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958
마이클 잭슨
Michael Jackson
마이클 조지프 잭슨(영어: Michael Joseph Jackson, 1958년 8월 29일~2009년 6월 25일)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무용가, 배우이다. 팝의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20세기 대중문화의 상징적인 음악가로 여겨진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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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지프 잭슨(영어: Michael Joseph Jackson, 1958년 8월 29일~2009년 6월 25일)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무용가, 배우이다. 팝의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20세기 대중문화의 상징적인 음악가로 여겨진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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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지프 잭슨(영어: Michael Joseph Jackson, 1958년 8월 29일~2009년 6월 25일)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무용가, 배우이다. 팝의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20세기 대중문화의 상징적인 음악가로 여겨진다.
마이클 조지프 잭슨(영어: Michael Joseph Jackson, 1958년 8월 29일~2009년 6월 25일)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무용가, 배우이다. 팝의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20세기 대중문화의 상징적인 음악가로 여겨진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로 등재되었으며, 음악, 춤, 패션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다. 무대와 영상 퍼포먼스를 통해 이름붙인, 문워크와 복잡한 춤 동작을 대중화했다. 대중음악에서의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며 음악 산업을 부각시켰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음악가라는 기네스북 기록과 함께 마이클의 정규 앨범 《Thriller》는 66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올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총 39개의 기네스북 기록을 남겼으며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50년대 동안 꾸준히 빌보드 TOP 10 안에 든 유일한 가수로 그의 솔로 경력으로는 총 13개의 빌보드 1위 곡을 남겼으며 밴드 시절까지 합치면 17개의 빌보드 1위 곡을 남겼다. 또한 마이클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두 번 헌액된 몇 안 되는 음악가 중 한 명이며,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13개의 상과 35세의 나이로 살아있는 전설상을 수상했다. 작사/작곡 능력을 인정받아 2002년 작사/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춤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팝과 록을 겸비하는 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미국 국립 무용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또한 인종차별을 부숴 유색인들의 인권 신장을 이뤘다는 공로로 상을 받았다. 마이클의 음악은 시대를 앞서간 사운드로 구성되어 엔지니어들은 이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마이클의 외적 변화, 개인적 인간관계, 행동 등 사적인 부분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민사소송을 당했고 법정 외 합의로 민사소송은 종결됐다. 형사 수사는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 처분됐으며 마이클에게 민사소송을 건 이반 챈들러는 2009년 11월 5일 자택에서 자살했다. 2005년에도 아동 성추행 혐의에 연루돼 재판을 받았지만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This Is It이라는 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컴백을 준비하고 있던 중 2009년 6월 25일 프로포폴과 벤조디아제핀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인해 사망했다. LA 경찰은 잭슨의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했고, 머레이는 2급 살인죄로 2011년 9월 유죄 판결을 받는다. 잭슨의 죽음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추도식은 각국의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2010년에는 VH1 선정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에 마이클의 사망이 1위에 올랐다.
마이클 조지프 잭슨은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개리에 있는 가난한 흑인 집에서 10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마이클의 어머니 캐서린 잭슨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여호와의 증인에 가입했으며 가정부로 일했다. 마이클의 아버지 조지프 잭슨은 철강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였으며 개인적 취미로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다가 해체했다. 마이클 잭슨은 아버지 조지프 잭슨과 관계가 좋지 못했다. 2003년 조지프 잭슨은 자신의 아들 마이클을 정기적으로 학대했음을 시인했다. 마이클 잭슨은 1993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유년 시절 고독을 느꼈다고 말했고 2003년에는 'Living With Michael Jackson'에 나와 아버지가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여 이에 대해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마이클은 아버지의 엄격한 훈련이 자신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을 인정했지만 그러한 학대는 육체적 감정적 고통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1963년 마이클은 아버지에 의해 형제 잭키, 티토, 저메인이 결성했던 잭슨 브라더스 밴드에 합류했다. 1965년 형 저메인과 함께 리드 보컬을 맡기 시작했고 밴드 이름을 잭슨 파이브로 바꿨다. 같은 해 메이저 지역 탤런트 쇼에서 제임스 브라운의 〈I Got You (I Feel Good)〉를 불러 우승했다. 잭슨 5는 스트립쇼와 클럽, 칵테일 라운지, 시 및 지역 강당과 고등학교 등에서 다양하게 공연을 했으며 1967년 8월 할렘의 아폴로 극장에서 아마추어로 콘서트 공연을 했다.
1969년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기 전 지역 레코드사인 스틸타운에서 〈Big Boy〉 등을 포함한 몇몇 노래를 녹음하면서 전문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롤링 스톤》은 어렸을 적 마이클을 "신동이다", "압도적인 음악적 재능을 지녔다", "가장 이목을 끌면서 빨리 알려진 리드 싱어"라고 묘사했으며 잭슨 파이브에 대해선 "흑인 비틀즈"라고 썼다. 처음으로 발매했던 네 장의 싱글 〈I Want You Back〉,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은 빌보드 핫 100 차트 진입과 함께 모두 1위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 잭슨 파이브는 "가장 발전한 크로스오버 흑인 음악가의 본보기"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지금까지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이밴드로 미국인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1972년 ~ 1975년 사이 잭슨은 "Got to Be There", "Ben", "Music&me", "Forever Michael" 네 장의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Got to be there"는 앨범으로서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으며 "Ben"에서 발매한 싱글 〈Ben〉 은 빌보드 핫 100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마이클 잭슨의 유년 시절을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1973년부터 잭슨 파이브와 모타운은 갈등을 겪었다. 잭슨 형제들은 모타운 사운드에 벗어나 다채로운 사운드를 제작하여 음악을 하기 바랐으며 작사/작곡의 자유가 부여되길 원했지만 모타운은 이를 거부했다. 또 잭슨 파이브의 인기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1975년 잭슨 파이브는 모타운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모타운을 떠났다. 이후 CBS 레코드의 자회사 에픽 레코드와 계약한 뒤. 밴드 이름을 더 잭슨스(The Jacksons)로 바꿨다.
1976년 더 잭슨스는 에픽 레코드에서의 첫 앨범인 "The Jacksons"를 발매한다. 미국에서 53만 장이 판매됐으며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36위에 머물렀다. 마이클 잭슨은 앨범에서 "Blues Away"라는 노래를 단독으로 작사/작곡했고, 티토 잭슨과 함께 "Style of Life"를 작사/작곡했다. 1978년 발매한 "Destiny" 앨범에서 마이클 잭슨은 작사/작곡과 프로듀싱의 측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해 나갔다. 그중에서 마이클이 형제 랜디 잭슨과 함께 작사/작곡/프로듀싱한 "Shake Your Body (Down to the Ground)"는 미국에서 싱글로 200만 장이 팔렸고 빌보드 차트에서 7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1979년 발매한 "Triumph" 앨범의 9개의 수록곡 중 6곡의 수록곡에 마이클 잭슨이 작사/작곡/프로듀싱의 전 과정에 참여했으며 그중 "This Place Hotel"는 마이클 잭슨의 중요한 곡으로 자리 잡게 됐다. "Triumph" 앨범은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0위를 했고 평론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1979년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처음으로 함께한 앨범이자, 잭슨의 성인 커리어를 시작하는 앨범인《Off the Wall》을 발매했다. 빌보드 200에서는 3위를 기록했고 세계적으로 2,000만 장을 판매했다.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른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와 〈Rock with You〉를 포함해 〈Off the Wall〉, 〈She’s Out of My Life〉 총 네 장의 싱글을 10위권에 진입시켰다. 앨범은 많은 평론가들에게 세련된 디스코로 구성됐다며 호평과 인정을 받았다. 2003년에는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위에서 68위를 차지했다. 2008년 《Off the Wall》 은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1980년 마이클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울/알앤비 앨범, 가장 좋아하는 소울 알앤비 남자 아티스트, 가장 좋아하는 소울/알앤비 싱글 부문에서 수상하며 총 3관왕에 올랐다. 또 빌보드 연간 차트에서 탑 블랙 아티스트와 탑 블랙 앨범상을 받았고, 음악계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그래미상에서는 〈Don't Stop 'Til You Get Enough〉로 최우수 남자 알앤비 보컬 퍼포먼스 상을 받았다. 그러나, 마이클은 그래미에서 상을 얻었지만 무척이나 실망했다고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는데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에게도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을 고작 하나만 받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에 의하면 업계에서도 그래미의 잭슨에 대한 대우에 놀랐다고 한다. 마이클은 1980년 음반 도매 수익의 37%를 가져갔다. 이는 당시 음악 업계에서 가장 높은 로열티였다. 마이클은 《Off the Wall》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줬어야 했다고 생각했고 다음 앨범은 기대를 뛰어넘는 것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1982년 마이클 잭슨은 정규앨범 《Thriller》를 발매한다. 흑인은 흑인 음악을, 백인은 백인 음악을 할 당시에 인종이나 음악적 장르 구분을 완전히 무시하고 만들어진 이 앨범은 6600만 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다. 기네스북에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등재됐다. 대한민국의 경우 《Thriller》의 구체적 판매량은 조사된 적 없지만 1984년 3월 21일 자 동아일보 신문을 보면 음반시장이 좁아 라이선스 음반은 5천장만 팔려도 잘 나간다고 보는 우리나라에서도 스릴러는 5만 장이 팔렸다고 보도됐다.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37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발매된 7개의 싱글 'Billie Jean', 'Beat It', 'Thiller', 'The Girl Is Mine', 'Wanna Be Startin' 'Somethin', 'Human Nature', 'P.Y.T.(Pretty Young Thing)' 이 모두 빌보드 핫 100의 10위 안에 올랐으며 마이클 작사/작곡한 'Billie Jean'이 7주 동안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한 뒤, 'Beat it'이 정상을 차지했다. 한 가수의 곡이 1주일도 못돼 연속으로 차트 정상에 오른 경우는 비틀즈 이후 19년 만에 처음 있었던 일이다. 역시나 평론가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National Association of Recording Merchandisers》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3위를 차지했다. 《Thriller》앨범은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국립 음반 기록소에 등재됐다. 2008년에는 그래미 어워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Thriller》는 MTV의 장벽을 무너뜨린 라는 데서 큰 의미를 갖는다. MTV는 1981년 8월 개국하였는데 MTV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밥 피트먼은 방송의 구성을 로큰롤에만 제한했고, 당시만 해도 로큰롤은 백인들의 음악으로 결국 대부분의 흑인 가수들이 배제되는 상황이 초래됐다. 또 MTV는 로큰롤을 핑계로 흑인 가수들의 방송 출연을 거의 불허했으며 MTV 개국 직후 뮤직비디오 750개 중 흑인 가수들의 노래는 40개가 채 되지 않았
출처: 마이클 잭슨 (CC BY-SA)
확인된 구조화 정보, 사용자 의견, AI가 찾은 관계를 구분해 표시해요.
1978년 감독 시드니 루멧의 《마법사》에서 허수아비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 작업을 하고 있던 중 영화에서 연주될 악보를 편집한 퀸시 존스와 만났고, 잭슨의 다음 솔로 앨범 《Off the Wall》을 같이 제작할 것을 약속했다.
퀸시는 처음 마이클을 만났을 때는 지나치게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으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이클의 재능을 보게 되었고 "잭슨은 아티스트로서 모든 것을 갖추었다. 나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나가는 데 익숙한 훈련교관인데 사실 마이클에게는 나 같은 역할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는 두 곡의 리드 보컬 부분과 세 곡의 백 보컬 부분을 단 하루 만에 해냈다. 잭슨은 열심히 작업에 임했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이용료가 비싼 스튜디오에서 모든 것 (작사/작곡 등)을 해결하려 했는데 그것들은 나를 미치게 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같은 프로듀서들이 잭슨을 원했던 이유이다. 그는 준비된 상태였으며 단 한 번의 세션에서 아주 많은 것을 마무리했다. 내게 충격을 줄 만큼 감동적이었다."라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