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984
김정은
Kim Jong-un
김정은(金正恩, 1984년 1월 8일 ~ )은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세우는 등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10년부터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3대 세습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물1984
Kim Jong-un
김정은(金正恩, 1984년 1월 8일 ~ )은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세우는 등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10년부터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3대 세습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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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으로 조사 시작하기김정은(金正恩, 1984년 1월 8일 ~ )은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세우는 등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10년부터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김정은(金正恩, 1984년 1월 8일 ~ )은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세우는 등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10년부터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3대 세습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원수가 되었다.
그는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스위스 유학 중 사용된 가명은 '박운'이다. 김정일 사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통수자"로 칭해지고 있다. 2012년 4월 11일에 아버지 김정일을 이어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되었으며, 4월 12일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되었다. 2012년 7월 18일 원수로 진급했다.
2016년 5월 9일 자신의 조선로동당 제1비서 직책을 폐지하고, 조선로동당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권력을 얻게 되었다. 이후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으며,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대신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적성국이었던 대한민국과 미국과 각각 정상회담을 두 차례씩 개최하여 국가지도자로서 세계 무대에 드러냈다. 또한 2021년 1월 10일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198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 겸 수반 김정일과 무용수 출신 네번째 부인인 고용희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친형 김정철이 있었고, 여동생으로 김여정이 있다. 그밖에 이복 누나 김혜경, 이복 형 김정남, 이복 누이 김설송, 김춘송, 친구 권우석 등이 있다.
당초 그의 출생 정보에 관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출생연도에 대해서 김일성(1912년생)과 김정일(1942년생)의 출생연도와 끝자리를 맞춰 1982년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며, 김정일과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후지모토 겐지는 1983년생이라고 밝혔으나, 후에 대한민국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서는 김정은의 유학 시절 여권 등을 근거로 1984년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출생지에 대해선 평안북도 창성군이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강원도 원산시에 위치한 김정일의 별장 "602호 초대소''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김정은의 어린 시절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랑스를 거쳐 16세 때 스위스로 유학하여 김나지움(Gymnasium, 일반계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한다. 스위스 베른 근교의 중학교인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공립학교에 유학, 유학 당시에는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학교 기록 등에 따르면 중학교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일어 보충학습을 받은 뒤 1998년 8월에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 해당)으로 편입되었다. 그는 9학년이던 2000년 말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 담임이었던 시모네 쿤은 마이니치(每日; 매일)신문에 “그가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서 ‘내일 귀국한다’고 말한 뒤,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0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인민회의와 로동신문 보도를 통해 김정운이 아닌 김정은으로 확인하였다.
귀국 뒤, 2000년대 중반부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버지 김정일 및, 조선노동당과 주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아버지인 김정일의 권유로 조선 인민군에서 하전사로 입대하였으며 하전사로서 1년 6개월 동안 군복무를 한 이후 하전사에서 곧바로 중장으로 진급했다.
한편 김정일은 2009년 3~4월경 김정은을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임명해 자신을 대신해서 엘리트들을 감시하게 하고, 김정일 사후에도 김정은이 엘리트들을 확고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군사 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의 우동측 부부장이 김정은의 보위부를 통한 엘리트 장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당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으며, 이로써 실질적인 무력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다.
2010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연평도가 포격을 당했다. 이 포격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철저한 계획 아래 실시되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12월 1일 북측 내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의 이름으로 지난달 초 ‘적의 도발 행위에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라’는 지령이 북한군 간부들에게 하달 됐다”고 보도하였다. 이것이 김정은 후계 구도를 더욱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김정은은 북측에서 포병 전문가로 미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편, 대한민국의 시민단체 모임인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이번 연평도 포격이 "계획적인 한국 영토 조준 공격, 민간인 거주 지역 공격, 대량 살상용 방사 포탄 사용 등의 공격 유형으로 보아 연평도 포격 도발은 유엔헌장 제2조 4항, 로마규약 제8조에 저촉되는 전쟁 범죄"라고 강조하며, 북한의 김정일과 그의 후계자 김정은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북측은 도발에 대한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2010년 12월 28일 김정은은 연평도 포격당시 전사한 조선인민군 5명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시점은 2009년으로, 대북 소식지가 이를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사실 파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확인을 거부했으며,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와 같은 국내 대북 전문가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도 김정은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등을 들며 후계자 지명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명한 것을 중국에 알리는 등 후계자 지명이 구체화 됨에 따라 후계자 지명은 기정 사실화되었으며, 김정일 유고시 김정은의 군부 장악 가능성에 대한 예측 보도가 뒤를 잇기 시작했다. 그 후 2010년 9월 27일 조선인민군 대장 임명, 28일 3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 임명 절차를 거치며 김정은은 북조선의 국가통수권 후계자로 공식 확정되었다. 그동안 유년기, 청소년기의 사진으로만 알려져왔던 김정은의 얼굴은 후계자로 확정된 9월 28일 노동당대표회의 기념사진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다. 10월 6일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을 경축하는 행사를 벌인다.
김정은의 3대 세습체제 구축은 북조선 내외에 불만을 가중 시켰다. 북한 내부에선 3대 세습에 대한 반발 조짐이 일면서 김씨 부자를 비방하는 전단이 돌거나 폭약이 밀반입 되는 사건이 발생 했으며, 일본의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내부 조직원들도 세습에 대해 반발을 보인다.
2011년 12월 17일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은 일단후계자로서의 업무를 맡게 되었고, 12월 30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그는 2012년 4월 11일에 조선로동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되면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취임하여 명실상부한 북한의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그는 그 전에는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써 국가를 통치했었다. 2016년 5월, 조선로동당 7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당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결정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우리 당의 최고 수위에 높이 추대할 데 대하여' 가 7차 당대회에서 채택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6년 5월 10일 보도하였다.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 후계자였던 김정은은 새로운 중국식 경제개혁 준비를 2011년 8월부터 12월까지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와 대외 경제 부서의 과장급 혹은 부원들을 파견보내어 중국식 경제개혁 사업을 지시하였다.
이때 12월 14일 연구 결론은 생산 공장 및 서비스 업종에 대하여 임대정책을 기본으로 내세우는 작업을 하기로 결론내리고 2012년 4월에 경제개혁을 시행을 하려고 하였음을 알수가 있었고 이때부터 상무조가 편성이 되려고 하는 시점에 결국 김정일이 사망하였는데 결국 김정은의 지시로 중단없이 계속 4월로 확정이 되어 추진을 하려고 하였음을 알수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의 한마디 때문에 4월의 경제 개혁 지시가 6월로 미루어져 있음을 알수가 있었고 간신히 무마되어 6월에 내각 상무조가 편성이 되어 12.1 경제개혁조치로 시행이 되어 독립채산제 및 포전담당책임제 시범 실시를 한 끝에 3월 1일 3.1 경제개혁조치가 실시됨으로 북한 전역에 독립채산제가 실시가 되었다.
2014년 5월 30일에는 김정은이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군, 내각 기관의 관리들을 모아놓고 5.30 담화를 발표하여 충격을 주었고 이때 담화는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는 공장, 기업소, 협동조합이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에 기초해 실제적인 경영권을 갖고 기업 활동을 창의적으로 해 조선로동당과 국가에 지닌 임무를 수행하며, 근로자가 생산과 관리에 주인으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기업 관리 방법이라고 규정했다.
기업소는 제품 개발권과 품질 관리권, 인재 관리권을 행사해 지식 경제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기술, 새제품을 적극 개발하고 제품의 품질을 개선해 기업소의 경쟁력을 높이도록 했다.
더불어 과학자와 기술자이 근로자들과 함께 첨단 돌파의 주인으로 내세워 기업소가 새 기술의 적극적인 수요를 충족 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공장기업소와 협동농장에서 직장과 작업반, 분조 단위에서 근로자가 포전 담당 책임제와 독립채산제를 실정에 맞게 제시해 기계 설비와 토지, 시설물 등 국가적, 협동적 소유의 재산을 관리, 이용하도록 권장했다.
그리고 차등 임금제를 수립하여 월급을 일한만큼 많이 주어야 하고 공정하게 받아야 한다고 역설을 하였음을 김정은이 담화로 발표를 하였음을 알수가 있었다.2021년, 조 바이든이 김정은과 대화할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11일, 김정은은 조선로동당 4차 대표자회에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 되었고, 이틀 후인 13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추대 되어 김정일의 직책을 모두 세습하는데 성공한다. 이로써 근ㆍ현대사상 최초로 공화정 지도자의 3대 권력세습이 공식화되었고, 같은 날 광명성 3호를 발사하였으나 기술적 문제로 인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2012년 7월 18일 최고인민회의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은에게 기존 대장 계급에서 2단계 높은 원수 칭호를 부여할 것을 결정하였다. 원수 칭호는 이미 사망한 김일성·김정일에게만 부여된 대원수의 바로 아래 계급으로, 이전까지는 리을설이 유일했었다. 원수 바로 아래 계급인 차수는 보직 해임된 리영호를 포함하여 현재 총 8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김정은이 받은 원수칭호는 공화국 원수칭호로 리을설, 최광, 오진우 등이 받은 인민군 원수와는 다른 한단계 위에 있는 계급이다.
그리고 12월 12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은하 3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로켓에 문제가 있어 정비를 위해 분해하는 것으로 위장하였다가 기습적으로 발사하여 은하 3호에 적재된 위성을 위성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이 벌어진 것은 지난 7월 1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는 김정은이 직접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으며 상무위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 총리, 최룡해 총정치국장, 리영호 총참모장과 정치국 위원 자격으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참석하였다.
리영호는 오랫동안 작심한 듯 6.28 방침은 선대 수령들이 평생을 다해 지킨 사회주의 원칙을 버리고 자본주의를 끌어들이려는 잘못된 생각이며 특히 제국주의자들의 개혁 개방에 굴복해 당과 군대를 팔아먹는 행위라고 쏘아붙였다.
이때부터 리영호와 장성택의 정면 충돌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었고 리영호의 주장에 맞서 장성택은 곧바로 이번 정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더 많은 것을 돌리자는 취지였음을 알 수 있다.
지난 과거 국가는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해 인민생활 향상에 이바지했지만 이제는 인민의 요구대로 자체로
출처: 김정은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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