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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Gwangju
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는 대한민국 서남쪽에 위치한 광역시였다. 2026년 7월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로 전라남도와 함께 통폐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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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는 대한민국 서남쪽에 위치한 광역시였다. 2026년 7월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로 전라남도와 함께 통폐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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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는 대한민국 서남쪽에 위치한 광역시였다. 2026년 7월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로 전라남도와 함께 통폐합되었다.
광주의 이름은 940년 고려의 태조가 통일신라 시절 무주로 부르던 이름을 광주로 개칭한 것에서 유래한다. 광주광역시는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와 함께 호남 지방을 구성하였지만 호남 지방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 행정적으로 광주가 부로 승격되고 서울과 호남 지방을 잇는 호남선이 광주를 관통하면서 광주는 호남지방의 경제 및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86년 11월 직할시로 승격되어 전라남도와 별도의 행정 체계를 가지고, 1995년 광주광역시로 개칭된 뒤 현재의 행정구역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광주광역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호남 지방의 정치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일제 강점기 시기 1919년 3·1 운동과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등 주요 독립 운동이 발생한 핵심 지역이기도 했고,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과 1987년 6월 민주 항쟁 등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대기업 중 하나였던 아시아자동차가 광주에 본사를 두면서 광주는 호남 지방의 공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영산강 서쪽 평동을 비롯한 지역에 공업지구가 조성되는 한편, 광주광역시에 호남 지방과 다른 지역을 잇는 항공, 철도, 도로 등이 건설되었다. 광주공항이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유일한 공항이며, 호남고속철도와 호남고속도로,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광주광역시와 대한민국 내 여러 다른 도시들을 이어주고 있다.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 광주과학기술원 등 고등교육기관이 있다. 2년마다 광주 비엔날레가 열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이 국책으로 진행됐다.
무진(武珍)은 한자어가 아니라 한자의 음과 새김을 빌려 한국어를 적은 것으로 진(珍)의 옛 한자 새김이 들, 돌인 것에서 무진(武珍)의 원래 발음은 무들, 물들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는 물+들(물이 많은 들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차자표기이기 때문에 무진(武珍)외에 무진(茂珍)이란 표기도 썼으며, 광주의 명산인 무등산의 이름인 무등(無等)도 같은 말의 차자표기로 추정된다. 광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주 영산포 일대를 이두로 수입이(水入伊: 물들이)라한 것으로 보아 옛날에 이 지역일대에 늪지대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삼한시대 마한에 속했고 백제 시대에는 노지(奴只)라는 이름이 보이며, 삼국통일 이후 신문왕 6년에 무진주라고 하였다가, 경덕왕이 무진주에서 무(武)자를 취하여 "무주"로 개칭하였다. 현재 쓰이고 있는 광주(光州)란 이름은 고려 태조 시기에 등장한다. 이후 행정구역의 변동에 따라 목(牧), 부(府), 현(縣), 군(郡) 등의 행정단위위계의 변동은 있었으나 명칭은 이어져 오게 된다.
광주광역시는 남쪽으로 남구 승촌동이 나주시 산포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북구 우치동이, 동쪽은 북구 용강동 영산강변 동부지역이 장성군 남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은 광산구 양동이 함평군 나산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서간, 남북간의 연장거리 간격은 각각 34.3km, 23.1km이다. 대한민국 서남부에 위치한 광주는 호남 지방의 중핵도시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광주를 기점으로 하여 나주시, 무안군, 목포시를 잇는 광목선, 영암군, 해남군, 완도군을 연결하는 광완선, 화순군, 순천시, 여수시를 연계하는 광려선, 담양군, 순창군, 남원시의 광남선, 장성군, 정읍시, 전주시를 연결하는 광전선 그리고 영광군, 고창군, 부안군을 연결하는 광부선 등 6개 방향의 중심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제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호남 지방 중추관리 기능도시로서의 역할도 병행하고 있다.
광주는 동부 산악지와 서부 평야지대의 점이지대라고 할 수 있다. 광주의 지형은 노년기에 속하여 대체로 준평원화된 구릉성 지대라고 보면 된다.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남지방의 산세를 보면 북쪽에 노령산맥이 동서방향으로 뻗어 전북과 불규칙한 경계를 이루고, 동쪽에 소백산맥이 남북방향으로 뻗어 경남과 경계를 이루어 전라남도는 두 산맥의 울타리 사이에 자리한다. 광주평야는 노령산맥과 소백산맥의 지맥들 사이의 영산강 유역에 분포하며, 광주천과 그 소지류 및 극락강 유역에 연속되어 나타나고 있고 영산강 본류를 따라 인접한 나주 등지로 이어져 결국 나주평야의 일부를 형성한다.
광주광역시의 기후 특성은 서해안형과 내륙형의 중간형으로 대체로 서해안형에 가까운 특성을 보이고 있다. 겨울에는 몽골부근에서 그 세력을 우리나라쪽으로 확장하는 한랭한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삼한사온의 날씨를 보이며, 여름에는 북태평양 동부에 중심을 두고 그 세력을 아시아쪽으로 확장하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무더우나 초여름과 늦여름에는 장마기가 있어 호우에 의한 기상재해가 발생하며, 태풍의 피해가 잦은 특징이 있다. 봄과 가을에는 중국에서 이동하는 이동성고기압의 영향으로 건조하고 맑은 날이 많다. 2010년도 광주지방의 평균기온은 전년도와 유사한 14.2 °C이었으며 8월에는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28.1 °C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연중 강수총량은 1,573.1mm로 전년도보다 84.9mm가 많았으며 7월에는 2010년에 가장 많은 강수량인 453.0mm가 내렸다.
광주광역시에는 5개 자치구(광산구, 동구, 서구, 북구, 남구)와 90개 동이 있다. 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580,427세대, 1,472,199명이다. 면적은 501.18km2이다.
동구는 전통적으로 광주의 중심지로, 구 전라남도청과 구 광주시청이 자리잡고 있다. 5.18 운동의 중심이 된 금남로와 충장로가 있으며 황금동, 대인동 등의 번화가가 자리잡고 있으며, 구 전남도청과 전남도의회가 있던 자리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있다. 북구 역시 광주의 중심지로 북구 중흥동에는 광주 교통의 중심지였던 광주역이 위치한다.
남구는 주월동, 봉선동 등의 주택가가 자리잡고 있으며 서구에는 상무 신시가지가 개발되었으며 현재 시청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광산구는 원래 광산군 지역이었으며 광주송정역 주변의 송정동이 광산구의 주요 시가지이다. 광산구에는 첨단지구 및 신가지구, 신창지구, 운남지구, 하남1, 2, 3지구, 수완지구, 선운지구, 북구에는 첨단2지구가 완료되었으며 남구의 효천지구 등이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광산구에 광주과학기술원(GIST), 삼성전자 공장, 북구에 국립광주과학관, 서구 및 광산구에 기아의 공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대도시권 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대통령령)의 별표 1(대도시권의 범위(제2조관련))에 의하여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나주시, 담양군, 장성군, 화순군, 함평군이 광주권으로 규정된다.
광주는 전라도 지역의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로서, 조선 시대 이래 고을과 장시(場市)가 발달하였으나 인구는 수만 명 수준에 머물렀다. 호남의 곡창지대를 배후에 두었으나, 본격적인 도시적 성장은 근대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1910년대 이후 광주는 전라남도의 도청 소재지로 지정되면서 행정적 중심지가 되었고, 농산물 집산지로서 기능이 강화되었다. 1920년대 이후 철도(호남선)와 도로망이 정비되면서 상업·교통 중심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 인구는 약 3만 명에서 1940년대에는 10만 명을 상회하였다.
광복 직후 귀환민과 한국전쟁 피난민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특히 전쟁 시기 호남 내륙의 안전지대로 기능하면서 도시의 인구가 빠르게 팽창하였다. 이로써 광주는 호남의 거점 도시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1960년대 이후 광주는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부상하였다. 농촌에서의 이농 현상으로 유입된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경공업과 서비스업 발달이 도시 성장을 뒷받침하였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정치·역사적 상징 도시로 부각시켰으며, 이후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였다. 인구는 1960년대 40만 명 수준에서 1980년대 중반에는 100만 명을 돌파하였다.
1986년 광주는 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광역시로 전환되었다. 이 시기에 주거단지와 산업단지가 확장되면서 인구는 약 130만 명에 도달하였다. 광주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 ‘빛의 도시’로서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인구가 약 145만 명을 상회하였으나, 수도권 집중화와 청년층의 외부 유출로 증가세가 둔화되었다. 또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인해 인구 구조는 점차 변화를 겪었다.
2025년 기준으로 광주광역시의 인구는 약 143만 명 내외로 추산된다. 인구는 정체 또는 소폭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호남권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서의 위상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특히 광주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 도시이자, 최근에는 첨단과학산업단지(광주과학기술원, 광주 첨단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미래 산업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광주는 산지와 평야의 2개 이질 지역 접촉지대에 발달한 군사·행정상 및 교역상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충장로·금남로 일대가 상업의 중심지이며 ‘교육도시’라고 일컬을 정도로 대학 및 각급 학교가 많아 전남 문화의 중심지로 되어 있다. 광주에는 국립 전남대학교를 비롯하여 조선대학교·광주대학교·호남대학교·광주교육대학교 등 8개의 4년제 대학교, 조선간호대학교 등을 포함한 8개의 전문대학이 있다. 초등학교 108개교, 중학교 69개교, 고등학교 58개교 등에 38만여 명이 재학하고 있다.
광주에는 방송사 8개와 신문사 6개가 있다.
주요 스포츠 시설로는 북구 임동에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가 있으며, 서구 풍암동에 광주월드컵경기장, 광주축구전용구장, 페퍼스타디움이 있다.
동구 광산동에 전라남도청이 있었으나, 전라남도청은 2005년에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로 이전했다. 현재는 그 자리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있으며, 문화전당역과 연결된다. 서구 치평동에 광주광역시청이 자리잡고 있다. 사법기관으로 광주 지방 법원과 광주 고등 법원이 있고 검찰 사무를 담당하는 광주 지방 검찰청 및 광주 고등 검찰청과 치안업무를 담당하는 광주지방경찰청이 있다. 서구 상무동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5.18 기념공원이 조성되었으며 북구 망월동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립 5.18 민주묘지가 있다.
2012년 광주광역시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26조 7,700억 원이며, 실질성장률은 0.7%이다.
우리시 신재생에너지 기업현황(연도별)
우리시 신재생에너지 기업현황(분야별)
출처: 광주광역시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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