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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Bosnia and Herzegovina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어·크로아티아어: Bosna i Hercegovina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어: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 문화어: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줄여서 보통 보스니아는 동남유럽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로 동쪽으로는 세르비아, 동남쪽으로는 몬테네그로,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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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어·크로아티아어: Bosna i Hercegovina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어: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 문화어: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줄여서 보통 보스니아는 동남유럽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로 동쪽으로는 세르비아, 동남쪽으로는 몬테네그로,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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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어·크로아티아어: Bosna i Hercegovina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어: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 문화어: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줄여서 보통 보스니아는 동남유럽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로 동쪽으로는 세르비아, 동남쪽으로는 몬테네그로, 북쪽과 서쪽은 크로아티아와 접한다. 이 나라는 거의 내륙국에 가까운데, 남쪽으로 아드리아해와 맞붙은 유일한 마을인 네움을 낀 해안선의 길이는 20 km에 불과하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은 추우며 눈이 많이 내린다. 국토 중부와 동부는 산악 지대이며 서북부는 구릉지이고 동북부는 대부분이 평지이다. 국토 남단의 헤르체고비나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산악 지대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는 사라예보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신석기 시대에는 부트미르, 카칸, 부체돌 문화의 마을과 같은 여러 인간의 정주지 흔적이 발견된다. 원시 인도유럽인이 최초로 도래한 이후에는 여러 일리리아와 켈트족 문명이 거주했다. 오늘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민족을 이루는 기원인 남슬라브족의 조상은 6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도래했다. 12세기에는 보스니아 반샤그가 세워졌고, 14세기에는 보스니아 왕국으로 발전했다. 15세기 중반에는 오스만 제국에게 합병되어 19세기 후반까지 지배를 받았으며 오스만 제국은 이 지역에 이슬람을 전파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사이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전간기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편입되며 처음으로 완전한 공화국 지위를 부여받았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며 보스니아는 독립을 선언했다. 1995년 말까지 지속된 보스니아 전쟁 끝에 데이턴 협정으로 종결되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소위 구성 민족이라 불리는 3대 민족 집단이 있다. 가장 규모가 큰 민족은 보슈냐크인(인구의 48%)이며, 두 번째는 세르브인(37%), 세 번째는 크로아트인(14%)이다. 그 외 소수민족으로 유대인, 롬인, 알바니아인, 몬테네그로인, 우크라이나인, 투르크인 등이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양원제 입법부와 세 구성 민족에서 각각 한 명씩 선출한 3인의 대통령으로 구성된 대통령제 국가이다. 하지만 국가가 매우 분권화되어 있어 중앙정부의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크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이라는 두 자치단체와 지방 정부가 별도로 존재하는 브르치코 행정구로 구성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개발도상국이며 인간 개발 지수 기준 74위를 차지했다. 경제는 주로 제조업과 농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관광업과 서비스업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관광업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여러 사회 보장 체계와 보편 의료보험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초중등교육은 무상으로 제공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유엔 회원국이자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유럽 평의회,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 중앙유럽 자유 무역 협정의 회원국이며 2008년 7월 수립된 지중해 연합의 창립국이다. 또한 유럽 연합 후보국이며 2010년 4월부터 NATO 회원국 후보기도 하다.
'보스니아'(Bosnia)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헌은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7세 시기 기원후 10세기 중반(서기 948년에서 952년 사이)에 작성된 정치, 지리에 관한 서적인 《데 아드미니스트란도 임페리오》로 이 책에서 그리스어로 '세르브인'을 뜻하는 '보소나'(Βοσώνα)와 '작은 땅'을 뜻하는 '코리온'(χωρίον)를 합친 단어로 설명했다. 또한 보스니아를 'DAI'(보스니아의 작은 땅이라는 뜻, χωριον βοσονα)이라며 '세례받은 세르비아의 땅'이라고도 불렀다. 서적 섹션은 세르비아 공작의 땅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보스니아는 세르브인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별도의 영토로 취급했다.
지역 이름은 보스니아의 중심부를 흐르는 보스나강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정된다. 문헌학자 안톤 메이어는 보스나(Bosna)라는 이름이 일리리아어의 'Bass-an-a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다시 "흐르는 물'을 뜻하는 원시 인도유럽어 어근인 'bʰegʷ-'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중세학자인 윌리엄 밀러는 보스니아의 슬라브 정착민이 "라틴어 지명을 받아들이면서 ... 보스나 개울을 따와 자신을 부르는 언어를 바산테라고 하고, 스스로를 '보슈냐크'(Bosniaks)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헤르체고비나'(Herzegovina)라는 단어는 '헤르초크의 땅'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헤르초크(herzog)는 독일어로 '공작'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훔과 해안의 헤르초크'(1448년)이었던 15세기 보스니아의 지도자 스체판 북치치 코사차의 칭호에서 유래되었다. 여기서 훔(Hum)은 자훔레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14세기 전반 보스니아 반샤그가 정복한 중세 초기 공국의 영토였다.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장악했을 땐 헤르체고비나 산자크(헤르세크, Hersek)로 불렀다. 이후 영토는 보스니아 에야레트에 있다가 1830년대 단명한 헤르체고비나 에야레트으로 분할되었으나 1850년대 다시 재병합되었으며 두 에야레트를 하나로 묶어 보통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2년 최초 독립 선언 당시 국가 공식 명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이었으나 1995년 데이턴 협정과 이에 따른 신헌법에 따라 공식 명칭은 연방제 국가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바뀌었다.
보스니아는 최소한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해 왔다. 특히 스톨라츠 근처의 바단 동굴에는 약 기원전 13,000년에서 1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말 형상의 동물 그림이 새겨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 중 하나가 있다. 신석기 시대 보스나강 유역에서 부트미르 및 카카니와 같은 중요한 문화가 나타났다. 기원전 5100년에서 4500년경에 번성한 부트미르 문화는 독특한 도자기와 인간 형상의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사라예보 근처의 발굴 현장에서는 이 문화의 정교하게 장식된 도자기와 사실적인 인간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8세기부터 일리리아의 각 부족은 왕국으로 발전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일리리아 왕국과 왕조로는 다르다니아의 바르딜리스와 아르디아이 왕국을 세운 마지막이자 가장 잘 알려진 일리리아 왕 일리리아의 아그론의 왕국이 있다. 아그론은 아르디아이를 통치했으며 다른 부족에게까지 통치권을 확대했다. 기원전 7세기부터 청동은 철로 대체되었고, 이후에는 장신구와 예술품만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북쪽의 할슈타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리리아 부족은 약간씩 다른 지역 중심지를 형성했다. 중앙 보스니아의 일부는 다에시티아테스 부족이 거주했다. 철기 시대의 글라시나츠-마티 문화는 아우타리아타에 부족과 관련이 있다.
일리리아 지역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은 죽은 자에 대한 숭배였으며, 이는 정성스러운 매장과 장례 의식, 곳곳에서 보이는 무덤에서 엿볼 수 있다. 기원전 4세기에 켈트족의 첫 번째 침입이 기록되었다. 그들은 도자기 돌림판 기술, 새로운 유형의 피불라(안전핀과 유사한 작은 걸쇠), 다른 종류의 청동 및 철제 벨트를 가져왔다. 그들은 그리스로 가는 길에 이 지역을 통과했다.
남쪽의 네레트바강 삼각주에는 일리리아 다오르족의 중요한 헬레니즘 문명적 영향이 보인다. 그들의 수도는 스톨라츠 근처 오샤니치에 있는 다오르손이었다. 기원전 4세기의 다오르손은 거대한 사다리꼴 석재 블록으로 구성된 5 m 높이의 거석기념물 석벽(그리스 미케네의 것과 비슷한 규모)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오르족은 독특한 청동 동전과 조각품을 만들었다.
일리리아와 고대 로마 사이의 갈등은 기원전 229년에 시작되었지만 로마가 이 지역의 병합을 완료한 것은 서기 9년이었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기술했듯이 로마가 포에니 전쟁 이후 역사상 가장 어려운 전투 중 하나를 치른 곳이 바로 오늘날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다. 이는 일리리쿰에 대한 로마의 작전으로 일명 "벨룸 바토니아눔"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갈등은 일리리아인을 징집하려는 시도 이후 발생했으며 4년간(서기 6~9년)의 반란 끝에 그들은 진압되었다. 로마 시대에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온 라틴어 사용 정착민이 일리리아인들 사이에 정착했고 로마 군인은 이 지역에서 퇴직하도록 장려받았다.
서기 337년에서 395년 사이 로마 제국이 분열하자 달마티아와 판노니아는 서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지역은 서기 455년에 동고트족에게 정복되었다. 이후 알란인과 훈족 사이에서 주인이 바뀌었다. 6세기경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는 동로마 제국을 위해 이 지역을 재정복했다. 6세기와 7세기에는 슬라브족이 발칸반도를 휩쓸었다. 일리리아의 문화적 특성은 남슬라브족에게 흡수되었는데 이는 특정 관습, 전통 및 지명에서 입증된다.
고대 슬라브족은 6세기와 7세기 초(게르만족의 대이동 시기)에 보스니아를 포함한 발칸반도 서부를 습격했으며, 동로마인에게 스클라베니라고 알려진 단일 슬라브 연맹에서 파생된 소규모 부족 단위로 구성되었다(이와 관련된 안테스인은 대략적으로 발칸반도 동부를 식민화했다). "세르브인"과 "크로아트인"이라는 민족명으로 기록된 부족은 7세기 2분기에 이동한 별개의 사람들로 묘사되는데, 그 수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확한 정체성이 학술적 논쟁의 대상인 이 초기 "세르브" 및 "크로아트" 부족은 주변 지역의 슬라브족을 압도하게 되었다. 노엘 맬컴에 따르면 부족 단위의 크로아트인은 "드리나강 계곡의 동쪽 띠 부분을 제외한 보스니아 본토의 대부분을 포함하여 대략 오늘날의 크로아티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정착"했고, 부족 단위의 세르브인은 "오늘날의 세르비아 남서부(나중에 라슈카로 알려짐)에 해당하는 지역에 정착하여 점차 두클랴와 훔 영토로 통치권을 확대"했다. 한편 존 반 앤트워프 파인 주니어는 크로아트 부족의 정착이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보스니아 서부를 포함하며, 나머지 보스니아는 초기 세르브와 크로아트 통치 사이의 영토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또한 보스니아는 10세기 중반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7세의 《제국 행정론》에서 '호리온 보소나(horion Bosona)'라는 땅으로 처음 언급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세르브인과 그들이 현재 거주하는 나라"라는 제목의 장 끝부분에 나온다. 여러 학자들이 이 내용을 여러 방식으로 해석되었으며, 특히 세르브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학자들이 보스니아가 원래 "세르브인의 땅"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다른 학자는 해당 장에 보스니아가 포함된 것이 단지 당시 보스니아에 대한 세르비아의 대공 차슬라브의 일시적인 통치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콘스탄티노스 7세가 보스니아가 "세르브인의 땅"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적은 없다고 지적한다. 사실 '보소나(보스니아)'라는 단어가 나타나는 핵심 문장의 번역 자체가 다양한 해석의 대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스니아는 자신을 보스니아인이라고 부르는 그들만의 통치자 아래 하나의 단위를 형성했다. 보스니아는 다른 영토들과 함께 11세기에 두클랴의 일부가 되었지만 고유한 귀족과 제도를 유지했다.
중세 성기 동안 정치적 상황으로 보스니아 지역은 헝가리 왕국과 동로마 제국 사이에서 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12세기 초 두 제국 사이의 또 다른 권력 이동 이후 보스니아는 양측의 통제에서 벗어나 보스니아 반샤그(지역 반들의 통치하)로 부상했다.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보스니아 반은 반 보리치이다. 두 번째는 반 쿨린이었는데, 그의 통치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간주되는 보스니아 교회와 관련된 논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교회 정치를 이용하여 보스니아에 대한 주권을 되찾으려는 헝가리의 시도에 대응하여 쿨린은 1203년 지역 교회 지도자의 의회를 소집하여 이단을 포기하고 가톨릭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의 야망은 1204년 쿨린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변함없었으며 1254년의 실패한 침공 이후에야 잦아들었다. 이 시기 동안 주민은 도브리 보슈냐니("선량한 보스니아인")라고 불렸다. 세르브와 크로아트라는 명칭은 주변 지역에서 가끔 나타나기는
출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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