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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연방공화국(버마어: 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삐다운주 산머다 미어마 나인응안도, 버마어 발음: [pjìdàʊɴzṵ θàɴməda̰ mjəmà nàɪɴŋàɴdɔ̀], 문화어: 먄마 련방공화국), 약칭 미얀마(버마어: မြန်မာ 미어마, 버마어 발음: [mjəmà], 문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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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연방공화국(버마어: 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삐다운주 산머다 미어마 나인응안도, 버마어 발음: [pjìdàʊɴzṵ θàɴməda̰ mjəmà nàɪɴŋàɴdɔ̀], 문화어: 먄마 련방공화국), 약칭 미얀마(버마어: မြန်မာ 미어마, 버마어 발음: [mjəmà], 문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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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으로 조사 시작하기미얀마 연방공화국(버마어: 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삐다운주 산머다 미어마 나인응안도, 버마어 발음: [pjìdàʊɴzṵ θàɴməda̰ mjəmà nàɪɴŋàɴdɔ̀], 문화어: 먄마 련방공화국), 약칭 미얀마(버마어: မြန်မာ 미어마, 버마어 발음: [mjəmà], 문화어: 먄마)는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북서쪽으로 방글라데시와 인도와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동쪽과 남동쪽에는 라오스와 태국이 자리하고 있고 남쪽과 남서쪽에는 안다만해와 벵골만이 있다.
미얀마 연방공화국(버마어: 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삐다운주 산머다 미어마 나인응안도, 버마어 발음: [pjìdàʊɴzṵ θàɴməda̰ mjəmà nàɪɴŋàɴdɔ̀], 문화어: 먄마 련방공화국), 약칭 미얀마(버마어: မြန်မာ 미어마, 버마어 발음: [mjəmà], 문화어: 먄마)는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북서쪽으로 방글라데시와 인도와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동쪽과 남동쪽에는 라오스와 태국이 자리하고 있고 남쪽과 남서쪽에는 안다만해와 벵골만이 있다. 미얀마는 인도차이나반도 내에서 가장 면적이 크며, 아시아에서 10번째로 큰 국가이다. 수도는 네피도이고 최대 도시는 양곤이다.
고대 미얀마에서는 북부에서는 쀼족이 살고 있었으며, 남부에서는 몬족이 모여 왕국들을 세워 살고 있었다. 이후 9세기경, 현재 미얀마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인 버마족이 들어와 1050년대에 버간 왕국을 세웠고, 점차 세를 넓혀 나가며 버마족의 언어, 문화, 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미얀마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버간 왕국은 몽골족의 대침공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말았고, 그 자리에서 여러 소왕국들이 난립하여 패권을 다투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따웅우 왕조에 의하여 통일되었고, 이후 잠시 동안이나마 동남아 역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군림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초반에는 꼰바웅 왕조가 현재의 미얀마 지역과 함께 마니푸르와 아삼 지역까지 통치하였다. 그러나 영국-버마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부터는 점차 영국 동인도회사에게 국권을 침탈당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에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잠시동안 일본 제국의 침략을 받아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연합국에 의하여 해방되어 1948년에 독립을 쟁취해냈다. 그러나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62년에 네 윈 주도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다.
미얀마는 독립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주류인 버마족과 수적 열세인 소수민족들 간의 민족 분쟁으로 인하여 기나긴 내전을 겪어 왔다. 이 내전이 워낙 격렬했기에, 수많은 인권 탄압과 잔인한 학살들이 벌어지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냈다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결국 2011년에 군부가 2010년 총선의 결과를 수용하면서 군부 정권은 공식적으로 해산하였고, 그 자리를 문민 정부가 들어서 민주주의의 기틀을 놓았다. 이후 국부인 아웅 산의 딸인 아웅산수찌 등이 권력을 잡았고, 이후 경제적 제재를 완화하고 외교 갈등을 해소하면서 인권, 경제 부문 전반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때마저도 소수 민족에 대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종교적, 민족적 충돌은 여전하였다. 2015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문민정부와 민주주의를 더더욱 굳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총선 결과에 반발한 군부가 민 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결국 2021년 2월 1일에 쿠테타를 일으켰고, 권력을 장악하며 막 자라나던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고 말았다.
미얀마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비동맹 운동, ASEAN, BIMSTEC의 회원국이다. 보석류, 옥, 석유, 천연가스, 자연자원 등이 매우 풍부하며,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메콩 강 유역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의 태양광 발전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2013년 기준으로 명목 GDP는 5,670만 달러이며, PPP는 2억 2,150만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다만 빈부 격차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대부분의 부를 군부와 관련된 인물들이 틀어쥐고 있다. 2020년 기준, 미얀마의 인간개발지수는 189개국 가운데에서 147위를 차지했다.
다수 민족인 버마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버마(버마어: ဗမာ, 버마어 발음: [bəmà], 영어: Burma)라는 국명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으나, 1989년 미얀마의 군사 정권이 '버마'라는 호칭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잔재이며 버마족 외에 다른 135개의 소수민족을 아우르지 못한다면서 더 오래된 명칭인 미얀마(버마어: မြန်မာ, 버마어 발음: [mjəmà], 영어: Myanmar)로 국호를 공식 변경하였다. 한편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민주화 인사들은 여전히 군사 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영국 정부 등도 반체제 인사들의 예를 따라 버마라고 부르다가 미얀마 정부의 항의가 이어지자 미얀마와 버마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비르마니아(Birmania)라고 불리며 미얀마의 정치적 상태를 잘 모르는 제3국들은 여전히 버마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1991년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얀마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문화어 표기법에 따라 먄마라고 부른다. 유엔은 '회원국이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미얀마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대한민국의 언론사인 경향신문은 공개적으로 미얀마 표현을 영구히 쓰지 않을 것과 그 대체 표현은 '버마'임을 선언하였고, 대한민국 내부의 여론으로 인하여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자동 맞춤법 전환에서 '버마' 입력시 자동으로 '미얀마'로 고쳐지는 명령 체계는 폐지되었다. 이에 발맞춰 대한민국의 일부 사회 단체도 '버마' 단독 표기를 시작하였다. 2003년 아웅산수지는 방한 중 대한민국 취재진들에게 국명을 '버마'로 표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현재 미얀마 지역에서는 약 75만 년 전부터 호모 에렉투스가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기원전 2만 5천년 전쯤에 미얀마 지역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 기원전 1만년과 6천년 사이에 가공된 석기와 재배된 곡물류 잔해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때 쯤에 신석기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신석기 시대에 그려진 벽화들도 다수 발견된 바 있다.
청동기는 기원전 1500년 정도에 시작되었고, 구리를 청동으로 제련하는 법이 개발되었고 쌀을 재배하고 돼지 등을 기르는 일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고 한다. 또한 사가잉 지방에서도 이 시기의 인간 유골들과 정착지의 유적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기원전 500년 즈음에 철기 시대가 도래하였고, 현재 만달레이 남부 지방에서 철기들이 다수 제작되기 시작되었다. 또한 쌀의 막대한 인구 부양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도시들과 마을들이 다수 생성되었고, 기원전 500년과 200년 사이에는 중국과의 교역도 시작하였다. 초기 미얀마 문명은 중국뿐만 아니라 태국 지방과 인도 지방과도 교역을 하였으며, 서로 간의 문화를 주고 받으며 발전을 거듭하였다.
기원전 2세기 즈음, 미얀마 중부 지역의 첫 도시국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 윈난성에서 이주해온 쀼족들이 이민과 정착을 거듭하며 미얀마 중부에 정착하여 마침내 거대한 도시들을 짓고 국가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쀼족의 문명은 인도와의 무역을 통하여 인도에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이 시기에 미얀마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불교도 유입되었다. 또한 쀼족의 문화는 후대의 미얀마 왕조들 대부분에게 바탕이 되어주며 미얀마 문화의 근간을 놓았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9세기경에 여러 도시 국가들은 점차 몸집을 키워 미얀마 각지로 뻗어나갔다. 쀼족의 도시국가들은 중부 지대를 점령하였고, 남부의 몬족들의 도시국가들은 남부 해안선을 따라 서남부 지방을 정복하였다. 그러나 750년경, 쀼족은 중국 윈난성 지방의 왕국인 남조에 멸망당하며 일대의 정치 균형이 깨졌고, 이 빈자리를 9세기 중반 경 이주해온 버마족들이 바간 지역에 소규모 정착지를 세우며 점차 채우기 시작한다. 버마족들의 왕국은 10세기 후반까지도 그저그런 규모의 왕국들 중 하나였으나, 점차 발전을 거듭하며 미얀마 전체를 아우르는 대국으로 성장을 이어간다.
버마인들은 1050년대부터 1060년대까지 꾸준하게 인근의 왕국들을 병합하며 성장세를 이어나갔고, 결국 아노야타 왕의 재위기에 공식적으로 바간 왕조를 개창하며 인근 지역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바간 왕조는 이후에도 확장을 계속하여 12세기와 13세기에는 캄보디아 지역의 크메르 제국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국력이 강성해졌다. 상좌부 불교도 점차 마을 수준으로 곳곳이 확산되기 시작하였으나, 고유의 힌두교, 민족종교, 대승불교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었다. 바간 왕조의 귀족들과 왕실 인사들은 바간의 수도 자체에만 1만 개가 넘는 불교 사찰들을 지었고, 수많은 문화재들을 만들어내며 문화를 찬란히 꽃피웠다. 그러나 13세기 말 경, 몽골인들이 지속하여 침공해 들어오며 1287년에 바간 왕국은 4백여년 만에 무너지게 된다.
무려 4백 여년이나 미얀마 일대를 지배해오던 바간 왕조가 망하자, 이후 약 250여 년 동안은 수많은 왕국들이 난립하며 16세기까지 혼란기가 지속되었다. 몽골족들과 함께 들어온 산족들은 자신들의 왕국들을 세우며 미얀마 북서부 지역과 동부 지역을 장악하였고, 14세기 말 경 즈음에 이르자 산족계의 왕국들은 잉와 왕국과 한따와디 왕국, 이 2개의 왕국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미얀마 서쪽에서는 정치적 분열이 지속되었고, 잠시 통일 왕조가 들어선 적도 있으나 벵골 술탄국의 보호령으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14세기와 15세기에 잉와 왕국은 미얀마를 통일하기 위해 대전을 일으켰으나,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이때 잉와를 제치고 한따와디 왕국이 전성기를 맞았고, 잉와는 갈수록 쇠락해갔다. 결국 1527년 경에는 잉와 왕국이 멸망하였고, 산족들이 1555년까지 미얀마 상부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바간 왕조와 비슷하게, 잉와, 한따와디, 그리고 나머지 산족 계열 왕국들은 모두 다민족 국가들이었다. 이 시기에는 전쟁도 벌어졌으나, 다양한 민족 간의 교류와 문화적 통일도 일어났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는 미얀마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법전이 생겨나고 종교 체계가 잡히며 대규모 사원들이 세워지는 등 문화적으로는 가히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기도 하였다.
미얀마는 16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재통일이 이루어졌다. 한때 잉와 왕국의 봉신국이었던 따웅우 왕국은 점차 힘을 길러 잉와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이후 따웅우 왕국의 젊은 왕인 따빈슈웨티 왕은 한따와디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드높였고, 그의 후계자인 바인나웅 왕은 란나, 마니푸르, 몽 마오, 아유타야 왕국, 란상 왕국 등 여러 왕국들을 정벌하며 국력을 신장하고 영토를 넓히며 한시적이나마 동남아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이루며 국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1581년에 바인나웅 왕이 사망하며 곧바로 쇠퇴기에 들어가고 말았다. 아유타야 왕국은 곧바로 따웅우 제국을 공격하였고, 상당수의 영토를 떼어갔다. 또한 포르투갈 상인들도 본국의 지원을 받아 포르투갈령 영토들을 상당수 확보하며 따웅우 왕조는 갈수록 쇠락해 갔다.
따웅우 왕조는 1613년에 국력을 재결집하여 포르투갈을 격파하였고, 1614년에는 시암을 꺾었다. 무리한 팽창으로 인한 쓴맛을 제대로 맛본 따웅우 왕조는 이전보다는 작지만 더 안정적인 왕국을 구축하는 데에 주력하였고, 미얀마 대부분, 산족 왕국들 대부분, 란나 지역 등을 통치하였다. 따웅우 왕조의 왕들은 심지어 19세기까지 이어지는 미얀마의 법 체계와 기틀을 잡았고, 봉건 영주들의 세습권들을 대부분 박탈하고 중앙 정부에서 보내는 관리들로 그 자리를 채움으로써 중앙집권적 시스템도 한 층 강화하였다. 또한 해외 각지, 그리고 내수 경제도 활성화시키며 80여 년 동안 전성기를 이루어냈고, 풍요를 누리며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1720년대 이후 외세의 침입이 거듭되며 점차 쇠락하기 시작하였고, 미얀마 하부 지역에 모여 살던 몬족들도 독립을 이루어 한따와디 왕국을 다시 세우는 데에 성공하였다. 한따와디 왕국은 1752년에 잉와 지역을 약탈하였고, 이로 인해 266년 동안 존속된 따웅우 왕조가 멸망하고야 만다.
따웅우 왕조가 멸망하고 난 이후, 미얀마의 영주였던 알라웅파야가 등장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알라웅파야는 한따와디 왕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고, 1759년에는 미얀마 전역을 통일하는 데에 성공, 한따와디 왕국에게 무기를 제공하였던 프랑스와 영국까지 몰아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1770년 경, 알라웅파야의 후계자들은 라오스 일대도 정복하였고, 버마-시암
출처: 미얀마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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