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시에라 엔터테인먼트
Sierra Entertainment
시에라 엔터테인먼트(Sierra Entertainment)는 미국의 비디오 게임 관련 회사로, 주로 배급을 하면서 회사내에 자체적으로는 네개의 개발 스튜디오를 갖고 있다. 비벤디 SA 자회사인 비벤디 게임즈의 자회사이다.
단체
Sierra Entertainment
시에라 엔터테인먼트(Sierra Entertainment)는 미국의 비디오 게임 관련 회사로, 주로 배급을 하면서 회사내에 자체적으로는 네개의 개발 스튜디오를 갖고 있다. 비벤디 SA 자회사인 비벤디 게임즈의 자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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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 엔터테인먼트(Sierra Entertainment)는 미국의 비디오 게임 관련 회사로, 주로 배급을 하면서 회사내에 자체적으로는 네개의 개발 스튜디오를 갖고 있다. 비벤디 SA 자회사인 비벤디 게임즈의 자회사이다.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1979년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켄 윌리엄스와 로버타 윌리엄스의 집에서 시작된다. 켄 윌리엄스는 IBM과 계약한 프로그래머로, 3000마일 떨어진 로스앤젤레스에서 메인 프레임 컴퓨터로 소득세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켄 윌리엄스는 '온라인 시스템즈(On-Line Systems)'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해 금융, 통신, 데이터베이스 관련 업무를 시작했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컴퓨터 본체에 '어드벤처'로 분류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평소 호기심이 많던 그는 그것을 실행해 보았고, 그 게임은 바로 최초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인 거대한 동굴(Colossal Cave)이었다. 켄은 그 즉시 그 게임에 매료되었다.
로버타의 경우 그 당시에 컴퓨터에 대해 별로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켄이 '거대한 동굴'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동화와 어드벤처 소설을 좋아했었기에 그녀는 그 게임에 열광하게 된다.
1979년 성탄절, 켄은 64kb의 메모리와 140kb의 FDD와 단색 모니터 사양의 2000$짜리 애플 II를 구입하였고, 애플 PC를 위한 포트란 컴파일러를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한 회사가 '어드벤처 인터내셔널(Adventure International)'이라고 하는, 애플 II용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들을 개발하였다.
로베르타는 그 게임들을 돌려보았는데, 그것들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모험 게임들에 대하여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였다. 로베르타는 문자로만 장면을 묘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는 점을 깨달았다. 현대식 PC는 그림을 화면에 나타낼 수 있으니까, "너는 집 앞에 서 있다." 라고 글로 표시하는 대신에, 집 그림을 화면에 표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며, 그러면 즐기기에 더 재미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로베르타는 부엌 탁자에 앉아서 스스로의 생각을 써 보기 시작하였다. 3주 후 로베르타는 집안일을 하고, 7살과 1살짜리 애들을 보면서 만든 미스테리 하우스(Mystery House)라고 불리는 PC 게임의 각본을 켄에게 발표하였다. 그 게임은, 7명의 다른 사람과 한 오래된 집에 밤새도록 갇혀 있는 주인공이, 그 중 1명의 살인자를 찾아야 하는 추리물이었다. 그 집안에는 숨겨진 보물도 있었으며, 그것을 찾는 요소도 덤으로 있었다. 켄은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기존 문자만으로 표현하는 방식 대신 문자+그림으로 표현하자고 하는 로베르타의 제안에 결국 설득되어버리게 되었다.
로베르타는 켄이 일과 후 저녁에 로베르타의 게임 개발을 도울 수 있도록 관리하였다. 켄은 애플 II의 매우 제한된 기억 장치에 들어갈 수 있는 그림 정보량의 총합을 구하고, 아직 시장에는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종이의 그림을 컴퓨터에 옮겨 담을 수 있는 기계 팔이 달린 조악한 펜 태블릿을 구입하였다. 켄은 게임에 필요한 논리 코드를 작성하였고, 로베르타는 문서와 그래픽 작업을 하였고 켄이 로베르타가 원하는 위치에 그것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감독하였으며, 품질관리 일도 스스로 하였다.
부부는 대략 3달간의 작업을 하였고, 1980년 5월 5일, 미스테리 하우스가 드디어 출시 준비를 끝냈다. 부부는 마이크로 매거진(Micro Magazine)이라는 잡지에 작은 광고를 실었고, 게임의 사본들을 만들어 지퍼 달린 가방으로 봉인된 작은 상자로 포장하였다. 상자의 그림은 실력 있는 유화 화가였던 로베르타의 어머니, 노바(Nova)가 도안하였다. 그 게임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4군데의 소프트웨어 매장에서 부부가 직접 진열하였다. 가격은 24.95$였고 켄의 회사 이름인 온라인 시스템즈(On-Line systems)라는 이름으로 진열되었다.
부부의 첫 PC 게임이 끝났을 때, 부부는 미래 계획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하였다. 만약 PC 게임이 잘 팔려서 PC 게임만 만들어도 연 수입 40,000$ 이상을 벌 수 있게 된다면, 번잡한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숲 속의 통나무집"에 살면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애들을 키우면서 PC 게임을 만들면서 살자고. 그야말로 (부부의 미래와 비교해보면) 아주 소박한 꿈이었다.
미스테리 하우스는 대박이 났다. 그 게임의 그림은, 비록 거친 선으로만 된 단색의 고정된 그림이었지만, 이전의 PC용 게임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좋아하였다. 주문이 폭주하고 떼돈이 들어왔다. 1980년 8월, 미스테리 하우스는 부부에게 로스앤젤레스를 떠날 수 있을 만큼의 목돈을 안겨주었다. 부부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남쪽에 위치한 시에라 네바다 언덕아래의 코스골드(Coarsegold)라는 작은 마을에 금광촌의 집을 샀는데, 로베르타의 부모 존(John)과 노바(Nova)가 사과 과수원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미스테리 하우스는 그림을 가지고 있는 첫 PC 게임이었고, 그것은 PC 게임 역사의 한 이정표가 되었다. 모두 15,000부가 팔렸고 167,000$를 벌어들였는데,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부부는 게임을 사기 위한 사람들로부터 밤낮으로 전화를 받게 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부부는 갑자기 3~4만의 사람들이 부부 집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6달 후에, 부부는 코스골드에서 11.2 km 북쪽에 위치한 오커스트(Oakhurst)의 작은 산으로 이사하였다. 부부가 페인트 가게 위에 있는 사무실을 빌릴 때까지 부부의 새 집은 3달 동안 혼란상태였다. 부부의 첫 피고용인은 그의 형제인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였고, 초기 온라인 시스템즈 직원들은 부부의 친구와 친척들이었다.
이제 시에라는 1982년 회사명을 온라인 시스템즈에서 시에라 온라인(Sierra On-Line)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그 기간에 출시된 다른 어드벤처 게임들은 마법사와 공주(Wizard and the Princess, Advanture in Serenia 라고도 알려져 있다)와 타임 존(Time Zone), 그리고 머펫(Muppets)의 제작자 짐 헨슨(Jim Henson)의 영화 원작의 다크 크리스털(Dark Crystal)이 있었다. 타임 존(Time Zone)은 2DD 디스켓 6장의 용량이었는데, 이는 이후 7년동안 만들어진 가장 큰 PC용 게임이었다.
어드벤처 게임의 다음으로 시에라 온라인(Sierra On-Line)은 프로거(Frogger)와 조브레이커(Jawbreaker)같은 성공한 아케이드 게임의 면허를 얻어 발매하였다. 이 게임은 시에라비전(SierraVision)의 이름을 달고 팔렸다. 홈워드(HomeWord)라는 애플 II·아타리·코모도어 64 등의 플랫폼에 쓰이던 워드 프로세서 소프트웨어 이외의 소프트웨어도 발매되었다. 켄은 시에라 온라인(Sierra On-Line)이 디지털 유희 산업의 인지를 얻을 초반 동안 열심히 일하였고, 곧 시에라 온라인은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있었다. 켄의 PC 게임에 대한 견해는 극적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부부가 만들어 온 게임들이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하였다는 수백 통의 편지가 전국에서 날아온 덕분이었다. 그 중에는, 켄이 존경하던,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보낸, 부부에게 애플 II에서 돌아가는 부부의 게임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는 내용의 편지도 있었다.
80년대 초기에는, 수많은 회사들이 가정용 컴퓨팅이라는 새롭고 매우 매력적인 시장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서기 위하여 피 터지게 싸웠다. 모험적인 투자자들은 시에라 온라인에 초기자본을 투자하고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다. 투자자들은 시에라 온라인이 관심을 가정용 게임기로 돌렸으면 하였고, 모험 자본의 많은 수가 아타리 2600(아타리 VCS), 콜레코 아담과 VIC-20 같은 가정용 게임기에 투자하였다. 모험 투자자들의 투자방향은 실패로 판명되었고, 1984년 중반 즈음에는 시에라 온라인은 파산직전상태가 되었다. 아무도 사지 않는 수백만달러의 게임 카트리지들에 눌려, 시에라 온라인의 역사는 이렇게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재난 발생 1년 전에, 시에라 온라인은 신상품 PCjr의 떡밥이 될 게임의 제작을 원하는 IBM과 접촉하였다. IBM은 게임 개발 전 과정에 걸쳐 비용을 대고, 사용료도 지불하고, TV광고도 하기로 하였다. IBM은 크게 대박을 칠 만한 건수를 원했다. 이것은 시에라 온라인에게 큰 기회이자 위기였다. 부부는 동의하고 곧바로 계획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와 공주(Wizard and the Princess)의 정신으로, 로베르타는 한 기사가 3가지 잃어버린 보물을 찾아내어 절망의 왕국을 구해낸다는 고전동화에 근거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로베르타의 게임구상은 움직이는 다색 그림이 포함되었는데, 등장인물은 가상 3차원 화면 내를 자판의 방향키로 조작하는 대로 돌아다니는 방식이었다, 사용자의 명령을 잘 해석해낼 수 있는 똘똘한 문자 해석기가 필요하였고, PCjr의 소리 장치로 음악도 나와야 했다. 등장인물은 화면 내 물체의 앞뒤로 다닐 수 있어야 하고 그 화면처리도 되어야 했다. 요약하자면 게임은 사용자가 조작할 수 있는 동영상 만화 같은 분위기여야 했다. 전례가 없던 방식이었고, 몇몇 사람들은 구현이 불가하다고까지 생각하였다.
로베르타의 모든 그림, 문장, 논리 코드의 구현을 위해, 시에라 온라인은 새 제작 도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어드벤처 게임 인터프리터(Adventure Game Interpreter의 줄임말)라고 불리는 어드벤처 게임 해석 도구가 만들어졌다. 모든 문장, 그림, 소리, 게임 논리는 이 해석기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방법으로 다른 게임도 같은 해석기를 이용하여 같은 방법으로 쉽게 만들 수 있었으며, 타 기종으로 이식하려면, 해석기만 이식기종에 맞게 변환해주면 되었다. 게임 자료 자체는 바꿀 필요가 거의 없었다.
1984년 여름, 킹스 퀘스트가 출시되었다. 킹스 퀘스트는 "땅콩"이라는 별명이 달린 IBM PCjr의 대박상품 중 하나가 되었고, 시에라 온라인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PCjr자체는, 표준 IBM PC와의 호환성이 떨어졌고, 조악한 자판의 문제로 사용자가 사용하기에 편한 물건이 못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애플 매킨토시의 등장은 PCjr의 등장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PCjr는 실패작이 되었고, 이는 시에라 온라인게는 새로운 재앙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대 반전이 시에라 온라인을 구했다. IBM이 PCjr의 생산을 중단한 지 몇 주 뒤에, 탠디 사(Tandy Corporation)가 1985년 신 기종인 탠디 1000을 소개하였다. 탠디 1000은 (시장의 평판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PCjr와 호환이 되었으며, MS-DOS와도 호환이 되었는데, 이는 시에라 온라인에게 있어 구세주임에 다름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탠디 1000을 구입하였고, 탠디 1000은 곧 가정용 컴퓨터 시장의 주도적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를 구입한 많은 사람들은 킹스 퀘스트 게임도 샀으며, 시에라 온라인은 다시 돈을 벌기 시작하였고, 곧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1980년대 하반기는 시에라 온라인에게 엄청난 성장과 성공의 시기였다. 시에라 온라인은 부부의 부엌 식탁에서 시작하여 몇 년 동안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러나 '가족사업'의 분위기를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급속히 전국으로 퍼지고, 사람들은 먼 곳으로부터 오커스트로 와서 시에라 온라인을 위하여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자 하는 부부의 꿈을 나누었고, 작지만 급속히 성장하는 산동네에서 새 삶을 시작하였다. 이 초반 시절 동안 이 분야를 지원하는 고객들은 매우 친절하고 도움이 되었으며, 고객들의 충성도도 높았으며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시에라 온라인은 또한 그들의 상징기호를 몇 년 동안 사용하여 잘 알려진 그 모습으로 바꾸었다.
1985년 5월, 시에라 온라인은 킹스 퀘스트 2(King's Quest 2: Romancing the Throne)을 출시하였다. 전편이 대박이 난 만큼 큰 기대를 하게 만드는 속편이었다. 2편은 전편과 같은 AGI 엔진을 사용하였고 기술적으로 크게 달라진 면은 없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더 크고 더 좋은 게임이었다. 자세한 건 열혈애호가들에게 물어보삼
출처: 시에라 엔터테인먼트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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