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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공화국(印度共和國, 힌디어: भारत गणराज्य 바라트 간라즈여, 영어: Republic of India 리퍼블릭 오브 인디아[*]), 약칭 인도(印度, 영어: India 인디아[*])는 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로, 인도 아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2023년 이래로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국토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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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공화국(印度共和國, 힌디어: भारत गणराज्य 바라트 간라즈여, 영어: Republic of India 리퍼블릭 오브 인디아[*]), 약칭 인도(印度, 영어: India 인디아[*])는 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로, 인도 아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2023년 이래로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국토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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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공화국(印度共和國, 힌디어: भारत गणराज्य 바라트 간라즈여, 영어: Republic of India 리퍼블릭 오브 인디아[*]), 약칭 인도(印度, 영어: India 인디아[*])는 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로, 인도 아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2023년 이래로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국토 면적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넓다. 서쪽으로는 파키스탄, 동쪽으로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남동쪽에는 벵골만, 남서쪽으로는 아라비아해, 남쪽으로는 인도양과 맞닿아 그 주변으로 스리랑카, 몰디브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네팔, 부탄, 중국과도 맞닿아 있다.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의 해상 경계는 태국, 인도네시아와 접해 있다. 수도는 뉴델리이다. 주요 도시로는 뭄바이, 첸나이, 벵갈루루, 하이데라바드, 콜카타 등이 있다.
고대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이자 역사적인 무역로였으며 거대한 제국이 있었던 인도 아대륙은 오랫동안 그 지정학적 지위와 경제·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아왔다. 인도는 4개의 종교(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의 발상지이며, 또한 기원 후 천 년 동안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이 인도에 영향을 미쳐 현재의 인도의 다양한 종교 문화를 만들었다. 18세기 초부터 서서히 영국 동인도 회사의 관리 아래에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19세기 중반 영국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간디가 주도한 비폭력주의 독립 운동으로 1947년에 독립을 하게 된다.
인도는 총 GDP 규모로는 세계에서 5번째로 높다. 2011년 기준 세계은행이 발표한 1인당 국민소득(1인당 GDP)은 1,410달러로 저소득 국가이다. 1991년, 인도는 GDP 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되었고, 현재 신흥공업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만성적인 빈곤, 문맹, 열악한 공중보건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핵 보유국이자 지역 강국인 인도는 세계에서 상비군이 3번째로 많은 국가이며, 군비지출은 세계에서 10번째로 높다. 인도는 연방제 공화국이며, 28개의 주와 8개의 연방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도는 WTO, SAARC, 브릭스, G-20, 영국 연방 등의 회원국이며,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사는 다문화 사회로, 종교 사상과 인도 영화, 인도 요리 등의 문화가 발전해 있다.
인도의 문명은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생한 인더스 문명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졌다. 인더스 문명과 초기 인도 문명은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같은 도시에서 번성했는데 기원전 2500년경에 형성된 이 도시는 광대한 거리 체계와 목욕탕과 화장실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모인 수준에 불과해서 조폭이나 원시인 정도는 막을 수 있었으나 기원전 1500년~1200년경 인도아리아인들이 이란 고원을 넘어 인도를 정복하고 도시들을 건설하기 시작하자 거의 저항하지 못 했다. 아리아인들은 베다 문명을 건설하였다. 아리아인들은 카스트로도 알려진 Varna 같은 신분을 내세웠는데 이는 사실 직업이 아니라 혈통에 근거했다. 아리아인들은 원주민 혼혈들도 천민으로 탄압했으나 순혈 원주민들에 대해서도 별로 자비롭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 아리아인들의 베다 신앙에서 브라만교가 탄생했고, 산스크리트어가 발전해 이후 2,000여 년 동안 인도의 공용어로 사용했다. 인도의 문명은 4대 문명 중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가 가진 충적토는 농업에 큰 도움을 제공하여 국가가 아닌 지역으로 계산하면 인도는 문명이 등장한 이후 언제나 가장 인구가 많았다. 인도에선 카스트로 불리는 신분제가 발달하여 인도 귀족들의 지배를 받지 않은 인도인이나 내부의 천민 집단 혹은 외국인을 불가촉천민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인도에서도 직업보단 혈통이 중요하였으며 이슬람인들도 침략자인 아슈라프가 정복당한 아즐라프, 아르잘 등을 혈통을 기준으로 차별한 역사가 있어 현재까지도 파스만다 문제가 있다. 인도 귀족들이 숭배했던 전사의 다르마는 호전적이거나 비정한 성격을 가져서 마하바라타에 의하면 친족도 주저없이 죽이라고 신이 권하며, 자신들에 의해 고통받는 피지배층을 도덕이나 혐오 등에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살육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이보다 늦은 기원전 6세기에 등장했다. 십육대국이 들어선 북인도는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기원전 321년경 ~ 기원전 185년)의 통치 아래 마우리아 제국으로 통합되었고 그 손자인 아소카 대제의 시대에는 인도 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한 대제국으로 확장되었으며, 남인도의 타밀라캄 지역에는 촐라, 판디아, 체라 등의 왕국들이 난립하였다. 아소카바다나 같은 불교 문헌엔 아소카를 찬양하는 내용이 있으나 동시에 칼링가 전쟁 이후의 학살과 고문도 미화해서 논란이 있다. 인도는 마우리아 제국의 붕괴 이후 수많은 소왕국이 난립하였으며 굽타 제국(320년 ~ 550년) 시대에 브라만교가 힌두교로 발전하였다.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은 1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14세기 초, 모하마드 이븐 투글루크가 델리 술탄국의 세력을 확장하는 등 세력을 확장하고 무슬림 왕국들을 세워 통치하였다. 남인도에서도 역시 이슬람계 바만 왕조가 성립(1347년)되어 1527년까지 명맥을 유지했으며 이와 함께 힌두 왕국인 비자야나가라 제국이 1336년에서 1556년에 걸쳐 인도의 남부 지방을 양분하며 통치했다. 문명적인 잔혹함을 지니고 있었던 이슬람인들은 1,000년 동안 힌두인들에게 큰 피해를 입혀서 힌두인들은 이슬람인들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 한편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여행(1498년)을 기점으로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하여 인도와 유럽 사이의 무역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피부가 하얀 백인 침략자들은 인도사에 있어서 대체로 지배층이었으나 인도 귀족들에 의해 학살을 당하거나 수드라 이하의 신분이 될 수도 있었다. 마누법전 등에 의하면 인도 천민들의 생활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탐구된다. 인도의 귀족들은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귀족제로 지배하기 위해 카스트를 발전시켰으며 특히 차별을 심하게 받는 수드라 이하의 천민들은 불만이 대단했으나 인도 귀족들의 현실적이고 비정한 지배 시스템에 의해 저항할 힘을 가질 수 없었고 귀족들을 향한 반란도 항상 비참한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피지배층끼리의 학살이나 동화 등에 굳이 관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16세기 초, 한때 델리 술탄국에 의하여 통치되고 있던 인도 북부 지역은 우월한 기동성과 화력을 기반으로 한 중앙아시아의 전사들에게 점령당했다. 그러나 인도 귀족들은 국가나 민족이 망해도 개인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 전부를 제압하는 일이 전근대 수준으론 언제나 거의 불가능했다. 인도의 귀족들은 외부 정복자들에 의해 공적인 신분이나 지위를 잃기도 했으나 그들이 가진 힘을 바탕으로 다시 귀족 신분을 얻었다. 신화적인 역사가 많은 인도와 달리 현실적이고 냉혹한 지배자들도 인도에선 자주 출현했으며 인도 귀족들은 현실적인 방법들을 딱히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외부의 정복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긴 사람들이 있으며 인도의 귀족들은 최후까지 영토의 40%와 인구의 23%를 지배하였다. 무굴 제국은 처음에는 인도의 귀족 가문들을 공격하고 그들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인도의 평민들과 달리 쉽지 않은 저항에 결국 그들을 제국 귀족들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들은 귀족 군대에 대한 징발과 세금 및 조공 납부, 이슬람인들의 안전과 우월성 인정 등을 대가로 높은 지위와 영토에 대한 불간섭을 보장 받고, 제국 전체에서 권리를 확보했으며, 귀족들은 이슬람 개종에 대한 강요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았다. 무굴은 명군 악바르 대제의 재위기에 이슬람교를 전국에 퍼뜨리고 갈등을 완화하였으며, 황제를 신성화시키고 페르시아의 풍요로운 문화와 인도의 고유 문화를 결합하여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무굴 제국은 주로 모든 세입을 농업에서 걷었으며, 안정적인 경제 구조를 운용하여 은으로 세금을 걷는 등 선진적인 경제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시장 자체의 규모가 커졌으며, 농부들과 예술가들이 대거 발흥하여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하였다. 17세기에는 무굴 제국의 통치 하에 인도는 안정기를 되찾았으며,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하였다. 귀족들은 회화, 문학, 직물, 건축들을 후원하였으며, 무굴 제국의 통치하에 마라타인, 라지푸트인들, 시크인들과 같은 새로운 민족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무굴 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대신 지역에서 군사적, 경제적인 특권을 누렸으며, 점차 고유적인 정체성을 형성해나갔다. 상업의 팽창은 인도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 새로운 상인 엘리트층들의 형성을 유도하였다. 다만 점차 18세기 들어 제국이 쇠퇴기에 들어가자, 이 엘리트층들은 스스로 생존을 위하여 독립적인 세력들을 만들어 자치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1526년 바부르가 세운 이 제국은 악바르와 아우랑제브 치세 동안 세력을 확장하고 최고의 번영을 누렸으나 이후 마하라슈트라를 중심으로 형성된 힌두 왕국인 마라타 제국이 17세기말 세력을 뻗치면서 위협받기 시작했다. 샤 자한과 아우랑제브는 이슬람의 번영을 위하여 힌두와 시크교, 라지푸트를 정복하려고 했고 수많은 이교도를 살해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많은 반란과 전쟁에 시달리게 되었다.
18세기 초에는 인도의 경제와 정치가 점차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하였고, 영국 동인도회사와 같은 유럽의 무역 회사들이 해안가로 진출하여 인도의 경제를 차츰차츰 잠식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막강한 해군력, 해외 식민지들에서의 자원, 발달된 무기술 등으로 인하여 점차 인도 엘리트층의 관심과 후원을 받기 시작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처음에는 이 엘리트층들의 지지를 받아 1765년에 벵갈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하였으며, 다른 유럽 열강들의 인도 진출을 막아 독점적인 지배권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과 동인도 회사는 부유한 벵골 지역을 이용하여 점차 힘을 키워나갔고, 무력으로 1820년대에는 인도 대부분의 지역들을 거의 다 통치하게 되었다. 인도는 더 이상 특산품들을 해외로 수출하지도 못했고, 그대신 대영 제국에게 원자재들을 공급하는 광산 수준으로 전락하였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때부터를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기로 본다. 이쯤되는 시기에 영국 동인도 회사는 영국 의회의 지원, 그리고 군대의 지원을 받아 교육, 사회, 문화와 같은 비경제적인 분야에까지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사학자들은 현대 인도가 1848년과 1885년 사이 쯤에 시작하였다고 구분한다. 1848년에 달후지 경이 동인도회사의 사장으로 부임하여 현대 국가로서의 변환을 주도하였다. 이는 주권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잡을 수 있게 하였고, 이후 인도의 독립의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영국은 자치권, 인구 조사, 공공 교육 등을 실시하였으며, 운하, 철도, 전보선 등을 깔아 기술의 현대화도 촉진하였다. 이는 유럽에도 이같은 신문물들이 깔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깔린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 착취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고, 1857년에는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혹독한 지세, 사회적인 차별, 사회적인 개혁 조치 등에 반발하여 여러 지역에서 동시적, 산발적인 반란들이 일어난 것이다. 반란은 주로 인도 중부와 북부 지역에 집중되어 일어났고, 동인도회사의 지배 자체를 뒤흔들었다. 1858년 즈음이 되자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이 반란으로 인하여 동인도회사의 직접 지배는 해산되었고 영국 정부가 직접 인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또한 시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하여 제한적이나마 영국적인 의회 제도를 도입하였고, 경호원들을 동원하여 봉건 지주들과 귀족들을 보호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공 사회의 질은 인도 전역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결국 1885년에는 인도 독립의 초석을 놓은 인도 국민회의가 창설되었다.
기술의 발전, 농업의 상업화가 19세기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고, 경제적인 발전이 진행됐으며 많은 소규모 자영농들이 해외 시장에 의존적으로 변모하였다. 다만 막대한 양의 곡물들이 해외로 방출되며 대규모 기근들이 횡행하였다. 인도의 인프라는 영국 본토에 비하여 훨씬 열악한 상태였고, 인도인들은 실업 상태에 놓여있었다. 다만 장점들도 몇몇 있었는데, 특히 수로가 깔린 펀자브 지방은 인도 국내의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막대한 양의 곡물들을 새로
출처: 인도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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