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브라질
Brazil
브라질 연방공화국(브라질 포르투갈어: 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 헤푸블리카 페데라치바 두 브라지우), 줄여서 브라질(브라질 포르투갈어: Brasil 브라지우)은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연방제 공화국이다. 브라질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면적이 넓고 인구도 2억 1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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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연방공화국(브라질 포르투갈어: 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 헤푸블리카 페데라치바 두 브라지우), 줄여서 브라질(브라질 포르투갈어: Brasil 브라지우)은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연방제 공화국이다. 브라질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면적이 넓고 인구도 2억 1천만 명이 넘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수도는 브라질리아이고, 최대 도시는 상파울루이다. 26개의 주와 1개의 연방구로 나라를 구성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포르투갈어가 공식 언어인 유일한 국가이며, 세계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브라질은 동쪽으로 대서양을 접하고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7,491 킬로미터 (4,655 mi)이다. 브라질의 면적은 대략 남아메리카의 절반에 이르며, 에콰도르와 칠레를 제외한 남아메리카 모든 국가가 브라질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브라질에는 습지, 사바나, 고원, 낮은 산맥 등 다양한 열대 및 아열대 경관이 존재한다. 아마존 분지 대부분은 브라질에 속해 있으며, 여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계와 가장 광범위한 원시 열대우림이 있다. 브라질은 수많은 환경보호구역에 걸쳐서 다양한 야생동물, 다채로운 생태계,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브라질은 생물다양성 부국 상위 17개 국가들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삼림 벌채 등으로 인한 브라질 국내의 환경 파괴가 기후변화 및 생물다양성 손실과 같은 글로벌 이슈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브라질의 자연유산은 전세계적으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우바도르는 브라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1501년 모든 성인의 날에 포르투갈인들이 들어왔다. 이어 1549년 포르투갈 식민지 첫 번째 수도로 건설했다. 천연적인 좋은 항구로 여러 세력들의 약탈대상이 되었고, 1642년에 네덜란드 군대가 점령하였다. 그러나 포르투갈 군대 공격으로 되찾아 포르투갈 식민지의 중심지로서 사탕수수 수출과 아프리카 노예 무역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브라질 남부에서 금을 발견하여 광업이 발전하고, 커피재배가 성행하는 등 경제 중심이 남부로 이동하고, 1763년 식민지의 수도도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겼다. 사탕수수 재배는 카리브해 일대로 그 중심을 이전했고, 노예무역을 금지하면서 크게 쇠퇴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브라질 동북부 중심지로서 번영을 되찾았다.
대서양을 접한 브라질은 7,491km 해안선이 있으며, 에콰도르와 칠레를 제외하고 모든 남아메리카 국가들과 국경을 접할 만큼 영토가 넓다. 영토 면적은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47.3%이다.
브라질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열대 우림들 중 하나인 아마존 열대우림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생태계가 자리하며 수많은 자연 자원들이 풍부하여 발전 잠재 가능성도 크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열대 우림을 갖고 있는 만큼, 전세계적으로 이 열대 우림의 개발과 보존 요구 사이에서 갈등도 많이 일어난다. 1500년에 페드로 알바레스가 상륙하기 전까지 수많은 부족들이 브라질에 살았었다. 이후 포르투갈인들이 포르투갈 제국을 세워 브라질 지역을 통치하였고, 제국 수도를 리스본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했던 1808년까지 식민지로 지배하였다. 1815년에 브라질은 식민지의 지위에서 왕국으로 변모하였고, 1822년에는 브라질 제국을 선포하며 독립을 얻어냈다. 브라질 제국은 입헌군주정으로 의회를 갖춘 국가였으며, 1824년에 드디어 양원제 형식의 의회를 구성하였다. 1889년에는 군 쿠데타가 일어나 군주제를 폐지하자 브라질은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변화하였다. 권위주의적인 군부가 1964년에 집권하여 1985년까지 브라질을 지배하였고, 그 이후에 민정이 들어서 민주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변모하였다. 해안 지역에 집중한 인구를 분산시키려고 19세기 초 포르투갈 수도였던 남서부 해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960년에 중부 내륙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겼다. 삼바와 카니발의 본고장이며, 축구 강국으로도 유명하다. 브라질은 그 다양한 역사와 문화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세계에서 13번째로 많이 보유한 나라이다.
세계은행은 브라질을 신흥산업국으로 분류하며,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경제국들 중 하나로 분류한다. 명목 GDP는 세계 9위이며, PPP로 환산하면 순위가 8위다. 엄청난 크기의 농지를 바탕으로, 지난 15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커피를 많이 생산하는 국가로 떠올랐으며 막대한 양의 식품들을 수출한다. 브라질은 지역강국이며, 가끔씩은 국제사회에서 중견국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몇 분석가들은 브라질의 성장하는 경제와 인구에 기반하여, 브라질이 미래 강대국을 발전한다고 예측한다. 브라질은 UN의 창립 국가이며, G20, BRICS, 메르코수르, 미주 기구,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일원이다.
정식 명칭은 포르투갈어로 “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이며, 공식적인 영어 표기는 “Federative Republic of Brazil”이다. 포르투갈어로 "Brasil"라고 표기하지만, 영어로는“Brazil”라고 표기를 한다. 그러나 수도 브라질리아는 포르투갈어인 “Brasília”로 표기한다.
‘브라질’이라는 이름은 브라질나무에서 비롯하였다. 브라질나무는 붉은 색 염료로 쓰이는 나무로, ‘불타는 숯처럼 붉은 나무’라는 뜻의 ‘파우 브라질(pau-brasi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지역에서 브라질나무를 활발하게 수출하면서 유럽에서는 이 지역을 ‘브라질의 땅(Terra do Brasil)’이라 불렀다.
포르투갈인들이 '아라부탄'이라고 부르는 나무의 붉은 수액을 염료로서 귀중하게 취급하여서 '브라지레(타오르는 불꽃 같은)'라고 칭했다. 이 브라지레가 현재의 국명 '브라질'의 유래가 되었다.
처음 1500년 포르투갈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상륙했을 때에 남미 대륙 일부가 아니라 섬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베라크루즈 (진정한 십자가) 섬"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마누엘 1세 시대에 "산타크루스(성스러운 십자가)의 땅"으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브라질’이라는 이름을 선호했고, 16세기에 브라질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브라질 최초의 주민은 BC 11,000년에 베링해를 건너서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8000년경 현재 브라질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현재 브라질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잉카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지역이었기에 이 지역은 원시적인 농경을 영위했다. 이후 유럽인들이 인디오라고 부른
투피-과라니계 원주민들이 이곳에 살았다. 16세기 전반기에 이러한 원주민들이 해안 지역에만 100만명에서 200만명 정도 살았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도래할 때까지는 브라질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정보나 기록은 없다. 브라질 원주민은 투피어계 외에 알아크어계, 카리브어계 집단이 있었다. 포르투갈인들이 처음으로 투피 어계 원주민을 만났다. 그래서 포르투갈 사람은 투피 원주민 언어를 브라질 지역의 중심 언어라고 오해했고, 원주민 각 지파의 언어 차이가 있었지만 구분하지 못했던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에게 투피 말을 가르쳤다.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에 도달한 후, 이미 발견했던 아메리카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브라질도 식민지화 위협을 받았다. 1500년에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한 이후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다른 남북 아메리카 대륙과 다른 역사를 걸었다. 초기 브라질에서는 기독교도로 개종한 이들을 중심으로 파우 브라질의 수출이 주요 산업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처음에 베라크루즈 섬으로 불렸던 브라질은 16세기에 들어서 브라질이라고 불렀다. 1549년에 프랑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초대 브라질 총독으로 토메 데 수자가 사우바도르에 부임했다.
158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와 연합하자 브라질은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의 공격을 받아 북동부 일부를 네덜란드 공화국이 점령하였다. 네덜란드는 1661년 철수하였다. 한편, 파우 브라질이 고갈된 이후 새로운 산업으로 북동부에 마데이라 제도에서 사탕수수를 도입하여 엔제뇨(설탕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력으로 먼저 인디오를 노예화한 후 인디오 수가 부족하자 서부와 앙골라, 모잠비크에서 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삼고 대량으로 포르투갈인이 농장주인 파젠다(농장)로 데려와 혹사시켰다.
브라질 내륙의 탐험은 상파울루의 반데이란테(노예사냥 탐험대)가 17세기에 시작했다. 반데이란테는 각지에 원정하여 현재 도시의 기반이 되는 마을을 많이 세웠지만, 남부와 파라과이까지 원정하여 예수회를 보호하던 과라니 사람마저도 노예로 잡아갔다. 이런 가운데 힘든 강제노동에 참다못한 흑인 노예 중에는 브라질 오지로 도망쳐 주거지를 형성한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주거지들을 ‘모캄보’나 ‘킬롬보’라고 불렀고, 이곳에서 아프리카 흑인들뿐만 아니라 인디오 원주민들도 있었다. 이러한 킬롬보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는 오늘날 알라고아스주에 위치에 있었으며, ‘강가 줌바’가 다스렸다. 이후 그의 후계자인 ‘즘비’가 통치를 이었다. 이후 네덜란드인들과 포르투갈인들이 여러 차례 팔마레스를 공략하였지만 실패했고, 1695년 유명한 사오 파울로 출신 도밍고스 조르제 벨호가 가까스로 킬람보 공략에 성공하여 즘비를 처형하고 이곳을 정복했다.
1680년 포르투갈 식민지 정부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무시하고 라플라타강 하구 좌안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건너편에 콜로니아 데 세크라멘토를 건설했기 때문에 이후 반다 오리엔탈 지역은 독립 이후까지도 지속적으로 브라질과 부에노스아이레스 권력 사이에 충돌의 장이었다. 또한, 남부에서 라플라타 지역의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가우초라는 목동 집단이 생뎠다.
이후 18세기에는 미나스제라이스에서 금광을 발견하자 골드 러시가 일어나, 브라질 중심이 북동부에서 남서부로 이동했고 1763년 리우데자네이루가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다. 무려 30만명의 포르투갈인들이 18세기 금을 채굴하려고 브라질로 이주하였고, 금광을 개발하고자 더 많은 흑인 노예를 수입했다. 한편 미나스의 중심지였던 오루프레투(Ouro Preto)에 독창적인 바로크 문화가 번창했다. 반다 오리엔탈을 둘러싼 스페인과 충돌 후 18세기 말에는 계몽주의가 유럽에서 전해지면서,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의 영향을 받아 1789년 포르투갈에서 독립을 하려 했던 "미나스의 음모"가 발각되어, 주모자인 치라덴테스를 처형하였다. 이후 아이티 혁명의 영향을 받아 크리올 백인이나 물라토, 크레올 흑인(크레올로)이 독립 운동틀 진행하지만, 식민지 시대에 브라질에 대학을 설립하지 않고 교육 기반이 부족해 지적 환경 매우 부족했다. 이는 브라질 독립 운동을 주도한 일부 지식인의 활동은 그저 "음모"에 머물렀고, 대중적인 기반을 가진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브라질과 이스파노 아메리카 국가 독립의 정체성 차이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반도 전쟁은 1807년 장 주노(Jean-Andoche Junot)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을 침공하면서 발발하였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 왕가는 리스본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였고, 이후 리우의 개발을 진행했다. 1815년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및 알가르베 연합 왕국의 수도로 결정했다. 포르투갈 정부는 반다 오리엔탈의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가 이끄는 연방 동맹과 전투를 통해 반다 오리엔탈을 지배하였으며, 정복한 지역에 시스플라티나 주(Cisplatina)를 설립했다. 1820년 포르투갈을 자유주의적인 입헌군주국으로 변혁하려는 혁명이 일어나자, 리우데자네이루의 주앙 6세가 귀국을 요청했다. 1821년 포르투갈 왕궁은 리스본으로 귀환했지만, 섭정으로 잔류한 브라간사 왕가의 황태자 페드루를 죠제 보니파시오를 대표하는 브라질인 세력이 지지하여, 1822년 9월 7일에 페드루는 황제인 페드루 1세(재위 1823-1831)에 즉위하여 브라질 제국이 포르투갈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브라질 독립은 브라간사 왕가 황제라는 구심력이 있었다.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데 산 마르틴, 미겔 이달고 등이 주장하던 공화제와 입헌군주제 사상은 충돌하지 않았다. 이스파노 아메리카 국가 분열과 달리 광대한 브라질 식민지 단일 단위로 새로운 주권 국가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것은 독립 후에도 식민지 시대 엘리트 계층의 권력 유지를 의미했다.
따라서 제
출처: 브라질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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