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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Ancient Greece
고대 그리스(영어: Ancient Greece)란 그리스의 역사 가운데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 로마에게 정복당한 시대를 뜻한다. 기원전 1100년경은 미노스 문명(3650~1170 BC), 키클라데스 문명(3300~2000 BC), 그리고 미케네 문명(1600~1100 BC)으로 특정지어지는 에게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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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Greece
고대 그리스(영어: Ancient Greece)란 그리스의 역사 가운데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 로마에게 정복당한 시대를 뜻한다. 기원전 1100년경은 미노스 문명(3650~1170 BC), 키클라데스 문명(3300~2000 BC), 그리고 미케네 문명(1600~1100 BC)으로 특정지어지는 에게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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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으로 조사 시작하기고대 그리스(영어: Ancient Greece)란 그리스의 역사 가운데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 로마에게 정복당한 시대를 뜻한다. 기원전 1100년경은 미노스 문명(3650~1170 BC), 키클라데스 문명(3300~2000 BC), 그리고 미케네 문명(1600~1100 BC)으로 특정지어지는 에게 문명(3650~1100 BC) 즉 그리스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그리스 암흑기(1100~750 BC)가 시작되던 때로, 도리스인의 침입이 있었다고 보는 때이다.
고대 그리스(영어: Ancient Greece)란 그리스의 역사 가운데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 로마에게 정복당한 시대를 뜻한다. 기원전 1100년경은 미노스 문명(3650~1170 BC), 키클라데스 문명(3300~2000 BC), 그리고 미케네 문명(1600~1100 BC)으로 특정지어지는 에게 문명(3650~1100 BC) 즉 그리스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그리스 암흑기(1100~750 BC)가 시작되던 때로, 도리스인의 침입이 있었다고 보는 때이다. 기원전 146년은 코린토스 전쟁으로 고대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때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고전기(Classical Greece, 510~323 BC)를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시대로 본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동족 의식을 가지고 부분적으로 결합을 이루었으나, 폴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성이 강하여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려는 뜻이 없었고 필요시 여러 폴리스들 간에 동맹을 맺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도시 국가 체제는 당시 세계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거대한 제국 또는 왕국이 형성되었던 것과는 다른 그리스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323~146 BC) 이전까지 유지되었다.
보통 고대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기틀을 다지고 서남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전역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풍부한 문화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스 문화는 로마 제국(27 BC~476/1453 AD)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로마인들은 지중해 지역과 유럽에 그리스 문화를 발전하여 퍼뜨렸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언어, 정치, 교육 제도, 철학, 과학, 예술에 크나큰 업적을 남겼고 이 지역들에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이슬람 황금 시대(9~13/15 세기)와 서유럽 르네상스(14~16세기 말)를 촉발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또 18세기와 19세기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다양한 신고전주의 부활 운동에서도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가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났는지에 대하여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연대 기준은 없다. 일반인들이 보통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라고 할 때는 로마의 그리스 정복(146 BC) 이전의 그리스 역사 전반을 이를 때 쓰지만, 역사가들은 이보다는 더 엄밀한 의미로 이 낱말을 사용한다. 미케네 문명이 기원전 1150년에 몰락하였는데, 미케네 문명이 그리스어를 쓰고 그리스 본토(Greece proper)에서 일어난 문명이었으나 그리스 고전기(Classical Greece) 문화로 대표되는 후대의 그리스 문화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미케네 문명을 고대 그리스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어떤 역사가는 최초의 고대 올림피아 경기가 열린 것으로 기록된 기원전 776년을 고대 그리스의 시작 연대로 잡기도 한다. 미케네 문명의 멸망과 제1회 올림피아 경기가 열린 시점까지의 시기를 그리스 암흑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는 문자 기록이 전혀 없으며 고고학 유물도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시기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종식은 전통적인 시각으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기원전 323년으로 보는데, 이때부터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된다. 그러나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기원전 146년을 고대 그리스 시대가 끝나는 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저자들은 기원후 3세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국교로 공인된 때를 고대 그리스 시대가 끝나는 때로 본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문명을 이 때까지 중단없이 이어진 문명이라고 보는데, 이는 아주 소수의 시각이다.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 시대는 도기 양식과 정치적 사건을 기준으로 네 시대로 세분한다.
그리스 암흑기(Greek Dark Ages, 기원전 1100년경 ~ 750년경) : 도기에 기하학적 문양을 썼다.
그리스 상고기(Archaic Greece, 기원전 750년경 ~ 480년경) : 이 시기에는 예술가들이 경직되고 신성한 자세를 취하는 커다란 입상 조각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에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고기 미소'(en:archaic smile)를 보인다. 상고기의 종식 연대는 종종 아테나이의 마지막 참주 정권이 전복되고 아테나이 민주주의가 시작된 기원전 510년으로 잡기도 한다.
그리스 고전기(Classical Greece, 기원전 500년경 ~ 323년) : 파르테논 신전처럼 모범이 된다고("고전적이라고 · classical") 평가받는 예술 양식이 보인다.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Hellenistic Greece, 기원전 323년 ~ 146년) : 그리스의 문화와 패권이 중동까지 뻗어간 시대. 이 시대의 처음과 끝은 각각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로마의 그리스 정복이 일어난 때에 해당한다.
고대 그리스의 세계는 현대 그리스뿐만이 아니라 그리스인들이 정착하여 헬레니즘을 비롯한 그리스 문화가 퍼진 지역을 포괄한다: 키프로스, 그리고 당시에 이오니아로 알려진 터키의 에게해 연안, 마그나 그라이키아(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와 현재의 알바니아, 불가리아, 이집트, 리비아, 프랑스 남부, 에스파냐 남부, 카탈루냐, 사카르트벨로,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의 그리스 정착지 등이 있다.
그리스 인들은 스스로를 헬라스 사람(Ἕλληνες, '헬레네스')이라고 부르고, 이민족인 '오랑캐'(βάρβαροι)와 구별하였으며, 헬레네스가 사는 곳을 본토와 식민지를 통틀어 헬라스(Ελλάς)라고 칭하였다. 폴리스(도시 국가)들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중심으로 근린 동맹(Amphictyony)을 맺고, 기타 정치적 군사적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에서 기원전 776년부터 4년마다 모든 폴리스가 참여하는 체전을 열고 그 기간 동안은 서로 전쟁을 금지하였다. 이렇듯 그리스 사람들이 동족 의식을 가지고 부분적으로 결합을 이루었으나, 폴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성이 강하여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필요시 여러 폴리스들 간에 동맹을 맺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도시 국가 체제는 당시 세계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거대한 제국 또는 왕국이 형성되었던 것과는 다른 그리스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청동기 시대 중기(대략 기원전 2000년경)부터 발칸반도에서 나중에 그리스인을 이루게 될 부족들이 몇 차례에 걸쳐 남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원시 그리스어는 이 시기 이주민들이 오기 직전에 쓰인 언어로, 기원전 3000년대 후반 또는 늦어도 기원전 17세기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원시 그리스의 청동기 문명은 보통 '헬라딕(helladic)' 문명이라고 칭하며, 흔히 말하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이전 단계이다.
소위 미케네 문명이 이 시기에 흥성하였으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기록되어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150년 갑자기 몰락하였는데, 도시는 약탈당하고 인구가 크게 줄었다. 청동기 시대의 붕괴는 그리스 본토에 침입한 마지막 그리스인 집단인 도리스인의 출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두 사건이 인과적으로 연결된다는 견해가 다수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청동기 시대가 종식되면서 그리스는 "암흑기"에 접어든다.
청동기 시대 이후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 시대를 그리스 암흑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1차 문헌 사료는 전혀 남아있지 않으며, 고고학 유적과 유물만 남아있을 뿐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나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서술',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디오도루스 시쿨루스)의 역사집, 히에로니무스의 크로니콘(Chronicon) 등 2차 3차 사료는 이 시기의 짤막한 연대기와 임금의 목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실하게 알려진 자료가 없기 때문에 암흑기라고 일컫고 있다.
그리스는 지중해성 기후에 속하여 여름은 덥고 건조하나 겨울은 다소 따뜻하고 비가 내린다.여름에는 전혀 비가 내리지 않는 환경 때문에 항상 물 부족이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후 덕택에 그리스 일대는 포도와 올리브가 가장 중요한 농산품이었으며 소규모의 목축을 수반한 다각적인 농업경영이 지중해 일대의 농업 특색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리스에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어 각 골짜기나 평지가 하나의 지리적 단위를 이룬다. 이러한 지리 조건이 그리스에서 폴리스라는 작은 도시 국가가 들어선 주된 요인이다. 이러한 지형으로 말미암아 그리스 사람들은 바다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렇듯 자연 환경이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일찍이 해외무역에 종사하였다. 포도주, 올리브와 공산품은 매우 중요한 물자였다.
도리스인이 남하했을 때 미케네 문명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도리스인의 침략으로 일부 그리스 사람들은 에게해의 섬과 소아시아 방면으로 이주하였다. 그리스인들이 이주한 소아시아 해안지대와 인접한 섬들을 이오니아라고 하였는데, 미케네 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있던 이오니아는 오리엔트 문화와도 접촉하기 쉬워서 폴리스도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에서 먼저 성립하였다.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는 암흑 시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미케네의 선형 B 문자가 잊혀진 이래 문자가 없었으나, 그리스는 페니키아 문자를 도입하고 이를 수정하여 그리스 문자를 만들었다. 기원전 9세기경부터 문자 기록이 등장하게 된다.
미케네 사회가 붕괴된 뒤 그리스 본토에는 서너 부족으로 이루어진 소왕국이 여기저기 나타났으며, 현실적인 생활 단위는 개별 가족으로 구성된 촌락 공동체였다. 그리스의 지형 때문에 각 자치 공동체는 바다나 산맥에 따라 이웃과 단절되어 각 섬과 계곡, 평야에 각자 독자적인 취락을 이루었다. 정치는 왕정이었으나 임금의 권력은 미약하였으며 토지 소유에서도 미케네와 달리 공유지와 이에 따른 공동체적 규제가 없고, 촌락공동체의 성원은 저마다 클레로스(κλήρος, 분배지)를 소유하여 경제적 독립성이 강하였다. 도리스인이 남하하여 혼란이 일어난 데다, 다른 나라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여러 촌락이 지리적ㆍ군사적으로 중심이 되는 곳에 모여들어 도시가 형성되었고, 그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촌락들이 하나의 독립된 주권국가인 폴리스를 형성하였다는 집주설이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고 있다. 대체로 그 시기는 호메로스 시대가 끝나는 기원전 800년을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예외도 많다. 그렇기는 하나 여러 촌락의 중심시로의 집주로 폴리스가 성립한 게 전형이라 하겠으며, 따라서 이를 도시 국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폴리스의 중심이 되는 도시는 대체로 해안으로부터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하였으며, 도시는 폴리스의 정치, 군사 및 종교의 중심이었다. 도시 안에는 그 도시의 수호신을 모신 신전이 세워진 아크로폴리스(ἀκρόπολις)가 있었으며, 그 주변에는 아고라(αγορά)라는 광장이 있다. 이곳은 시장인 동시에 정치를 포함한 모든 공공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사교의 장이기도 하였다.
렐란토스 전쟁(기원전 710년경 ~ 650년경)은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기록에 남은 오랜 전쟁이었다. 이 싸움은 유력한 폴리스(도시 국가)인 칼키스와 에레트리아가 에우보이아의 비옥한 렐란토스 평야를 놓고 벌인 전쟁이었다. 명목상 칼키스가 승자이긴 하나, 오랜 전쟁으로 두 도시 모두 쇠퇴하였다.
폴리스가 성립할 당시 중심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주로 귀족과 수공업자 또는 상인들이었으며, 농민은 촌락에 머물었고 귀족들도 그 근거지를 농촌에 그대로 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폴리스 성립 이전의 공동체적인 성격이 파괴되는 일이 없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시민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노예와 여러 대에 걸쳐 거주하고 있는 자유인과 외국인(metic)도 완전한 의미의 시민은 아니었고, 오직 폴리스를 형성하는 데 참여한 부족의 성원 내지 그 후손만이 완전한 시민이었다. 즉 폴리스는 종교적ㆍ경제적 유대로 결합하고 법에 따라 규제되며, 완전한 독립성과 주권을 가진 시민 공동체로 볼 수 있다. 폴리스는 고전기에는 본토에만 200개가 넘었고, 소아시아에서 에게 해와 지중해 일대에 건설된 식민시까지 합치면 1000개가 넘었으나 각 도시의 그 넓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폴리스가 성립한 기원전 8세기에는 호메로스 시대의 왕들은 사라지거나, 실권이 없는 명목상의 존재가 돼버렸고 정치 권력은 귀족에게 넘어갔다. 촌락을 단위로 하는 부족적인 성격이 강한 임정에서 실권을 빼앗은 귀족들이 편의상 중심 도시로 집주하였다. 이것을 폴리스의 성립과 귀족 정치를 연관시키려는 견해도 있다.
귀족은 평민보다 많은 토지와 가축을 소유하고 있을
출처: 고대 그리스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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