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아랍에미리트
United Arab Emirates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아랍어: اَلْإِمَارَات الْعَرَبِيَة الْمُتَحِدَة 알이마라트 알아라비야 알무타히다[*], 영어: United Arab Emirates), 약칭 아랍에미리트 또는 UAE는 서남아시아의 아라비아반도 남동부에 있는 전제군주제 연방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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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Arab Emirates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아랍어: اَلْإِمَارَات الْعَرَبِيَة الْمُتَحِدَة 알이마라트 알아라비야 알무타히다[*], 영어: United Arab Emirates), 약칭 아랍에미리트 또는 UAE는 서남아시아의 아라비아반도 남동부에 있는 전제군주제 연방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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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연합국(아랍어: اَلْإِمَارَات الْعَرَبِيَة الْمُتَحِدَة 알이마라트 알아라비야 알무타히다[*], 영어: United Arab Emirates), 약칭 아랍에미리트 또는 UAE는 서남아시아의 아라비아반도 남동부에 있는 전제군주제 연방 국가이다.
샤이크가 통치하는 7개의 토후국이 연합하여 구성한 전제군주국가(مشيخة, Sheikhdom)로, 구성한 토후국은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지만, 움알쿠와인, 라스알카이마, 푸자이라 등이며, 이들은 서로 다른 군주가 통치하며 이 군주 중 1명이 아랍에미리트 전체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오만과 육상 국경을 접하며, 카타르, 이란과 해상 국경을 접하고 있다. 2013년 아랍에미리트의 인구는 약 920만 명이었는데, 이들 중 140만 명만이 아랍에미리트인이었고, 나머지 780만 명은 외국에서 들어온 노동자와 외국인들이다.
현재 아랍에미리트 지역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12만 4천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원생 인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정착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인도의 인더스 문명,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국가들과 활발히 교역하며 번영을 이루었다. 그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가 이 지방을 점령하였고, 이들의 영향으로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아랍에미리트 지방은 위치가 많은 교역로들이 모였다고 지나치는 곳이었기에, 얼마 되지 않아 아랍의 상인들은 근방 지역들의 해상 무역로들을 장악하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다만 이들의 무역 독점은 16세기 들어 포르투갈과 영국과 같은 서구 열강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아랍에미리트는 서구와의 갈등을 몇 차례 겪은 이후, 영국과 1820년에 해상 조약을 체결하였고,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71년 12월 2일에 마침내 영국에게서 독립을 이루어냈으며, 6개의 토후국은 그 직후 아랍에미리트 연방에 가입하였으며, 라스알카이마 토후국은 1972년 2월 10일에 가입하였다. 이슬람교는 아랍에미리트의 국교이자 최대 종교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7위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첫 대통령이었던 자예드 대통령은 기반 시설의 중요성을 직감하고 석유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교육, 복지, 인프라건설 확충에 쏟아부었으며, 이것이 나중에 아랍에미리트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두바이와 같은 대도시들이 중동의 금융 중심으로 떠올랐고, 아랍에미리트는 관광업과 금융업 등이 발전하며 이전보다는 훨씬 덜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에 의존할 수 있게 되었다. 수도는 아부다비로서, 아랍에미리트의 정치, 산업, 문화의 중심지이다. 국내 최대 도시는 두바이이다. 아랍에미리트는 걸프 협력 회의 창립 회원국이며, 아랍 연맹의 회원국으로, 유엔, 이슬람 회의 기구, 석유 수출국 기구, 세계 무역 기구에도 가입하며 지역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지역에 최초의 인류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5500년경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3000년경부터 건조한 사막 기후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500년경부터 오아시스 지역을 중심으로 최초의 정착촌이 형성되었고,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지중해, 시리아와의 해상 및 육상 무역 통로로서 역할을 하였다. 기원전 30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촌락이 형성되어 그리스와 남부 아라비아로부터 갖가지 물품을 수입하였다. 아랍에미리트 해변에서는 기원전 4500~4000년경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우바이드 양식 채색 토자기가 발굴되었다.
240년 이란 사산 왕조가 아라비아 동부 지역 전체를 점령하였다.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 움 알 콰인, 후자이라 등 각지에서는 사산 왕조의 동전과 도자기가 발굴되었다.
630년 무함마드가 파견한 사절에 의하여 이슬람교가 전파되었으며, 632년 무함마드 사망 후 '릿다 운동'이라 불리는 반이슬람 폭동이 대대적으로 발생하였으나 초대 칼리파 아부 바크르에 의하여 진압되었다. 특히 디바(현재 샤르자 지역) 일대에서는 반란 진압으로 10,00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16세기에는 아라비아반도 동남부 해안 지역에서 포르투갈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대립이 고조되었으며, 포르투갈은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 카이마 등 주요 항구를 점령하였다. 18세기에는 영국 동인도 주식회사가 이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약 2세기 동안 장악하였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이 지배했으나 17세기에 영국이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점차 이 지역을 보호령화시켰다. 그러나 번영국은 오직 자신을 제외한 외세 세력들이 아랍에미리트에 관여하지 못하게만 하는데에 그쳤고, 토후국 끼리의 내정에는 거의 간섭하지 않았기에 토후들은 모두 국내 지배를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
18세기까지는 아라비아반도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이 유럽 국가의 선박들을 자주 습격했기 때문에 해적 해안(海賊 海岸, Pirate Coast)이라고 불렀다. 이 지역의 토후들과 해적들이 하도 영국의 상선을 약탈하는 일이 잦자, 참다못한 영국이 군대를 파견하였으며 토후국들은 '서양의 상선을 영구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라는 각서를 쓰고 영국의 보호령으로 들어갔다. 1820년 1월 8일 영국과 아라비아반도의 셰흐들 사이에 체결된 해상 조약에 따라 휴전 오만이 수립되었고 1853년에는 영국과의 항구적인 해상 휴전 조약이 체결되었다. 원래 영국은 사막과 모래뿐이었던 당시의 아랍에미리트 지방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후 아랍 지역에서 석유와 유전이 대규모로 발견되자 이의 중요성을 인지한 영국은 이를 대대적으로 탐사하여 막대한 부를 끌어가려 하였다. 하지만 1966년에 이르자 영국도 세가 기울어 더는 효과적으로 아랍 지역을 통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게 되었으며, 영국군도 아랍 현지 반발 세력들을 제압하기에는 너무나 넓게 펴져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68년에는 해럴드 윌슨 총리가 아랍 지역을 점차 독립시키겠다는 정부의 생각을 발표했고, 1971년에 에드워드 히스 총리가 이를 재확인하였다. 다만 이 결정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영국의 보호 아래 권력을 누리고 있던 아부다비의 유력자들은 영국의 결정을 번복하려 시도하였으나, 노동당이 권력을 잡고 있던 영국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후 영국이 최종적으로 아랍 지역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아랍 지역의 9명의 토후는 서로 모여 연합체를 구성하려 하였으나, 내부 간의 불화 때문에 제대로 결정한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영국군이 그해 12월에 철수한다고 하는 통보가 왔음에도 아랍 현지에서는 제대로 된 정부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독립의 날이 점차 가까워지자, 아랍 지역 내부에서도 무정부 상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게다가 이란의 무장 집단이 걸프만 하구에 상륙, 섬을 강탈하고 현지인들을 쫓아내는 일을 벌였는데, 영국군도 이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으며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 집단들은 아부 무사 섬에도 접근하였으나, 그곳의 토후가 이란과 빠른 협상을 벌여 1년에 3백만 달러를 내고 임차해 주기로 하며 혼란이 일단락되었다. 그 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부다비의 수로 사용권을 요구하였다.
본디 바레인과 카타르는 아랍에미리트에 포함되어 독립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바레인은 1971년 8월에, 카타르는 9월에 독립하며 아랍에미리트와는 다른 독자노선을 갔다. 한편 영국과 아랍 셰흐들 간의 조약은 1971년 12월에 만료되었고, 아랍인들은 그해 12월 2일에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1971년 12월 2일에 6명의 토후국이 모여 새 국가의 이름을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로 하기로 하였다. 1972년에는 7명의 토후가 임명한 4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위원회가 창설되었고 1971년 12월 6일에 아랍 연맹에, 12월 9일에는 국제연합에 가입하였다. 아랍에미리트는 걸프 협력 회의의 창립 국으로 참여하였으며, 아부다비에서 첫 회의를 개최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하였다.
19세의 아부다비 소년이었던 '압둘라 모하메드 알 마이나'가 1971년에 공식적인 아랍에미리트 국기를 제작하였다. 아랍에미리트의 국기는 아랍의 상징색인 붉은색, 검은색, 초록색, 흰색이 담겼으며, 다른 토후국들이 연합하여 미래를 위해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1971년 12월 2일에 공식 채택되었으며, 알 마이나는 후에 체코에 아랍에미리트 대사로 파견되었다.
아랍에미리트는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준동하는 탈레반, 2003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맞서기 위하여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맺었고, 막대한 무기를 수입하며 군사력을 증강했다. 또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일어나는 테러와의 전쟁에도 참가하기도 하였다. 1994년에는 미국과 방어 조약을 맺었으며, 몇 년 후에는 프랑스와도 방어 조약을 맺으며 군사적으로 협력도를 끌어올렸다. 2008년 1월에는 프랑스와 조약을 맺어 아부다비 인근에 영구적인 프랑스 군기지 주둔을 허가하기도 하였고, 2011년 3월에는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원정에 군인들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2004년 11월 2일, 아랍에미리트의 첫 대통령이었던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나하얀이 사망하였다. 이후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아랍에미리트는 헌법에 따라 각 토후국의 국왕, 즉 칼리파들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이후에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히얀이 아부다비의 왕세제로 아부다비의 칼리파직을 승계하였다. 2006년 1월에는 두바이의 국왕이자 총리였던 막툼 빈 라시드 알막툼이 사망하였고,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 아랍에미리트의 총리직과 두바이 국왕직을 모두 승계하였다.
1952년 7개 부족 통치자로 구성된 '걸프 지역 영국 보호령 연합위원회'를 설립해 '연합 국가' 건국을 시도하였고, 1971년 12월 2일 6개의 토후국(Emirate)이 '아랍에미리트연합국'을 창설하였고, 이후 1972년 라스 알 카이마가 연합에 합류하였다.
헌법이 명시한 최고 행정 및 입법기관은 '연방 최고회의'(Federal Supreme Council)로 7개의 토후국의 통치자로 구성되고, 대통령과 총리 내각을 선출한다. 대통령은 임기 5년의 국가원수로 관례로 아부다비 통치자가 선출되며 아랍에미리트 통합군 총사령관을 겸직한다. 연방 총리는 내각의 수반으로 임기는 5년이며, 대통령이 제청하여 연방 최고회의 동의로 선출된다. 관례로 두바이 통치자가 선출되며 부통령직을 겸직한다. 아부다비 왕가인 알 나흐얀 가(Nahyan)는 연방정부 예산의 70%를 부담하고 있다.
내각은 연방 총리의 제청으로 연방 최고회의에서 선출하며, 법안 발의 및 연방 예산 승인, 연방정부 감독의 역할을 한다. 각 토후국 간의 권력 구조에 따라 각료가 배분된다.
아부다비가 외교, 내무, 정보 등 6명의 장관들을 선출하고 두바이와 샤르자가 각각 국방, 재정, 경제, 무역 등을 나누어 가진다. 푸자이라, 라스 알 카이마가 2개씩, 움알쿠아인이 1명을 배정받는다.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s)은 행정부의 최고 기구로, 대통령, 총리, 부총리 등으로 이루어져 현재 총 22명의 각료들이 있다. 국방장관은 부통령 겸 총리가 겸임하며, 국무를 담당하는 장관은 금융과 산업 담당, 내각 담당, 외교 담당, 연방 담당 장관들이 있다.
군사력은 총 70,000명으로 육군 47,500명, 해군 2,500명, 공군 9,000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4년 모병제에서 18~30세 남성이 2년 동안 복무하는 징병제로 전환되었다.
다만 구성한 토후국의 자치를 보장하기 위하여 아랍에미리트 연방정부의 담당은 오직 연방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만 한정되어 있고, 연방정부는 각 토후국에서 일정한 비율로 세금을 걷어 국정을 운영한다. 아랍에미리트는 자국의 통치자들을 이슬람의 칭호인 아미르 대신 셰흐라는 칭호로 부른다. 셰흐의 칭호는 부족 중심으로 나뉘어 있던 아라비아반도의 전통이 현재까지 내려온 산물인데, 당시 아라비아에서 셰흐는 지도자, 연장자, 혹은 부족장을 의미했는데 이것이 아직도 살아남아 현재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한 토후국들의 공식적인 칭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역사상 1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총리들이 부통령직을 겸임하기도 한다
출처: 아랍에미리트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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