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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ypt
이집트 아랍 공화국(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줌후리야트 미스르 알아라비야[*], 이집트 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굼후리야트 마스르 알아라비야, 듣기 ) 또는 이집트(아랍어: مِصْر 미스르[*], 이집트 아랍어: مَصْر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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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랍 공화국(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줌후리야트 미스르 알아라비야[*], 이집트 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굼후리야트 마스르 알아라비야, 듣기 ) 또는 이집트(아랍어: مِصْر 미스르[*], 이집트 아랍어: مَصْر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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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랍 공화국(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줌후리야트 미스르 알아라비야[*], 이집트 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굼후리야트 마스르 알아라비야, 듣기 ) 또는 이집트(아랍어: مِصْر 미스르[*], 이집트 아랍어: مَصْر 마스르, 콥트어: Ⲭⲏⲙⲓ 키미, 영어: Egypt, 문화어: 에짚트)는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시나이반도에 걸쳐 있는 국가이다. 영토 면적은 100만 1,450 km2 수도는 카이로이다.
이집트는 그 어떠한 국가들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약 5,000여 년 전부터 나일강가에서 문명이 태동하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30세기에 이르자 고대 이집트 문명은 문자, 농업, 도시화, 종교, 정부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대 타 지역에 비하여 압도적인 발전을 이룩하며 풍요로운 시대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이집트에 기자의 피라미드와 대스핑크스가 세워졌으며, 멤피스, 테베, 카르나크, 왕가의 계곡 같은 위대한 유산들을 남겼다. 그러나 이후 이집트 문명은 점차 쇠퇴를 거듭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로마인, 아랍인, 오스만인, 누비아인들이 연이어 이집트를 침투하며 지배하였다. 이집트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으나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고, 무슬림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7세기 경 확실한 이슬람 국가로 돌아섰다.
현대 이집트의 역사는 1922년 경, 이집트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는 독립 후 공화국을 세웠고, 1958년에는 시리아와 함께 아랍연합공화국을 세웠으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1961년에 소멸하였다. 이후 20세기 후반 내내 이집트는 극심한 종교적, 정치적 혼란기를 겪었고, 1948년, 1956년, 1967년, 1973년에는 연이어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반복하며 가자 지구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1978년에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가자 지구에서 물러났고, 이스라엘을 공인하며 평화 분위기를 붇돋았다. 그러나 이집트는 현재까지도 정치적 불안정을 거듭하고 있는데, 2011년 아랍의 봄 사태나 지속된 테러 사태, 경제불황 등 지속되는 악재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는 현재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인권도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집트의 국교는 이슬람교이며, 국어는 아랍어이다. 이집트는 1억 명이 넘는 인구로 북아프리카, 중동, 아랍 국가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도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고 세계적으로도 13번째로 인구가 많다. 거의 대부분의 인구는 나일강 유역에 모여 살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나일 유역이 이집트 전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국토는 대부분이 척박한 사하라 사막에 속해있고,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다. 대략 절반의 인구가 도심지에 몰려 살고 있으며, 특히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나일강 삼각주의 대도시들에 산다.
이집트는 북아프리카, 중동, 아랍 세계에서 지역 강국 정도로 평가받는다. 중동에서 경제적으로도 규모가 큰 편이고 그 재원도 다양화되어 있으며, 그 잠재력이 상당하여 21세기에는 세계적으로도 발전이 주목되는 국가로 꼽히기도 한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거대한 경제규모를 보유하고 있으며, 명목 GDP로는 40번째, PPP로는 19번째로 거대한 경제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는 UN의 창립 회원국이며, 아랍연맹, 아프리카 연합, 이슬람협력기구의 창립국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의 국호로는 Kemet (kṃt)이 있는데, 이 말은 "검다"는 뜻의 kem에서 나온 말로, 이것은 나일강의 홍수로 형성된 비옥한 흑토에서 유래했다. 또 deshret (dšṛt)이라고도 하는데, "붉은 땅"을 뜻하며 이집트의 사막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이 이름은 이집트 언어의 콥트어 시대에는 kīmi, kīmə가 되었으며, 초기 그리스어는 케미아(Χημία, Khēmía)로 나온다. 다른 명칭은 t3-mry으로, "강가의 땅"이란 뜻이다. 상하 이집트는 각각 Ta-Sheme'aw(t3-šmˁw, "사초(莎草)가 자란 땅"), Ta-Mehew(t3 mḥw, "북쪽 땅")이라고 했다.
현대 이집트의 공식 국호는 미스르(아랍어 Miṣr, 이집트 아랍어: Maṣr)이다. 셈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집트를 일컫는 다른 셈어파의 단어와 어원이 같은데(가령 히브리어의 מִצְרַיִם , Mitzráyim처럼), 말 그대로 "두 개의 좁은 땅"을 뜻하는 말이었다.(이집트에 상, 하 이집트 두 왕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낱말은 "대도시", "문명" 또 "나라", "변경의 땅"도 의미했다. 영어 명칭 "Egypt"는 고대 그리스어 아이굽토스(Αίγυπτος, 에귑토스)에서 유래하여 라틴어 애급투스(Aegyptus, 에귑투스)를 통해 전해진 말이다. 형용사 aigýpti, aigýptios는 콥트어에 차용되어 gyptios, kyptios가 되었으며, 아랍어에서 qubṭī 가 되었다가 qubṭ로 변해 다시 영어로 전해져 콥트(copt)가 되었다. 원래 이 말은 후기 이집트어 낱말 Hikuptah ("Memphis")에서 나온 말로, 초기 이집트어 명칭 Hat-ka-Ptah (ḥwt-k3-ptḥ), (멤피스의 프타 신전의 이름인 "프타의 카(영혼)의 집"을 뜻했다.)가 와전된 것이다. 스트라보는 아이귑토스(Αίγυπτος) 명칭이 "에게 해의 밑"을 뜻하는 Aigaiou huptiōs (Aἰγαίου ὑπτίως)의 합성어에서 변한 말이라는 민간 전승도 전하고 있다.
나일강 유역에 있는 유적들을 살펴보면, 대략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이집트 지역에 인류가 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수렵채집인들과 어로인들은 점차 밀을 재배해는 농부들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기원전 8000년 경에 급격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며 기존의 농경지가 메말라붙고 거대한 사막으로 변해버리자 살아남은 농부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훨씬 풍요로웠던 나일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기원전 6000년 경, 나일 계곡에 신석기가 도래하였다. 신석기 시대에 점차 부락들이 왕국의 형태를 띠며 독자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였고, 크게 남쪽의 상이집트와 북쪽의 하이집트로 나뉘었다. 이후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는 끊임없이 팽창했고, 결국 충돌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상이집트의 메네스 왕이 기원전 3150년 경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하면서 전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집트의 문화는 메네스 왕 이후 약 3,000여 년 동안 번성하였고, 동시대 전세계의 그 어떠한 곳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일 정도로 풍요로운 문명을 꽃피우며 국력을 만방에 과시하였다. 통일 후 찾아온 고왕국 시대는 기원전 2700년부터 2200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때 기자의 피라미드를 포함하여 여러 피라미드들이 대규모로 건축되었다.
이집트 제1중간기는 고왕국 시대가 끝나고 여러 세력들이 난립하며 다투던 혼란기로 약 15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혼란기도 결국 끝났고, 기원전 2040년 경에 새롭게 세워진 중왕국 시대에 들어서 이집트는 또다시 번성을 맞는다. 특히 아메넴하트 3세의 재위기에는 이전의 그 어떠한 파라오의 재위기에도 이루지 못한 전성기를 맞으며 국력의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중왕국은 외부에서 힉소스인들이 쳐들어오면서 그 끝을 맞았고, 힉소스인들은 나일강 하류 대부분을 정복하고 아바리스에 새로운 수도를 세웠다. 그러나 이들도 아흐모세 1세가 이끄는 이집트 군대에 의해 쫒겨났고, 아흐모세 1세는 제18왕조를 개창하고 수도를 멤피스에서 테베로 천도하였다.
기원전 1550년부터 1070년까지 지속된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이집트는 국력의 정점을 찍으며 전세계와 교역을 행했다. 이 시기 이집트는 남쪽으로는 리비아, 동쪽으로는 레반트까지 진출하였으며, 역대 왕조들 가운데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하였다.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파라오들이 등장한 시기도 바로 이때인데, 가장 대표적으로 하트셉수트 여왕, 투트모세 3세, 아케나텐과 그의 아내인 네페르티티, 소년왕 투탕카멘, 이집트 최고 명군인 람세스 2세 등이 모두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이다. 이 시기에는 세계의 첫 유일신앙인 아텐 신앙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외국과의 잦은 접촉은 점차 이집트 사회에도 변혁을 불러오며 다양한 아이디어의 도입들을 촉진하기도 했다. 한편 신왕국도 점차 시간의 흐름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리비아인, 누비아인, 아시리아인들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이집트인들은 이들을 결과적으로 몰아내고 다시 독립을 회복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수는 없었다.
기원전 525년 경, 캄비세스 2세가 이끄는 강력한 페르시아인들이 이집트를 침공하여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프삼티크 3세를 사로잡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후 캄비세스 2세는 파라오의 직함을 취했고, 이집트의 왕을 자처했으나 페르시아 수사에 있는 그의 궁전에서 이집트를 통치하기를 택했다. 이후 기원전 525년부터 402년까지 지속된 이집트 제27왕조 기간 내내 이집트는 페르시아인들의 지배를 받았으며, 페르시아의 황제는 자동적으로 이집트의 파라오직도 동시에 겸했다. 기원전 5세기 내내 이집트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고, 간혹 성공적인 경우도 있었으나 페르시아인들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이집트 제30왕조는 이집트인들이 스스로 세운 최후의 왕조였으나, 결국 기원전 343년에 페르시아인들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최후의 이집트인 파라오인 넥타네보 2세는 전투에서 패배하며 완전히 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을 멸망시키고 새롭게 31왕조를 세운 페르시아인들도 오래가지는 못했는데, 몇 십년 밖에 지나지 않아 또다시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여 이들을 정복하고 만 것이다. 이후 마케도니아 출신의 장군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 부관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집트를 물려받았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개창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치하의 이집트는 강력한 헬레니즘 국가였으며, 동쪽으로는 남부 시리아, 서쪽으로는 키레나이카까지 뻗어나갔으며 남쪽으로는 누비아와 국경을 접했다. 수도인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수많은 상선들이 이집트의 항구들을 들락날락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들은 이집트인들의 호의를 얻기 위하여 스스로를 파라오라 칭하였고, 후기로 갈수록 아예 이집트인들에게 동화되어 이집트식으로 옷을 입거나 신전에도 이집트식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새겨넣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지배자는 클레오파트라 여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연인이었던 안토니우스가 로마 제국의 패권을 놓고 싸우다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자살하였고, 이후 내전에서 승리하나 아우구스투스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계도 끊기고 말았다. 이후 이집트는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으나, 오히려 그 부는 여전했고 이집트는 광대한 로마 제국 내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들 중 하나로 황제가 직접 관할하는 황제 속주로 남았다. 기독교는 1세기 경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재위기에 이르러 이집트는 로마 제국에서 비잔티움 제국으로 그 통치권이 옮겨갔고, 이때 수많은 이집트계 기독교인들이 박해되어 숙청되었다. 이 시기에 신약성서가 이집트어로 번역되었다.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 이후, 이집트 콥트 교회가 설립되었다.
로마 제국 이후 이집트의 패권을 넘겨받은 비잔티움 제국은 7세기 초 비잔티움-사산 전쟁에서 페르시아인들이 제국을 침공하여 10여 년 동안 이집트를 점령한 것을 되찾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집트를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아랍계 무슬림들이 비잔티움 군대를 이집트에서 꺾고 수니파 이슬람교를 전래시키기 시작하자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이집트인들은 수많은 종교들이 섞여 있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으며 콥트 기독교, 이슬람교, 심지어는 수피교까지 수많은 종교를 믿고 있는 굉장히 다원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639년에는 이슬람의 2대 칼리프인 우마르가 4,000명에 달하는 군대를 이집트에 파견하였다. 이후 640년 경에 이르
출처: 이집트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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