하고 물러나기도 했다.
1657년에서 1705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다스린 레오폴드 1세의 시기 동안 오스트리아의 국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였으며, 1683년에 폴란드의 왕인 얀 3세의 지휘 하에 1683년에 성공적으로 오스만 제국군을 막아낸 이후에는 적극적인 군사정책을 펼쳐 헝가리 영토의 대부분을 1699년의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트리아 영토에 편입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6세는 오스트리아가 지난 세월 동안 얻어낸 영토 상당수를 포기하는 대신,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를 공고히 하고 정당한 세습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카를 6세는 1713년에 국사조칙을 발표하여 자신의 딸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황위를 물려준다는 뜻을 밝혔으며, 1740년에 사망하였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 내에서도 여성에게 황위를 이어받게 하겠다는 카를 6세에 대한 반대의 뜻이 강했으며, 이때 서로 황위를 주장하기 시작하며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터졌다. 이때 때마침 힘을 키우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프로이센 왕국이 슐레지엔 지방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침공했고, 결국 이때 오스트리아는 2차례의 전쟁으로 슐레지엔 지방을 상실하였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황위를 차지한 뒤 프로이센에게 복수를 준비하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선제 공격을 감행하여 1756년에 7년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로이센에 맞서기 위하여 당시 루이 15세가 다스리고 있던 프랑스와 엘리자베타 여제가 다스리고 있던 러시아와 연합을 맺어 포위 전선을 구축하였다. 전쟁은 수적으로 우세했던 오스트리아와 그 동맹국 측에게 우세하게 흘러갔으나, 러시아에서 엘리자베타 여제가 사망하고 독일 출신의 표트르 3세가 제위를 계승하자 러시아가 동맹에서 이탈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다른 동맹국들까지 철수해버리자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도 슐레지엔을 포기하며 프로이센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약 30여 년 동안 프로이센을 본딴 개혁을 통하여 내정에 힘썼다. 또한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 러시아와 함께 1772년과 1795년의 폴란드 분할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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