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알바니아
Albania
알바니아(알바니아어: Shqipëri/Shqipëria 슈치퍼리/슈치퍼리아)는 동남유럽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공식 국명은 알바니아 공화국(알바니아어: Republika e Shqipërisë 레푸블리카 에 슈치퍼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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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알바니아어: Shqipëri/Shqipëria 슈치퍼리/슈치퍼리아)는 동남유럽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공식 국명은 알바니아 공화국(알바니아어: Republika e Shqipërisë 레푸블리카 에 슈치퍼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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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알바니아어: Shqipëri/Shqipëria 슈치퍼리/슈치퍼리아)는 동남유럽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공식 국명은 알바니아 공화국(알바니아어: Republika e Shqipërisë 레푸블리카 에 슈치퍼리스)이다.
총면적 28,748km2로 2016년 기준 300만 명 가까이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티라나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이며, 두러스와 블로러 등의 대도시들이 알바니아에 위치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하여, 북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 북동쪽으로는 코소보, 동쪽으로는 북마케도니아 공화국,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그리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알바니아는 북쪽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이오니아해와 해안선을 맞대고 있다.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와 오트란토 해협을 두고 72k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전 고대 시대 동안, 현대의 알바니아 지역은 여러 일리리아 사람들과 그리스인들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일리리아 전쟁 이후에는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고 로마의 행정구역 중 달마티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모이시아 주의 일부분으로 쪼개졌다. 1190년, 사상 첫 알바니아인의 국가 알바논 공국이 세워졌다. 이후 15세기에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고, 이후 500년 동안 제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게 된다. 이후 유럽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발칸 전쟁이 발발하며 알바니아는 1912년 독립을 선언, 이듬해에 국제 사회로부터 독립국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알바니아 왕국은 1939년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고, 1943년에는 나치 독일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듬해, 알바니아는 엔베르 호자와 그가 이끄는 노동당에 의해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알바니아는 공산주의 시기 동안 다양한 방면의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겪었으며, 이 시기 동안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을 감내해야 했다. 1991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해체되고 알바니아 공화국이 새로이 설립되었다.
알바니아는 민주주의 성격의 개발도상국으로, 세계 평균의 기준에서 중상 단계 정도의 소득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서비스 부문이 알바니아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업과 농업 부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알바니아의 공산주의 체제의 해체 이후, 시장경제 차원의 경제 개혁이 알바니아 안에서 이루어지며 해외 투자의 문을 개방하였는데, 특히 에너지와 교통 인프라 부문에 많은 부분을 개방해놓았다. 알바니아는 높은 HDI 지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보편적인 의료 시스템과 무료 초중등교육을 알바니아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UN, NATO, WTO, 세계은행, 유럽 의회, OSCE, OIC의 회원국이며, 유럽 연합의 회원국 지위를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알바니아는 에너지 공동체, 흑해 경제 협력 기구 그리고 지중해 연합의 창립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알바니아는 남유럽 지역 최대 규모의 호수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들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알바니아의 이름은 중세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서기 150년 지도를 제작할 당시 두러스의 북동쪽에 위치한 알바노폴리스라는 도시를 명시할 때 알바니 (Albanët)의 일리리아인들을 명시할 때 유래된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유력하다. 알바니아의 이름은 중세의 아르바논 공국으로 지속되었다고 하나, 두 이름이 명시된 곳이 같은 장소였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였던 미하일 아탈리아티스는 자신이 1079년에서 1080년 당시 집필한 저서 역사에서 104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항한 사람들로 알바노이를 처음 기술하였으며 디라키움 공작이 다스리는 사람들을 아르바니타이라고 기술하였다. 중세 동안, 알바니아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아르버리" 또는 "아르버니"라고 불렀으며 자신들을 "아르베레쉐" 혹은 "아르베네쉐" 사람들이라 지칭하였다.
오늘날의 알바니아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슈치퍼리" 혹은 "슈치퍼리아"라고 부른다. 17세기부터 지명 슈치퍼리아와 민족 데모님 슈치파레가 아르베리아와 아르베레쉬를 대체하였다. 두 단어는 "독수리들의 땅" 혹은 "독수리들의 아이들"로 종종 해석된다.
알바니아에 인간이 처음 정착한 시기는 중석기 시대와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를 뒷받침할 사료가 사란더 근처의 사레라는 마을과 티라나 인근의 다이딧 산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레 근처의 한 동굴에서 부싯돌과 벽옥(碧玉) 그리고 동물의 뼈 등이 발견되었고, 다이딧 산에서는 뼈와 오리냐크 문화에 유사한 석기 도구들이 발견되었다. 알바니아에서 발굴된 석기시대의 유적들은 동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몬테네그로의 세르베나 스띠에아 유적과 그리스 북서부에서 발굴된 것과 유사한 형태를 띈다.
알바니아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 발굴된 봉분 유적의 청동기 시대 유물들은 마케도니아 남서부와 그리스 레프카다의 유적의 것들과 유사하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보고 해당 지역들에는 기원전 3000년 정도에 고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인도-유럽 어족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고 결론지었다. 이들의 일부가 기원전 1600년 정도에 미케네로 이주하여 미케네 문명을 일구었다. 또 다른 인구 집단이었던 일리리아인들은 당시에 그들의 영역으로선 가장 최남단 지역인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국경 지역에 살면서 그리스 민족들과 이웃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고대 당시 현대의 알바니아 지역에는 일리리아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영역은 아드리아해 동부 지역과 아우레스강 어구까지 이르렀고, 이 지역 전체는 일리리아라고 불렸다. 일리리아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4세기 중반 집필된 고대 그리스 문헌 흑해 주항기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남부 지역에는 그리스 카오니아인들 이 포이니케를 수도로 두고 연안 지역에 기원전 7세기부터 아폴로니아, 에피담노스 그리고 아만티아 등의 다양한 정착지를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알바니아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부족 중 하나는 아르디에이였다. 아르디에이 왕국은 피예브라투스 2세의 아들 그론의 지휘 아래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론의 영향력은 이웃 부족에까지 미쳐졌다. 기원전 230년 그론의 사망 이후, 그의 아내 테타가 왕국을 물려받아 다스렸다. 테타 휘하의 군대들은 남쪽으로 이오니아해까지 진출하였다. 기원전 229년, 로마는 일리리아의 로마 선박들에 대한 약탈을 이유로 전쟁을 포고하였다. 전쟁은 기원전 227년 일리리아의 패배로 종전되었다. 테타의 왕좌는 기원전 181년 겐티우스가 승계하였다. 겐티우스는 기원전 168년 로마와 충돌하며, 제3차 일리리아 전쟁을 시작하였다. 전쟁은 기원전 167년 로마의 승리로 끝났고 그 시점부터 일리리아의 독립도 막을 내렸다. 전쟁 패배 이후, 로마는 일리리아를 세개의 행정구역으로 쪼개었다.
중세 동안, 알바니아는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7세기부터 슬라브족들이 알바니아 지역 곳곳에 이주해오기 시작하였다. 9세기에는 불가리아 제1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13세기에 비잔티움 제국과 불가리아 제2제국의 국력이 약해지자, 알바니아의 일부분이 세르비아 대공국의 침략을 받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정복자들은 알바니아 내의 로마 혹은 비잔티움 문명의 흔적을 파괴하거나 약화시켰다.
알바니아의 독립은 중세 시기부터 아르바논 공국, 중세 알바니아 왕국 등 다양한 형태로 형성되어 왔다. 아르바논 공국 혹은 알바논은 1190년 당시 크루여의 아르콘이었던 프로곤이 세운 중세 사상 첫 알바니아인의 독립국가였다. 프로곤이 맡았던 권좌는 그의 아들들인 지인과 드미트리가 승계하였다. 프로곤 일가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드미트리의 사망 이후, 알바논 공국은 그리스인 그레고리 카모나스, 크루여 공작, 골렘 등의 인물들이 다스려 나갔다. 아르바논 공국은 1255년 해체되었다. 아르바논 공국은 "알바니아인의 국가"의 기틀을 잡아주었으며, 제국 서쪽의 말단 지역의 이점을 활용하여 준자치 행정구역의 지위를 얻는데 기여하였다고 평가된다.
중세 알바니아 왕국은 카를로 1세에 의해 알바니아 지역에 설립되었다. 1271년 카를로 1세가 에페이로스 전제공국에서 정복한 지역이었다. 이듬해 1272년 2월, 그는 알바니아 왕국의 국왕으로 추임되었다. 왕국은 두러스부터 부트린트 해안까지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알바니아 왕국의 탄생 이후, 가톨릭 중심의 정치 구조가 세워지며 이를 기반으로 발칸 지역 내에 가톨릭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당시 정치적 개혁은 북부 알바니아를 다스리고 있었던 카를로 1세의 사촌 옐레나 안주이스카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녀가 당시 북부 알바니아와 세르비아를 다스리고 있던 동안 해당 지역에 30개 이상의 가톨릭 교회와 예배당이 세워졌다. 이후 1331년부터 1335년까지, 세르비아 제국이 알바니아를 지배하였다. 세르비아 제국의 분열 이후, 여러 알바니아 공국들이 분리되었고, 이들 중 발샤, 토피아, 카스트리오티, 무자카 그리고 아리아니티 공국이 비교적 강력하였다. 14세기 초반에는 오스만 제국이 알바니아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하였다. 1444년에 알바니아 공국들은 스칸데르베그의 지휘 아래 단결하였다. 이후 스칸데르베그는 지금까지도 알바니아 중세의 국민 영웅으로 추대받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수립 초기, 당시 동남유럽 지역은 작은 공국들로 쪼개져 있었다. 오스만 군대들은 1415년에 남부 알바니아에 주둔지를 마련해놓았으며 1431년에는 알바니아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443년 알바니아의 국민영웅인 스칸데르베그 주도의 장기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1479년까지 지속되며, 당시 술탄 무라트 2세와 메흐메트 2세가 이끌던 주요 오스만 군대들을 물리쳐냈다. 스칸데르베그는 알바니아 지역의 군주들을 통합하고, 대부분의 지역에 중앙 권력 체계를 도입해내며, 알바니아의 군주 자리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그는 또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범유럽 연합을 구성하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터키인들은 이탈리아와 서유럽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알바니아 지역을 발판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여러번 재정복 시도를 하였으나, 매번 스칸데르베그에 위해 저지되었다. 당시 그와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은 유럽 지역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이는 나폴리, 베네치아, 라구사 그리고 교황으로부터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한편 오스만 제국이 알바니아에 진출하며, 이슬람교가 제3의 종교로 알바니아에 유입되었다. 이 시기동안 대규모의 알바니아인들이 기독교 유럽 국가들로 이주하였으며, 특히 이탈리아로의 이주가 다량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이슬람교로 개종한 알바니아인들은 보스니아인과 더불어 오스만 제국 내에서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발칸 지역에 대한 정책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무슬림 알바니아인들은 제국 내에서 대재상을 포함한 여러 고위 행정직을 맡을 수 있었다. 당시 무슬림 알바니아인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오스만 제국-페르시아 전쟁을 지휘한 쾨프륄루 메흐메드 파샤 장군, 제4차 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 당시 오스만 군대를 이끌었던 쾨프륄자드 파질 아흐메드 파샤 장군, 그리고 당시 이집트 총독이었던 무함마드 알리 파샤 등이 있다.
15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은 알바니아에 강력한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알바니아의 행정구역은 4개의 군(郡)으로 나뉘었다. 지역 정부는 스페인에서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유대인 정착지를 마련하며 무역을 촉진시키려 하였다 (당시 15세기 말). 당시 블로러는 부르사, 콘스탄티노폴리스, 그리고 여러 유럽 지역에서 벨벳, 면제품, 모헤어(앙고라 염소의 털. 그 털로 짠 천), 양탄자, 향신료, 그리고 가죽 등의 물품을 항구를 통해 들여오고 있었다. 당시 몇몇 블로러의 시민들은 유럽 지역 전체에 사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있었다.
당시 알바니아인들은 오스만 제국 내 이라크, 이집트, 알제리, 그리고 마그레브 지역 안팎에서 주요 군직과 행정직을 도맡고 있었다. 이는 오스만 제국의 데브쉬르메 제도의 영향이었다. 알바니아 지역의 이슬람화는 14세기 오스만 제국의 진출부터 점진적으로 진행해 오던 과정이였다 (오늘날, 다수의 알바니아인들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오직 소수의 알바니아인들만이 로마 카톨릭교와 동방정교의 신앙을 갖고 있다). 한편 초기 오스만 제
출처: 알바니아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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